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현지시각으로 오전 9시에 중국 간쑤(甘肅)성에 위치한 주취안(酒泉) 발사기지에서는 창정(長征)-2F 로켓이 발사됐다. 로켓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보내진 선저우(神舟, Shenzhou) 5호에는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공군 전투기조종사 출신의 양리웨이(楊立偉)를 태운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이었기 때문이다.
선저우 5호는 발사된 후 21시간 동안 지구 상공 3백50km 고도의 원형궤도로 14회를 돌고, 16일 새벽 6시 7분 네이멍구(內蒙古) 중부 초원지대에 위치한 스즈왕치(四子王旗) 착륙기지 부근 예상 착륙지점에서 4.8km 떨어진 곳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이로써 중국은 옛소련(1961년)과 미국(1962년)에 이어 세번째로 유인우주비행을 성공한 국가가 됐다.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성공은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와 더불어 13억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한껏 고양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중국이 명실상부한 과학기술의 강대국임을 전세계로부터 인정받는 전기가 됐다. 우주개발에 있어서 아시아의 선두주자로 자부하고 있던 일본은 충격 속에서 2등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국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
미국은 겉으로 축하하고 있지만 내심 우주강국 중국의 부상을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정부는 이례적으로 발사성공 전에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면서도 미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루빈은 “중국의 유인우주선 발사는 기술적인 성취일 뿐 새로운 군사적인 의미는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논평을 냈다. 미국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은 선저우 우주선의 개발과 발사에만 23억달러(약 2조 6천억원)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선저우 5호 이후에도 2010년 우주정거장 건설과 유인 달탐사, 2015년 달기지 건설, 2040년 화성 유인탐사 등 야심찬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이런 막대한 지출을 하면서 유인우주계획을 추진하는 것일까.
냉전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유인우주계획의 성공은 국력의 우열을 가리는 시금석이었다. 실례로 1961년 옛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태운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하면서 옛소련은 국력이 미국을 앞섰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치열한 유인 달탐사 경쟁 끝에 1969년 미국의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미국이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좋아했다.
미국은 1997년 발표한 이른바 ‘럼스펠드 보고서’에서 신 우주전략을 발표하면서 21세기에는 우주를 지배해야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현재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 International Space Station)과 미사일 방어계획(MD, Missile Defense)도 이런 신 우주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선저우 유인우주선 발사는 이런 미국의 계획에 대응하고자 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유인우주기술은 우주기술 수준의 바로미터라는 점을 중국 정부는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유인우주선의 발사 성공이 강대국 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인명피해도 컸지만 줄기차게 추진
실질적으로도 중국은 현대전에서 우주를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리 막강한 재래 군사력이라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자국의 안보확보 차원에서 유인우주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선저우 유인우주선의 개발이 중국 내의 자원감소, 환경파괴, 그리고 인구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장래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경제와 과학기술을 진일보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아울러 선저우 개발을 위해 주계약자인 중국 항공우주 과학기술 공사를 비롯한 3천여개의 공장에 약 1만명의 과학기술 인력이 고용돼 일하고 있다. 정부의 막대한 투자에 따른 수많은 공장의 생산활동과 과학인력의 고용 창출이라는 면에서 경제적인 중요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11세기 화전(불화살)을 내놓았던 중국의 우주개발 역사는 캘리포니아 공대의 천재 우주공학자 첸쉐썬(錢學森)이 1955년 중국으로 귀환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첸쉐썬은 저명한 독일계 항공우주과학자 폰 칼만의 수제자로, 망명하면 아군 5개 사단과 필적한다고까지 평가된 과학자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미국 국방과학자문위원회 책임자였고, 전후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교수로 지내면서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책임자로 근무했다.
첸쉐썬은 미국 정부의 잔류 유혹을 물리치고 귀국해 우주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을 설립해 중국 우주개발의 아버지가 됐다. 이후 우주분야와 관련인재에 대해 중국정부는 각별한 배려를 했다. 문화혁명과 마우쩌둥(毛澤東) 사후의 혼란 속에서도 저우언라이(周恩來) 수상은 이들을 보호했다.
중국의 우주개발에는 무수한 실패와 함께 수많은 인명피해도 있었지만 일관되고 줄기차게 추진됐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우주개발의 실패는 국가적 비밀로 엄격히 공개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1995년 창정 발사체의 발사가 TV로 중계되는 도중 인근 마을에 떨어졌다. 공식적으로 6명이 사망했다고 발표됐으나 실제로는 더 많은 사상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해 12월 최종 리허설까지 가져
중국의 유인우주계획은 1970년대부터 추진됐는데, 1974년부터 회수가능한 위성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고 추측된다. 실제로 1980년에 위성회수선박을 이용해 남태평양에서 위성을 회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1980년 막대한 비용 때문에 유인우주개발계획의 연기를 발표해 이때부터 중국의 유인우주개발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후 본격적인 유인우주계획은 비교적 최근인 1992년에 발표됐다. 1994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러시아를 방문해 중국과 러시아 간의 유인우주분야 협력의 기본 틀에 합의했고, 이에 따라 1995년 양국 사이에 우주분야 협력서가 체결됐다. 이후 러시아의 유인우주기술이 이전됐는데, 우주인 훈련에서 소유즈 캡슐과 생명유지장비, 도킹장비, 그리고 우주복이 제공됐다.
