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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기술 미래의 시한폭탄인가

나노입자 독성 둘러싸고 논란 가열

지난해 7월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는 화장품, 옷, 의료, 전자제품 등에서 나노기술을 사용한 상품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행했다. 일반인에게는 아직 낯설기만 한 나노기술이 이미 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이면 전세계 나노상품의 시장 규모가 1조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편에서는 나노기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SF와 같은 미래를 제시하는 나노기술이 정말 실현 가능한지, 나노기술의 혜택을 보는 사람이 생기면서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는 게 아닌지, 혈관을 돌아다니며 질병을 치료하는 나노로봇이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지, 나노기술이 군사적으로 응용되면서 더 강력한 무기가 출현하는 게 아닌지 등의 여러 의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의문점들 가운데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나노입자가 과연 인간과 환경에 안전한가’에 대해서다.

나노입자는 굵기가 대략 1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인 머리카락보다 수천-수십만분의 1밖에 안되는 입자다. 가장 작은 분자인 수소를 10개 정도 늘어놓은 길이인 1nm(나노미터, 10억분의 1m)부터 1백nm까지를 나노입자라고 한다. 이처럼 미세한 나노입자가 사용된 제품이 현재 나노상품 시장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모라토리엄 요구
 

나노입자는 워낙 작아서 다른 부위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폐는 나노 입자의 독성 논란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체부위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화장품. 로레알은 1998년 나노입자를 이용해 비타민 A를 피부 깊숙이 스며들게 해주는 주름방지 크림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후 크리스찬 디오르, 시세이도 등 세계적인 화장품 업계에서 나노입자를 포함한 스킨케어 파우더, 아이섀도, 선크림을 출시했다.

옷 역시 나노입자를 사용한 제품이 있다. 2002년에 나노텍스라는 상표로 출시된 바지는 원단에 나노입자가 표면처리돼 있어 얼룩이 묻지 않을 뿐 아니라 구김도 줄여준다.

의료분야에서도 혈액을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데 양자점이라는 나노입자를 사용하는 진단장비가 출시됐다. 또한 나노입자는 정전기가 발생하지 않고 긁힘이 없는 코팅제품에도 쓰였다.

이와 같은 나노입자의 상품화는 그만큼 사람과 환경이 나노입자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특히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근로자의 경우 나노입자가 심각하게 영향주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의혹은 지난해 3월 미화학회 정기모임에서 더욱 증폭됐다. 당시 미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의 연구팀이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나노입자인 탄소나노튜브가 동물에 대해 독성을 보였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던 것.

연구팀은 쥐의 폐에 나노입자를 주입시켰다. 그러자 탄소나노튜브는 기침을 해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폐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고, 그 결과 폐세포가 손상을 입으면서 염증이 발생했다고 한다.

NASA의 연구결과는 바로 이런 의문의 불씨에 기름을 부어준 꼴. 나노기술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환경단체들은 나노입자의 독성평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캐나다 환경단체인 ETC는 나노입자가 무해하다고 증명될 때까지 나노기술의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는 모라토리엄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NASA와 동일한 실험을 한 다른 연구에서는 탄소나노튜브가 폐에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9월 미 듀폰의 연구팀이 탄소나노튜브가 기도에서 뭉치기 때문에 폐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독성과학학회지’에 발표한 것. 이때의 연구는 저명한 독성학자인 데이비드 워하이트가 이끄는 연구팀이 2002년 여름에 실행한 것이었다.

당시 듀폰의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의 독성 여부를 알아보려고 쥐의 기도에 탄소나노튜브를 주입했다. 점점 탄소나노튜브의 양을 늘여가던 어느 순간 쥐들이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15%의 쥐가 질식사했다. 그런데 이후 더욱 놀랍게도 살아남은 쥐들은 24시간 내로 모두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재앙과도 같은 초기의 상황이 언제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에 대해 듀폰의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가 뭉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도로 들어가는 탄소나노튜브가 빠르게 서로 뭉치면서 기도를 막았고 덕분에 폐로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쥐들은 탄소나노튜브 덩어리가 기도를 막으면서 질식사했고 나머지 쥐들은 기침을 통해 탄소나노튜브 덩어리를 밖으로 내뱉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탄소나노튜브가 폐에 독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상반되는 두 연구결과를 갖고 나노입자가 인체에 유해하다 그렇지 않다를 판단하기는 아직 섣부른 일이다. 나노입자에 대한 독성연구는 이제 갓 시작됐을 뿐이다. 따라서 판단의 근거로서 자료도 매우 미약한 수준. 오히려 현재의 연구결과는 이에 대한 답을 주기보다 더 많은 의문만 제기하고 있다.

그 의문들 중에는 나노입자가 과연 폐에만 영향을 주겠냐는 것도 있다. 화장품에서 사용하는 나노입자가 피부에만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다른 부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피부나 폐에 들어간 나노입자가 어느 다른 신체부위로 이동하는지는 연구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나노입자가 다른 부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뇌로도 침투한다
 

최근 코로 흡입된 탄소나노튜브가 뇌까지 침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폐 이외에 관심을 받는 신체 부위로는 뇌가 있다. 미 로체스터대 군터 오베도스터 박사는 코로 흡입한 탄소나노튜브가 뇌로 들어갈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흡입독성학회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오베도스터 박사는 쥐의 코로 흡입된 탄소나노튜브를 추적했다. 하루가 지난 후 후각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후구, olfactory bulb)에서 나노입자가 검출됐다. 나노입자의 농도는 실험을 진행시킨 7일간 계속해서 증가했다.

