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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에도 국경이 있다

심리 실험이 밝혀낸 동서양 생각의 차이

 

사고방식에도 국경이 있다


미국 유학 시절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의사의 진찰이 끝난 후 필자는 감기에는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의사는 매우 당황한 듯 질문을 다시 해달라고 요구했다. 필자는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천천히 질문을 반복했지만 의사가 기껏 해준 말은 “아무거나 맛있게 드세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을 때면 습관적으로 ‘이 병에는 어떤 음식이 좋은지’ 또는 ‘이 병은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를 물어본다. 질문하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 모두 이 상황에 어색해하지 않는다. 특히 대부분의 한의원에서는 친절하게도 피해야 할 음식의 목록을 먼저 알려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이 질문이 미국 병원에서는 대체로 부자연스러운 질문이 되고 만다. 한국인과 미국인은 같은 상황에서도 생각하는 방법이 서로 다른 것이다.

문화가 다르면 생각하는 방법도 다를까. 이는 심리학자와 인류학자 사이에서 꽤나 오래된 질문이지만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해답은 없어 보인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컴퓨터에 비유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사고는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일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또다른 학자들은 문화가 다르면 사고방식도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문화 차이를 주장하는 아주 극단적인 견해 중에는 문화 간의 ‘언어’ 차이가 ‘지각’의 차이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예를 들어 ‘눈’(雪)에 대해 많은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 에스키모인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종류의 눈을 볼 것이라는 얘기다.

생각의 지도
 

서양에서는 아이들이 관계를 표현하는 동사보다 사물을 표현하는 명사를 더 빨리 배운다. 그러나 동양 아이들은 그 반대다.


최근 미국에서 발간된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라는 책에서 세계적 심리학자인 미국 미시간대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문화 간에 존재하는 사고방식의 차이가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니스벳 교수에 따르면 마치 우리가 국경선으로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듯이 사고방식에 근거해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다.

“차를 더 마시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미국인은 으레 “More tea?”라고 동사를 생략해서 말한다. 그러나 동양인은 “More drink?”라고 명사를 생략해서 말한다. 또 한국 학생들의 논문에서는 장황하게 연구 배경을 설명하거나 사례를 기술하는데 지면을 할애하고 나중에 가서야 연구의 목적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양 학생들의 논문에서는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이 연구의 목적은…’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서양과 달리 동양의 종교에는 유일신 사상과 같은 배타적인 논리보다 모든 종교는 서로 통한다는 융합의 정서가 강하다. 이처럼 동양인과 서양인은 생각하는 습관에 매우 상이한 체계를 갖고 있어 사고방식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규칙 vs 관계
 

아래의 꽃은 어느 그룹에 속할까^아래쪽에 있는 꽃은 A와 B 중 어느 집단에 속할까. 표면적 유사성을 고려한 동양인은 A, 내부 규칙을 고려한 서양인은 B에 속한다고 대답한 경향이 많았다. 줄기의 모양에 규칙성이 있다.


흔히 동양의 사고는 ‘종합적’, 서양의 사고는 ‘분석적’이라고 말한다. 동양에서는 우주를 매우 복잡한 곳으로 간주하고, 우주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의 배후에는 수없이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믿는다.

이는 동양의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몸은 주변 환경과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몸 내부에서도 장기들끼리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건강은 몸 안에 존재하는 많은 기운들 사이의 균형, 장기와 장기 사이의 관계 등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먹는 약도 환자의 체질이나 개인적인 조건에 따라 맞춤 조제해야 하며, 음식도 당연히 이를 고려해 조절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동양적 사고에서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전체’를 먼저 봐야하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우주를 비교적 단순한 원리들로 설명할 수 있는 곳으로 간주하며, 인간의 행동은 역시 개인의 내부 속성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서양의학에서는 몸에 이상이 오면 문제를 일으킨 ‘부분’ 을 찾아내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 치료법이 된다. 수술이 유독 서양의학에서 일찍 발달했던 까닭이 이 때문이다. 동양의학에서는 특정 부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부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신체 부위들을 고려하지 않고 그 부위만 도려내는 수술은 너무나 초보적이고 단순한 치료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사고에서는 사물 자체가 관심거리이지만, 동양의 사고에서는 사물들 간의 관계가 주목의 대상이 된다. 사물은 언어의 명사로 표현되고 관계는 동사로 표현된다. 실제로 서양 아이들은 동사보다 명사를 더 빨리 배우지만, 동양 아이들은 동사와 명사를 비슷한 속도로 배우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동사를 더 빨리 배운다고 한다.

83쪽 (그림 1)에서 아래쪽에 제시된 꽃이 집단 A와 B 중 어느 쪽에 속하는지를 판단해보라. 독자 여러분은 어떤 집단을 선택했는가.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에게 이 질문을 해본 결과, 놀랍게도 다수의 한국 학생은 제시된 꽃이 집단 A와 더 비슷하다고 답했지만, 다수의 미국 학생은 집단 B라고 답했다. 표면적인 유사성에서 보면 꽃은 집단 A와 더 비슷하다.

그러나 제시된 꽃과 집단 B 사이에는 ‘줄기가 직선’ 이라는 분명한 규칙이 존재한다. 따라서 표면적 유사성을 고려한 한국 학생은 집단 A를 선택했지만 규칙을 중시한 미국 학생은 집단 B를 선택한 것이다. 사물을 범주화할 때도 서양의 사고는 공통 속성에 근거한 ‘규칙’ 을 중시하지만, 동양의 사고는 사물 간의 관계, 즉 ‘유사성’ 을 중시한다.

동양의 사고에서는 어떤 일의 결과들이 순환한다고 믿는다.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일이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있을 것이고 현재 쇠한 상태라면 이것은 다시 흥할 징조라고 믿는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미리 헤아릴 수 없다는 ‘새옹지마’ 의 이야기가 좋은 예다. 반면 서양의 사고에는 이런 순환론적 견해가 매우 약하다.

