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는 몇도일까.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는 이른바 ‘절대영도’라 불리는 0K(-2백73℃)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좀더 차가운 상태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현재는 절대온도에 거의 근접한 상태다.
저온생물학의 근간이 되는 극저온의 세계가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지 알아보자.
영원한 기체상태인 기체가 존재할까
차가움을 이용했던 인류의 기록은 기원전 10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중국인들은 얼음창고를 이용했으며, 로마나 그리스에서도 겨울철의 눈을 모아 벽 사이에 넣어 빙고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지증왕 시절인 505년에 음식물을 저장했던 석빙실의 유적이 현재 경주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인류가 본격적으로 냉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계적 힘을 이용한 인위적 냉동기가 개발되면서부터다. 19세기 중반 페르디나드 까렝은 인류 최초로 기계식 흡수 냉동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873년 린데는 실용적이고 이동가능한 압축식 냉동기를 만들었다.
차가움을 얻기 위한 냉동과는 별개로, 과학자들은 ‘영원한 기체’(permanent gas)로 불리던 공기의 액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호기심은 ‘영원히 기체상태로 존재하는 기체가 과연 존재할까’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물질은 일정한 압력에서 온도가 낮아질수록 기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고체로 상태가 바뀐다. 따라서 산소처럼 실온에서 항상 기체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이라도 온도를 낮추면 모두 액체로 바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확인하고자 과학자들은 저온의 세계로 내려갔다.
하지만 기체의 액화는 이와는 다른 계기에서 최초로 성공했다. 1840년대 미국의 의사 고리는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를 위해 방의 온도를 낮추고자 소량의 공기를 액체화시켰다. 이때 그는 높은 압력에 갇혀있는 기체를 갑자기 팽창시켜면 온도가 낮아지면서 액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리가 개발한 방법은 오늘날 에어컨의 작동원리와 같다. 이후 1853년 줄-톰슨은 많은 양의 공기를 한꺼번에 액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에 따라 기체의 액화 기술도 빠르게 발전했다.
이후 순수 원소에 대한 액체화가 이어졌다. 1877년 프랑스의 광산 기술자인 까이이떼는 압력 용기에 들어있는 3백기압의 산소를 갑자기 팽창시킴으로써 액체의 산소 방울을 얻었는데, 이것이 순수 원소에 대한 액체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폴란드의 로블레프스키와 올체프스키는 질소와 수소를 액체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질소기체는 77K(-1백96℃), 수소기체는 20K(-2백53℃)에서 액체로 바뀐다. 드디어 인간이 영하 2백53℃까지 극복한 셈이다.
생화학 반응 정지하는 극저온의 세계
한편 이때까지 액체화되지 못한 기체가 있었다. 바로 헬륨이다. 헬륨은 20세기 들어 액체화됐다. 1908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온네스는 끓는점이 가장 낮은 물질인 헬륨을 액체화함으로써 저온액체 중 끓는점이 가장 낮은 온도인 4.2K(-2백68.8℃)까지 극저온의 영역을 넓혔다. 특히 그는 여러 물질의 전기저항이 온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꾸준히 관찰한 결과, 4K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을 발견했다. 온네스는 극저온의 세계와 초전도성의 발견이라는 업적을 인정받아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런 수많은 과학자의 노력을 통해 ‘저온학’(cryogenics)이 형성됐다. 저온학의 어원은 차가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kryos’와 어떤 것을 생겨나게 한다는 ‘genes’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차가움을 만드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현대의 저온학은 주로 1백20K(-1백53℃) 이하의 온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다룬다. 즉 상온보다 조금 낮은 온도를 다루는 일반 냉동분야보다 훨씬 낮은 온도를 다루는 분야다.
특히 극저온 환경에서는 일반 저온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현상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온학이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극저온에서는 생명체의 생화학적인 현상이 거의 정지할 뿐 아니라,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과 액체의 특성이 확연히 달라지는, 즉 점성이 없어지는 초유동과 같은 신기한 현상이 관찰된다.
