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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고추, 효과도 화끈

고추속 캅사이신, 진통과 암예방 기능 지녀

입동(立冬)이 지나고 소설(小雪)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주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연중 최대 행사인 김장 때문이다. 겨울 내내 맛있는 김치를 먹으려면 주부의 손맛이 중요하지만, 주재료인 배추와 고춧가루도 좋은 걸 써야한다.

이제는 우리 음식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린 고추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입맛을 돋우는 향신료일 뿐 아니라 각종 질환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홍색 생동감으로 무채색 겨울을 붉게 물들이는 고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값비싼 후추를 대체한 고추


고추는 지구촌에 퍼진 마지막 향신료이지만 오늘날에는 전세 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수확한 고추를 말리는 세르비아 의 농부들.


한국에 왔다가 푸른 날고추(풋고추)를 풀같은 빨간 양념(고추장)에 찍어 먹는 모습을 보고 어설프게 따라하던 서양인들은 난리가 난다. 이렇게 한번 혼이 나면 이들의 눈에 한국인은 경이의 대상으로 보인다.

사실 고추는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소개했다. 15세기말 바하마 제도를 항해하던 콜럼버스는 남태평양 타이티섬에서 고추를 처음 발견했다. 사실 콜럼버스가 찾고자 했던 것은 당시 유럽에서 귀한 향신료로 대접받았던 값비싼 후추(black pepper)였다.

콜럼버스는 고추를 가리켜 “우리 후추보다 더 좋은 향료”라고 일기장에 적으며 붉은 후추(red pepper)라고 불렀다. 그러나 후추과의 관목인 후추나무와 가지과의 풀인 고추는 분류학상으로 서로 거리가 먼 식물이다.

콜럼버스의 예찬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럽인들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고추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로 건너간 고추는 그‘화끈한’ 맛으로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현재 전세계 인구 중 약 4분의 1이 매일 고추가 든 음식을 먹고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고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민족의 하나로 1인당 하루 5.1g 연간 약 2㎏의 고추를 먹는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7000년 이미 멕시코 원주민들이 고추를 재배했고 이후 기원전 50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카리브해 지역으로 종자가 전파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경로와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광해군 6년(1614년) 이수광이 저술한 지붕유설에 고추를 남만초라 칭하며 “일본에서 도입됐으니 이를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부르며, 간혹 이를 심고있다”는 기록이 있어 대략 임진왜란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인들을 독한 고추로 독살하려고 가져왔으나, 오히려 한민족의 체질에 맞아 이후 우리민족이 고추를 즐기게 됐다는 설도 있다. 반면 일본의 여러 문헌에는 고추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에서 고추 종자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를 고려호초라 한다고 대화본추에 기록돼 있다.

종자를 퍼뜨리려 매운맛 지녀

고추의 독특한 매운맛은 캅사이신(capsaicin)이라는 알칼로이드 화합물에서 비롯한다. 캅사이신은 고추씨에 가장 많이 함유돼 있으며, 껍질에도 상당량 들어 있다. 캅사이신은 고추의 발육에는 별 상관이 없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고추는 왜 캅사이신을 만들까.

고추는 베타-카로틴, 비타민 C, 지방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열매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육상동물은 고추를 멀리한다.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후각과 미각이 둔한 새들 차지다. 새들은 먹고 나서 심지어 20분만에 배설할 정도로 소화시간이 빨라 씨앗이 장내에서 손상될 확률이 낮다. 그리고 날아다니기 때문에 고추씨가 이들의 배설물에 섞여 멀리 전파될 수 있다. 볼리비아 중부와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고추와 똑같은 품종의 고추가 멀리 떨어진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에서도 발견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로 생각된다. 결국 캅사이신의 매운맛은 둔감한 새들에게 영양분이 풍부한 먹거리임을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고추 먹으면 엔돌핀 분비돼


요리에 즐겨 쓰이는 향신료 는 대부분 더운 지역에서 생산된다. 고추를 비롯한 각 종 향신료들.


최근 매운 음식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 이유를 밝히는 연구가 한창이다. 고추를 처음 먹는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그 자극성에 아주 고통스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후 그 ‘매운맛’을 잊지 못해 반복적으로 고추가 들어 있는 음식에 탐닉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추도 니코틴이나 코카인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생리학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입을 얼얼하게 만들면서도 고추에 빠져들게 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될까. 고추의 캅사이신이 구강내 조직의 신경말단을 건드리면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캅사이신에 반응하는 수용체가 바로 통증을 전달하는 수용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치 불에 데었을 때와 같은 통증이 대뇌로 전달되고, 뇌는 반사적으로 자연진통제인 엔돌핀을 분비시켜 즉각 진화작업에 들어간다. 이때 나온 엔돌핀이 마치 마약에 취한 것과 같은 순간적 도취감에 빠져드는 부분적 환각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쨌든 고추를 먹을 때마다 동일한 신경생리메커니즘에 의해 엔돌핀이 분비되고, 급기야는 혀끝이 얼얼한 통각도 잊은 채, 자극뒤의 행복감을 즐기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매운 고통 뒤에 오는 짜릿함을 잊지 못해 또다시 고추에 입을 갖다댄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가 김치와 같은 매운 음식에 한번 맛을 들이면 왜 거의 중독되는지를 제한적이나마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느끼는 짜릿한 스릴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단순한 논리로 매운 음식에의 중독을 설명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본다.

