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 한양대병원 소아외과. 가슴부터 배꼽까지가 서로 붙어있는 일란성쌍둥이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이들은 태어난지 불과 59일밖에 안된 샴쌍둥이로 둘다 남자아이였다. 쌍둥이인데도 불구하고 둘의 몸무게는 각각 4.2kg, 3.55kg으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태어날 때는 두 아이의 몸무게가 비슷했다. 자라면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많이 먹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적게 먹은 아이의 몸무게가 점점 증가한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의료진은 둘레 30cm인 결합부위의 중앙선을 따라 피부를 절개했다. 이들은 간과 횡격막을 공유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먼저 수술을 시작한지 25분만에 간을 둘로 분리했다. 심장은 둘이었으나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막의 일부분이 이어져 있었다. 심막이 이어져 있는 부분을 떼어내 한 아이에게 줬다.
그다음 결합부위 뒤쪽을 역시 중앙선을 따라 절개해 두 아이를 완전히 분리했다. 수술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만에 두 아이는 각각 다른 수술대에 눕혀질 수 있었다. 심막의 일부분이 없어져 구멍이 뚫린 부분에는 특수한 합성물질을 붙인 다음, 두 아이의 벌어져 있는 결합부위를 봉합했다. 국내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공유했던 심막을 가져간 아이의 총 수술시간은 2시간 55분이었고, 심막의 일부분을 합성물질로 대체한 아이의 총 수술시간은 3시간 15분이었다. 사람이나 소에서 콜라겐 성분을 추출해 만든 이 합성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몸에 흡수돼 정상 조직과 비슷해진다. 두 아이는 모두 수술 후 27일째에 퇴원했다. 퇴원 당시의 체중은 각각 4.6kg, 4.3kg이었다.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필자는 1990년에 이어 1994년 8월에 두번째로 결합쌍생아 분리 수술을 시행했다. 출생 후 20시간만에 수술실로 들어온 아이들은 좌골결합쌍생아였다. 두 아이 모두 항문이 없었고 방광이 붙어있었다. 또 소장 끝부분과 대장이 하나였다. 이 수술 역시 성공적으로 끝났고 두 아이 모두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19명의 자녀를 둔 창과 앵
지난 7월 22일 엉덩이가 붙은채로 태어난 한국인 샴쌍둥이의 분리 수술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샴쌍둥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싱가포르 래플스병원에서 약 4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분리된 민사랑, 지혜 자매는 지금까지 경과가 양호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샴쌍둥이라고 불리는 쌍둥이는 몸의 일부분이 결합돼 있는 일란성이다. 의학적으로는 ‘결합쌍생아’라고 부른다. 내부 장기까지도 서로 붙어있는 기형인 경우가 많다. 결합쌍생아는 평균 5만명 출생 중 1건 꼴로 발생한다고 보고돼 있다. 살아서 태어나는 경우는 20만명 중 1건 꼴이다. 특히 아프리카 흑인에서는 1만4천명 출생 중 1건 꼴로 결합쌍생아의 출생 빈도가 높다고 한다.
문헌상 최초로 보고된 결합쌍생아는 110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엉덩이부터 어깨까지 붙어있고 팔과 다리 한쪽씩을 공유한 이 자매는 34세까지 붙은채로 살았다.
1911년에 태국에서도 결합쌍생아가 태어났다. 바로 중국계 아버지와 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창과 앵 방크 형제. 배가 서로 붙은채로 태어나 서커스단에서 함께 활동해 유명해졌다. 태국의 옛 이름이 샴이기 때문에 이들을 처음 샴쌍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창과 앵은 각자 결혼을 했고 앵은 9명, 창은 10명의 자녀를 뒀다. 창이 63세 되던 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앵도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시신을 부검한 결과 이들은 간이 결합돼 있었다.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수정란
결합쌍생아가 태어나는 원인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수정이 이뤄진 후 13-15일경 수정란이 똑같이 둘로 나뉘어 각각 하나의 개체로 형성되면 일란성쌍생아가 된다. 그러나 수정란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일부분이 붙은채로 발육하면 신체의 일부분이 붙은 결합쌍생아가 태어나는 것이다.
결합쌍생아에서 붙는 신체 부위는 다양하다. 가슴이 붙어있는 흉결합쌍생아가 전체 결합쌍생아의 약 4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경우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가슴뼈, 횡격막, 윗배와 배꼽까지 붙어있다. 거의 대부분 간을 공유하고 있다. 흉결합쌍생아 중 75%는 심장이 붙어있고, 90%는 심막이 붙어있다. 또한 50%는 소장, 25%는 쓸개즙이 분비되는 담도계까지 공유한다.
전체 결합쌍생아의 약 33%는 배가 붙어있는 제대결합쌍생아. 윗배부터 배꼽까지 붙어있고, 이 경우에도 간을 공유한다. 가끔 탯줄 속으로 장이 돌출돼 나오기도 한다. 둔결합쌍생아는 19%를 차지하며 엉덩이가 붙어 있다. 척추의 아랫부분을 공유하고 척수가 있는 윗부분은 대개 두개로 분리돼 있다. 항문이나 생식기, 장의 끝부분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좌골결합쌍생아는 배꼽부터 골반까지 붙어있다. 대장이 하나이며 비뇨생식기에 기형이 나타난다. 두개골이 붙어있는 두개결합쌍생아는 발생빈도가 2% 정도로 가장 적다. 이 중 약 30%는 뇌가 연결돼 있다.
