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마리의 소와 330만 마리가 넘는 돼지를 살처분한 올해 구제역. 이들 가축의 사체는 전국 약 4600곳의 매몰지에 나눠 묻혔다. 이 때문에 토양과 지하수에 구제역 바이러스는 물론 사체가 분해되며 발생하는 액체 상태의 오염물, 즉 침출수가 흘러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매몰 작업이 끝난 뒤 지하수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등 오염을 의심할 수 있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토양과 지하수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아직은 실제로 지하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심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침출수 대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본격적인 오염은 약 3년 뒤에야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침출수요? 묻고서 1주일 뒤부터 5~6일 정도 조금 나오더라구요. 그러고는 안 나왔습니다.”
지난 2월 27일, 경북 안동시 와룡면의 한 양돈 농가에서 만난 공장장 김 모 씨(가명)는 “돼지를 매몰한 뒤 침출수가 나왔느냐”는 기자와 환경, 보건 전문가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이 농장은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희생된 이번 구제역 비극의 첫 번째 현장. 2010년 11월 26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고(이 말이 꼭 이 농장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26쪽 ‘과학뉴스’ 참조), 이후 양성판정을 받아 12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키우던 돼지 1만 1000두를 농장 옆 공터 660m2에 묻었다.
기자와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김선경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등 현장을 방문한 참석자들은 모두 침출수가 매몰 초반에만 나왔다는 공장장의 대답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침출수가 매몰 초기보다는 몇 달이 지난뒤에야 더 많이 나온다는, 그 동안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600만 마리 이상의 양과 돼지를 매몰한 경험이 있는 영국 통계청은 묻은 뒤 두달이 지나면 소 한 마리에서 170L의 침출수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미국 농무부 동식물검역청 역시 매몰 두 달 뒤부터 소는 160L, 돼지는 12L의 침출수가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과학동아 3월호 과학뉴스 참조).
이 농장에서 매몰작업이 이뤄진 12월 2, 3일 이후 2월 말까지는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따라서 미국 기준을 따른다면 돼지 한 마리에서 12L씩, 모두 13만 2000L의 침출수가 발생했어야 했다. 이 매몰지의 넓이는
660m2로, 깊이를 5m로 가정했을 때 부피는 3300m3(330만L)가 된다. 따라서 전체의 4%가 침출수로 차 있어야 한다. 이 곳은 이미 돼지 사체와 흙, 그리고 소독을 위한 생석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침출수가 고여 있을 만한 공간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일단 생긴 침출수는 매몰지 밖으로 넘칠 수밖에 없다. 실제 매몰지에서는 침출수가 넘치지 않고 예정된 장소로 고이도록 여러 개의 파이프를 심어 두었다. 침출수가 파이프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런데 이 매몰지에서 파이프를 통해 나온 침출수는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안동시청 관계자도 침출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거듭 묻자 약 2t(약 2000L)이 나왔다고 대답했다. 이것도 예상된 양보다는 훨씬 적다. 기자가 열흘 뒤 방문한 여주의 다른 매몰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끔하게 정비된 매몰지 바로 옆에는 침출수를 모으기 위해서 설치한 커다란 정화조도 있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었다. 전국적으로 이렇게 침출수가 나오지 않은 매몰지가 상당수에 이른다. 그 많은 침출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➊ 강 개발로 지하수위가 낮아진다 4대강 공사에 포함된 준설 등 강을 인공적으로 개발하면 깊이가 깊어진다. 그러면 강의 수위가 낮아지며 지하수의 수위 역시 함께 낮아진다. 모관수대와 뿌리지역이 변해 지표의 식생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
➋ 땅속에 지하수가 담긴물탱크는 없다! 흔히 땅속에 빈 공간이 있어서 지하수가 고여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 지하수는 모래 등 성긴 토양층을 스며들듯 지나가는 거대한 지하 강일 뿐이다. 따라서 물탱크와 같이 물이 가득한 지형은 없다.
