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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뜬다

물에 모래 섞여 인체보다 밀도 높아

대통령 재신임 투표, 이라크 파병 논란, 갈수록 비대해져만 가는 사교육 시장, 회복 기미 없는 경제.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일은 하나도 없고 자고 나면 더 나빠지는 이런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며칠 치 신문을 가져다가 훑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수렁에 빠진’이라는 수식어입니다. 수렁, 정확히 말하면 모래수렁(quicksand)에는 타잔을 해치려는 악당들이 주로 빠지는데, 헤어나려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니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만이죠.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만든 ‘죽음의 모래수렁’이란 다큐멘터리를 보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내딛은 발이 모래수렁에 빠져 근육이 마비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모래수렁은 그렇게 무서운 것은 아닙니다. 모래수렁은 모래와 물이 섞여있는 상태로 대개 깊이가 사람의 키를 넘는 경우가 없습니다. 깊이가 그 정도이니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빠져 죽을 리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도 왜 모래수렁에서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날까요.

해변으로 한번 가봅시다. 바닷물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모래밭에서는 발이 조금 빠지긴 하지만 곧 어느 정도 깊이에서 멈추게 됩니다. 모래알들 사이에는 마찰력이 작용해 서로 흩어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단단한 발판처럼 몸을 지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더 바닷물에 가까이 가면 마른 모래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아본 사람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모래에 물이 적당량 들어가면 마른 모래보다 더 단단해집니다. 물이 모래알들 사이의 마찰력을 더 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닷물에 다 왔습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할 것입니다. 발이 갑자기 쑥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밑에서 뭔가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한때 모래알들 사이의 마찰력을 높이는 물이지만, 과도하게 많은 양이 모래에 들어가면 주객이 전도됩니다. 이제부터는 모래에 물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모래알들이 ‘녹아’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모래알들이 서로 떨어지면서 지표면은 물러지게 됩니다. 여기에 빠지면 몸을 지탱할 아무런 발판이 없어지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능한 움직임을 적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물이므로 밀도는 물과 같은 약 1g/cm3입니다. 이에 비해 모래수렁의 밀도는 그보다 큰 2g/cm3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래수렁에서는 물보다 더 몸이 뜨기 쉬운 셈입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처럼 몸을 누인 채 팔다리를 넓게 벌리면 곧 몸이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부터 조심스럽게 팔을 저어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이죠.

또 근처에 나무 막대기가 있다면 등을 그 위에 일자로 올려놓아 균형을 잡으면 몸이 더이상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막대기를 척추와 직각이 되게 옮겨서 엉덩이가 떠있게 합니다.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면 천천히 발을 끄집어냅니다.

문제는 공포입니다. 놀라서 팔다리를 휘젓다가는 몸이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만약 허리 깊이만큼 빠지면 모래의 무게 때문이라도 몸을 빼기가 힘들어집니다. 또 모래수렁에서는 물체가 빠져나간 만큼 그 공간이 진공이 되기 때문에 발을 빼기가 아주 힘듭니다. 갯벌에서 장화는 그대로 두고 발만 빼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이때는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모래수렁의 점착성이 낮아져 장화를 빼낼 수 있습니다.

모래수렁은 해안가나 강둑, 호숫가, 습지, 지하 샘 근처 등 지반에 물이 스며들기 쉬운 곳에서 주로 생기며, 지진으로 압력이 높아진 지하수가 근처 모래나 진흙을 ‘액화’시킬 때는 건물까지 빠져들게 합니다.

어쨌거나 결론은 수렁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있다는 것입니다. 수렁에 빠진 정치, 경제, 교육. 이제누군가 발목을 잡는다는 비과학적인 말을 그만두고,정신 차리고 조금씩 노를 저어 빠져나가야 할 때입니다.


모래수렁의 형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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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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