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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NASA의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를 타고 우주에 다녀온 우주인들. 아래줄 왼쪽이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 박사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은 옛소련의 유리 가가린. 1961년 4월 12일 최초의 우주비행을 성공한 그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다” 고 공산당의 구미에 맞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가가린은 1968년 소련의 최신 제트 전투기 시험비행 도중 추락, 사망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1959년 7인의 우주인 후보를 선정했다. 이들 중 미국 최초의 우주인은 알란 쉐퍼드 해군 소령. 그는 1961년 5월 지구를 반바퀴쯤 도는 15분 간의 탄도비행에 성공했다. 이어 1962년 2월 존 글렌 해병대 중위가 완전한 궤도 비행을 성공했다. 그는 자동비행장치가 고장난 절박한 상황에서 수동으로 귀환해 우주인의 역사에서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우주인 은퇴 후 상원의원으로 맹활약을 했고, 1998년 77세의 나이로 우주왕복선에 탑승해 노익장을 과시했다.

유럽 최초의 우주인은 유럽우주기구(ESA)의 독일인 울프 메르볼드 박사다. 재료과학자인 그는 1977년 선발돼 1983년 유럽인으로서 최초의 우주왕복선 탑승자가 됐다.

일본 최초의 우주인은 1990년 미르 우주정거장에 탑승한 동경방송사의 토요히로 아키야마 기자로, 세계 최초의 상업적 승객이기도 하다. 기자 출신답게 우주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모리 마모루는 정부가 선발한 사실상의 일본 최초의 우주인. 홋가이도대의 핵공학과 교수인 그는 1985년 우주인 공모를 통해 선발돼 1992년과 2000년 2차례 우주왕복선에 탑승, 과학 임무를 수행했다. 현재 동경의 기술혁신 과학미래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3년 중국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양 리웨이는 공군 중령이다. 그는 “우주에서 만리장성은 눈으로 볼 수 없었다”라고 솔직한 멘트를 해 일부 애국심이 강한 중국인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귀환 후 중국 과학기술을 세계에 알린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대령으로 진급했다.

헬렌 샤만은 영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다. 마스 과자회사 연구원이었던 그녀는 자동차 안에서 우연히 들은 우주인 공모에 응시해 무려 1만3천명의 지원자 중 최종 4명의 후보에 선발됐다. 1991년 영국 최초로 미르 우주정거장에 탑승하는 영예를 얻었다. 귀환 후 영국 왕실로부터 명예기사작위도 수여받았으며 현재 셰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 우주인 클로디 에뉴레는 의대 출신이다. 1985년 1천명의 지원자 중 7명의 우주인 후보로 선발됐고, 1996년 미르 우주정거장에 탑승해 비행한 후 귀환한 그녀는 현재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활약 중이다.

이스라엘 최초 우주인 일란 라몬 공군 대령은 중동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국가적 영웅이었다. 국민의 관심 속에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탑승했으나 2003년 2월 1일 귀환 도중 폭발 사고로 순직해 세계인들의 애도를 받았다.

이처럼 각국의 최초 우주인들은 대부분 국가적 영웅이자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그 명성을 과학과 우주기술 발전에 쓴다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과학동아 독자들도 꿈을 갖고 우주인에 도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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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사이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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