나노입자이 뇌로 침투할 수 있다는 오베도스터 박사의 연구결과는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설탕가루 자체가 흡수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설탕은 체내 물질에 녹아 다당으로 분해돼야 몸에 흡수되지 설탕가루 자체가 몸에 그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그런데 뇌에서 나노입자가 발견된 것은 설탕가루가 녹지않고 그대로 흡수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뇌의 경우는 아무 물질이나 침투할 수 없다. 우리의 뇌는 아무 물질이나 들어갈 수 없도록 차단하는 혈뇌장벽이 있기 때문. 그래서 물질이 뇌로 들어가려면 이 장벽을 통과할 수 있도록 혈액에 녹아서 뇌로 이동하는 특정 단백질에 붙어야 한다. 하지만 코로 흡입한 나노입자는 이 경우가 아니다. 그랬다면 나노입자는 뇌에서 분해된 상태여야 한다.

오베도스터 박사는 탄소나노튜브가 후각물질을 포착해 뇌의 후각담당영역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후각신경전달물질과 함께 이동해 뇌로 침투한 것으로 본다.

이처럼 나노입자가 피부, 폐, 뇌로 침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노입자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크기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백 교수는 “나노입자의 유해성 논란은 현재 진행중인 미세먼지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근래 들어 과학자들은 대기오염의 수치가 줄어드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대기오염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데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면서 새롭게 주목하게 된 것이 미세먼지다.

이후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예상보다 미세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세먼지의 수치와 사망자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세먼지이 심각한지 몇시간에서 며칠 내에 호흡곤란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었던 것이다. 이는 미세먼지가 폐에 단시간만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노입자는 미세먼지보다 크기가 훨씬 더 작다. 그래서 나노입자가 미세먼지보다 더 유해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베도스터 박사는 입자의 독성이 크기와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폴리테트라 플로오로에틸렌이라는 성분을 가진 나노입자를 지름이 1백30nm와 20nm인 두 경우로 나눠 쥐에 흡입시켰다. 그러자 20nm를 흡입한 쥐 대부분은 4시간 내 죽은 반면 1백30nm의 나노입자에 대해서는 쥐가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노입자의 유해성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몇몇 나라에서는 나노입자를 비롯한 나노기술에 대한 사회, 경제, 환경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의회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영향 평가를 위한 예산으로 4백만달러를 집행했다. 그리고 영국정부는 왕립공학회에 예산을 지원해 지난해 7월부터 나노기술과 관련된 잠재적인 이점과 파생되는 문제에 대해 조사연구를 하게 했다. 그 결과는 올 봄에 발표될 예정이다.
 

탄소로 구성된 긴 관 모양의 탄소나노튜브는 석면과 모양이 유사하다. 때문에 나노입자 가운데서 독성평가 대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


총 예산 대 평가 예산 = 9억 대 4백만 달러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나노입자에 대한 유해성을 조사한 연구가 한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나노기술촉진법 시행령에는 나노기술의 환경영향 평가에 대한 연구에 대한 항목이 포함돼 있다.

또한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지난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에 기술영향평가위원회가 신설됐다. 이 위원회는 나노기술을 비롯해 생명기술, 정보기술이 융합되는 분야가 사회, 경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위원장을 맡은 서울대 기계공학과 이장무 교수는 “상반기 중에 공청회를 열고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발혔다. 이 결과가 발표된 후 나노기술에 대한 정책방향과 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각국의 이같은 노력은 나노기술에 투입되는 전체적인 역량에 비해 턱없이 미약한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연간 4백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40억원을 나노기술의 영향평가에 투자한다고 하면 상당한 지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발표에 따르면 나노기술의 연구개발에 향후 4년간 모두 37억달러(연간 약 9억달러) 예산을 투입한다. 기술 영향 평가 예산은 이 액수의 1/2백도 안된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경우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윤리적·법적·사회적 의미를 밝히는데 연구비의 5%를 할당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과학자들은 나노기술에 대한 영향 평가에 대한 예산도 이 수준으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부 과학자들은 상업화된 나노입자가 매우 미량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이에 대한 부작용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는 상업화도 안된 시점에서 유해성부터 논의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과연 방치해도 되는 일일까.

이에 대해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유일재 박사는 “이렇게 손을 놓아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박사는 “기업인 듀폰이 왜 나노입자의 유해 여부를 나서서 연구하겠냐”고 반문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열심히 연구를 해놓은 나노입자에서 나중에 독성이 있다고 밝혀지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사용된 화학물질에 대해 소송을 당해 막대한 경제적 문제가 따른다. 실제로 듀폰은 긁히지 않는 프라이팬의 코팅기술인 테프론과 관련해 최근 여러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테프론 제조 공정에서 배출되는 물질이 근로자에게 암, 기형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 박사는 “바로 지금 나노입자에 대한 연구개발과 함께 독성평가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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