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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시계는 1~2분 정도 틀려도 친구와의 약속시간을 지키는데 큰 문제가 없다. 스포츠 시합을 할 때는 100분의 1초까지 시간을 재는 정밀한 시계가 필요하다. 교통관리시스템의 시간 오차는 1000분의 1초, 휴대전화와 기지국은 10만분의 1초보다 작아야 한다. 인공위성항법장치(GPS)는 10억분의 1초 단위로 시간을 맞춰야 한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시간을 정확히 맞춰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첨단 기기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시계를 맞추는 걸까.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에 있는 ‘광펌핑 세슘원자시계’ KRISS-1은 신이 인간에게 준 ‘1초’를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 기계다.


 

[광펑핑 세슘원자시계 KRISS-1. 한국 표준시간은 모두 이 KRISS-1을 기준으로 맞춘다. 세계 표준시간을 유지하는 데도 쓰인다.]


 

[한국의 ‘표준시간’을 유지하는 시계는 따로 있다. 표준연 시간센터는 5개의 세슘원자시계와 4대의 수소메이저 시계를 합해 모두 9개의 원자시계를 사용한다. 시계마다 미세한 오차가 있기 때문에 9대 시계의 평균값을 표준시간으로 삼는다. 이 9개 시계는 KRISS-1이 만든 ‘정밀한 1초’를 기준으로 삼는다.]



“시간표준이 없다면 정확한 물리법칙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권택용 표준연 기반표준본부 시간센터장은 시간표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모든 물리표준의 기본’이라는 말을 했다.



시간을 나타내는 초(s)를 비롯해 길이의 단위인 미터(m), 온도의 단위인 캘빈(K), 광도의 단위인 칸델라(cd)와 전류의 단위인 암페어(A), 물질량의 단위인 몰(mole) 그리고 질량을 나타내는 킬로그램(kg)까지 모두 7개의 기준을 합쳐 국제표준계(SI)라고 부른다. 우리들은 이 7가지 정의를 이용해 힘(N), 진동수(Hz), 압력(Pa)과 같은 다양한 단위를 만들어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점점 ‘물리적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1m’를 나타내는 ‘원기’가 있었다. ‘원기와 길이를 똑같이 맞추면 1m’라는 식으로 기준을 정해서 썼다. 하지만 지금은 ‘빛이 진공상태에서 2조2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라고 학술적으로 규정한다. 절대적인 자연현상을 시간개념과 합쳐 표준값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미터는 물론 칸델라, 암페어 등 다른 기본단위도 이런 식으로 만든다.



1초=세슘원자 92억 번의 진동



결국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1m는 물론 1cd도, 1A도 구해내지 못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란 ‘시간으로 만드는 공식’에서 출발한다고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1초는 또 어떻게 정하는 걸까. ‘세슘-133 원자가 갖는 바닥상태의 두 초미 전이에 해당하는 복사선이 가지는 주기의 9,192,631,770배의 지속시간’이라고 적고 있다. 쉽게 말해 세슘-133이라는 물질에서 원자 하나를 뽑아낸 다음, 이 원자에서 나오는 복사선이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라고 정했다는 뜻이다.



말은 쉽지만 이런 진동을 측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미세한 원자가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므로 주위를 진공으로 만들어야 하고, 지구나 주변물질이 만들어내는 자기장, 전자파 등도 모두 차단해야 한다. 주위의 간섭을 받으면 세슘원자가 1초에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할 수 없기 때문에 정밀한 시간측정에 큰 오차가 생긴다.


 

[표준주파수국(HLA)의 모습. ‘시간표준’을 전파에 실어 내 보내는 작은 방송국이다. 표준연 내 작은 동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9대의 원자시계를 이용해 만든 ‘한국의 표준시각’을 5Mhz 주파수의 라디오 전파에 실어 내 보낸다.]



10년 연구 끝에 세계적 원자시계 완성



그런데 이런 원리로 어떻게 시계를 만든다는 걸까. 바늘이 똑딱똑딱 움직이는 일반 톱니바퀴 시계와는 다르다. 원자시계는 일종의 ‘주파수 발생기’를 생각하면 된다. 세슘원자의 진동수와 같은 파장(마이크로파)을 만들고, 이 파장을 이용해 시간을 표현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세슘원자의 주파수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주파수를 비교하며 주파수를 몇 배로 늘리거나 빼는 방법을 써서 계속 나누어 나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정확하게 1초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을 60진법으로 곱해 1분, 60분(1시간), 24시간(1일)으로 차례로 곱해 나가면 원자시계가 된다.

사실 모든 원자가 다 고유의 진동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원자를 이용해도 원자시계는 만들 수 있다. 굳이 세슘을 쓰는 이유는 진동하는 동안 외부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기 때문이다.