➌ 매몰지가 지하수위보다 높을 때 최대 5m 깊이까지 파서 매몰했지만 매몰지 바닥이 지하수위보다 높을 때, 대부분의 유출된 침출수는 중력의 영향으로 아래로 향한다. 하지만 오염물질은 토양층을 통과하며 대부분 흡착돼 지하수에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➍ 매몰지가 지하수위보다 낮거나 지나치게 가까울 때 매몰지 바닥이 지하수위보다 낮을 때, 유출된 침출수는 지하수로 직접 스며들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침출수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다
우선 침출수가 발생해 바닥으로 샜을 가능성이 있다. 공장장 김 씨는 정부에서 돼지를 매몰할 때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한 겹 깔고 그 위에 살처분한 돼지를 묻었다고 말했다. 구제역 초창기라 비닐을 두 겹 깔도록 한 대책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구나 강화 플라스틱(고밀도 폴리에틸렌)을 깔도록 돼 있는 일반 폐기물매립장과 달리 쉽게 찢어지는 하우스 비닐을 썼다는 점도 바닥으로 침출수가 샜을 가능성을 높인다. 대다수 언론과 환경학자들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매몰지를 연구한 토양환경공학자나 환경학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침출수가 아직 본격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승학 한국과학기술 연구원(KIST) 물환경센터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침출수라고 보고된 액체는 침출수가 아니라 핏물이나 내분비액 등 원래 가축의 몸 안에 있던 액체일 가능성이 크다”며 “아직 본격적인 부패와 이에 따른 사체 분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침출수가 매몰 뒤 처음 2달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기존 설명과 다르다. 김선경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도 “매몰 초기에는 분뇨나 혈액, 지방이 먼저 나온다”며 “근육이 액체로 변해 흘러나오는 것은 나중”이라고 설명했다.
[비가 내리자 경북 안동의 한 양돈 농가 옆 매몰지를 시청 직원들이 점검하고 있다. 이 매몰지는 돼지 1만 1000마리를 묻은 지 100일 가까이 지났지만 초기를 제외하고는 침출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소독을 위해 뿌린 생석회 때문이다. 매몰지 현장에서는 소독을 위해 가축과 흙 사이사이에 생석회를 뿌려 함께 묻었다. 생석회는 토양을 pH10 정도의 염기성으로 바꿔 준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pH5 이하의 강산성이나 pH10 이상의 강염기성 환경에서 활성화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소독법이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사체를 분해해야 하는 토양미생물의 활동 역시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토양 미생물인 바실러스는 중성인 pH7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미생물이 활성화되지 않으니 사체를 이루는 유기물의 분해도 일어나지 않고, 침출수 역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침출수가 아니라고 해도 체액이나 분뇨 역시 문제가 많다. 이들도 결국 분해가 필요한 고농도 유기물질이기 때문이다. 체액은 지방 비율이 높고 단백질 함량도 높다.
이들은 모두 미생물에 의한 자연 분해가 쉽지 않은 성분이다. 분해 뒤에도 질산성 오염물이나 암모니아성 오염물 등을 남겨 토양 환경을 악화시킨다. 또 구제역이나 AI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경우 이 바이러스가 체액과 함께 밖으로 흘러나올 가능성도 있다.
[여주의 한 매몰지에서 액체가 흘러나와 굳어 있다. 하지만 이 액체는 사체가 분해돼 나온 침출수가 아니라 혈액이나 내분비액 등 사체 내부에 원래 있던 체액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 위험은 3년 뒤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침출수가 발생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언제일까. 이 연구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약 3년 뒤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매몰지의 pH가 중성이 되는 시점을 대략 3년 뒤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부터 본격적인 부패가 일어나고 지금은 예상하지 못한 많은 침출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지금 침출수에 의해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일부 보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남경필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지하수가 흐르는 대수층의 깊이는 깊게는 10m에서 얕게는 1~2m”라며 “만약 매몰지가 대수층까지 파고든다면 매몰지에서 샌 체액 등이 지하수층으로 직접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형에 따라 오염됐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런 가능성은 과거 사례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이 연구원은 “2008년 AI로 매몰 작업을 한 일부 지역의 경우 질산성 질소와 암모니아성 질소, 대장균, 일반세균류의 4가지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지하수가 있었다”며 “이 가운데 농장 비료 등 다른 원인 때문에 발생한 일부 오염을 제외하고는 매몰지에 의한 오염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매몰지 아래 지하수가 오염되기 위해서는 매몰지를 받치고 있는 비닐이 찢어져 침출수를 비롯한 오염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환경 전문가와 토목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일반 비닐로 매몰지를 만든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작은 돌조각에도 비닐이 찢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여주 매몰지에 동행한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역시 “땅이 조금만 고르지 않아도 매몰지에 쓴 하우스 비닐은 쉽게 찢어진다”고 말했다. 안동 현지에서 만난 한 축산농민은 “울퉁 불퉁한 땅에 매몰지를 만들고 덤프트럭으로 가축을 쏟았다”며 “농민들은 침출수가 다 아래로 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엽 안동시 와룡면장도 “매몰 뒤 땅이 꺼진 곳이 있다”고 말해 바닥이 샜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해 침출수가 매몰지에서 샜다고 해도 지하수가 오염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땅으로 스며든 침출수는 바로 지하수로 스며들지 않고 우선 토양층을 통과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자연적으로 걸러지거나 분해되기 때문이다.
