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중심의 전통적 과학기술협력단계에서 소련 중국 유럽 개도국의 비중이 높아지는 다변화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학계에 국제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기초과학의 원년'을 주창했던 과기처가 올해에는 해외과학기술교류를 최대의 중점사업으로 표방하고 나섰고, 대통령의 일본방문과 노·고르비회담 이후 한일 한소간의 과학기술협력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해외과학자 유치와 기술도입에만 몰두하던 '우물안 개구리' 국내 과학계가 국제화시대를 맞아 풀어야할 과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본다.
현원복-오늘 논의할 주제는 국제화시대에 들어선 우리 과학계의 현황과 전망, 그리고 냉정하게 우리 현실을 짚어보는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관한 것입니다.
요즘 소련붐이 대단합니다. 노·고르비회담에 발맞추어 소련측이 대한(對韓) 기술이전 품목들을 제시했고 이를 분석하느라 각 분야의 과학기술자들이 총동원되기도 했었습니다. 마침 미일의 첨단기술장벽을 절감하고 있던 터라 그만큼 소련의 적극적인 자세에 거는 기대가 크기도 합니다.
지난 6월이던가요, 때맞추어 최근에 소련을 다녀오신 이상희 박사께서 먼저 그쪽 동향과 느끼신 바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요.
이상희-소련 과학아카데미 초청으로 연구소들을 둘러봤는데 한마디로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1백80도 달라진 그쪽 분위기를 실감할수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기로 소문나 있는 우주선 발사추진체를 실험까지 해가며 보여주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통신위성을 개발해야 하니까 기술자를 보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연구소 책임자가 서슴없이 'OK'하는데 놀랐습니다. 그전같으면 정부 당 KGB 등 눈치볼 데가 한두군데가 아니었을텐데 단숨에 승낙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련과학 「먹기 좋은 떡」인가?
김용운-소련의 기초과학, 특히 수학과 물리학은 미국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세계 정상급입니다.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 우주선을 세계 최초로 쏘아올렸을 때 미국이 받았던 충격은 주로 과학교육시스템과 수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소련의 수학실력을 얕보고 있었거든요.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미국은 부랴부랴 전국에서 수천명의 천재들을 뽑아 영재교육을 하는 등 법석을 떨었으나 오늘날에 와서 보면 그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미국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소련의 스파르타식 영재교육을 성공시킬 수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미국을 본떠 영재교육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소련과의 교류에 앞서 먼저 이런 대목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갈아요.
이-몇년전 프랑스에서 소련의 어느 연구소로부터 연속주조기술을 도입한 적이 있었답니다. 탱크제조와 관련된 이 기술은 서방세계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기술입니다. 소련측에서는 그 가치를 모르는지라 최대한도로 부른다는 것이 2백만 달러였습니다. '웬 떡이냐'고 생각한 프랑스측이 6백만 달러에 그 기술을 사겠다고 하자 소련측은 매우 몸이 달아 빨리 계약을 하자고 야단이더랍니다. 그후 프랑스는 그 기술을 이용해 수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소련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기술을 주는 것은 생각도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사회였어요. 그러나 일단 과학기술교류 방침이 정해지자 '뭐든지 주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어요.
한소교류는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우리나라도 선진국들로부터 '기술 없는 설움'을 톡톡히 당하고 있는터라 소련과의 교류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소련과의 교류를 생각할때 그들의 상품 시장이나 자원개발 등은 그다지 실속이 없다고 봐요. 단지 과학기술부문만이 우리 기업들도 큰 매력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 시기를 놓치고 그들이 서방의 장사기술을 배운다면 핵심기술을 얻기가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영우-소련이 서방세계에 문호를 열면서 자원개발과 과학기술 교류라는 '떡'을 내미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흔히 얘기하는 '소련은 장사를 잘 할 줄 모른다'는 주장에는 다른 측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년전부터 소련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과학아카데미 또는 특허권을 파는 라이선스 인토르그사가 서방세계에 돌렸던 기술 목록은 어느 것이나 비슷합니다. 미국 최대의 정보은행 다이얼로그에 수록된 소련의 특허기술이 4만여점인데 유독 8백여건의 똑같은 기술 목록만이 몇년째 서방세계에 유포된다는 것이 약간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 서방측에서 처음으로 소련과 접촉을 가진 일본이 일소기술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점 또한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소련측의 제안을 받아 본 결과 대수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겠지요.
