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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온몸으로 느끼는 가상현실

체험의 질을 높여주는 햅틱 기술

서울 근교의 한 대학병원. 수련의 김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김씨는 지금 간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집도하는 중이다. 복부를 절개해 고정한뒤, 환부를 찾아 상태를 살펴보고 종양을 도려내기 위해 메스를 쥔 손가락에 힘을 준다. 순간 비상벨이 김씨의 귓가를 때린다. 비상사태가 생긴 것이다.

불이 환하게 켜지고 당황한 김씨가 숨을 몰아 쉬며 가상환경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실수로 종양대신 그 옆을 지나는 동맥을 자른 것이다. 담당 교수의 매서운 꾸중에 쩔쩔매면서도 김씨는 자신의 실수가 실제상황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따름이다.

가상 수술 시대의 도래

최근‘햅틱스’(haptics) 분야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가상수술이 현실화될 날도 머지 않았다.


김씨처럼 수련의들이 가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 훈련하는 장면은 먼 미래의 일일까? 최근 ‘햅틱스’(haptics) 분야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가상수술이 현실화될 날도 머지 않았다. 햅틱스란 용어는 ‘촉감의’란 뜻을 가진 형용사 ‘햅틱’(haptic)에서 온 말로, 사람에게 힘과 촉감을 전달해주는 기술을 뜻한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향상과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의 발전은 가상현실 연구에 많은 진척을 가져왔다. 가상현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 마치 실제세계에 있는 것처럼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가상현실 장치들은 대다수가 단지 시청각 정보만을 제공해 줄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시청각 정보뿐 아니라 촉각이나 힘, 그리고 운동감까지도 전달돼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가 가상현실 속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능동적인 역할을 하려면 컴퓨터에 사용자의 의도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사용자 입력장치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용자 입력장치로는 키보드나 마우스, 조이스틱, 그리고 터치스크린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용자 입력장치들은 사용자가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는 용도로만 쓰였을 뿐, 컴퓨터가 사용자에게 촉각정보까지도 제공해 주는 기능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좀더 사실적인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을 위해 햅틱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2002년 3월자 ‘테크놀로지 리뷰’지는 “앞으로 모든 컴퓨터 인터페이스 장치에서 햅틱 기능은 기본 장치가 될 것이며, 5-10년 후에는 햅틱 기능이 없는 컴퓨터에서 작업을 한다면 허전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햅틱 기술이 전혀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햅틱 기술의 초보적인 형태는 현재 가상환경을 이용한 시뮬레이터에 적용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은 한번쯤 놀이 동산에 가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놀이 동산에서 다이나믹 영화를 관람해 본 사람들은 이미 햅틱스의 세계를 경험해 본 것이다. 다이나믹 영화에서는 그래픽이 움직이는 대로 의자가 움직여서 속도감이나 간단한 충돌감까지도 전달해 관객들 자신이 실제로 그 장면의 상황을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몰입감 높이는데 필수


버추얼 테크놀로지사의 사이버 포스. 장갑을 끼면 힘과 촉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다이나믹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시청각 정보나 그에 따른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사용자에게 좀더 현실감과 몰입감을 주려면 사용자가 직접 가상현실 속에 참여 할 수 있어야 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생되는 가상현실 환경에 운동감을 재현해 주는 장치를 결합해 현실감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시뮬레이터는 각종장비의 개발·설계단계에서 해당장비의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장비사용이 미숙한 사람에겐 실제처럼 꾸민 안전한 가상환경에서 장비의 운전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햅틱 기술을 이용한 시뮬레이터를 만들려면 햅틱 장치, 햅틱 렌더링,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이 있어야 한다. 햅틱 장치란 일종의 로봇팔과 같은 기계적인 장치로 사람과 가상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사람은 햅틱 장치를 통해 가상환경에 명령을 내리고, 가상환경에서 오는 촉감이나 힘을 느끼게 된다.

가상환경속에서 의사가 수술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의사는 가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메스처럼 생긴 햅틱 장치를 이용해 환부를 절개를 할 때 환자와 메스의 상대적인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환부를 절개할 때의 느낌을 전달받아야 한다. 바로 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햅틱 장치다.

햅틱 렌더링이란 사람이 가상환경과 상호작용할 때 가상의 물체로부터 실제적인 힘을 계산하고 생성하는 방법이다. 가상수술시 의사가 환부를 깊이 누른 채 절개할 경우가 살짝 누른 채로 절개할 때보다 힘이 더 든다. 마찬가지로 딱딱한 조직을 도려내는 경우가 연한 조직을 자르는 것보다 힘이 더 필요하다. 이처럼 물체의 성질과 사람의 상호작용에 따라 힘을 계산하고 생성하는 방법을 햅틱 렌더링이라고 한다.

