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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학의 어제와 오늘

윤리장벽 뚫고 과학의 길로

인간의 성이 지닌 의미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현상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맥락에서 파악한 것을 성문제(sexuality)라 한다. 성문제에 대해 학제간 연구를 하는 분야가 성과학(sexology)이다.

금욕의 역사

성과학은 19세기에 그 기초가 잡혔다. 성문제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더디게 시도되었던 이유는 성행동이 인간의 여느 행동과는 달리 윤리적 측면이 많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에서는 가톨릭 신학자들이 제시한 성윤리가 성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았다.

대부분의 다른 종교들은 일시적인 금욕을 요구했으나 기독교는 영구적인 금욕을 강요했다. 금욕주의적인 이론은 바울에서 시작되어 아우구스티누스로 계승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사도 바울은 독신이 결혼보다 훌륭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당시의 금욕주의자들은 여자의 몸뚱이 전체와 남자의 하반신을 악마의 창조물이라고 생각했다.

성교행위는 근본적으로 불결한 것이라는 교부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집약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이다. 한때 동성애에 탐닉했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뒤에 아담과 이브의 원죄가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성교행위는 멸망으로 가는 것이며 그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죄를 안고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 독신은 도덕적 권위의 상징이 되었으며 파란곡절 끝에 성직자의 독신제도가 확립된다.

성직자에 대한 독신 강요로 동성애가 성행했는데,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경직시킨 인물은 아퀴나스(1225-74)이다. 거의 모든 성문제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밝혔는데, 동성애를 포함해서 남녀간의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여자가 아래로 가는 남성상위 이외의 모든 성교체위를 조물주가 정한 법칙에서 벗어난 부자연스러운 탈선일 뿐만 아니라 색정적인 짓으로 간주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아직까지도 가톨릭 교도들에게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가톨릭의 성문제에 관한 전통적인 분석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수음을 강간보다 더 무거운 죄로 간주한 것이다. 강간은 어떻든 자식을 생기도록 하지만 수음은 생식과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인 성행위이므로 큰 죄가 된다는 논리이다. 수음을 의미하는 오나니즘(onanism)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오난에서 유래되었다. 오난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과부가 된 형수를 아내로 삼았지만 질외사정으로 정액을 방바닥에 흘렸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서 죽음의 벌을 받는다.
 

사람의 성교행위가 근본적으로 불결한 것이라고 생각한 아우구스타누스.


성의 비밀을 밝혀낸 사람들

19세기 후반 성과학의 여명기에 우뚝 솟은 인물은 독일의 리처드 폰 크라프트-에빙(1840-1902)교수이다. 성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1886년 펴낸 ‘성적 정신병리’(Psychopathia Sexualis)에서 동성애, 절편음란증, 사디즘, 마조히즘의 네가지 성적 일탈행위를 자세히 다루었다. 절편음란증은 사진, 속옷, 신발과 같은 물건에 애착을 느껴 이를 소유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느끼는 성 도착증이다. 절편음란증 환자들은 빨랫줄에 널려있는 여자 팬티 또는 브래지어 따위를 훔치거나, 신발 안에 성기를 넣고 수음을 한다. 타인을 모욕 또는 구타하면서 성적 쾌감을 얻는 사디즘(가학성 변태성욕),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학대를 받으면서 성적으로 만족하는 마조히즘(피학대 음란증)은 크라프트-에빙이 처음으로 개념을 정립했다. 같은 무렵에 활동한 변호사인 칼 울리히(1825-95)는 동성애가 선천적인 성향이므로 조물주로부터 받은 본능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울리히는 역사상 최초로 동성애자의 인권운동을 전개한 게이로 기록된다.

1903년 세계 최초의 나체촌이 독일에 출현하면서 시작된 20세기 초반의 성과학은 3대 거물인 마그누스 히르쉬펠트(1868-1935), 하브록 엘리스(1859-1939),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주도한다.

독일사람인 히르쉬펠트는 1919년 최초의 성과학 연구소를 설립하여 성문제에 몰두했다. 설문지를 만들어 다양한 성행동에 관한 사례를 수집했다. 그러나 유대인이자 게이였던 그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격의 과녁이 되었다. 나치 정부는 1933년 그의 연구소를 폐쇄하고 자료를 불태워버렸다. 히르쉬펠트는 성문제에 대한 이론보다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능력이 더욱 돋보이는 학자이다. 다양한 질문으로 짜여진 설문지를 사용한 사례연구(case stady)방법은 성문제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의사인 엘리스 역시 사례연구 방법으로 성문제의 거의 모든 측면에 대해 자료를 수집했다. 30여년에 걸쳐 일곱권으로 구성된 ‘성 심리학 연구‘(1896-1928)를 저술했다. 특히 수음과 몽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며 여성의 동성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학자이다. 엘리스를 다른 학자와 구별시키는 연구실적은 여자가 남자 못지 않게 성욕을 갖고 있으며, 성행위를 즐기는 능력에서 결코 남자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는 여자의 성적 충동이 남자보다 더 복잡하고 덜 자발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라고 주장했다.