언론이 보도되자 태도 돌변해
이-소련 정부차원의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가령 전에는 기술교류를 과학아카데미에서 총괄했지만 현재는 각 연구소 단위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책임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발벗고 해외교류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건이라도 더 실적을 거두려고 누가 오더라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기술이전에 관한 문제는 정부차원의 협상보다 과학기술자들이 직접 구체적인 얘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훨씬 더 실효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영-전문가들간의 교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견해에는 동감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한소간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해초 국내 어느 대기업이 소련측으로부터 기술이전이 가능한 목록을 입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목록이 1년도 더 지난 올 봄부터 공식적인 여러통로를 통해 계속 국내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소련측이 장사할 의도가 있다면 좀 더 보완을 한다거나 더 자세한 내용을 담는다거나 해야 할텐데 그들이 건네주는 목록은 한결 같거든요.
두번째로 아까 얘기한 그 대기업측 얘긴데 최근 국내 언론에 한소 기술교류의 가능성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에 대한 심포지엄까지 열리자 소련측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겁니다. 그후 저들이 제시하는 조건은 엄청나게 높아지더라는 얘기입니다.
소련측이 건네주는 기술 목록만 놓고 낙관하기에는 아직 성급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게 하는 한 단면입니다.
현-얼마전 소련측에서 1백개 첨단기술 목록을 우리나라에 전달했고 과기처에서는 그것을 분석했다는데 쓸만한 것이 많았습니까.
김영-실제 저희 센터에서 그 작업을 도맡다시피 했는데 분석작업이란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좀 황당합니다.
그들이 준 목록이란 것이 각 기술마다 제목하나에 서너줄의 간단한 설명 뿐인데 그것을 놓고 '기업화가 가능하다' '공동연구 할만하다' 또는 '아직 도입하기 빠르다'고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오는 9월경에 국내 과학기술자들이 조사단을 구성해 소련을 방문하니까 그들이 정확한 실상을 보고온 뒤에나 구체적인 협력과제와 방법이 결정되리라 봅니다.
현-국가간의 기술협력이란 상호 호혜적인 측면이 있는 것 아닙니까. 소련측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때는 뭔가 반대 급부가 있으리라고 보는데요.
가령 컴퓨터나 반도체분야의 경우 소련은 엄청나게 뒤떨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반도체는 겨우 2백56KD램을 생산하는 정도로 우리나라의 5년전 수준입니다. 최근 소련이 34억 달러나 들여 생물연구소를 완공한 적이 있었는데 연구원 4백여명에 최첨단시설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는 16비트 PC를 포함해 1백대 밖에 없더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혹시 우리나라의 컴퓨터 반도체기술을 반대급부로 원하는 것이 아닐까요.
김영-아직까지 그런 구체적인 제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기술이 없는가 우리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측에서 보면 소련과의 협력문제가 너무나 일시에 몰려 들어 정신을 못차릴 지경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한단계씩 욕심내지 않고 접근해 가는 것이 필요한 자세일 것 같습니다.
테크너벨트와 아시아 블럭
현 -얘기를 일본쪽으로 돌려보지요.
지난 5월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전후해서 대일(對日) 과학기술협력이 크게 강조됐었습니다.
몇년전부터 일본은 소위 '부메랑 효과'를 내세워서 신흥공업국, 특히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상당히 경계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경쟁상대로 취급해 기술이전을 크게 꺼리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올들어 이러한 분위기는 크게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로 우리측에 의한 제의지만 일본-한국을 잇는 테크너벨트(techno-belt)라든가, 포항과 규슈(九州)을 잇는 강철라인 등이 구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역사철학자 토인비는 그의 말년인 70년대초에 '지구상에는 앞으로 이데올로기의 의미가 사라지고 인종에 의한 블럭화만이 남게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때는 설마했는데, 오늘날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지고 유럽의 통합을 눈앞에 두면서 새삼 토인비의 예언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블럭화의 내용은 무엇이냐. 바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 내용이 채워진다고 봅니다. EC(유럽공동체)내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농산물에 관해서는 이해 관계가 상충됩니다. 그러나 콩코드의 개발이라든지 정보사회의 추진에 관해서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테크너벨트 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에 갔을때 '원자력 철강 등 분야에서 한일간의 기술벨트, 동남아의 자원벨트' 구상을 제의했더니 도쿄대 교수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최근 노무라연구소 등에서 나온 '90년대 예측'을 보면 '일본이 아시아 블럭을 형성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꽤 강조되고 있어요.
