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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1백m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점진론 대 단속평형론 논쟁

다윈의 식탁 셋째날이다. 예고된 대로 오늘은 진화의 속도에 관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 주제가 선택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굴드는 진화의 속도와 양상에 대한 그의 독특한 이론 때문에 학계에 스타로 떠올랐었다. 그는 1972년에 동료인 나일즈 엘드리지와 함께 다윈의 점진론에 대한 대안으로 ‘단속평형론’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도킨스는 어떤 사람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굴드의 단속평형론을 반박하기 위해서 아예 한권의 책을 썼을 정도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단속평형론 끝장내기’는 도킨스의 역작 ‘눈먼 시계공’(1986년)의 9장 제목이다.

오늘 굴드(G)팀에는 엘드리지가 합류했고 도킨스(D)팀에는 데넷이 토론자로 나섰다. 특별 손님으로는 저명한 생물철학자이면서 생물학사가이기도 한 마이클 루즈 교수가 자리를 같이 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스티렐니가 마이크를 잡는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친숙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방송 시작 사인이 켜졌는데도 노래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자(스티렐니): 안녕하세요. 갑자기 노래가 나와서 놀라셨을 겁니다. 방송 사고가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고 듣는 김에 마저 들으시죠. 지금 듣고 계신 그룹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록 음악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가끔씩 전율을 선물합니다. 이 곡은 처음에 다소 느리게 진행되다가 중간쯤에서는 몇마디의 피아노 비트를 기점으로 해서 갑자기 숨이 가빠지죠. 그러다가 끝무렵에 가서는 원래 빠르기로 되돌아갑니다.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제 경우에는 이렇게 두번에 걸친 템포의 변화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빠르기로 이 곡을 열창하고 있는 프레디 머큐리(그룹 퀸의 리드 싱어)의 모습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웃음)

한편 템포의 변화가 유별난 클래식 음악 중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으로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 있습니다. 채 3분밖에 안되는 연주지만 변화무쌍한 템포 때문인지 그 속에 애절함과 흥겨움이 묘하게 공존해 있는 듯하죠. 하지만 템포 변화와 명곡이 항상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누구든 한번쯤 들어봤을 비발디의 ‘사계 : 제1악장-봄’은 시종일관 ‘알레그로’(빠르게)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진화론에 관한 토론에 느닷없이 음악 이야기를 꺼내 이상하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변화하는 대상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항상 어떤 템포(빠르기 또는 속도)를 갖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진화에도 템포라는 게 있을까요? 생물의 진화는 장구한 세월 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됩니까? 흔히 알려져 있듯이 다윈이 정말로 그렇게 주장했을까요? 혹시 갑작스럽게 도약하며 진화하는 게 진화의 진짜 양상이 아닐까요? 마치 ‘라르고’(아주 느리게)에서 ‘프레스토’(아주 빠르게)로 템포가 바뀌는 음악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진화의 속도와 양상에 대한 토론을 하겠습니다. 우선 점진론이 무엇이고 왜 문제라는 것인지 굴드 교수님이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굴드(G팀): “내 책의 반은 라이엘의 머리에서 온 것 같이 느껴진다.” 이 말은 1844년에 다윈이 어떤 편지에 쓴 고백입니다. 다윈이 1831년에 비글호에 승선하면서 챙겼던 재산 목록 1호는 놀랍게도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1권)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 책에 열광했는지는, 집에서 보낸 온 소포들 중에서 그를 가장 즐겁게 만든 것은 가족의 편지가 아니라 1832년에 출간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2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연유가 어찌됐든 그는 비글호에 승선하고부터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사실, 다윈이 햇병아리 과학도였던 시절에는 지질의 급격한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프랑스의 퀴비에)과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라이엘)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과정과 법칙들이 지구의 전 지질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지구가 대규모 화산 폭발, 운석 충돌, 해수면 급상승 등과 같은 격변에 늘 시달리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라는 발상이죠. 라이엘의 이론에 심취한 다윈은 생명의 진화가 그 누구도 살아서 목격할 수 없을 정도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장중하고 정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점진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석기록은 점진적 변화보다는 오히려 갑작스런 변화를 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닐 만큼 다윈을 철저히 신봉했던 헉슬리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서점 진열대 오르기 하루 전날, 다윈에게 “당신은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괜한 어려움에 처해 있구려”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했습니다. 실제로 다윈은 화석상의 기록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심하게 불연속적으로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죠. “지질학적 기록은 불완전하다”라는 그의 대답은 그야말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엘드리지(G팀): 맞습니다.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화석기록이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불연속적인 변화들, 즉 격변들이 지질학적인 과거에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고생물학자들이 다윈 이후로 1백년이 넘게 연구를 거듭했지만 대부분의 화석기록은 여전히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1972년에 저와 굴드가 함께 발표한 단속평형론은 바로 이런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진화는 오랫동안 정체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급변하는 형태를 띱니다.