히르쉬펠트와 엘리스의 연구결과는 성문제의 이해에 보탬이 되었지만 당대의 의사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의사들이 필요로 한 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은 프로이트이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하여 무의식이라는 인간 정신의 새로운 토대를 발견하고 인간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역설했다. 무의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1900년 ‘꿈의 해석‘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사람은 모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리비도(libido)라는 정신에너지의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리비도는 에로스의 에너지이다. 에로스는 생명을 유지 및 발전시키고 사랑을 하게 만드는 본능이다. 태어날 때부터 나타나 어린이의 행동과 성격을 규정하게 되는 리비도는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표출되지만, 특히 성활동에서 많이 분출된다.

프로이트는 성적 본능을 강조하는 리비도 개념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자 훗날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여 인간의 정신생활 영역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라는 다면적 구조로 파악했다. 이드는 완전히 무의식적이며, 리비도의 원천으로서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한다. 자아는 이드를 의식적으로 통제하여 쾌락을 현실에 맞추어 충족하도록 한다. 초자아는 이드와 자아를 비판하여 사회규범에 맞는 생활을 하게 한다.

킨제이 보고서의 충격

히르쉬펠트와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치 정권이 득세를 함에 따라 1940년대부터 성 연구의 주도권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연구방법 역시 사례연구에서 표본조사(survey)방식으로 바뀐다. 사례연구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반면에 표본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면담을 하거나 설문지를 메꾸게 하여 성생활에 관한 자료를 조사한다.

표본조사 방식으로 성과를 거둔 최초의 인물은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이다. 미국 전역에 걸쳐 1만8천명을 면접하여 얻은 1만2천건의 자료를 묶어 두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른바 ‘킨제이 보고서’의 한권(1948)은 남자, 다른 한권(1953)은 여자의 성 행동에 관한 것이다.

‘킨제이 보고서’는 성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함을 밝혀냄으로써 미국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성문제를 학문적인 연구대상으로 격상시킨 계기를 마련했다. 예컨대 오르가슴을 수반한 동성애를 적어도 한번 경험한 남성이 37%에 이른다는 킨제이의 발표는 게이를 사갈시하는 미국사회로 하여금 동성애의 존재를 외면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동시에 게이의 인권운동이 출현하는 빌미를 결정적으로 제공한다.

여자에 관한 통계 중에서는 혼전 및 혼외정사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여자의 절반 정도가 혼전에 성교를 했으며 26%의 유부녀가 간통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자의 오르가슴에 대한 자료는 미국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다. 여자 역시 남자처럼 오르가슴에 탐닉하는 동물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여자의 25%가 15살까지, 절반 이상이 스무살까지, 64%가 혼전에 이미 오르가슴을 맛본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첫째 달에 49%, 6개월 이내에 67%, 1년 안에 75%의 신부가 오르가슴에 도달했다. 또한 오르가슴의 빈도에서 개인차가 드러났다. 남자가 한번 사정하는 사이에 14%의 여자가 여러 차례 오르가슴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으며 열번 이상 오르가슴을 만끽한 여자들도 있었다.

동물학 교수 출신인 킨제이는 성 연구를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킬 결심을 하고, 성행동에 관련된 생물학적 요소에 대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테면 발기조직인 페니스와 클리토리스의 측정을 시도했다. 무려 1만6천개의 페니스를 측정했는데 발기했을 때 평균 길이는 6.5인치, 가장 긴 것은 10.5인치였다.

그러나 클리토리스는 성적으로 흥분하면 포피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측정이 쉽지 않았다. 클리토리스는 그리스어로 ‘숨어 있는 것’을 뜻한다. 어쨌거나 킨제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지 않고서는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리비도라는 정신에너지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했다. 리비도는 사랑을 하게 만드는 보는이 에로스의 에너지다.


성교 장면 보면서 반응 관찰

표본조사가 성 경험의 연구에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성행동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가령 성적으로 흥분되었을 때 고환 또는 음핵의 상태나 성교 도중에 발생하는 신체의 변화를 당사자가 현장에서 스스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표본조사로는 자료를 구할 길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의료장비를 동원하여 제3자가 성교 장면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다. 동물의 교미는 자주 관찰대상이 되었으나 사람의 경우 공개적인 성행위는 아무래도 금기사항일 수밖에 없었는데, 미국의 윌리엄 마스터즈(1915-)와 버지니아 존슨(1925-)은 실험실에서 사람의 성교를 관찰하여 1966년 ‘인간의 성반응’이라는 책을 펴냈다.