먼저 토양은 오염물을 스스로 붙잡아 두는 성질이 있다. 흙속에 들어 있는 부식산 같은 물질은 납이나 구리, 카드뮴 등 양이온 중금속과 결합해 더 이상 이동하지 않도록 묶어 둔다. 따라서 중금속은 지하수까지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능력을 ‘흡착’이라고 부르는데, 이 성질은 점토, 실트, 모래 순으로 강하다. 이 연구원은 “점토질로 된 땅에서는 오염물이 전혀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말했다.
병원성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흙 속의 물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콜로이드)에 붙어서 이동한다. 그런데 이들 입자는 흙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마치 체로 거르듯 걸러진다. 병원성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지하수로 흘러들 가능성 역시 크지 않은 셈이다.
또 적긴 하지만 토양미생물도 유기오염물을 분해한다. 토양 중 지표에 가까운 곳에는 산소를 이용하는 미생물이 들어 있다. 그 아래에는 차례로 질산성 질소, 황산, 이산화탄소 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있어 유기 오염물을 분해한다.
이들은 기름이나 농약 등 유기오염물을 분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남 교수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미생물 덕분에 땅 속에 스며든 농약 성분의 60~70%는 자연적으로 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질산성 질소와 암모니아성 질소 등 음이온 오염물이다. 이들은 물속에 녹은 상태로 움직이기 때문에 흡착으로 걸러지지 않는다. 또 미생물이 분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 연구원은 “일부 탈질 박테리아가 질산을 질소 기체로 바꾸기도 하지만, 극소량에 불과하다”며 “지하수와 관련해 가장 어려움이 많은 물질”라고 말했다.
‘지하수가 오염되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인식도 과장됐다. 지하수가 오염돼 확산되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하수의 움직임은 대단히 느리다. 박재현 인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토양에 따라 다르지만, 지하수는 보통 하루에 0.2m 정도, 모래일 경우 0.5~1m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매몰한 지 100일이 지난 안동 지역이라 하더라도 지하수는 겨우 20m 정도 이동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지하수는 지상의 물과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플룸’이라고 하는 일종의 지하수 흐름을 형성한다. 이 때 플룸은 지상의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나이테처럼 긴 동심원을 그리며 확산되는데, 좌우 폭보다 앞뒤 방향으로 10배 더 길게 확산되는 특성이 있어 어디로 퍼질지 예측이 가능하다. 만약 오염물질이 지하수에 들어갔더라도 지형 등 환경 조건과 물의 흐름을 잘 조사해 대응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지하수가 흐르는 속도, 오염원의 밀도 등 몇 가지 정보만 알면 오염물질의 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어느 지역에 차단막을 세울 지 대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수를 ‘지하에 고여 있는 물’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된다. 땅 위를 흐르는 물보다 지하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빙하를 제외하면 육지에 있는 물 가운데 98.4%가 지하수다. 지하수 오염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반응벽 세워 지하수 오염 막아야”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하더라도 지하수가 오염된 사례가 일부 보고되고 있다. 또 비록 지하수는 안전하다 하더라도 매몰된 가축의 피나 내분비물에 들어 있던 중금속과 바이러스, 병원성 미생물은 고스란히 토양에 흡착돼 머무르므로 추가 오염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특히 바이러스와 병원성 미생물은 흙속에 머물러 있다 환경이 바뀌면 다시 병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는 침출수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3년 뒤에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는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매몰지의 안전성을 확보해 사체가 안정적으로 부패하게 도와줘야 한다. 현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세운 매몰지 조성 지침에 따르면, 매몰지는 경사지를 피해 상수원으로부터 30m 이상 떨어진 곳에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장소 선택이 어려운 경우 일부 매몰지를 경사진 곳에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곳은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면서 무게 때문에 흘러내릴 위험이 있다. 이를 막으려면 경사지 아래 부분에 옹벽을 설치해야 한다.
