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 공동프로젝트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부지 선정을 놓고 일본과 프랑스를 앞세운 유럽연합(EU)이 캐스팅 보터로 떠오른 한국 모시기에 나섰다.
오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진행될 ITER프로젝트는 핵융합로 건설에만 50억달러, 향후 20년간 최소 60억달러의 연구 운영비가 투입되는 메가톤급 국제 프로젝트. 국제 공동의 연구개발 사업으로는 국제우주정거장(ISS) 다음으로 큰 규모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부지 유치를 희망하는 프랑스, 일본 등 전세계 6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프로젝트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지난해말. 부지 선정을 놓고 참가국간에 갈등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워싱턴에서 열린 ITER 참가국 연석회의에서 미국과 한국이 일본을, 러시아와 중국이 프랑스에 대한 지지입장을 각각 표명했던 것이다. 특히 2월말로 예정된 최종 부지 선정을 앞두고 최근 두나라 관계 장관들이 다른 참가국을 잇따라 방문해 자국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유치 경쟁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두나라가 자기편으로 가장 끌어들이고 싶은 나라 1순위는 한국. 지난 1월 14일 일본의 카아무라 타케오 문부과학대신이 러시아와 중국 방문에 앞서 한국을 먼저 방문해 계속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프랑스도 지난해 12월 대통령 특사를 파견한데 이어, 1월 19일 클로디 에뉴레 연구기술부 장관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과 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을 잇따라 만나 자국 지지로 입장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최근 두나라의 행보는 미국이 일본을 적극 지원하고 러시아, 중국이 EU에 절대적인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현재 한국측은 연구자들에게 보다 좋은 연구 여건을 제공할 수 있는 지역으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 일단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은 매우 유동적이라고 이경수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장은 밝혔다. 이 단장은 “일단 일본을 지지했지만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프랑스와 많은 과학기술교류를 해왔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국을 얼마나 배려하느냐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빨리 부지 선정 문제를 매듭짓고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측 연구자들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19일 방한한 클로디 에뉴레 프랑스 연구부 장관은 “프랑스 지지를 표명할 경우 한국의 핵융합프로젝트인 KSTAR가 첫 파이럿 프로젝트로 선정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한국측 지지를 호소했다.
한편 현재 진행중인 부지 선정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EU와 러시아·중국만이 참여하는 독자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석인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