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Human Origins, Arizona State University
1974년 11월 24일, 에티오피아 북동부 하다르의 말라버린 계곡에서 오래된 고인류의 뼈가 발견됐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인 ‘루시’ 화석은 이후 인류의 기원에 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동아사이언스 취재팀은 루시 발견 50주년을 맞아 발견 당사자인 도널드 조핸슨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 소장을 한국 언론 최초로 e메일 인터뷰했다.
루시를 발견하던 그 순간
모든 학문에는 전설적 일화가 존재한다. 고인류학계의 전설 중 하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루시’의 발견이다. 오랫동안 뜨겁고 건조한 오지에서 발굴 작업을 하며 지쳐가던 도널드 조핸슨 팀은 극적으로 처음 보는 고인류의 뼈를 발견했다. 그리고 화석을 발굴한 날 밤, 열광적인 기분에 휩싸여 캠프에서 밤새도록 비틀즈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돌려 듣던 연구자들은 화석의 이름을 ‘루시’로 짓기로 결정했다. 발견의 순간을 조핸슨 소장에게 물어봤다.
Q. 50년 전 루시를 발견한 순간을 기억하나요?
루시의 첫 뼈를 발견한 일요일 아침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저는 대학원생 톰 그레이와 함께 캠프로 돌아가 점심을 먹으려고 랜드로버 차량으로 걸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오른쪽 어깨 너머를 바라보다 작은 뼛조각을 발견했죠. 팔꿈치를 구부리거나 굽히게 돕는 척골의 상단 끝부분이었습니다.
지질학 증거를 통해 추측했을 때, 저는 뼈를 보자마자 300만 년은 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른 뼛조각을 발견하면서 제가 발견한 것이 어쩌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골격일 수도 있겠다고 깨달았죠.
Q. 발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외딴 지역에서 고온을 버티며 일해야 하는 매우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물론, 루시와 같은 화석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에티오피아 사람들만큼이나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는 고인류학 연구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루시와 다른 고인류 화석을 대여해 미국으로 가지고 와 5년 동안 연구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에티오피아에 주요 연구실과 보관 시설이 있으므로 더 이상 화석이 반출될 필요가 없죠.
루시, 고인류학을 바꾸다
조핸슨 팀은 발견 이후 3주 동안 현장에서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골격 화석을 수집했다. 연대 측정 결과 루시는 약 320만 년 전 화석으로, 당시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인류였다. 조핸슨 소장은 본인의 책 ‘루시, 최초의 인류’에서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반출 중이었던 루시 화석을 프랑스 파리의 세관원이 알아보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순간 루시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루시는 고인류학을 어떻게 바꿨을까.
Q. 루시의 발견이 고인류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루시는 인간 진화 연구에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고인류 종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밝혀졌습니다. 루시의 발견으로 인간 진화의 계보도를 다시 그려야 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현생 인류가 속한 호모속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마지막 공통 조상으로 삼도록 말이죠.
Q. 루시를 발견한 후 50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저는 루시의 발견이 고인류학 분야와 인류 기원에 대한 대중의 이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단 하나의 발견이 고인류학자로서 제 경력을 결정지었고, 루시가 발견된 아파르 삼각 지대에서는 이후로 초기 고인류에 대한 많은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최근 저는 제가 루시를 발견한 장소를 다시 방문하며 북받치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곳은 저에게 항상 특별한 장소로 남을 것입니다.
Deanna Dent/ASU Now
1974년 발견된 루시의 전체 골격. 보존율은 40% 정도다. 골반과 대퇴뼈의 형태를 통해 루시가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루시가 남긴 유산
루시 발견 후 50년이 흐르면서, 고인류학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다양한 지역과 시대에서 많은 화석들이 발견됐다. 1992년, 루시가 발견된 곳과 같은 지역에서 440만 년 전의 고인류인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2002년에는 중앙아프리카 차드에서 약 700만 년 전의 고인류인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발견되며 인류의 기원을 훨씬 이전 시대로 되돌렸다. 이제 인류의 계보도는 훨씬 다양하고 풍성해졌지만, 그럼에도 루시의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다.
Q. 루시가 현대인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든 현대인이 과거에는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서로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우리는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같은 종에 속하며, 우리의 공통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였고, 저는 미래에도 하나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200만~300만 년 사이 지층에서 훨씬 더 많은 고인류 화석이 발견될 거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화석들이 발견되면 현대인의 기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Q. 앞으로 당신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전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더 이상 현장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신진 학자*에게 맡기고 있죠. 대신 저는 고인류 연구를 위한 기금을 계속 모으고 전 세계적를 다니며 인류의 기원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David Brill
1 1975년, 루시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 도널드 조핸슨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인류기원연구소 소장.
Stephen Filmer
2 2024년 1월 24일, 루시가 발견된 에티오피아 하다르를 다시 찾은 조핸슨 소장이 하다르 연구 프로젝트팀 텐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Q. 인류는 왜 인류의 기원을 끝없이 궁금해할까요?
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어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항상 묻는 질문이기도 하죠. 과학적 관점에서 인류의 기원을 아는 것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만든 것도 자연 선택의 과정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자연 세계에 대한 의무를 상기하고 자연을 훨씬 잘 다뤄야 합니다. 인류의 생존은 자연 세계와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현재의 지구처럼 풍성하고 흥미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살 곳을 찾기 위해 우주로 모험하기 전에, 우리는 지구를 보호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화하는 바로 그 자연 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스스로 멸종을 초래하는 비극이 될 테니까요.
설명
*실제로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호모 날레디’ 화석을 발견하며 유명해진 리 버거 교수는 저서 ‘올모스트 휴먼’에서 조핸슨 소장과의 만남과 격려가 자신의 연구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