표준연 시간센터는 30만 년에 겨우 1초 오차가 나는 세슘원자시계 ‘KRISS-1’을 2008년 완성했다. 10여 년간의 연구 끝에 자기장, 빛, 중력, 전기장 등 세슘의 고유 진동에 영향을 미치는 10가지 주변 요인을 찾아내 오차를 없애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통 공장 등에서 정밀하게 시간을 맞추기 위해 쓰는 판매용 원자시계는 3만 년에 1초의 오차가 나니 정확도가 10배나 높은 것이다. 이 정도로 정밀한 원자시계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이탈리아 7곳밖에 없다.


 


[권택용 표준연 시간센터장]



 

KRISS-1은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도량형국에 ‘1차 주파수 표준기’로도 등록했다. 전 세계에 있는 10대의 표준시계 중 한 대로 인정받은 것이다.



1차 주파수 표준기는 국제협정시(UTC)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계 중의 시계’다. 국제협정시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시각비교를 통해 만들어진다. 여러나라가 원자시계를 이용해 측정한 시간을 평균해서 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시간도 미세한 오차가 생길 수 있다. 그 시간을 초의 정의에 맞도록 보정하는데 사용하는 것 1차 주파수표준기다. 그 중 한 대가 KRISS-1이다. 한국의 원자시계가 세계의 시간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KRISS-1은 ‘광펌핑 방식’을 쓴다. 레이저광선을 세슘원자에 쬐어 주어 시계로 동작할 수 있도록 원자의 내부 상태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이런 KRISS-1이 한국 과학계에서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일단 국내 시간을 맞추는 ‘한국의 표준시계’ 역할을 한다. 표준연 시간센터에는 KRISS-1 이외에도 9대의 원자시계가 움직이고 있다. 이 시계들은 KRISS-1을 기준으로 서로 평균값을 비교해 가며 대한민국 표준시간을 맞추고 있다. 이 정보를 연구소 내에 있는 ‘표준주파수국(HLA)’이라는 방송국을 통해 전국으로 송신하고 있다.



KRISS-1덕분에 한국의 시간표준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뛰어 올랐다. ‘대한민국표준시’는 국제표준시각에서 30ns(나노초, 1ns는 10억분의 1초) 이내에서 시간 오차를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7개 선진국만 이런 수준의 시간유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휴대전화나, 인공위성용 시계 등 산업과 과학계 현장에서 각종 정밀시계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표준연 시간센터를 찾아야 한다. 이런 시계를 정확하게 교정해 주는 것도 표준연 시간센터의 일이다.



미래 시계는 ‘빛의 파장’ 이용할 것



과학자들은 현재 세슘원자시계보다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1초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세슘이 아니라 ‘스트론튬’이나 ‘은’ 같은 원자를 쓸 확률이 높다. 이미 어느 정도의 기술도 개발돼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 준 예 교수팀은 이미 2007년 세슘원자시계만큼 정밀한 스트론튬원자시계를 개발했다. 스트론튬 원자에 앞뒤 양옆 위아래 여섯 방향으로 레이저를 쏘아 고정시킨 다음, 안정도가 매우 높은 탐지용 레이저를 원자에 쪼이는 방식으로 스트론튬의 고유진동수를 측정해 냈다. 스트론튬 원자가 빛을 가장 강하게 낼 때 탐지용 레이저가 몇 번 진동하는지를 측정하면 스트론튬원자의 진동횟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스트론튬이 각광받는 이유는 물질의 고유 진동수가 세슘보다 약 10만 배 정도 더 높기 때문이다. 세슘원자시계보다 10만 배 가량 정밀한 시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은’도 주목받는데, 세슘원자시계보다 100배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은원자의 고유 진동수가 450조 번이나 된다.





은이나 스트론튬으로 시계를 만들려면 마이크로파가 아닌, ‘팸토초 모드록 레이저’라는 특정한 빛을 내는 레이저를 개발해야 한다. 이 빛을 원자에 쏘여주며 빛의 파장을 원자의 고유진동수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차세대 원자시계가 ‘광시계’라고 불리는 이유다.



표준연 시간센터에서도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광시계는 미래에 광통신을 활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태양계 바깥으로 나가는 우주선이나 차세대 광통신이 상용화되려면 세슘시계보다 더 정확한 시계가 꼭 필요하다.



표준연 시간센터의 노력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이들이 만들어내는 정밀한 시간표준만큼 한국과학의 기틀도 튼튼히 다져지길 기대한다.


 


[HLA에서 발신하는 라디오 전파를 내 보내는 전파 송신 시설. 보통 ‘시보탑’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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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이미지 출처│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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