이런 결합쌍생아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출산 전에 알 수는 없을까. 임신중에 초음파검사를 하면 태아가 결합쌍생아인지 아닌지를 진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어느 부분이 결합하고 있는지, 기형을 동반하고 있는지까지도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다. 진단 결과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기형이 있을 때는 낙태를 고려하기도 한다. 또는 사망한채로 태어날 수도 있다.
결합쌍생아의 약 60%는 이처럼 사망한채로 태어난다. 또 약 35%는 출생 후 24시간 이내에 역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중에 형성된 결합쌍생아의 약 5%만이 태어난 후에도 살아남아 치료할 기회를 갖는다.
출산 전 임신 상태에서는 아직 치료가 시도된 바 없다. 태아가 자궁에 있는 채로 수술을 시도하면 태아가 아직 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진통이 유발돼 조산하거나 출생 전에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95년 최초 분리 시도
일단 결합쌍생아가 태어나면 당연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신체 내부에 다른 기형을 갖고 있는지 또는 수술로 분리할 수 있는지 여부를 필히 진단해야 한다. 이때는 초음파 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과 같은 여러가지 진단 방법을 이용한다.
신체의 어느 부위가 결합돼 있는가에 따라 공유하고 있는 장기가 다르다. 따라서 붙어있는 부위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의사가 필요하다. 또 그 장기가 생존에 얼마나 필수적인가에 따라 결합쌍생아 두 아이가 모두 살 수도 있고 한 아이가 희생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수술도 하기 전 검사 도중에 사망하기도 한다.
샴쌍둥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똑바로 누울 수 없고 장기의 위치도 정상인과 다르기 때문에 수술이 어렵다. 게다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기를 공유하고 있으면 분리 수술을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심장을 공유하고 있는 흉결합쌍생아의 분리 수술을 시도한 후 두 아이 모두 생존한 경우는 없다. 또한 뇌와 뇌정맥동이 연결돼 있는 두개결합쌍생아도 분리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뇌정맥동은 두개골 바로 아래쪽에 붙어있는 큰 정맥 혈관인데, 이를 분리할 때 출혈이 시작되면 멈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8일 29세까지 뇌가 붙은채 살았던 결합쌍생아가 싱가포르에서 52시간 동안 분리 수술을 받았으나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비극의 주인공은 이란의 라단 비자니와 랄레흐 비자니 자매. 뇌 속에 공유하고 있는 수많은 혈관을 하나씩 분리하는 매우 어려운 수술 끝에 두 자매는 분리됐다. 하지만 수술 후 출혈이 매우 심해 결국 생존하지 못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더라도 두 아이 모두 또는 한 아이만 사망하기도 한다. 공유하고 있던 장기를 분리했다고 하더라도 분리된 장기가 정상적인 기능을 해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무사히 분리 수술에 성공해 정상인처럼 생활하는 샴쌍둥이는 이런 슬픈 운명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이다.
최초의 분리 수술은 1495년으로 보고돼 있다. 독일의 샴쌍둥이가 머리가 붙은 채로 10세까지 살다가 한 아이가 사망했다. 그래서 분리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7쌍의 결합쌍생아가 보고됐다. 필자가 봤던 3쌍 중 2쌍은 분리 수술에 성공해 현재 4명 모두 생존해 있다. 한쌍은 심장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수술 전 검사 과정에서 사망했다.
두명의 사망 vs 한명의 희생
영국에서는 지난 2000년 8월 태어난 샴쌍둥이 자매의 분리 수술에 대해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아랫배가 붙은채로 태어난 조디와 메리는 분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수개월 내에 둘다 죽게 될 운명이었다. 조디의 몸에 있는 심장과 폐로 메리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고등법원은 한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수술을 강행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주장을 받아들여 분리 수술에 동의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조디와 메리의 부모는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은 신의 뜻에 위배된다면서 이에 불복했다. 논란 끝에 결국 분리 수술이 시행됐고 의료진의 예상대로 조디는 살아남았지만 메리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분리 수술을 시도할 때는 생존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공유한 장기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대로 두면 두명 모두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있다. 이때는 분리 수술을 하더라도 한 아이가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조디와 메리의 예처럼 말이다.
이런 경우 반드시 분리 수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윤리적, 종교적, 법적 문제가 야기된다. 또 결합쌍생아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분리 수술에 대한 두 아이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즉 한 아이는 분리되고 싶어하지만 다른 아이는 수술을 원하지 않는다면 부모나 의료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최근에는 의학의 발달로 분리 수술 후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수술할 수 있는 시기도 빨라졌다. 적절한 수술 시기는 결합한 신체 부위의 구조나 두 아이의 성장 속도에 따라 결정한다. 그러나 수술 시기를 지나치게 늦추면 좋지 않다. 빨리 수술할수록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스피즈와 키엘리 박사는 2002년 ‘영국외과학저널’에 결합쌍생아가 건강하다면 생후 3개월경에 분리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한편 태어나자마자 분리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한 아이가 결합된 상태에서 사망하거나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 치료해야 하는 다른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
특이한 외모와 분리 수술 시행에 관한 윤리적 문제로 결합쌍생아는 끊임없는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관심이 지나쳐 흥미 위주의 보도가 계속되면 자신들은 물론 가족들도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게될 것이다. 분리 수술이 성공한 후에도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결합쌍생아로 태어났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지 모두 똑같은 인격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