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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3/4를 덮고 있는 바다에는 미확인 생물들이 지천으로 살고 있다. 이 생물들은 바다의 극심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 이들의 특성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인류는 식량문제, 환경보전, 유용소재 개발과 같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바로 해양생명공학이 뜨는 까닭이다.

다음 중에서 생물종이 가장 다양하게 분포하는 곳은 어디일까.
① 극지방 ② 열대우림 ③ 바다 ④ 육지

대부분 사람들은 열대우림이라고 답할 것이다. 파괴돼 가는 열대우림에 대한 보호를 얘기할 때 흔히들 지구 생물종의 절반이 좁은 이곳에 분포하고 있음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이선복 교수에 따르면 이것은 단지 육지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그는“해양생물종이 육지의 최소 1천배 이상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생물종이 분포하고 있는 곳은 바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지구의 3/4을 덮고 있는 바다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인간이 알아왔던 바다는 고작 열길(약 40m) 깊이 정도의 연근해였을 뿐이다. 인류는 그 아래 1만km도 넘는 깊고 드넓은 바다가 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차가우며 생명체라곤 찾아보기 힘든 사막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래서 핵폐기물쯤은 심해에 버려져도 상관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동안 인류는 바다에 대해 무지 했다. 바다의 깊이는 무려 1만km 도 넘지만, 인간은 맨몸으로 40여 m까지 잠수할 수 있다.


우주경쟁 능가하는 21세기 해양경쟁

하지만 요즘에는 상황이 변하고 있다. 이교수는“지금 세계는 과거 우주경쟁시대를 능가하는 해양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탐사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 최근에는 점점 예산을 줄이고 있다. 대신 관심을 해양분야로 돌리고 있다고 한다. 육지보다 넓은 바다에 대해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다는 자각이 생겨난 것이다. 우주탐사 기술이 동원되면서 해양탐사가 좀더 용이해진 점도 한몫을 했다.

선진국들이 해양에 집중 투자하는 까닭은 미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겠지만 그곳에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 이용하기 위해서다. 바다생물은 육지생물이 갖고 있지 않는 극한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심해의 1천 기압이 넘는 고압과 영하의 저온, 그리고 열수구 주변 1백30℃의 고온을 견뎌낸다.

한 예로 덩치가 큰 향유고래와 청백돌고래는 수분만 에 수면에서 무려 1.5km 이하 깊이까지 잠수할 수 있다. 사람이 맨몸으로 잠수할 수 있는 깊이는 이에 비해 고작 40m 정도에 불과하다. 그 이상 잠수하면 몸이 쭈그러지고, 세포가 압축되는 신체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허파처럼 공기로 채워진 신체부위는 쉽게 손상되고 만다.

하지만 향유고래와 청백돌고래는 압력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공기를 담고 있는 신체부위를 가장 중심에 둬 세포의 기압충격을 방지하도록 돼 있다. 또한 깊은 물속에서 폐가 산소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혈액과 근육 속에 상당한 산소를 저장해 놓는다. 이처럼 바다생물은 육상생물이 갖지 않은 특이한 생체조직과 화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바다생물의 놀라운 환경 적응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식량생산, 환경보전, 유용소재 개발과 같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최근 해양생명공학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 4대 생명공학 중 하나

미국은 해양생명공학을 21세기를 위한 4대 생명공학 과제 중 하나로 지정해 해양대기청, 국가과학재단 등에서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만만치 않다. 해양생명공학 관련 총 연구개발비가 1998년 약 10억 달러 규모였으며, 매년 20% 가까이 성장해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대통령의 연두보고에서 청색혁명을 통해 현재 세계 10위인 국내 해양산업을 2010년에는 세계 5위로 성장시킬 것을 표명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해양생명공학에서는 어떤 일이 진척되고 있을까. 우선 해양생물종을 확보하는 일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약 1백4천만종의 생물을 분류해냈다.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전체 생물종은 대략 1천-1억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바다생물이 8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누가 먼저 바다 속에 숨어있는 유용한 생물종을 발견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해양생물을 보존하기 위해 이에 대한 유전자은행이 외국에서 구축되고 있다.

이미 육상생물로부터 웬만한 물질은 다 발견한 상태다. 해양생물은 이 점에서 아직 손대지 않은 금맥인 셈이다. 그래서 발굴된 해양생물을 활용하기 위해 이들이 갖고 있는 기능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연구가 해양생명공학의 핵심을 이룬다.

