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너지로 수소가 주목받고 있다. 물을 분해하면 얻을 수 있어 고갈될 염려도 없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거의 없기 때문.
그런데 원자력 얘기는 제쳐두고 왜 수소에 대해서만 떠드느냐고? 당연히 원자력이 수소와 관련이 있기 때문.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현재 과학자들은 여러 방법을 놓고 연구중이다. 그 중 한 방법이 원자력 발전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고온이 필요한데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열이 그만큼의 고온을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4일 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수소에너지 시대를 대비해 원자력 발전소를 이용한 수소 생산시스템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원자력 발전소는 전기와 수소를 동시에 생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는 셈.
그렇다고 현재의 원자력 발전소가 수소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차세대 원자력 발전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 노희천 교수가 이끄는 KAIST 원자로 시스템 설계 및 해석 실험실이 매진하는 연구주제가 바로 수소생산이 가능한 차세대 원자력 발전시스템의 개발이다.
수소생산을 위한 차세대 원자력 발전시스템은 기존의 것과 어떤 점이 다를까. 노 교수는“냉각재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생겨나는 에너지를 활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방사능이 발생한다. 때문에 방사능은 차단하고 발생한 에너지만 활용하려면, 핵분열이 일어나는 장소와 전기를 생산하는 장소가 완전히 격리되도록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해야 한다. 냉각재는 이 두곳을 오가면서 에너지를 운반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되는 냉각재는 물이다.반면 수소생산을 위한 차세대 원자력 발전시스템에서는 냉각재로 헬륨이나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를 사용한다. 핵융합에서 발생한 열로 물은 3백℃ 정도까지 상승하지만 가스는 이보다 훨씬 높은 1천℃ 이상 오른다.이 정도의 고온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할 수 있다.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가스를 사용하는 원자로를 HTGR(HighTemperature Gas-cooled Reactor)이라고 한다.
가스식 원자로는 안전성에서도 현존하는 원자로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노 교수는 강조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사고는 냉각재의 물이 유출되는 냉각재상실사고다. 냉각재가 사라지면 핵반응로에서 핵분열로 생기는 열이 밖으로 빠지지 못하고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스식 원자로의 경우에는 가스가 유출되더라도 핵반응로의 온도는 이전의 시스템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그 까닭은 가스식에서는 핵연료봉으로 금속 대신 흑연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온도가 1천℃ 이상이기 때문에 금속 핵연료봉은 녹아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가스식에서는 고온에 녹지 않는 흑연 연료봉을 사용한다.
그런데 흑연 연료봉은 가스가 유출된 후 며칠이 지나도 핵반응로의 온도가 위험한 상황에 이를 정도로 높아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반면 냉각재로 물을 쓸때 흑연은 위험하다. 물과 흑연의 탄소가 반응할 수 있기 때문. 체르노빌 사고가 바로 이 경우다. 가스식 원자로는 가스와 흑연의 만남으로 안전성이 보강된 것이다.
노 교수의 연구실은 이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국내 어느 연구팀보다 앞서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0년 안식년을 맞아 박사학위를 받았던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체류한 노 교수는 차세대 수소생산 원자력 개발 국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그 국제 프로그램은 국제원자로협력프로그램(INERI).
또한 노 교수 연구실은 올 1월 시작된 국내 프로젝트인‘Korea 2020 원자력수소생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국내 에너지소요량의 20%를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수소생산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연구실에서는 가스식 외에도 안전성이 뛰어난 다른 신형 원자로 개발 연구도 진행중이다. 최근에는 인간이나 기계의 인위적인 조작이 없어도 중력이나 자연대류와 같은 자연현상을 이용해 원전사고시 문제해결 능력을 갖는 원자로인 CP-1300을 개발한 바도 있다. 이 신형원자로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특허를 받았다.
지난해 KAIST로 부임한지 20년이 된 노 교수는 그동안 원자력 분야에서 첨단기술의 도입에 앞장서 왔다. 그동안 배출한 인재만도 석사 65명, 박사 21명. 현재연구실은 석사과정 3명, 박사과정 11명, 그리고 박사후 연구원 2명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