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경북 경주시 충효동 김유신 장군 묘 근처의 아파트 단지가 발칵 뒤집혔다. 밤마다 “히이∼”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귀신이 흐느껴 우는 듯한 소리에 밤잠을 설치던 주민들은 급기야 경찰에 신고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조사를 거듭하던 경찰은 결국 소리를 수집하는 전문가에게 분석을 요청했다. 유리를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동물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며 소리전문가조차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필자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경주로 내려가봤다. 그 이상한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호랑지빠귀라는 이름의 새였다. 번식기 때 주로 한밤중에 암수가 함께 다니며 높고 가느다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일명 귀신새라고도 불린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는 소리가 그들만의 짝짓기 신호였던 것이다.
지구상에는 8천5백여종의 새가 있다. 조류형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깃털의 색깔이나 몸통, 날개, 부리, 다리의 길이와 같은 특성을 토대로 조류를 분류해왔다. 한편 동물행동학자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새들이 내는 소리를 음성학적으로 분석해 조류의 분류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동물행동학자들은 조류형태학자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조류가 내는 소리는 종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행동의 변화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앵무새가 사람처럼 말하는 이유
그렇다면 어린 새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이 속한 종의 소리를 배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한 개체를 그것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멀리 격리시킨다. 대신 격리된 개체도 원래 집단이 사는 환경과 같은 조건에서 기른다. 그런 다음 격리된 개체가 자란 후 내는 소리와 자연상태에서 원래 집단에 속해 자란 개체가 내는 소리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집단과 격리된 상태에서 자란 개체는 다른 개체로부터 소리를 배우지 못한다. 따라서 그 종의 특징적인 소리만을 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까치, 까마귀, 방울새, 멧새 등은 태어나자마자 그들만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아직 소리내기가 서투르기 때문에 부모의 소리를 듣고 기억해 이를 계속 연습한다. 한편 앵무새나 구관조 등의 경우 갓 태어난 새끼는 그들만의 소리를 전혀 낼 수 없다. 따라서 어미가 기르면서 소리를 가르쳐야 한다. 만약 어미새가 아닌 사람이 말을 가르치면 앵무새나 구관조는 새소리가 아닌 사람 말을 따라하게 될 것이다.
통역 없이도 사투리로 의사소통
한편 연구자들은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새소리를 수집해 그 유형, 즉 음성학적 변이를 파악해봤다. 그 결과 흥미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참새목에 속하는 휘파람새는 우리나라에 2가지의 아종, 즉 비슷한 종이 살고 있다. 그 중 한종인 휘파람새는 여름철새로, 주로 우리나라 중부 이북 지방의 논밭 근처나 덤불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새다. 몸색깔은 흐린 녹색, 몸길이는 약 18cm이며, 우는 소리가 사람들 귀에 아름답게 들린다. 다른 한종은 제주휘파람새라고 불린다. 이들은 우리나라 남부지방 섬인 거제도, 제주도, 거문도 등에 있는 사철 푸르고 키가 작은 상록수림 주변에 산다.
이 두 아종의 소리를 야외에서 조류소리채집용 고성능 녹음기로 녹음한 다음, 음성분석기인 소노그램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각 지방별 새소리의 주파수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석됐다. 즉 같은 종류의 새라도 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다. 또한 이 소리들은 사람의 귀에도 80% 이상 다르게 들린다. 사람으로 치면 사투리인 셈이다.
이번에는 경기 이북 지역에서만 살아가는 휘파람새의 소리를 녹음했다. 이를 제주도에 가서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제주휘파람새에게 들려줬다. 그랬더니 제주휘파람새는 경계하지 않고 소리나는 곳으로 암수가 모이는 등 즉시 반응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짝짓기 때, 경계할 때, 새끼가 울 때 내는 다양한 소리를 들려줘도 모두 관심을 가졌다. 녹음한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면 역시 계속 반응을 보였다.
또한 제주도 이외의 섬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제주휘파람새들에게도 경기 이북 지역의 휘파람새 소리를 들려줬더니 역시 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휘파람새의 최대 천적인 송골매의 소리를 녹음해 틀어놓으면 어느 지역의 휘파람새건 하나같이 모두 이를 듣고 숲속으로 숨어버린다.
