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물리학 이론의 철옹성인 ‘표준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뜻밖의 현상이 관찰돼 물리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13개국 57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벨(Belle) 연구팀은 B중간자가 붕괴될 때 나타나는 CP 대칭성 깨어짐의 정도가 표준모형의 이론적 예측값과 명백히 다른 값을 얻었다고 8월 13일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표준모형은 6종의 경입자와 6종의 쿼크, 4종의 매개입자 등 16개 기본입자의 상호작용으로 입자물리학의 현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이다. CP 대칭성 깨어짐이란 입자와 반입자가 붕괴할 때 나타나는 미미한 차이를 설명하는 현상이다.
1조분의 1초만에 사라지는 B중간자
B중간자는 안티바텀(antibottom) 쿼크와 다운(down) 쿼크로 이루어진 매우 불안정한 입자로 1조분의 1초만에 붕괴돼 사라진다. B중간자 붕괴는 여러 경로로 일어나는데 표준모형에 따르면 그 중 일부에서 CP 대칭성 깨어짐이 나타나야 한다. 벨연구소는 지난 2001년 B중간자가 붕괴할 때 표준모형이 예측한대로 CP 대칭성 깨어짐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관찰한 곳이다.
그뒤 연구자들은 CP 대칭성 깨어짐에 대한 좀더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다가 이번에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연구자들은 B중간자가 ф(파이)중간자와 Ks중간자로 붕괴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역시 CP 대칭성 깨짐이 예상되는 과정이다. 표준모형에 따르면 이 과정은 ‘펭귄 도식’이라는 경로를 거쳐 일어난다(그림). 예상되는 sin2ф1, 즉 CP 대칭성 깨어짐의 정도를 나타나는 값은 +0.731이다. sin2ф1이 0이면 대칭성이 보존됨을 의미하고 절대값이 클수록 대칭성 깨어짐의 정도가 큰 것이다.
B중간자는 워낙 불안정한 입자이기 때문에 자연계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붕괴과정을 보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B중간자는 전자와 그 반입자인 양전자를 충돌시킬 때 생성된다. 연구자들은 일본 츠쿠바시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에 있는 KEKB가속기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지난 4년 간 1억5천만개의 B중간자를 만들었는데 그중 단지 68개만이 중간자와 Ks중간자로 붕괴하는 경로를 밟았다. 이들의 CP 대칭성 깨어짐을 분석한 결과 측정된 sin2ф1는 -0.96 내외로 표준모형의 이론값 +0.731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실험오차에 의해 이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0.1%도 안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성균관대 물리학과 천병구 교수는 “표준모형에 따르면 B중간자의 안티바텀 쿼크가 붕괴하는 과정에 W보존과 안티탑(antitop) 쿼크가 개입한다”며 “그러나 실험 결과는 이 단계에 이들 입자는 물론 다른 어떤 기본입자를 넣어서 계산해도 얻을 수 없는 값”이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안티바텀 쿼크가 붕괴하는 경로를 그린 펭귄 도식에 안티탑 쿼크나 W보존 대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입자가 개입됐을지도 모른다”며 “정말로 그렇다면 16개의 기본입자만을 제시하는 표준모형은 불완전한 가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아 좀더 정밀한 측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표준모형은 자연에 존재하는 4개의 기본 힘 중 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을 통합했지만 중력은 포함하지 못한 이론이다. 따라서 많은 물리학자들이 4개의 힘을 통합해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탐구하고 있다.
천 교수는 “이번 결과는 초대칭이론 등 표준모형을 대체하는 가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첫번째 실험결과”라고 말했다. 초대칭이론은 16개 외의 추가적인 기본입자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이론이다.
벨연구팀에는 성균관대를 비롯 국내 6개 대학의교수 및 대학원생 20여명이 참여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저명한 물리학 저널인‘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실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