다음으로 지하수가 오염됐을 때를 대비해 해결책을 준비해 둬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는 차수벽이 있다. 차수벽은 콘크리트나 철제 빔을 이용해 일종의 벽을 만들어 지하수의 이동을 막는 방법이다. 지하수는 한 곳이 오염될 경우 앞서 설명한 ‘플룸’을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퍼진다. 따라서 진행 방향을 미리 조사해 그 방향의 대수층을 막아 주면 오염물의 이동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하수의 이동 자체가 멈추지 않는 한, 이동하는 물은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꿔 흐르거나, 최악의 경우 반대로 흐른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오염된 지하수가 넘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하수의 속도와 방향, 유량을 충분히 계산해 차수벽을 설치하고, 벽 안쪽에 차오르는 물을 퍼낼 필요도 있다.
이 연구원은 “오염된 지하수를 모두 뽑아서 정수처리를 하는 방법과 대수층에 특수한 필터를 설치해 정화하는 방법이 좋다”고 권한다. 지하수를 뽑아 처리하는 방법은 ‘양수처리법’이라고 한다. 지하수를 수질 확인이 가능한 지상으로 끌어 내 자외선이나 과산화수소 등을 이용해 정화한 뒤 다시 대수층에 넣는 방법으로, 오염원이 확실하게 제거된 상황에서 오로지 지하에 퍼진 오염물을 제거할 때 유용하다. 하지만 오염원이 확실히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큰 효과가 없고,오염 범위가 넓으면 양수기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특수 필터를 이용하는 기술은 지하수가 흐르는 대수층에 ‘반응벽’이라는 필터를 꽂아 이곳을 통과하는 물이 저절로 정수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지하수가 하루에 30cm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필터를 1m 두께로만 만들어도 3일 이상 정수가 이뤄진다. 필터는 미생물과 톱밥을 섞어 넣기도 하고 ‘영가 철(Fe0)’이라고 하는 광물 촉매를 넣어 만든다. 미생물이 오염물을 분해하거나 철가루의 산화, 환원력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것이 원리다. 비소나 크롬등 중금속은 물론, 유기오염물인 TCE, 질산성 질소를 분해 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이 연구원은 “현재 검토하고 있는 방법들 가운데에는 반응벽 방식이 이번 구제역 매몰지에서 발생할지 모를 지하수 오염을 막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토양과 지하수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아직은 실제로 지하수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심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침출수 대란’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본격적인 오염은 약 3년 뒤에야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침출수요? 묻고서 1주일 뒤부터 5~6일 정도 조금 나오더라구요. 그러고는 안 나왔습니다.”
지난 2월 27일, 경북 안동시 와룡면의 한 양돈 농가에서 만난 공장장 김 모 씨(가명)는 “돼지를 매몰한 뒤 침출수가 나왔느냐”는 기자와 환경, 보건 전문가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이 농장은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희생된 이번 구제역 비극의 첫 번째 현장. 2010년 11월 26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구제역 의심신고를 했고(이 말이 꼭 이 농장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26쪽 ‘과학뉴스’ 참조), 이후 양성판정을 받아 12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키우던 돼지 1만 1000두를 농장 옆 공터 660m2에 묻었다.
기자와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김선경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등 현장을 방문한 참석자들은 모두 침출수가 매몰 초반에만 나왔다는 공장장의 대답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침출수가 매몰 초기보다는 몇 달이 지난뒤에야 더 많이 나온다는, 그 동안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600만 마리 이상의 양과 돼지를 매몰한 경험이 있는 영국 통계청은 묻은 뒤 두달이 지나면 소 한 마리에서 170L의 침출수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미국 농무부 동식물검역청 역시 매몰 두 달 뒤부터 소는 160L, 돼지는 12L의 침출수가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과학동아 3월호 과학뉴스 참조).