김용-일본의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생각과 기업인 관료 등 실물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의 생각에는 아직도 많은 격차가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아시아 블럭'을 구상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인들은 당장 눈앞의 손익계산에서 내키지 않으면 절대 모험을 하지 않거든요.
일본과의 기술협력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쪽이 욕심낼만한 메뉴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만 동등한 관계에서 그리고 내실 있는 효과를 거둘수 있습니다.
반대급부는 무엇인가
김영-8년대 중반쯤에 제기돼 2, 3년 전에 절정에 달했던 'NICS(신흥공업국) 추격론'은 이제 일본에서는 한풀꺾인 모습입니다. 실제 일본의 우위가 확고해졌고 날이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졌으면 벌어졌지 좁혀지지는 않는다는 현실 때문이지요. 이에 따라 일본측의 기본자세도 최근 큰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5공시절 한일 과학기술협정을 체결할 때 얘기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부 합의해 놓고 전문을 작성하는데 '산업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라는 문구 때문에 한창동안 옥신각신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측에서 '정부가 기업에 이런 식으로 강제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겉으로는 분위기가 매우 좋았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지난 85년 산업기술진흥협회가 일본의 한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일본기업들이 한국과 기술교류를 하려는 동기'에 관해 조사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응답했던 3백70개 일본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한국의 연구개발자원'에 가장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인력자원이 풍부하고 값이 싸다는 것이 한국과 기술협력을 하는 주된 동기라는 점입니다. 최근 2, 3년간 이러한 매력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일본에서는 최근 첨단기술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령 VTR이나 철강 등에 관한 기술은 더이상 침단기술이 아니라고 보고 신흥공업국들에게 과감히 이전 한다는 것입니다.
김영-일본 규슈지방에서는 최근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규슈지역이 일본 전체와는 별도로 아시아 각국과 경제교류를 가지려는 흐름이 그것입니다. 규슈의 경제규모가 일본 전체의 10분의1인데, 그것만 가지고도 아시아의 2위권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지척간이라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규슈경제단체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데 하카다박람회장 옆에 기술이전센터를 만든다든가, 해외로 이전가능한 기술품목을 작성한다든가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치 소련측의 최근 자세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규슈지방에는 일본의 하이테크기술이 몰려 있습니다. 정부차원의 원론적 교류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지역단위의 작은 움직임도 내실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 일본과의 경제 군사 과학협력을 통해 '득' 본 나라는 여태까지 없었습니다. 그만큼 일본은 계산이 빠른 나라입니다. 한일 과학기술협력을 거론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줄 것과 받을 것을 냉정하게 따져보는 일입니다.
김용-기술협력을 거론할 때 받을 것만 생각하는 풍토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기술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돈들여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해외에서 무조건 사오려는 발상이 고쳐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더 이상은 안돼'하니까 금방 기술장벽이니 경제위기니 하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요.
우리 과학기술은 특히 기초과학 수준을 높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봅니다.
대학수준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
현-화제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과학기술수준으로 옮아가는데요, 과학기술교류에 앞서 우리가 먼저 짚어봐야할 점은 무엇인지 지적해 주시지요.
과거와는 달리 과학자의 수도 늘고 실력도 크게 향상됐으니 분야만 잘 선정하면 잘 되지 않겠느냐는 낙관론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아직도 사람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양질의 과학기술자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용-기초과학분야에서는 정부간 교류보다 학계에 이 일을 맡겨두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을 보고 과학자들끼리 자연스레 교류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으니까요.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교류를 하자고 하고 자금도 마련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김영-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심의 전통적인 과학기술 협력 단계에서 소련 중국 개도국 유럽 등의 비중이 높아지는 다변화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또 기술협력의 형태도 단순한 기술도입 위주에서 기술공여 공동연구 자본수출 등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잘 파악해서 정책을 세우고 기업 연구소 대학에 기회를 알선하는 한편 국가차원의 재정확보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또 기업 연구소 대학 등 연구개발 주체들은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 내실을 기하는 것이 변화된 환경에 대처해 가는 길일 것입니다.
