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지금은 소프트로봇 시대 - 로봇이 림보도 하네!

지금은 소프트로봇 시대 - 로봇이 림보도 하네!


에메랄드빛 물고기로봇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든다. 물속을 부드럽게 헤엄치는 모습이 지금까지 나왔던 그 어떤 물고기 로봇보다 실제 물고기와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장애물을 만나자 눈 깜짝할 새에 방향을 바꿔 재빠르게 도망친다. 꼬리를 100°까지 꺾을 수 있는 이 물고기로봇은 최근 미국 MIT 연구팀이 개발해 화제가 된 ‘소프트 물고기 로봇’이다. 딱딱한 금속을 쓰지 않고 실리콘처럼 부드러운 재료로 만든 소프트로봇은 애벌레나 뱀, 지렁이, 물고기 등을 본 딴 생체모방로봇의 일종이다. 과연 소프트로봇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 뭐니뭐니해도 '안전'


소프트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물고기로봇을 개발한 MIT 컴퓨터화학과 다니엘라 루스 교수는 소프트로봇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한다.


“이제 로봇은 본격적으로 일상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기 시작했지요. 최근 로봇공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안전’인 이유에요. 소프트로봇은 별로 위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공장의 산업용 로봇은 인간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지만, 이를 일상생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육중한 산업용 로봇에 사람이 맞기라도 하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뿐더러, 유리컵이나 계란 같은 물건은 강한 로봇이 쥐기엔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로봇이 더 가깝게 지내려면 기존의 강함을 줄이고 부드러움을 키워야 하는데, 소프트로봇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다. 소프트로보틱스저널의 편집장인 미국 터프츠대 생물학과 베리 트림머 교수는 “공장에서는 아주 정확해야 하지만, 일상에서는 덜 정확한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며 “유연한 로봇은 우리 주변의 많은 물건을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로봇의 첫 등장



2. 관절 없어 자유도 무한대


세계 첫 소프트로봇인 트림머 교수의 ‘소프트봇(Softbot)’은 박각시나방 애벌레를 모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로봇의 관절을 없앴다. 투명한 실리콘판 한 장을 신문지를 말듯 말아 기다란 애벌레 몸통을 만들었다. 실리콘은 각 성분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뱀가죽처럼 뻣뻣하거나 ‘만득이(녹말 가루를 넣은 풍선 장난감)’처럼 몰캉몰캉하면서 끈적하게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재료다.


소프트봇은 단번에 로봇공학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유연하고 우아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몸의 각 부분을 딱딱한 관절로 연결한 기존 로봇은 운동 범위가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그토록 유연한 움직임을 만들 수 없었다.



어렸을 때 갖고 놀던 인형이나 로봇을 생각하면 쉽다. 푹신한 솜으로 만든 인형은 팔을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든 돌릴 수 있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비 인형이나 로봇 장난감은 팔을 정해진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기계의 이런 특성을 ‘자유도(FOM)’라고 부른다. 소프트로봇은 자유도가 무한대인 셈이다. 다시 말해 기존 로봇이 딱딱한 바비 인형이라면, 소프트봇은 말랑말랑한 솜인형이었던 것이다.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3. 복잡한 알고리즘 없이도 움직이는 단순함


트림머 교수는 애벌레의 복잡한 움직임을 어떻게 하면 단순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기존 로봇은 관절마다 모터를 달고 복잡한 알고리듬으로 각각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는 박각시나방 애벌레의 뇌를 제거해도 여전히 앞으로 기어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아한 움직임의 비결이 뇌가 아닌 근육에 있었던 것이다. 트림머 교수는 몸통 안에 근육 역할을 할 머리카락 굵기의 형상기억합금 와이어를 여럿 넣었다. 그리고 와이어에 신경 역할을 할 전기 회로를 연결했다.


그렇게 만든 로봇은 정말 애벌레처럼 움직였다. 회로에 전류를 흘리자 와이어가 가열되면서 수축됐고 그 방향으로 애벌레 로봇이 구부러졌다. 전류를 멈추자 와이어 온도가 내려가면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갔다. 애벌레 뇌에 해당하는 복잡한 알고리듬 없이도 애벌레 움직임을 모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모터를 장착하고 각 모터를 복잡한 알고리듬으로 제어하던 기존 로봇은 상상할 수 없었던 단순함이었다. 소프트로봇의 이런 장점을 트림머 교수는 “아주 유치한 설계”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미국 ㅓ프츠대 베리 트림머 교수가 개발한 애벌레 형태의 소프트로봇은 형상기억합금 와이어가 내장돼 있어 전류를 흘린쪽의 와이어가 수축하면서 구부러진다. 꿈틀꿈틀하면서 전진하기도, 애벌레처럼 고개를 들기도 한다.