이 농장에서 매몰작업이 이뤄진 12월 2, 3일 이후 2월 말까지는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따라서 미국 기준을 따른다면 돼지 한 마리에서 12L씩, 모두 13만 2000L의 침출수가 발생했어야 했다. 이 매몰지의 넓이는
660m2로, 깊이를 5m로 가정했을 때 부피는 3300m3(330만L)가 된다. 따라서 전체의 4%가 침출수로 차 있어야 한다. 이 곳은 이미 돼지 사체와 흙, 그리고 소독을 위한 생석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침출수가 고여 있을 만한 공간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일단 생긴 침출수는 매몰지 밖으로 넘칠 수밖에 없다. 실제 매몰지에서는 침출수가 넘치지 않고 예정된 장소로 고이도록 여러 개의 파이프를 심어 두었다. 침출수가 파이프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그런데 이 매몰지에서 파이프를 통해 나온 침출수는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안동시청 관계자도 침출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거듭 묻자 약 2t(약 2000L)이 나왔다고 대답했다. 이것도 예상된 양보다는 훨씬 적다. 기자가 열흘 뒤 방문한 여주의 다른 매몰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끔하게 정비된 매몰지 바로 옆에는 침출수를 모으기 위해서 설치한 커다란 정화조도 있었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었다. 전국적으로 이렇게 침출수가 나오지 않은 매몰지가 상당수에 이른다. 그 많은 침출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➊ 강 개발로 지하수위가 낮아진다 4대강 공사에 포함된 준설 등 강을 인공적으로 개발하면 깊이가 깊어진다. 그러면 강의 수위가 낮아지며 지하수의 수위 역시 함께 낮아진다. 모관수대와 뿌리지역이 변해 지표의 식생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
➋ 땅속에 지하수가 담긴물탱크는 없다! 흔히 땅속에 빈 공간이 있어서 지하수가 고여 있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 지하수는 모래 등 성긴 토양층을 스며들듯 지나가는 거대한 지하 강일 뿐이다. 따라서 물탱크와 같이 물이 가득한 지형은 없다.
➌ 매몰지가 지하수위보다 높을 때 최대 5m 깊이까지 파서 매몰했지만 매몰지 바닥이 지하수위보다 높을 때, 대부분의 유출된 침출수는 중력의 영향으로 아래로 향한다. 하지만 오염물질은 토양층을 통과하며 대부분 흡착돼 지하수에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➍ 매몰지가 지하수위보다 낮거나 지나치게 가까울 때 매몰지 바닥이 지하수위보다 낮을 때, 유출된 침출수는 지하수로 직접 스며들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침출수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다
우선 침출수가 발생해 바닥으로 샜을 가능성이 있다. 공장장 김 씨는 정부에서 돼지를 매몰할 때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한 겹 깔고 그 위에 살처분한 돼지를 묻었다고 말했다. 구제역 초창기라 비닐을 두 겹 깔도록 한 대책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구나 강화 플라스틱(고밀도 폴리에틸렌)을 깔도록 돼 있는 일반 폐기물매립장과 달리 쉽게 찢어지는 하우스 비닐을 썼다는 점도 바닥으로 침출수가 샜을 가능성을 높인다. 대다수 언론과 환경학자들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매몰지를 연구한 토양환경공학자나 환경학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침출수가 아직 본격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승학 한국과학기술 연구원(KIST) 물환경센터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침출수라고 보고된 액체는 침출수가 아니라 핏물이나 내분비액 등 원래 가축의 몸 안에 있던 액체일 가능성이 크다”며 “아직 본격적인 부패와 이에 따른 사체 분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침출수가 매몰 뒤 처음 2달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기존 설명과 다르다. 김선경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원도 “매몰 초기에는 분뇨나 혈액, 지방이 먼저 나온다”며 “근육이 액체로 변해 흘러나오는 것은 나중”이라고 설명했다.
[비가 내리자 경북 안동의 한 양돈 농가 옆 매몰지를 시청 직원들이 점검하고 있다. 이 매몰지는 돼지 1만 1000마리를 묻은 지 100일 가까이 지났지만 초기를 제외하고는 침출수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소독을 위해 뿌린 생석회 때문이다. 매몰지 현장에서는 소독을 위해 가축과 흙 사이사이에 생석회를 뿌려 함께 묻었다. 생석회는 토양을 pH10 정도의 염기성으로 바꿔 준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pH5 이하의 강산성이나 pH10 이상의 강염기성 환경에서 활성화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소독법이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사체를 분해해야 하는 토양미생물의 활동 역시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토양 미생물인 바실러스는 중성인 pH7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미생물이 활성화되지 않으니 사체를 이루는 유기물의 분해도 일어나지 않고, 침출수 역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침출수가 아니라고 해도 체액이나 분뇨 역시 문제가 많다. 이들도 결국 분해가 필요한 고농도 유기물질이기 때문이다. 체액은 지방 비율이 높고 단백질 함량도 높다.