자, 화면을 한번 봐주십시오. 다윈식의 점진론과 우리의 단속평형론을 알기 쉽게 비교하기 위해서 그림(그림 1)을 그려봤습니다.
 

(그림1) 단속평형론과 점진론 비교


왼쪽 그림은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단속평형론이 어떤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어볼까요. 제 동료가 8백만년-3백50만년 전 카리브해에서 생존했던 메트라랍도터스라 불리는 이끼벌레의 화석을 연구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단속평형론의 패턴에 거의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즉 중간단계의 형태 없이 새로운 형태가 갑자기 출현하는 식이었죠.

사회자: 그러니까 두분 말씀은 화석상의 증거들을 비롯한 많은 자료들이 다윈의 점진론보다는 두분의 단속평형론을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이시네요. 도킨스 교수님은 이런 주장에 결코 동의하실 것 같지 않은데요?

도킨스(D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공격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그 결과는 무의미함뿐이죠. 두분의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를 보이기 위해 제가 ‘눈먼 시계공’에서 썼던 비유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군요.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가로질러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무려 40년이나 걸렸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두가지 해석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한 해석에 따르면, 가나안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3백20km이므로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약 22m인 셈이고 밤에는 이동을 멈췄을 테니까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이 시간당 2.7m 정도로 이동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침마다 텐트를 걷고 북동 방향으로 22m씩 기어가듯 이동한 다음에 다시 캠프를 설치하는 식으로 말이죠.

반면 다른 해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장소에 머물면서 수년간 캠프 생활을 하다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새로운 캠프지로 이동한 다음 다시 그곳에서 수년을 머무르는 식으로 생활했다고 주장합니다. 즉 약속의 땅을 향한 이스라엘인들의 이동은 결코 점진적이거나 연속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불규칙하고 변덕스러웠다는 해석입니다. 어떤 해석이 더 그럴 듯합니까?

사회자: 그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도킨스(D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두번째 해석에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앞에 계신 굴드와 엘드리지 박사는 두번째 해석의 선봉에 서계신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두분 주장이 옳다는 이야기입니까?

오히려 그 반대죠. 두분께서 단속평형설을 부각시키려고 짜 놓은 위와 같은 문제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두분께서는 진화의 템포에 대한 입장을 ‘등속설’ - 이는 출애굽기에 대한 첫번째 해석에 대응됩니다 - 과 ‘단속평형설’로 이분해 놓고 사람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윈 자신뿐만 아니라 저같이 가장 극단적인 점진주의자도 등속설을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왜 허수아비를 공격하십니까? 그리고 조금 전에 단속평형설의 증거를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그런 사례들보다는 점진론의 증거들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웨일스 지방에서 발견된 오르도비스기의 삼엽충 화석은 점진적 진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혁명가라도 된듯이 말씀하시는데 진상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데넷(D팀): 저도 ‘다윈의 위험한 생각’(1995년)에서 도킨스 교수와 입장을 같이 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굴드 교수가 다윈의 점진론에 대해 그동안 어떤 입장을 견지해왔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봤습니다만 실망스럽게도 다윈의 점진론에 대안인양 제시된 단속평형설은 속빈 강정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제 비판에 대해서 여기 앉아 계신 굴드 교수께서 몇년 전에 ‘뉴욕 서평’에서 저를 ‘도킨스의 애완견’이라는 표현까지 해가며 인신공격을 하셨더군요. 사회자께서 정중한 토론을 부탁하셨기에 이에 대한 응답은 여기서는 자제하겠습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두분의 이론은 일종의 허풍이라고 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다윈의 점진론은 폭이 매우 넓어서 느린 등속 템포로부터 단속평형 템포까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준비한 그림(그림 2)을 한번 보시면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그림2) 점진론의 연속체 모델


사회자: 잠시만요. 진화생물학의 역사에 정통하신 루즈 교수가 여기에 나와 계시니 다윈 자신이 점진론에 대해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들어보는게 어떨까요? 도대체 다윈의 ‘아템포’(본디 빠르기로)는 무엇이었나요?