가상현실에 능동적으로 참여


햅틱 마우스로 공집기  커서를 공의 위쪽에 두면 마우 스를 움직여 공을 들려는 순간 손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왼 쪽). 반면 아래에 두고 움직이면 공이 들리면서 무게감이 전달된다.


사람이 햅틱 장치를 통해 가상환경에 개입하면 그에 따라 가상환경 속의 물체가 변형되거나 움직인다. 이때 햅틱 렌더링 기술을 이용해 물체의 성질과 상태, 그리고 사용자의 개입정도에 따라 일어나는 역학적 변화를 계산한다. 그 결과 생성된 힘은 햅틱 장치를 통해 다시 사람에게 전달된다.

예를 들어 햅틱 마우스로 화면속의 공을 들려고 할 때 손가락에 해당하는 커서의 위치에 따라 전달되는 힘이 다르다. 커서가 공의 위쪽에 있으면 마우스를 움직여 공을 들려는 순간 손이 미끄러져 빠지는 느낌이 전달된다. 반면 커서가 공 아래쪽에 놓여 있을 때는 공이 들리면서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처럼 햅틱 장치는 사람과 컴퓨터가 실시간에 감각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햅틱 기술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시뮬레이터팀에서는 전투기 조종 연습을 위한 햅틱 장치와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미국 아이오와대에서는 차량의 운동특성에 맞는 운동재현장치를 개발했다.

현재 햅틱 시스템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곳은 의학 분야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은 실제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히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의대에서는 다양한 수술에 대한 시술 훈련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동물수술이나 시체해부만으로는 실제상황을 재현하기 어려운 수술도 많다.

또한 외과수술의 경우 의사의 판단과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2차원 영상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술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제한이 따른다. 그 결과 수술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3차원 컴퓨터 영상 기술과 햅틱 기술을 갖는 모의 수술용 훈련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컴퓨터 스크린 상에서 3차원의 해부학적 구조를 볼 수 있고, 가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환부를 직접 시술할 수 있는 3차원 영상이 실시간으로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다. 여기에 햅틱 장치와 햅틱 렌더링을 통해 힘과 촉감이 전달되면 실제 상황과 큰 차이가 없는 환경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의료교육 혁명 예고

미국 버클리소재 캘리포니아대에서는 햅틱 장치와 이를 이용한 복강경 수술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수술시 필요한 의사의 손 움직임을 정확히 반영해 제작한 것으로 의사가 수술시 필요한 힘을 느끼고 의사의 명령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리고 수술시 느끼는 촉감을 의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촉감감지용 센서를 햅틱 장치에 부착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는 히포크라테스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정형 외과의사들이 새로 개발한 수술방법을 적용해 그 타당성을 검사할 수 있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수술 전략을 바꿀 수 있는 모의 수술용 시스템을 개발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도 역시 CISS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뇌수술 및 안과수술을 위한 모의 수술용 시뮬레이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필자들이 속한 KAIST의 텔레로보틱스 및 제어 연구실에서 햅틱 장치와 햅틱 렌더링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본연구실에서 개발한 햅틱 장치 중 하나는 조이스틱 같은 장치에 의사들이 사용하기 편한 수술 도구 형태를 접목한 것이다. 이 장치를 통해 의사에게 힘이 전달되므로 원격제어 수술 로봇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한편 정보통신대의 컴퓨터그래픽스 및 비쥬얼라이제이션 연구실과 공동으로 물체의 표면뿐 아니라 내부까지도 실시간으로 햅틱 렌더링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세계최초로 개발했다. 그 결과 새로운 실시간 햅틱 렌더링 알고리듬을 만들어 사람의 간을 대상으로 모의실험을 수행했다.

이 의료 시뮬레이터는 의사들이 촉진법을 통해 암이나 기타 다른 조직을 찾아 낼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데 쓰일 예정이다. 그 밖에 KAIST 기계공학과에서는 헬리콥터 조정을 배울 수 있는 헬리콥터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이러한 햅틱 장치와 햅틱 렌더링은 의료 시뮬레이터, 항공기 및 전투기 시뮬레이터, 차량 시뮬레이터, 게임 시뮬레이터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폭넓게 응용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여가산업과 연계하면 그 경제적 잠재력이 매우 크다. 따라서 21세기에는 햅틱 기술에 대한 연구 열기가 한층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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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박사과정
  • 권동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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