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눈이 펑펑 쏟아지면 마당이나 길에 수북이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면서 한쪽으로 치우던 일이 추억처럼 떠오른다. 올겨울엔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이런 광경을 보기 힘든게 아쉽다.
그래서일까. 새해 벽두인 지난 1월 6일 미항공우주국(NASA)은 넉가래로 눈을 밀면서 치우는 것 같은 우주의 모습을 공개했다. 이 모습은 아돌프 솰러라는 예술가가 허블우주망원경을 비롯한 다양한 망원경이 관측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30억광년이나 떨어진 이곳의 실제 사진은 그리 뚜렷한 상태가 아니어서 사실에 가깝게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떻게 이 그림이 넉가래로 눈을 치우는 모습일까. 가운데 은하가 넉가래, 은하 뒤쪽으로 이리저리 길게 뻗은 푸른빛 무리가 넉가래살에 해당한다. 흩어져 있는 눈은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다. 넉가래가 허공을 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대기권에 진입해 ‘푸른빛’으로 불타는 우주선과 비슷하다. 그림의 주인공은 용자리 근처에 위치한 C153이라는 이름의 은하다. 보통 나선형이나 타원형을 한 은하와는 다르게 넉가래 모양을 하고 있다. C153은 왜 이런 모습을 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용자리에 내려오는 전설에서 찾는다면 억지일까.
1억년의 전쟁, 은하단 충돌
아주 먼 옛날 그리스 북부 올림포스산에서부터 이집트 골짜기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제우스가 이끄는 젊은 신들이 크로노스가 이끄는 거인 신들과 10년 동안 처절한 전쟁을 벌였다. 거대한 용은 거인 신들과 한편이 돼 이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용은 젊은 신 가운데 하나인 ‘지혜의 신’ 아테나와 겨루게 됐다. 하지만 용은 아테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아테나는 마술방패를 이용해 용을 하늘로 집어 던졌고 용은 하늘을 회전시키는 커다란 축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해 용은 오래도록 북쪽하늘에 매달린 채 맴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용자리는 북극성을 둘러싼 채 북쪽하늘의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사실 C153은 신화에 등장하는 용처럼 불쌍한 신세다. 우주에는 수천억개의 은하들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무리지어 수많은 은하단을 구성한다. C153은 ‘아벨2125’라는 은하단에 속하는 은하다. 그림에서 C153 배경에 나타나는 것들이 모두 은하다. 놀랍게 아벨2125는 또다른 은하단과 1억년 전쯤 충돌했고 지금도 두 은하단의 충돌은 끝나지 않았다. 그림에 나타난 C153의 모습은 두 은하단이 치른 전쟁의 결과다.
구체적으로 C153이 상대 은하단 외곽부의 가스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광경이다. 충돌 속도는 시속 7천2백만km. 충돌 과정에서 은하에 있던 가스는 주변으로 뛰쳐나오고 뒤쪽으로 20만광년이나 길게 뻗은 푸른빛 무리를 만들었다. 긴 가스 흐름 중간중간에 밝은 푸른빛은 새로 태어난 별들에서 나온 것이다.
죽은 용이 하늘의 별자리가 된 것처럼 C153에서 흩어져나온 가스는 새 별들이 됐다. 폐허 속에 피어나는 꽃이 더 아름답듯 새 별들의 푸른빛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