산부인과 의사인 마스터즈는 38살 되는 1954년부터 연구에 착수했으며 심리학자인 존슨은 조수로 참여했으나 훗날 아내가 된다. 이들은 21살에서 89살까지 남자 3백12명, 18살에서 78살까지 여자 3백82명 등 6백94명에 대해 실제로 성교 또는 수음을 시켰다. 심지어는 사진기가 달린 모조음경을 질 속에 넣어둔 상태에서 여자에게 수음을 시키고 오르가슴 순간에 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했다. 12년 동안 대략 1만회의 성반응 주기를 관찰했다.

마스터즈와 존슨에 따르면, 인간의 성반응 주기는 성적 자극을 받는데서 시작하여 오르가슴을 거쳐 다시 정상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흥분기, 고조기, 오르가슴기, 해소기의 네단계로 구분된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남자는 음경이 발기하고 여자는 질벽에서 윤활액이 스며나온 다음에 클리토리스가 커지고 음순이 벌어진다. 물론 유방도 팽대하고 유두가 발기한다. 흥분이 높은 상태에서 지속되는 고조기가 되면 남자는 귀두와 고환이 커지며 정액 일부가 귀두 밖으로 흘러나오고 여자는 질벽의 전체 모양이 맥주병을 거꾸로 세운 형태가 되며 클리토리스는 질 입구에서 멀리 올라가 숨어버린다.

성적 쾌감의 절정을 맛보는 오르가슴기에는 남녀 모두 전신에 걸쳐 근육의 수축과 경련이 일어나며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 박동과 호흡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배우자의 몸을 힘차게 끌어안는다. 해소기에 접어들면 음경은 줄어들고 질, 음핵, 유방 모두 원래 크기로 돌아간다.

마스터즈와 존슨은 인간의 성반응에 관한 생체실험을 통해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먼저 음경이 크다고 해서 발기 후에도 반드시 크란 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7cm인 음경은 발기할 때 1백20% 늘어났지만 11cm 짜리는 50% 밖에 커지지 않은 실험결과가 나온 것이다. 둘째 음경이 클수록 여자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질의 틈새는 삽입 직후 몇번 왕복하는 페니스의 길이와 굵기만큼 벌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여자는 남자와 달리 여러 차례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다. 실험결과에 따르면 젊은 여자가 한번의 성교에서 6-12회 오르가슴에 도달했다. 어느 여자는 남편이 사정하고나서 수음으로 25회, 곧바로 모조음경을 삽입하여 21회 등 모두 46번의 오르가슴을 한번 누운 자리에서 경험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넷째 80살 전후의 노인들도 남녀 모두 정상적인 성교가 가능할 뿐 아니라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마스터즈와 존슨 부부는 성과학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업적을 남겼지만 1992년 이혼한다.

성 연구는 과학인가

마스터즈와 존슨 이후 성과학은 학제간 연구의 본질을 드러냈는데, 대표적인 보기는 성별(gender)에 대한 연구이다. 젠더는 1955년 존 머니가 생물학적 성(남자 또는 여자)으로부터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과 같은 사회적 성을 구분하는 용어로 채택함에 따라 사회과학과 성과학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태생의 미국 심리학자인 머니는 이 용어의 사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면서 1960년대 이후 성문제 연구의 중심인물이 된다. 젠더와 관련된 문제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성연구의 핵심과제로 부각되었다.

1960년대 이후 성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페미니즘 이론이 미친 영향이다. 미국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1920년에 이어 2차로 밀어닥친 이른바 ‘페미니즘의 두번째 물결’은 베티 프리단이 1963년 펴낸 ‘여성의 신비’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미국 여성들이 풍요로운 전후 사회에서 자신들의 역할에 점차 불만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여권운동의 두번째 물결을 주도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멸시를 조장하거나 강간을 자극하는 외설물에 대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직장 내의 성희롱이나 아동에 대한 성폭행을 처벌하는 법률의 미온적인 대처를 비판하였다. 요컨대 페미니스트들은 성문제를 정치적으로 쟁점화하여 성차별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인간의 성문제는 생물학에서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성과학이 과학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과학은 객관적인 자료에 의존하지만 성문제에 관한 자료가 항상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성 연구의 역사를 집대성한 ‘침실의 과학’(1994)을 펴낸 미국의 번 벌로 교수가 이 저서의 말미에 언급한 다음 대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성과학은 과학적 연구를 할 만한 주제를 갖고 있으며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된 정보를 풍부하게 갖고 있다. 성과학은 학제간 연구이므로 전통적인 과학과는 다르다. (중략) 그러나 성연구의 모든 측면이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성 연구는 과학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199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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