루즈(특별 손님): 아까 굴드 교수도 잠깐 언급했듯이 한때 다윈은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을 말하면서 자신의 점진론을 궁색하게 방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윈은 어떤 대목에서 마치 단속평형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말들도 했습니다. 실제로 다윈의 ‘종의 기원’ 4판부터는 “많은 종들이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 종이 변화하는 기간은 연수로 측정하기에는 무척 긴 기간이지만, 그 종이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기간에 비하면 틀림없이 짧을 것이다”라는 진술이 슬그머니 삽입돼 있거든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풀어보면 다윈은 종분화 사건의 속도와 종분화 사건들 사이의 진화 속도가 뚜렷하게 차이난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데넷(D팀): 그 보십시오. 다윈의 점진론은 그렇게 옹졸하지 않다니까요.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

육상 종목 중에서 1백m 경기와 넓이뛰기를 비교해봅시다. 1백m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이 총소리를 듣고 출발해서 결승선에 들어올 때까지의 보폭을 한번 그려봅시다. 출발 시점에서의 보폭과 최고 스피드에 도달했을 때의 보폭에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보폭의 크기는 비슷비슷할 겁니다. 반면 넓이뛰기는 도움닫기를 할 때의 보폭과 점프를 할 때의 보폭이 매우 다릅니다. 그야말로 점프를 해야 하니까요. 두분은 마치 육상 종목에 넓이뛰기만 있다고 자꾸 우기시는 것 같아요.

굴드(G팀): 실제로 다윈 자신이 진화의 속도와 양상에 대해 이중적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일만 합니다. 하지만 여기 앞에 계신 두분의 극단적인 점진론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습니다. 두분의 점진론은 따지고 보면 실제로 등속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거든요.

데넷(D팀): 안타깝게도 저희들의 비판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시지 못한 것 같군요.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헝가리 부부 한쌍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기념으로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국책을 선물하려고 시내의 한 서점에 들렀죠. 그런데 진열돼 있는 책은 전부 그림책들이고 이상하게도 모든 책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진열대 위에는 그들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영어)로 다음과 같은 푯말이 달려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파손된 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책에 그려진 그림들만 보고 책을 고를 수밖에 없죠.

마침 부인이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골라 남편에게 권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한참을 넘겨보더니 몇페이지들이 누락된 파본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부인,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아세요?”라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리 봐도 그림들이 페이지마다 연속적으로 잘 연계돼 있지 않거든. 이 면을 봐봐. 왼쪽 페이지는 지렁이들만 등장하는데 그 오른쪽 페이지에는 갑자기 자동차들만 있잖아”라고 대답합니다.

사회자: 듣고 있자니 그 남편의 행동과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화석기록들에 대한 다윈의 대응이 매우 유사해 보이네요. 파손된 책일 수 있다는 남편의 믿음과 화석기록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다윈의 믿음, 그림책의 그림들이 점진적으로 바뀌길 기대했던 남편의 예상과 화석 기록이 연속적일 것이라는 다윈의 기대가 분명 닮은꼴입니다.

또한 실제 화석기록은 그 그림책의 그림들과도 같이 연속적이지 않아 보였죠. 음…. 그렇다면 결국 파본이라고 결론 내린 남편과도 같이 다윈은 화석기록이 불완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뜻이 되네요.

데넷(D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편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부인이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파본이라고 의심되는 책의 제목과 똑같은 책들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내 남편에게 가져와 말합니다. “당신 말이 맞는지 어디 한번 볼까요? 여기 가져온 10권 모두가 처음 그림책과 똑같다면 그 그림책은 파본이 아니지 않겠어요? 이책 11권 모두가 파본일 가능성은 매우 적을 테니까요.” 만일 11권 모두가 실제로 그림이 똑같았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이 사실에 근거해서 부인이 처음 그림책은 파본일 수 없고 원래 그런 불연속적인 그림들이 수록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합시다. 부인의 생각이 결과적으로 맞는 것일까요?

엘드리지(G팀):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잘 모르겠네요. 왜 그리 빙빙 돌려 말합니까?