이 과정에는 각종 유전자 분석법이 동원된다. 해양생물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밝힌 후 알려진 기존 유전자와 비교해서 해양생물이 갖는 특이 유전자를 발굴해낸다. 현재 국내외에서는 어패류, 김 등을 대상으로 칼슘전달제, 성장, 환경변화에 반응하는 유전자, 스트레스 관련 유전자와 같은 기능성 유전자 분석연구가 진행중이다. 해양 미생물의 경우 2001년 9월 현재 심해에 사는 극한미생물 11종의 염기서열 분석이 완료됐고, 12종 이상이 진행 되고 있다. 이 중 90% 이상이 초고온성 미생물이라고 한다.

해양생물의 기능들이 밝혀지면 초고온성 효소, 노화방지제, 콜레스테롤 저감제와 같은 제품의 개발로 이어진다. 현재 해양생물을 이용해 상품화된 대표적인 제품으로 극한기능소재와 특수기능소재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80℃ 이상에서 활동하는 심해의 극한미생물의 효소는 고온에서도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펄프표백에 이용되고 있다. 해양미생물 효소는 표백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기존의 화학적 방법을 대체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홍합으로부터 추출한 접착 단백질이 1980년대부터 해양 생명공학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1g당 7만5천달러짜리 홍합단백질

또다른 대표적인 해양생명체의 상업화 예를 들어보자. 홍합으로부터 추출한 단백질을 접착제로 이용하는 연구가 1980년대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진행돼 왔다. 홍합접착제는 자연적이면서 인장강도가 화학접착제의 2배에 달하고 물 속에서도 잘 붙는다. 또한 인체에 대한 부작용이 없어 의료용 접착제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현재 홍합 1만마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양은 고작 1g으로 그 가격이 7만5천달러에 달한다. 엄청난 고부가가치 상품인 셈이다. 현재 상업화를 위한 대량생산기술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하지만 해양생명공학 분야에서 창출하는 세계 시장 규모는 아직 미미하다. 2000년에 발표한 해양수산부 해양생명공학산업 발전전략 기획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해양생명공학이 차지하는 세계 시장 규모는 6억 달러로 생명공학산업 전체에서 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에는 1백63억달러로 성장해 생명공학산업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만큼 잠재력이 무한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미 이 분야에서 저만큼 앞서나간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아직 국내에는 심해탐사용 장비조차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다른 생명공학 분야에 비해 연구비도 모자라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선복 교수는“이미 선진국에서 진행한 해양탐사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 해저지형이 밝혀져 있어서 심해저나 열수생물 시료 확보를 위한 유망해역 탐사비용 부담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선진국에서 밝혀낸 해양생물에 대한 정보가 이미 공개돼 있다. 해양이 워낙 방대해 공동연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양생명공학은 어디에서 연구되고 있을까.포항공대의 경우 해양생명공학자들이 주로 화학공학과에 소속돼 있다. 물론 강릉대와 순천향대와 같이 해양생명공학과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학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에서는 생명공학과나 화학공학과에 속해 있다.
 

석유정제와 같이 수천t을 다루는 화학공학적 접근이 생명공학의 상업화에 유리하다


상업화 위해서는 화학공학 필요

해양생명공학자인 포항공대 화학공학과 차형준 교수는“화학공학은 비료와 석유에서 시작된 학문으로 화학적 촉매를 이용해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한다”며“이같은 화학공학적 접근이 생명공학에도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 예로 페니실린의 대량생산 역사에 대해 얘기해줬다. 1940년대 처음으로 치료용 주사제로 등장할 때만해도 페니실린의 생산능력은 원재료 1L당 수μg(1μg=${10}^{-6}$g)에 불과했다. 따라서 극소수만이 페니실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페니실린의 수요가 늘어나 대량생산이 요구됐다. 화학공학자는 이미 석유와 비료 생산에서 수천t을 다뤄봤기 때문에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1945년 페니실린에 대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명 중 화학공학자가 포함돼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주인공은 어니스트 보리스 체인 박사였다. 1950년대 페니실린은 리터당 약 50g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만약 해양생물에서 유용한 물질을 찾는다면 이같은 화학공학적 방식으로 대량생산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해양생물은 육상생물과는 상당히 다른 대사작용을 한다. 기존의 육상생물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해양생물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현재의 생명공학적 방법으로는 고작 1%도 안되는 해양생물을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해양생명공학자들은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의성이 상당히 요구된다고 말한다. 차교수는 연구실 홈페이지에 다음의 말을 담아놓았다.“ 우리는 과학이 마지막 아들로 낳은 생명공학 시대의 최선상에 있다. 그 누구도 결과를 모른다. 그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그러나 해양산업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도 예전 그대로다. 해양생명공학이 식탁에 오르는 해산물을 공급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선복교수는 늘“이제는 바다표면의 양식과 고기잡이에서 깊은 바다로 확대해야 하며 해양생명공학이 바로 프론티어 분야”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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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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