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내음부터, 알록달록 꽃잎까지. 봄을 맞아 만발하는 꽃을 보고 있자면 감동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만약 세상에 모든 꽃이 똑같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2월 8일 경기 고양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금까지 없는 새로운 장미를 만들고 있는 허문선 화훼연구팀 부팀장을 만났다.
“여기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장미가 꽃을 피우는 곳입니다. 저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죠.”
영하의 기온에도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따듯한 온실을 둘러보며 허문선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화훼연구팀 부팀장이 설명했다. 온실 내부에서는 이미 꽃을 만개한 형형색색의 장미들 사이에 생전 처음 보는 장미가 눈에 띄었다.
내 손에서 탄생하는 신품종
흔히 대부분의 장미가 야생에서 태어난 품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현재 화훼농가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장미 품종은 야생종이 아니라, 인공적인 교잡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들을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경우에는 소유권을 가진 곳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감귤, 포도 등 과일류 일부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신품종을 개발해 식물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고양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화훼산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미의 신품종을 개발하는 품종육성 연구를 하고 있다.
장미 품종육성은 1년 단위로 연구가 진행된다. 매년 2월이 되면 전년도에 교배한 장미 종자를 파종하고, 본격적으로 꽃이 피는 3월부터는 새로운 종자를 만들기 위한 교배를 시작한다. 이 가운데 일부가 지금까지 없었던 색상과 모양을 가진 꽃을 피우는데 이들을 증식하고 특성을 조사해 신품종을 선별하다 보면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간다.
물론 이 기간에 연구가 온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재배 조건이 까다롭거나, 병충해에 취약하다면 농가에 보급할 수 없다. 따라서 상품성이 우수한 품종을 만들 때까지 같은 과정을 몇 년이고 반복해야 할 때가 많다. 허 부팀장은 “첫 장미 신품종은 등록까지 8년이 걸렸다”며 “최근에는 그동안의 노하우가 쌓여 연구 기간과 등록에 필요한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 담는 연구자
대부분의 화훼연구는 국가 기관 또는 지자체 연구기관에서 담당한다. 따라서 화훼연구자라고 해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품종육성을 위해 지역 농가와 지속적인 협력을 하는 일도 화훼연구자의 역할이다. 품종육성의 최종 목표는 신품종의 작물이 농가에서 재배되고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것인 만큼 실제 재배를 담당하는 농가의 의견을 듣는 게 무척 중요하다.
허 부팀장은 “주로 오전에는 행정업무와 더불어 농가 관계자와 만나 어떤 품종개발이 필요한지, 보급된 품종 재배에 어려움은 없는지 듣고, 오후에야 온실에서 품종을 연구한다”며 “신품종 재배법을 교육하는 것도 화훼연구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화훼연구자는 화훼 품종육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를 한다. 식물의 유전과 생리 등 전반적인 내용에 전문성을 갖춘 만큼 꽃 이외에도 채소류, 나무류 등 식물 대부분을 연구할 수 있다. 식물 재배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토양, 곤충, 미생물, 재배생리 등 농업연구 분야도 있다. 최근에는 실내 공기정화 식물, 원예치료 등 기능성 화훼연구도 이뤄지는 만큼 꽃의 활용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허 부팀장은 “새로운 품종을 만든다는 것은 생리학, 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 실제 현장에 기여하는 일”이라며 “화훼연구자가 된다면 내가 만들고, 내가 이름 붙인 품종이 사람들에게 널리 이용되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