저온학 연구에서 저온을 만들고 유지하는 기술은 필수적이다. 저온을 생성하고 유지해야 비로소 저온에서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극저온 냉동공학의 발달로 절대영도(0K, -2백73℃)에 매우 가까운 온도까지 만들 수 있다.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극저온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팽창되면 온도 떨어지는 특성 이용
극저온을 얻는 방법은 먼저 헬륨의 끓는점인 4.2K를 얻기 위한 연구에서 시작됐다. 자연계에서 물질의 온도가 스스로 낮아지는 현상을 관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계적 장치를 사용하면 물질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온도를 낮추는데 가장 흔히 쓰이는 냉각법은 ‘줄-톰슨 효과’(Joule-Thomson effect)를 이용하는 것이다. 줄-톰슨 효과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에어컨과 냉장고 등에서 온도를 낮추는 원리다. 압축기를 통해 만들어진 고압의 냉매가스가 작은 모세관 또는 팽창 밸브를 지나면 팽창하면서 저압으로 떨어지는데, 이때 기체의 온도가 내려간다. 물론 모든 기체가 언제나 고압에서 저압으로 팽창될 때 온도가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기체마다 온도가 내려갈 수 있는 한계점이 존재하는데, 이를 ‘최대 역전온도’라 한다. 즉 이 온도 이하에서만 줄-톰슨 효과가 발생한다.
이 원리를 이용한 가장 간단한 기체 액화시스템은 1895년 린데가 줄-톰슨 효과만을 이용해 발명한 린데-햄슨 공기액화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현재까지도 많은 개선을 거쳐 고압의 공기나 질소, 산소 등을 저압으로 팽창시켜 액화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다. 물론 이때 온도가 떨어짐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기체는 최대 역전온도가 상온보다 높으므로 줄-톰슨 효과를 이용해 온도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헬륨이나 수소, 네온의 경우는 최대 역전온도가 각각 45K(-2백28℃), 2백5K(-68℃), 2백50K(-23℃)로 상온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아무리 고압으로 압축한 뒤 저압으로 팽창시켜도 상온에서는 냉각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이런 기체에 대해서는 부가적인 냉각장치를 이용한다. 바로 ‘팽창엔진’이다. 헬륨이나 수소, 네온 등은 팽창엔진을 이용해 최대 역전온도 이하로 온도를 낮춘 뒤, 줄-톰슨 효과를 이용해 액화시킨다.
따라서 팽창엔진은 효율적인 극저온 냉동기에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팽창엔진의 원리는 고압의 기체를 기계적 팽창장치를 통해 외부에 일을 하게 함으로써, 기체의 에너지를 강제로 감소시켜 기체의 온도를 계속해서 낮추는 방법이다. 이 냉각 방식은 줄-톰슨 효과와는 달리 강제적인 일을 통해 외부로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에 언제나 온도가 감소한다.
대부분의 기체 액화시스템에서는 최대 역전온도 이하까지는 팽창엔진을 이용해 냉각을 하고, 최종 액체 생산 단계에서는 린데-햄슨 시스템처럼 줄-톰슨 효과를 이용해 저온을 얻고 있다. 원하는 저온을 얻을 때까지 팽창엔진을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저온 팽창으로 생성된 액체가 팽창엔진의 작동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헬륨의 경우 1947년 콜린스가 여러 단계의 팽창엔진을 사용해 좀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액체헬륨 생산시스템을 개발했다.
한편 전통적인 기체 액화시스템과는 달리 순수하게 팽창엔진의 원리로만 저온을 얻을 수 있다. 1950년대 필립스사가 개발한 극저온 냉동기가 대표적 예다. 이 냉동기는 일반적인 냉동기와는 달리 액체헬륨의 온도까지 냉각이 가능하다.
극저온 냉동기의 핵심 원리는 ‘스털링 냉동사이클’이라는 방법이다. 이 사이클은 이론적으로 매우 복잡하나 극저온을 얻는 기본 원리는 팽창엔진과 동일하다. 하지만 기체 액화사이클은 대용량의 냉동 시스템에 주로 이용되지만, 스털링 사이클은 소용량 시스템에 사용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증발냉각의 한계 0.3K
그렇다면 극저온의 한계는 액체헬륨의 끓는점인 4.2K일까. 그렇지 않다. 이보다 낮은 온도도 얻을 수 있다. 대표적 방법이 ‘증발냉각’이다. 무더운 여름날 길거리에 물을 뿌려 주변을 시원하게 만든다거나 부채로 부칠 때 피부가 시원해짐을 느끼는 원리를 이용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액체가 기체로 변할 때 주변의 열(이를 잠열이라 함)을 흡수해 온도가 낮아지는데 이런 현상을 증발냉각이라 한다.
저온학에 이용되는 증발냉각법은 펌프를 이용해 액체질소나 액체헬륨 등의 표면에서 이들 액체의 기화를 유도함으로써 온도를 더욱 낮추는 것이다. 77K의 액체질소의 경우, 증발냉각을 이용하면 63K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으며, 4.2K의 액체헬륨의 경우 약 2K까지 냉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온도가 계속 내려가면 액체분자의 운동이 줄어들어 증발시킬 기체의 양도 적어지기 때문에 강제 증발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럴 경우 헬륨의 동위원소 중 원자량이 3인 헬륨3을 이용하면 온도를 더 낮출 수 있다. 헬륨3은 보통의 헬륨(헬륨4, 원자량이 4인 헬륨)보다 가벼워 휘발성이 좋기 때문에 2K보다 낮은 0.3K까지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헬륨3은 지구에서 매우 희귀한 물질이다. 헬륨4가 공기 중에 0.00013% 정도 존재하는데, 헬륨3은 이 중에서 겨우 ${10}^{-5}$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헬륨3은 가격이 매우 비싸 일반적인 극저온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한계가 있다.
