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마술사.’ 사람의 내면에 담긴 감정을 빛과 그림자로 통찰해낸 렘브란트(1606-1669)에게 바쳐진 헌사입니다. 최근 렘브란트를 비롯해, 17세기 당시 세계 미술계를 이끈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들이 국내에 선을 보였습니다. 개막 첫 주말 1만6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덕수궁미술관 개장 사상 첫3일 최고 관람객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거장의 그림을 맨눈으로 직접 볼 드문 기회이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사실 이번에는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그리 많이 오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렘브란트가 1632년 암스테르담 외과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아 그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빠져 아쉬움이 큽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화가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17세기 의학혁명의 분위기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레이덴 출신의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 대한 호평으로 네덜란드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림을 보면 오른쪽에서 해부를 집도하고 있는 툴프 박사의 옷차림이 단연 눈에 띕니다.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눈에 띄는 모자를 쓰고 있는데다 얼굴 뒤에는 마치 후광처럼 조갯살 모양의 무늬가 보입니다. 해부의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죠. 툴프 박사는 암스테르담 시장도 역임했다고 합니다.
사실 인체해부는 오랫동안 교회로부터 금지돼 왔습니다. 16세기에 해부학을 혁신한 베살리우스는 한밤중에 묘지에서 시체를 훔쳐야만 했습니다. 교황의 주치의였지만 그로서도 내놓고 해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던 것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 의학에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켜 정신은 종교의 터전인 영혼의 처소로서 그대로 두고 육체는 실증적 과학의 탐구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을 해부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해부를 통해 신의 의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주장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개 인체해부에는 의학도뿐 아니라 도시의 유력 시민들도 많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가 이처럼 당시 과학계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자신 역시 한때 과학도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는 레이덴대학에 들어가 직접 시체해부를 보여주는 해부학강의를 열심히 들었다고 합니다. 비록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달 만에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때의 경험이 화가로서 성공하는데 도움이 된 것이죠.
한편 렘브란트의 그림은 또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7세기 의학혁명의 주역 가운데 렘브란트와 같이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레이덴대학에서 의학을 배운 뒤 평생을 현미경연구에 바친 스밤메르담(1637-1680)입니다. 적혈구세포를 처음 관찰했으며, 곤충을 변태 형태와 정도에 따라 4개군으로 분류한 곤충학의 원조입니다.
렘브란트와 스밤메르담은 초상화로 연결됩니다. 스밤메르담의 초상화는 1675년 하루살이에 대한 책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는 이후 다른 책들에 실린 초상화의 전형이 됩니다. 문제는 이 그림을 죽은 렘브란트가 그렸다고 알려진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스밤메르담의 초상화가 처음 등장한 해보다 6년 앞서 1669년 죽었습니다. 그런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자세히 보면 툴프 박사 왼쪽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한사람의 모습이 스밤메르담의 초상화와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렘브란트가 자신의 그림에 스밤메르담을 그려 넣은 것일까요.
툴프 박사는 레이덴대학 의대 학장이었지만, 스밤메르담이 입학하기 전 학생지도를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결정적인 사실은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린 1632년은 스밤베르담이 태어나기 5년 전이라는 것입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성장한 모습을 그릴 수는 없는 것이죠. 렘브란트가 그린 사람은 당시 암스테르담 의학계의 지도적 인물이던 하르트만조운인 것으로 1876년 판명됐습니다. 화가들이 이 얼굴을 약간 수정해 스밤메르담으로 둔갑시킨 것이죠.
일설에 의하면 스밤메르담이 렘브란트의 외아들인 티투스를 치료해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가장 사랑하던 아들을 치료해준 사람으로 만난 스밤메르담에게 렘브란트가 죽어서 초상화로 답을 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