4. 단순해서 재빠르다

소프트로봇은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소프트로봇이 아닌 정찰용 뱀로봇 등은 팔다리가 없고 제어하기 복잡해 속도가 느렸다.


앞서 소개한 MIT 연구팀의 물고기로봇은 0.1초 만에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마치 실제 물고기가 몸을 강하게 경련시켜서 적을 피하는 것처럼 재빠르다. 비결은 바로 복부에 저장한 이산화탄소 기체. 꼬리 한쪽 면에 이산화탄소를 흘려 보내면 통로가 팽창한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를 공급하지 않은 반대 방향으로 꼬리가 구부러진다. 복잡한 알고리즘은 전혀 필요 없다.


미국 하버드대 조지 화이트사이드 교수팀도 매우 단순한 연소 시스템을 이용해 눈 깜짝할 새에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점핑 소프트로봇’을 지난해 개발했다. 이 로봇은 마치 적을 마주친 애벌레가 공중으로 몸을 튕겨 피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회피 행동은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행동 중 하나다.


화이트사이드 교수는 실리콘으로 납작한 삼발이를 만들었다. 각 다리 안에는 기체가 흐를 통로를 새겨 넣었다. 처음에는 압축 공기를 불어넣어 통로를 팽창시켜서 튀어 오르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험 결과, 너무 느렸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데까지 1초 이상 걸렸던 것이다. 다른 방법을 고심하던 연구팀은 연료를 넣어 발화시키기로 했다. 통로 옆에 고전압 와이어를 추가로 설치했다. 메탄 연료와 산소를 섞어 넣으면서 와이어에 전류를 흘려 약한 폭발을 일으켰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점프 속도가 초속 4m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점핑 로봇 연소 시스템에서 중요한 건 말랑말랑한 통로와 밸브가 전부”라며 “연료가 발화해 뜨거워지면 통로 내부가 팽창해 자동으로 밸브가 열리고 배기가스가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화이트사이드 교수팀의 점핑 로봇 영상을 볼 수 있다.


5. 재난 현장 구조 작업에도 투입


소프트로봇은 어디에 이용할 수 있을까. 화이트사이드 교수는 가장 먼저 의학계를 꼽았다.


“인간과 로봇이 부드럽게 접촉해야 하는 곳이거든요. 소프트로봇이라면 외과 수술실에서 장기를 집어 들어 의사에게 건네주는 것도 가능하죠. 소프트로봇이 유기체에 가까워질수록 우리 일상에 깊이 파고들 겁니다.”


실제로 그가 개발한 불가사리 로봇은 계란과 살아있는 쥐를 잡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런 유연함으로 복잡한 지형을 쉽게 통과할 수도 있다. 위험한 재난 지역의 수색 및 구조 작업에도 투입될 전망이다.


소프트로봇 무기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가정용 청소기 로봇으로 유명한 미국의 아이로봇(iRobot)사는 ‘에어암(AIRarm)’이라 불리는 ‘첨단 팽창형 로봇팔’을 개발해 폭탄제거 로봇인 ‘팩봇(PackBot)’에 설치했다. 고강도 섬유로 만든 에어암은 임무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강도로 바뀔 수 있다. 가령 사람에게 접근할 때는 공기를 빼서 푹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도 몸 안에 색소를 공급해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거나, 뜨겁거나 차가운 물을 흘려 보내 적외선 탐지기를 피하는 ‘소프트 위장로봇’도 개발돼 있다.


물론 소프트로봇을 일상에서 보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개발된 소프트로봇은 모두 ‘유선’이다. 로봇처럼 유연한 배터리가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기계공학과 카멜 마지디 교수는 “소프트로봇이 발전하려면 전원 공급을 도와주는 새로운 재료와 에너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과연 소프트로봇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까.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디뎠지만, 화이트사이드 교수는 자신만만하다.


“소프트로봇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이용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가 내재돼 있습니다. 바로 수많은 과학자들이 소프트로봇을 이용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소프트로봇공학은 분명 우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겁니다.”

 

화이트사이드 교수팀의 불가사리 로봇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날계란을 잡는 데 성공했다.

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진로 추천

  • 기계공학
  • 컴퓨터공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