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3일 오후 2시 35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모형비행기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부착, 원격조종으로 지상을 촬영하는 데 성공한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입니다."
모형비행기 연구가 김인봉씨(36·데이콤충청지사영업부대리)는 아직도 그날의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카메라를 부착한 모형비행기가 잔디밭을 박차고 상공으로 치솟아 오를때 조정기를 잡은 손이 긴장감으로 온통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으니까.
엑스포 대회장 촬영에 성공
그가 이처럼 모형비행기를 이용해 지상을 공중 촬영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엑스포 때문이다.
"우리 생전에 국내에서 엑스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내 취미활동을 살릴 겸 모형비행기를 이용해 엑스포 대회장을 공중에서 촬영하기로 결심했죠. 또 이러한 일은 나름대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촬영성공의 여부보다 모형비행기의 이륙과 비행성공의 여부에 매달렸다. 카메라의 무게가 기체의 중량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 그는 카메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카메라의 배터리를 니켈카드뮴 전지보다 훨씬 가벼운 알칼리 전지를 선택해 사용했다. 필름도 국내의 각 필름 제작사별로 4통을 준비했다.
"그 날 10여차례 비행하면서 항공사진을 다 찍고 나니 해가 이미 서산에 넘어 갔더군요. 빨리 인화해 보고 싶어 17분 현상소를 찾아 숨이 탁탁 막히도록 뛰었습니다"
현상필름을 형광판에 비춰보니 여러 필름으로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셔터의 원격제어 불능상태와 상이 겹쳐진 촬영상태, 노출이 부족한 촬영상태 등으로 기대한 만큼의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커트를 인화해 분석해 봤다. 역시 노출이 과다하거나 부족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위치선정이 잘못된 것을 안 것이다.
"이틀 후인 4월 5일 2차 비행을 시도했습니다. 무전기를 동원했죠. 즉 촬영장소에 사람을 내보내 모형비행기가 그쪽 상공을 비행할 때 무전기로 사진을 찍으라고 조정사에게 알려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는 1차 비행 때보다는 2차 때 여유 있는 비행과 알맞은 고도로 촬영위치를 선정해 여러 각도의 방향으로 비행하며 엑스포 대회장을 촬영했다. 확실히 전보다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캠코더 장착도 도전한다
"이젠 모형비행기에 캠코더를 장착해볼 예정입니다. 연속 화면을 통해 모형비행기의 비행상태를 좀더 연구한 다음에는 ENG카메라를 장착해볼 수도 있겠죠. 지상에서 수신화면을 통해 직접 촬영 상황을 지켜보도록 한다면 아주 재미 있을 것입니다. 특히 조종사가 탄 비행기가 접근할 수 없는 재난현장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여느 모형비행기 조정사처럼 비행기를 날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꾸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는 언젠가는 큰 일을 낼 것 같이 보인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을 즐기는 집념이 남보다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가 모형비행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동네에서 미국인 선교사가 모형비행기를 띄우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습니다. 그 모형비행기는 원격조종용이 아니고 동체에 줄을 매달고 띄워 조정하는 것이었는데도 당시는 굉장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계기가 돼 자연히 과학에 취미를 느끼게 됐다. 지방에서는 구입해 볼 수 없는 과학잡지를 주문하느라 소액환을 부치러 우체국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대학에서는 결국 전자통신을 전공했다.
"원격조정기는 전파를 이용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까 모형비행기를 따라 전공을 택한 셈입니다."
그는 도중에 오랫동안 모형비행기를 잊고 지내야 했다. 학업에 쫓기고 사회에 나와서는 회사일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모형비행기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작년에 고등학교때 함께 모형비행기를 날렸던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그 친구(강영수·대전 델타과학사대표)는 공교롭게도 모형비행기를 취급하는 과학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꺼졌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난 셈이죠. 학창시절에 돈이 없어서 넘볼 수 없는 모형비행기도 날려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신이 날 수밖에요."
그는 퇴근하자마자 방에 처박혀 모형비행기를 연구하고 조립하는데 밤이 지새는 줄도 몰랐다. 당연히 아내로부터는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아이들한테도 미안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구한테 찾아갔죠 그 친구는 이미 모형비행기 전문가로 만사가 오케이었으니까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있습니다."
모형비행기연구소 세울 터
이번에 카메라장착도 아이디어만 냈을 뿐 실제로 기술적인 작업은 친구가 도맡아줘 가능했다. 처음에 부착하려던 카메라는 부착도 하기 전에 망가뜨렸다. 원격촬영장치를 설치하다가 카메라를 작동조차 못하게 부숴뜨린 것이다.
그가 이처럼 모형비행기에 매달리는 것은 물론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하늘을 날고 싶은 것을 대신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형비행기는 조종사가 탄 비행기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곡예비행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가 모형비행기를 날리면서 간직한 에피소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최근의 예로는 더 좋은 곳을 촬영하기 위해 현재의 비행위치보다 더 멀리 날려 보내다 비행기를 잃어버려 애를 태우기도 했다. 지나가는 버스에 부딪친 적도 있으며 숲속에 떨어진 모형비행기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인 적도 있다.
"한번은 아파트공사 현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달려왔으나 바로 찾지 못해 혼났어요. 인부들이 비싼 것인 줄 알고 감추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릅니다. 비행기를 못찾으면 비싼 조정기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죠."
그는 토요일 오후면 만사를 젖혀놓고 대전 대덕연구단지 대전지방환경청 앞 갑천고수부지로 뛰쳐나간다. 엑스포 대회장이 가깝고 잔디가 잘 자란 활주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린이는 물론 나이 지긋한 국민학교 선생님도 떨리는 손으로 조정간을 잡고 모형비행기를 즐긴다.
어느 새 그들과 한 식구처럼 지내는 김인봉씨는 앞으로 모형비행기연구소를 설립해 이처럼 모형비행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는 이미 대전에서 몇몇이 모여 델타동우회란 이름으로 PC통신을 통해 천리안항공스포츠통신동호회와 교류하고 있다. 기자가 그를 만난 날 천리안에는 이미 취재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격려문이 답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