원자의 자기 성질 이용 μK
여기까지가 현재의 기술로 얻을 수 있는 K단위의 극저온의 한계다. 이보다 더 낮은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특수한 방법들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희석 냉동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K단위 극저온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극저온 냉동기에 서로 다른 두가지의 냉동 사이클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사이클을 적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증발냉각과 희석 냉동기를 조합하는 방법이다. 즉 증발냉각기의 저온부에서 희석 냉동기를 작동시키는 개념이다. 희석 냉동기는 헬륨4와 헬륨3의 혼합 기체를 냉매로 사용한다. 이 경우 K단위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 mK(${10}^{-3}$K)단위까지 냉각시킬 수 있다.
이렇듯 유체를 증발해 얻을 수 있는 극저온의 한계는 mK 수준이다. 이보다 낮은 온도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냉각’이라는 방법이 쓰인다. 자기냉각은 물질의 ‘자기열 효과’를 이용해 저온을 생성시키는 비유체 냉각법의 하나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에는 독특한 자기적 성질이 있는데, 이들은 외부에 자기장에 없을 때 불규칙적인 방향으로 분포돼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을 걸어주면 원자의 자기 성질은 외부에서 걸어준 자기장 방향으로 일정하게 정렬된다.
이럴 때 외부의 자기장을 갑자기 없애주면, 원자의 자기 성질은 다시 원래의 불규칙한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원자 내부의 불규칙성은 커지고 따라서 엔트로피도 증가한다. 따라서 물질의 운동에너지 일부가 엔트로피 증가로 변화되므로 온도가 떨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물질의 운동에너지는 온도와 관련된다.
자기 냉동방식을 이용하면 mK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 μK(${10}^{-6}$K) 이하의 온도를 얻을 수 있다. 1949년 노벨 화학상은 자기 냉동의 원리를 제공한 윌리엄 지아우크에 돌아갔다.
극저온의 한계에 도전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극저온의 한계는 μK일까. 아니다. 몇년 전 이 온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이 개발됐다. 1997년 벨 연구소의 스티븐 추와 미국 표준연구소의 윌리엄 필립스, 프랑스 파리대의 클로드 코엔-타누지는 극저온의 한계를 μK에서 nK(${10}^{-9}$K)로 낮추는 연구 방법을 개발해 그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레이저 냉각법’. 레이저를 이용해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고체나 액체처럼 거시적인 물체의 온도를 내리는 냉동법과는 구별된다. 즉 레이저 냉동은 냉동시키는 대상이 기체의 원자들이다. 따라서 냉동 대상의 크기도 일반적인 냉동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레이저 냉동법은 2개의 레이저를 기체 원자를 향해 양방향에서 쏜다. 그러면 원자들이 두 레이저 빛과의 계속되는 충돌로 인해 속도가 줄어든다. 그 결과 원자들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이를 x, y, z축의 3차원 공간에서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세쌍의 레이저를 이용하면 공간적으로 완벽히 한 지점에 원자를 멈추게 할 수 있다.
이 같은 레이저 냉각법을 이용하면 원자의 온도를 nK까지 낮출 수 있다.
현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는 레이저 냉각법으로 특정 원자의 속도를 느리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거의 절대온도에 가까운 0.28nK다.
음료수보다 싼 액체질소 가능
어떤 물질을 상온에서 그 이하 또는 극저온까지 냉각할 수 있는 원리는 많이 있으며, 실험적으로도 이 현상을 확인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원리를 이용해 실험실 규모 또는 산업에서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기체 액화기 또는 극저온 냉동기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온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깊은 물리적 사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액체헬륨은 값비싼 저온유체(1L당 약 2만원)이며 이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극저온 냉동기의 개발과 발달로 인해, 지금은 소규모의 실험실에서도 액체질소나 액체헬륨의 온도를 생성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아무리 더운 날에도 영하의 온도를 경험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즉 77 K, 영하 1백96℃의 액체질소를 시중의 음료수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 몇몇 과학자만이 이용할 수 있었던 액체헬륨조차, 비싸기는 하지만 필요시에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약 1백50년 전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던 저온학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