데넷(D팀): 미안합니다. 이제 이야기의 결말 부분입니다. 11권의 책이 모두 똑같은 그림으로 돼 있음을 확인한 부부가 그 책이 파본이 아니라는 확신에 안도하려던 차였습니다. 모든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미국인 한사람이 대충 눈치를 챘는지 자기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서 그 부부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문제의 책을 훑어보고는, “그림들이 마치 불연속적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 한국어로 된 이야기를 읽어보면 왜 이 그림들이 이런 식으로 바뀌는지 이해가 될 거예요”라며 책의 내용을 설명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하나 꺼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마치 그 언어를 모른다고 가정하고 그림들을 넘겨보십시오. 본문을 읽기 전에는 그림들이 마치 불연속적인 양 보일 것입니다. 두 페이지에 그림은 기껏해야 두세컷 정도 실려 있겠지만 그 속에 적혀 있는 글자 수는 많게는 수백 내지 수천 자 이상 되지 않습니까? 그림만 보면 불연속적으로 보이지만 본문을 읽을 수 있으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본문과 그림의 템포 차이는 스케일 차이의 한 사례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두분은 지질학적인 시간 척도(수십만년 이상의 기간)에서 보이는 진화만을 말씀하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까 종분화가 마치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고 불연속성만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실제로 두 분은 종분화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하면서 그 ‘순간적’이 지질학적인 시간 척도로 해석돼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사회자: 척도의 차이에 대한 지적은 매우 흥미롭네요. 토론의 첫머리에서 제가 음악의 템포 차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동양음악은 템포의 척도에 있어서 서양음악과도 다른 것 같던데요.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동안 묵묵히 서기로 수고해주고 계신 장 박사가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참석자들 중에 유일한 동양인 아닙니까?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일까? 어제 다윈의 식탁 둘째날이 끝나고 정리모임을 하던 중에 한두번쯤은 서기에게도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의견들이 나왔었다. 그리고 엊그제 사회자와 우연히 한국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것을 잊지 않고 이 순간에 나를 끌어들이는 사회자의 순발력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나는 내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나: 제가 한국에서 왔으니 전통적인 한국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음악은 서양음악에 비해 기본적으로 템포가 무척 느립니다. 예컨대 서양음악의 라르고(아주 느리게)는 메트로놈 속도가 1분에 40 정도인데 비해 한국음악의 어떤 곡은 15 정도로 두배 이상 느리죠. 이렇게 템포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한국음악에서는 템포의 기준을 ‘호흡’에 두는 반면 서양 음악에서는 ‘맥박’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호흡에 맥박은 수십번도 뛸 수 있지 않습니까? 맥박이냐 호흡이냐는 바로 척도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눈금의 지질학적 시간 내에서 진화는 수십만 내지 수백만의 세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진화의 속도는 어떤 시간 척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죠.

말을 해놓고 보니 서기 주제에 특정 토론자들(도킨스와 데넷)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강력하게 지지한 꼴이 돼 버렸다. 앞으로 굴드와도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사회자도 약간 당황한 기색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마치 굴드에게 마지막 펀치를 날리려는 기세다.

도킨스(D팀): 저는 진화생물학의 일차적인 목표가 생물의 적응을 설명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누적적인 자연선택만이 복잡한 적응의 존재를, 기적을 동원하지 않고 설명하는 유일한 길이지요. 적응은 갑작스런 도약으로는 진화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굴드 교수가 비판하고 있는 등속적 선택은 제가 주장하는 누적적 선택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굴드 교수의 단속평형설은 다윈의 점진론을 깎아내림으로써 진화론의 맹위로부터 기독교를 구원하길 원했던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반진화론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굴드(G팀): 저는 단지 다윈의 진화론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인데 왜 내가 그런 비난까지 받아야 하는지 몹시 불쾌하네요. 그리고 도대체 왜 적응에 대한 설명이 진화생물학의 일차 목표입니까? 적응말고도 설명해야 할 중요한 현상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사회자: 어쩌죠. 벌써 마쳐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진화의 속도에 관한 점진론과 단속평형론의 한판 대결이었습니다만 경험적 사실들에 근거한 논쟁이었다기보다는 다소 역사적이고 개념적이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오늘처럼 비유가 많이 등장한 토론회도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진화와 진보의 관계에 대한 주제가 토론상에 올려집니다. 기대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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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장대익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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