미 코넬대 진화생물학자인 폴 셔만은 우리가 고추같은 향신료를 먹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든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향신료에 대해 발달된 미각을 갖게 된 것을 생존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고추를 포함해 널리 사용되는 약 30여종의 향신료들은 대부분 항균작용을 가지고 있어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다.

셔만과 동료 연구자들은 세계각국의 수천가지 요리법을 검토한 결과 향신료를 사용한 음식들이 대부분 더운 지역에서 보편적임을 알게 됐다. 향신료가 박테리아에 의한 음식의 부패를 방지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고추는 마늘, 양파, 피멘토(pimento), 오레가노(oregano)와 더불어 항균력이 탁월한 계열의 향신료에 속한다. 음식이 부패하기 쉬운 더운 지역에서 조리하는 음식일수록 더 많은 양의 고추가 들어간다.

한편 매운 음식을 먹게되면 땀을 흘리게 되고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체온을 낮추게 되는 이열치열의 논리로 더운 지역에서 고추가 향신료로 애용된다는 주장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반대로 추운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운 음식이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영어에서는 맵다는 것을 뜨겁다는 의미의 ‘hot’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캅사이신을 용액으로 만들어 피부에 문지르면 마치 불에 덴 것과 같이 화끈거리는데, 이는 통증 전달물질인 ‘물질P’가 순간적으로 유리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캅사이신의 약리작용을 매개하는 수용체 단백질이 세포막에 존재함이 발견됐는데, 놀랍게도 이 수용체는 열과 같은 물리적 자극의 감지에도 관여함이 밝혀졌다.

이후 캅사이신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없앤 생쥐를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탄생시켰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생쥐가 캅사이신은 물론 고온에도 덜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로서 매운 고추를 한입 덥석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혀끝과 구강점막이 얼얼해지는 상태의 영어 표현인 ‘It's hot!’의 과학적 근거가 밝혀진 셈이다.

캅사이신의 자극은 신경세포 말단에서 물질P를 분비시켜 처음에는 통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잔류된 캅사이신이 수용체에 계속 결합해 물질P를 결국 고갈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이후의 자극에 대해 무감각한 상태를 초래한다.

이러한 캅사이신의 통증억제 성질을 근거로 이 화합물이 함유된 연고가 진통제로 개발·판매되고 있다. 캅사이신 연고제는 당뇨성 신경통, 관절염, 대상포진, 수술후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사용되고 있다.

사실 고추는 민간요법에서 통증을 멈추는데 널리 사용돼 왔다. 일찍이 페루사람들은 고추의 분말을 관절염 부위에 발랐다.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이 접목된 고추연고제는 0.25-0.75% 함량의 캅사이신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캅사이신을 구강세정액이나 캔디로 만들어 치통이나 만성구강통증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조금은 심해 보이지만, 손톱을 물어뜯거나 빠는 아이들의 습관을 고치거나 젖을 떼기 위해 캅사이신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국여성이 날씬한 이유

최근에는 고추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동안 고추다이어트 열풍이 불어닥친 일본열도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고추를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칼로리를 섭취하는 일본여성에 비해 한국여성이 날씬한 원인이 고추 때문이라는 연구결과의 여파다.

고추는 신체의 에너지 대사를 촉진시키고 동시에 지방의 생합성을 억제함으로써 비만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물 실험 결과, 고지방 식이에 고추를 첨가한 사료를 섭취한 쥐들은 고지방 식이만 섭취한 군에 비해 체중 증가가 현저히 줄었으며, 혈중 지방성분의 양도 적었다.

캅사이신의 경우도 체지방을 줄여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내와 일본의 연구자들에 의해 보고된 바 있다. 매운 음식을 섭취한 사람들은 더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며, 이후의 식사량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있다. 식전에 먹는 가벼운 요리로 고추가 든 음식을 먹는 경우 식욕이 감퇴돼 이후 식사량이 줄어든다는 관찰도 보고됐다. 이는 캅사이신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식욕을 촉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정반대인 결과로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 고추섭취시 땀을 흘리게 됨으로써 체중감량이 된다는 추정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이밖에도 고추가 피부미용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아프리카 서부지역의 여성들은 파프리카라 불리는 붉은 고추의 분말을 욕조에 담긴 물에 풀어 넣고 목욕을 했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끓여 마시는 고추차까지 등장했으니, 고추의 기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적당량의 고추는 암예방에 도움


우리 주방의 약방에 감초는 고 추장이다. 고춧가루, 메줏가루, 찹쌀가루 등을 재료로 발효시 킨 고추장은 영양만점의 건강식 품이다.