중부지방 휘파람새의 소리는 남부지방 휘파람새에게는 사투리다. 하지만 실험결과에서 나타났듯이 먼 거리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서울말을 쓰는 사람과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통역 없이도 말이 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류는 인간처럼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 암수가 함께 짝짓기를 하거나,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고,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 새들은 그들만의 소리를 사용한다. 번식기가 끝나고 날씨가 추워지면 전국의 제비들은 수천마리가 모여 우리나라에 한마리도 남지 않고 태국으로 날아간다. 또 이듬해 4월초면 어김없이 선발대를 앞세워 돌아오는 것이다. 이때도 소리가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새들의 현재상황 짐작하는 방법
번식기인 봄에 숲 속으로 들어가 그 숲에 살지 않는 새의 소리를 녹음해 틀어놓으면, 그 숲에 사는 새들이 모두 한마리씩 찾아와본다. 낯선 소리를 경계하는 행동이다. 종은 다르나 모두들 같은 동네에 사는 새들의 소리를 익히고 있는 것이다. 또 겨울철새인 큰기러기, 쇠기러기, 청둥오리, 두루미, 독수리 등도 모두 똘똘 뭉쳐 다니는 것을 보면 서로 언어가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들이나 강가, 철새 도래지에서 새들의 행동이나 소리를 관찰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두루미나 큰기러기가 고개를 들고 조용히 있을 때는 주변에 천적이나 경계 물체가 가까이 있다는 의미다. 기러기나 할미새 무리가 시끄럽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움직이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짧고 긴급한 소리를 내면 천적이 있거나 도망간다는 뜻이다. 날아가면서 소리를 내는 것은 동료를 부르거나 찾는 행동이다.
깃털이 아름답지 못하거나 깃털이 없을 때는 털갈이하는 기간이다. 밝고 예쁜 색깔을 띠고 계속 노래할 때는 번식기임을 알리는 것이다. 같은 종끼리 여럿 모여있다는 것은 번식기가 아님을 알려준다. 몸을 움직이지 않거나 고개를 돌려 날개 밑에 두고 있을 때는 새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잠자는 중, 즉 가장 편안한 상태다. 한 개체가 나무 위나 바위 꼭대기에서 우는 것은 그곳에 둥지, 새끼 또는 암컷이 있거나 자기 영역이라는 의미다. 앉아서 기지개를 펴거나 날개를 높이들 때, 또는 배설할 때는 그 장소를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온종일 울어도 목쉬지 않는다
이른봄이면 되지빠귀, 흰배지빠귀가 새벽 깜깜할 때부터 해질 무렵까지 하루종일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들 수컷이 새벽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운다는 것은, 자기들의 영역 또는 먹이가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또는 번식기에 암컷을 부르는 소리, 천적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소리, 새끼에게 말을 가르치는 소리, 알을 품는 중임을 알리는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렇게 울어도 목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하지만 새들은 하루종일 울어도 목이 쉬거나 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람의 경우 목 안쪽 성대가 진동하면서 소리를 낸다. 추운 날씨에 무리하게 목소리를 많이 내면 성대는 쉽게 건조해져 목이 쉬게 된다.
그런데 시골에서 오리나 닭을 아무리 잡아봐도 성대를 찾아볼 수 없다. 새의 가슴뼈에는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이 붙어있어 약간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이를 용골돌기라고 한다. 용골돌기 안쪽에는 투명한 소라처럼 생긴 명관이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기도를 타고 올라와 부리를 통해 나오는 것이다. 새의 명관은 사람의 성대와 달리 용골돌기 내부에 있기 때문에 외부의 온도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쉽게 건조해지지 않는다. 하루종일 입만 벌리면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이유다. 새들마다 명관의 크기가 달라 소리도 다양하다. 대체로 큰 새들이 명관도 크며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다.
새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날아다니므로 멀리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멀리까지 들릴 수 있는 다양한 고음의 소리도 낼 수 있다. 새들은 또한 좁쌀을 50m 거리에 놓아둬도 정확히 찾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다. 새 중 가장 민첩한 매는 그들이 좋아하는 먹이인 10cm 정도 되는 들쥐를 1천9백m 거리에서도 정확히 보고 잡아먹을 수 있다.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은 땅위로, 숲이나 땅속으로 다니기 때문에 시각보다는 후각이나 청각이 잘 발달돼 있다. 예를 들어 개들은 이동할 때 항시 전봇대나 큰 나무줄기 또는 땅바닥에 배설물의 흔적을 남긴다. 사슴은 눈 밑 콧등에서 분비물이 나오고, 아프리카 들고양이는 발톱 사이에서 분비물이 나온다. 설악산 꼭대기에서 대변을 보면 파리가 수분 내에 40km 떨어진 곳에서도 냄새를 감지해 찾아온다. 이들에게는 후각이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인 것이다. 냄새를 맡음으로써 배고플 때 먹이를 찾고 번식할 때 짝을 찾고 이동할 때 무리를 지으며 살아간다. 또한 깜깜한 가을밤에 귀뚜라미 수컷은 날개를 비벼 강한 소리를 내서 암컷을 부른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살아가기 위해 각각 다른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감각능력이 동물에 미치지 못한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대신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