1996년에는 2명의 우주인 우 지에와 리 킹롱이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훈련을 마쳤다. 이들이 돌아온 후 12명의 우주인 후보생들을 선발했다. 이후 급속히 유인우주계획이 추진됐다. 1999년 11월 19일에는 선저우 1호가 무인으로 발사된 후 회수됐다.
2001년 1월 7일에 선저우 2호가 발사됐다. 선저우 2호는 중국이 발사한 우주선들 중에서 가장 진보된 다수의 우주실험 장비들을 탑재했다. 원숭이, 개, 토끼를 싣고 생명유지를 시험했고, 7일 간의 비행 중에 3회의 궤도상승 기동을 한 뒤 네이멍구에 착륙했다. 그러나 착륙한 사진의 공개를 꺼려 혹시 귀환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선저우 3호는 2002년 3월 25일에 발사됐으며, 선저우 4호는 같은해 12월 27일 발사됐다. 선저우 4호는 유인우주비행의 최종 연습으로, 실제 우주인이 발사 직전까지 우주선에 탑승해 카운트다운을 수행했다.
러시아 우주선의 업그레이드판
이번에 성공한 선저우 우주선은 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크기가 조금 크고 무겁다. 선저우 5호는 무게가 7천8백kg, 길이는 8.65m, 직경은 2.8m, 폭은 19.4m다. 반면 소유즈는 무게 7천2백50kg, 길이 7.48m, 직경 2.72m, 폭 10.06m다. 세부적으로 보면 많은 차이점이 있다. 이로 보아 중국이 우주선의 많은 부분을 자체개발해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외견상 소유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궤도 모듈’에 자체 발전을 위한 커다란 태양전지판이 달려있다는 점이다. 궤도 모듈은 주로 과학 탑재체가 실리는 우주실험실로 생각하면 된다. 선저우 4호에서는 여기에 전자전 장비가 탑재됐다. 선저우 5호에는 1.6m까지 구별할 수 있는 해상도의 정찰 카메라가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궤도 모듈은 사람이 탑승한 경우 20일, 무인자동비행인 경우 1년까지 비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선저우 5호의 귀환캡슐이 지구로 귀환한 후에도 궤도 모듈은 지구궤도에 6개월 정도 더 비행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궤도 모듈 기술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자체적인 우주정거장을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선저우 5호의 우주인이 지구로 돌아오는데 사용한 ‘귀환캡슐’은 러시아의 소유즈 귀환캡슐과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크기는 13%가 더 크며, 최대 3인이 탑승할 수 있다. 소유즈와 동일한 낙하산과 착륙 역추진 장비를 갖추고 있다.
서비스 모듈에는 비행전자장비, 우주선의 궤도변경과 지구 재돌입을 위한 추진장치가 탑재된다. 이 역시 소유즈보다 더 크다. 자체 추진을 위해 달려있는 태양전지판은 전체가 24m2의 크기로 0.87KW의 발전을 하는데, 소유즈와 달리 최대한 효율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회전이 가능하다. 중심축선상에는 로켓엔진이 있어 회전(Roll)과 도킹을 위한 기동이 가능하다.
선저우를 발사한 발사체는 창정(CZ)-2F로서 기존의 CZ-2E를 개량한 것이다. CZ-2F는 3단형이며, 연료는 중국 발사체가 주로 사용하는 상온보관이 가능한 액체의 혼합체(N2O4와 UDMH)다. 당초 독성이 없는 액체 산소와 등유(Kerosene)를 사용하려고 했었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취소됐다.
선저우 5호가 이번에 궤도에 올라가서 어떤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첫번째 유인 비행인 점을 감안 복잡한 임무는 수행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일련의 우주무중력실험과 1.6m 해상도의 카메라를 이용한 지상관측 임무 정도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유인우주기술은 무인 인공위성에 비해 기술의 난이도가 한차원 높다. 뿐만 아니라 전자, 컴퓨터공학, 정보과학, 생명과학 등 새로운 첨단 분야와 정밀기계, 열유체, 화학공학 등의 전통적인 산업이 많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전반적인 파급효과가 타 우주산업에 비해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중국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