이와 같은 차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동서양의 대학생들에게 (그림 2)처럼 감소하고 있는 그래프를 보여주고 이 그래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그려보게 했다. 그 결과 동양 학생들은 감소하는 정도가 적게 완만히 그리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서양 학생들은 감소하고 있는 기울기를 거의 유지해 그렸다. 즉 현재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이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정반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동양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 있을 경우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두 주장을 모두 수용하는 쪽으로 타협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서 누가 더 옳은지를 밝히기보다는 중용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은 두 주장 중 어느 것이 더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논쟁을 벌인다. 모순되는 주장을 동시에 수용하는 것은 지적인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순에 대한 두 문화의 차이는 ‘점’(占)에 대한 생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전반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입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때때로 쉽게 울적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는군요” 라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을 외향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는 수줍은 면도 있군요”라고 말해주면, 그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의 소유자라며 당신을 치켜세울 것이다.

그러나 이 찬사는 당신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낙천적인 면도 갖고 있는 반면 때로는 우울해하기도 하고, 사교적인 듯 보이지만 다소 수줍은 면도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맞는 얘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주는 심리학자나 점술가를 ‘족집게’라고 믿게 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부른다. 바넘 효과는 이런 성격 기술문 안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이다’ 라는 주장 속에 담겨진 모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바넘 효과에 훨씬 더 취약해 모순에 둔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점 산업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유도 부분적으로 이와 관련이 있다.
 

그래프의 방향은 어디로 가나^왼쪽부터 네번째 점까지의 그래프가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까.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진 동양인은 지금까지 내리막이었으니 조금씩 오르막이 될 것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많았다. 반면 직관적 세계관의 서양인은 그대로 내리막을 유지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동양적인 한의대 본과생

한편 생각의 지도는 문화 간의 차이가 ‘all or none’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동양사람 모두가 종합적으로 생각한다거나 서양사람 모두가 분석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또한 동양사람에게는 분석적 사고의 능력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같은 한국 문화권 내에서도 동양적인 사고의 습관을 따르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우리나라 성인들을 연령별로 조사한 결과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동양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나이가 들수록 극단적인 주장들 사이에서 타협을 선택하고, 부분보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여기며, 여러가지 일들이 사이클처럼 순환하리라고 믿는 경향을 보인다는 의미다.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은 비단 나이뿐만이 아니다. 어떤 회사에서 부하 직원이 상사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왜 상사를 살해했는지를 밝히려면 그 직원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인과 한국인 대학생들에게 ‘그 부하 직원이 왼손잡이다’ ‘그 부하 직원이 좋아하는 색은 빨간색이다’와 같은 일련의 정보들을 제시하고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정보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한국 학생이 미국 학생에 비해 훨씬 어려워했고 결국 많이 제거하지 못했다.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살인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혹시나 어떻게든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조사를 우리나라 한의대생과 일반 전공 대학생에게 실시했더니 같은 한국인이지만 한의대생들이 더 적은 수의 정보를 제거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본과생들이 정보를 가장 많이 제거하지 못했다. 같은 한국인이더라도 동양적 사고가 강한 한의학을 오래 공부한 학생일수록 관계가 있을지 모를 가능성을 쉽게 배제하지 못한 것이다.

동양적 사고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관련돼 있다’는 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요인이 다른 요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확신 있게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서양의 분석적 사고에서는 세상일은 비교적 단순한 규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무관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가 쉬워진다. 나이뿐만 아니라 교육과 같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동양적인 사고방식이 한국 문화 안에서도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고방식 차이가 부르는 오해
 

국제회의 석상에서는 규칙을 고수하는 서양인과 상황논리를 펴는 동양인의 사고방식이 간혹 부딪혀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샹그리라 호텔에서 개막된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주최 아시아 안보 국제학술회의 장면.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됐을까. 니스벳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있는 인과 고리를 추적했다.

인류가 농업을 하기에 유리한 생태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농업이 발달한다. 농업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협동과 타협이 중요하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범이 생겨난다. 이런 사회구조 하에서 각 개인은 순종, 협동, 겸양 등을 중요한 덕목으로 배우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관심을 권력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즉 주변 환경으로 돌린다. 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간의 관련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농업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사냥이나 유목이 주 경제활동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협동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이 필요하므로 어린이들에게 독립성을 갖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사회화되면서 사람들은 주의를 내부로 돌리게 된 것이다.

실제 연구결과에 따르면 농경사회 사람들이 사냥이나 수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종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또한 복종과 규율을 강조하는 정통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어린이들이 좀더 세속화된 유대교 전통 하에서 자란 어린이들보다 더 종합적인 사고를 한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경제구조나 사회구조라는 주장이다. 즉 ‘어떻게 사는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의 습관으로 인해 동서양 두 문화 간에 오해와 갈등이 생겨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규칙을 중시하는 서양인은 한번 맺어진 계약은 상황이 바뀌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양인은 상황이 바뀌면 계약도 바뀌어야 한다는 상황논리를 편다. 실제로 기업 대 기업,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이로 인한 마찰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상대방의 사고 습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한다면 두 사고방식은 중간에서 수렴할 것이다. 동서양이 각자의 사고방식의 약점을 보완해줄 상대방 사고방식의 일면을 수용하게 된다는 말이다. 동양은 좀더 분석적인 서양의 사고를 받아들여 과학의 발전을 꾀할 것이고, 서양은 동양의 중용정신을 받아들여 문화적 지혜를 쌓아갈 것이다. 두 문화가 각기 상대방의 좋은 면만을 수용해 좀더 성숙한 형태의 사고방식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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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인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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