김용-우리 과학계의 약점은 수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입니다. 기초과학 연구의 산실이며 인재양성의 요람인 대학의 수준만 놓고 보더라도 다른 나라에 비해 수준차이가 엄청나고 국내 대학들간에도 '하늘과 땅' 차이예요.
얼마전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이 '세계40위'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전세계 1백60여개국이라 하지만 문명이 뒤진 나라들을 제외하면 거의 꼴찌에 가깝습니다. 일전에 스웨덴에서 어느 의학자가 우리 의학계를 둘러보고 '한국에서 노벨의학·생리학 수상자가 나오려면 40~50년 기다리시오'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도 기초과학보다는 한발짝 앞섰다는 의학분야에서 40~50년 기다려야 한다면 기초과학에서는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예요.
대학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과학교류, 정보파악부터
김영-대학도 문제지만 정부출연연구소를 비롯한 연구소들도 총체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내에 연구소가 생긴지 20년이 넘었는데 오래된 연구소일수록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 학자들이 불어 넣는 활기와 신선한 충격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80년대 들어 기업체 연구소가 매년 40% 이상 늘고 삼성종합기술원 같은 종합연구소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도 국내기업들은 해외에서 기술을 사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도 일본기술을 사옵니다. 왜냐하면 미국쪽은 하이테크기술이지만 생산까지 연결되는 부분이 약하거든요. 반면 일본은 설계에서 생산까지 무섭도록 완벽한 자기완결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부분이 허약하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현-한마디로 허점투성이군요. 그렇지만 최근 첨단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전사회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국제환경의 변화와 함께 남북한 과학기술교류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에 대한 견해와 지금까지의 얘기들을 정리해 주시지요.
이-남북한교류는 과학기술분야에서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이것만이 양쪽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통일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선 남북한 학자들이 모여 학술회의를 연다든가 공동연구를 한다든가 해서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후에 과학용어의 통일, 생태계 공동조사, 대륙붕 공동연구, 공해대책 등 이마를 맞댈 수 있는 과제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소련방문때 느낀 것인데 소련 정부와 당 지도자들에 의외로 이공계 출신들이 많아요. 이는 소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과학기술자들이 연구도 중요하지만 정책결정의 과정에도 그만큼 적극적인 참여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용-우선 북한의 과학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선결과제가 아닐까요. 우리가 발행하는 저널과 학술지를 그쪽에 보내고 그쪽 것들도 받아볼 수 있다면 지금처럼 서로 무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정부내에 북방팀이 구성돼 있다는데 그속에 과학기술분야도 채워져야 합니다.
한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알려면 대학을 가보면 됩니다. 미국의 대학들은 모든 연구개발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수준은 엄청나게 뒤떨어져 있고 또 그 수준이 천차만별입니다. 대학의 연구 능력과 인력 양성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김영-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전세계의 과학자들을 최대한 자기 나라에 끌어 모아 기술강국의 지위를 굳혔습니다. 일본은 특유의 모방과 차별화 정책으로 '경제동물'이란 칭호까지 얻어가면서 '1등 기술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이 성공한 비결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미국 일본과 같은 패턴으로는 세계를 제패하기 힘들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블럭화 되어 감에 따라 다른 나라와 협력하지 않으면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과학기술교류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더구나 미일편중에서 다변화전략을 펼쳐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도약이나 파멸이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쉽게 흥분하기 보다는 냉철하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실력을 키워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현-남북한 과학기술교류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반세기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테마들을 준비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생물학 지질학 분야가 남북한 학자를 모두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기술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볼 때 인력양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수한 과학자가 많으면 큰소리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해외에 흩어져 있는 1만여명의 교포과학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해외과학기술교류는 결국 우리의 역량과 자세에 따라 그 결실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