흔히 자극성 있는 매운 음식의 섭취가 위점막을 손상시켜 만성 위염의 원인이 되고, 결과적으로 위암발생률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매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위암발생률이 높은 것을 보면 매운 음식을 위암발생의 위험인자로 보기는 어렵다.

일반인들의 편견이나 속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통 먹는 양 정도의 고추는 위점막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위궤양의 발생을 억제하거나 이미 생긴 궤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추는 위액 분비를 촉진하지만 과도한 위산분비는 억제한다. 한편 고추추출물이나 캅사이신을 쥐에 투여했을 때, 아스피린이나 알코올로 인해 생긴 위점막의 손상에 대해 보호효과를 나타냈다. 비록 동물실험 결과이기는 하지만, 캅사이신의 위궤양 보호효과는 기존의 치료제인 시메티딘(cimetidine)에 버금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헬리코박터에 의한 위점막 손상도 고추에 의해 예방될 수 있을지 모른다. 캅사이신이 헬리코박터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고추 섭취가 상대적으로 많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인들은 다른 남방민족들보다 위암이나 대장암의 발생률이 훨씬 낮은데, 이는 고추의 캅사이신이 위장의 운동을 촉진하고 위점막을 방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서 높은 비율로 위궤양이 발생하는 것은 아마도 이들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고추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휴스턴 원호병원의 소화기과장인 데이빗 그람 박사는 작은관을 위속에 넣고 고추가루를 주입하는 황당한 실험을 시도했다. 자극성 있는 고추가 실제로 위점막을 손상시키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놀랍게도 실험대상자의 위에서는 아무런 손상도 관찰되지 않았다.

“고추를 먹는 것은 다른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일 먹어서 위가 불편하면 삼가면 되고 별 탈이 없으면 먹고싶은 대로 즐겨라.” 그 자신이 고추 애호가이기도한 그람 박사의 말이다.

매운 고추를 즐기는 멕시코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위암발병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지난 20년간 고추소비량이 2배 이상 증가한 미국에서도 위암의 발생률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멕시코에서 실시된 역학조사 결과도 고추 섭취량과 위암발생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들을 종합해볼 때 매운 음식의 섭취와 한국인의 높은 위암 발생률이 관계가 깊다는 속설은 재고돼야 한다. 오히려 캅사이신의 위장보호효과에 대한 좀더 과학적인 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추는 우수한 기능성 식품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고추나 캅사이신이 발암억제제 또는 항암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캅사이신은 항산화, 염증 억제 작용을 나타냄으로써 조직의 산화적 손상을 막고 종양 촉진이나 진행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발암성 화학물질들은 우리 몸에 들어와 간에서 반응성이 높은 중간체로 바뀐다. 이들 중간체는 세포의 DNA를 공격함으로써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는 과정을 유발한다. 캅사이신은 발암성 물질들이 중간체로 바뀌는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발암과정을 억제한다.

필자를 포함한 몇몇 연구자들은 최근 캅사이신이 위에서 생성되는 대표적 발암물질인 나이트로소아민의 작용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암세포에 캅사이신을 처리할 경우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해 항암작용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일찍이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이 약이 되게 하고 약이 음식이 되게 하라”는 경구를 통해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식품의약이나 기능성 식품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앞으로 고추의 효과가 과학적 방법으로 폭넓게 검증되면 우리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통식품이 세계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아울러 고추에 들어있는 캅사이신을 비롯한 각종 화합물들의 생리활성과 약리작용을 분자수준에서 규명한다면 우수한 효과를 지닌 신약을 설계하는데 영감을 줄 것이다.

입안에 불날 때는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이 멋도 모르고 매운 음식을 먹다가 난리가 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처음엔 우습기도 하지만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얼른 물을 먹여보지만 매운기가 가시려면 한참이 걸린다. 그렇다면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럴 때는 물대신 우유나 아이스크림이 그만이다. 물과 우유가 뭐가 다르냐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캅사이신은 물에 안 녹고 기름에 녹는 지용성 분자다. 따라서 물을 마셔봐야 구강세포의 수용체에 붙어 자극 신호를 계속 보내는 캅사이신을 떼어내기 어렵다. 물론 기름을 머금고 있으면 되겠지만 매운 상태를 벗어나려고 기름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유나 아이스크림은 유화(emulsion) 상태로 존재한다. 유화란 물속에 작은 기름 방울이 분산된 상태다. 실제 우유나 아이스크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작은 방울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매운 걸 먹어 입안이 얼얼할 때 우유를 머금고 있으면 기름 방울속으로 캅사이신이 흡수돼 자극 신호가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눈에 고춧가루처럼 자극성 있는 물질이 들어갔을 때도 물 대신 우유로 씻으면 훌륭한 응급처치가 된다.

200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서영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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