이들은 모두 미생물에 의한 자연 분해가 쉽지 않은 성분이다. 분해 뒤에도 질산성 오염물이나 암모니아성 오염물 등을 남겨 토양 환경을 악화시킨다. 또 구제역이나 AI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경우 이 바이러스가 체액과 함께 밖으로 흘러나올 가능성도 있다.
[여주의 한 매몰지에서 액체가 흘러나와 굳어 있다. 하지만 이 액체는 사체가 분해돼 나온 침출수가 아니라 혈액이나 내분비액 등 사체 내부에 원래 있던 체액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 위험은 3년 뒤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침출수가 발생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언제일까. 이 연구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약 3년 뒤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매몰지의 pH가 중성이 되는 시점을 대략 3년 뒤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때부터 본격적인 부패가 일어나고 지금은 예상하지 못한 많은 침출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지금 침출수에 의해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일부 보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남경필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지하수가 흐르는 대수층의 깊이는 깊게는 10m에서 얕게는 1~2m”라며 “만약 매몰지가 대수층까지 파고든다면 매몰지에서 샌 체액 등이 지하수층으로 직접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형에 따라 오염됐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런 가능성은 과거 사례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이 연구원은 “2008년 AI로 매몰 작업을 한 일부 지역의 경우 질산성 질소와 암모니아성 질소, 대장균, 일반세균류의 4가지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지하수가 있었다”며 “이 가운데 농장 비료 등 다른 원인 때문에 발생한 일부 오염을 제외하고는 매몰지에 의한 오염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매몰지 아래 지하수가 오염되기 위해서는 매몰지를 받치고 있는 비닐이 찢어져 침출수를 비롯한 오염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환경 전문가와 토목 전문가들은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일반 비닐로 매몰지를 만든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작은 돌조각에도 비닐이 찢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여주 매몰지에 동행한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 역시 “땅이 조금만 고르지 않아도 매몰지에 쓴 하우스 비닐은 쉽게 찢어진다”고 말했다. 안동 현지에서 만난 한 축산농민은 “울퉁 불퉁한 땅에 매몰지를 만들고 덤프트럭으로 가축을 쏟았다”며 “농민들은 침출수가 다 아래로 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엽 안동시 와룡면장도 “매몰 뒤 땅이 꺼진 곳이 있다”고 말해 바닥이 샜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해 침출수가 매몰지에서 샜다고 해도 지하수가 오염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땅으로 스며든 침출수는 바로 지하수로 스며들지 않고 우선 토양층을 통과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자연적으로 걸러지거나 분해되기 때문이다.
먼저 토양은 오염물을 스스로 붙잡아 두는 성질이 있다. 흙속에 들어 있는 부식산 같은 물질은 납이나 구리, 카드뮴 등 양이온 중금속과 결합해 더 이상 이동하지 않도록 묶어 둔다. 따라서 중금속은 지하수까지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능력을 ‘흡착’이라고 부르는데, 이 성질은 점토, 실트, 모래 순으로 강하다. 이 연구원은 “점토질로 된 땅에서는 오염물이 전혀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말했다.
병원성 미생물과 바이러스는 흙 속의 물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콜로이드)에 붙어서 이동한다. 그런데 이들 입자는 흙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마치 체로 거르듯 걸러진다. 병원성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지하수로 흘러들 가능성 역시 크지 않은 셈이다.
또 적긴 하지만 토양미생물도 유기오염물을 분해한다. 토양 중 지표에 가까운 곳에는 산소를 이용하는 미생물이 들어 있다. 그 아래에는 차례로 질산성 질소, 황산, 이산화탄소 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있어 유기 오염물을 분해한다.
이들은 기름이나 농약 등 유기오염물을 분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남 교수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미생물 덕분에 땅 속에 스며든 농약 성분의 60~70%는 자연적으로 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질산성 질소와 암모니아성 질소 등 음이온 오염물이다. 이들은 물속에 녹은 상태로 움직이기 때문에 흡착으로 걸러지지 않는다. 또 미생물이 분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 연구원은 “일부 탈질 박테리아가 질산을 질소 기체로 바꾸기도 하지만, 극소량에 불과하다”며 “지하수와 관련해 가장 어려움이 많은 물질”라고 말했다.
‘지하수가 오염되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인식도 과장됐다. 지하수가 오염돼 확산되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지하수의 움직임은 대단히 느리다. 박재현 인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토양에 따라 다르지만, 지하수는 보통 하루에 0.2m 정도, 모래일 경우 0.5~1m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매몰한 지 100일이 지난 안동 지역이라 하더라도 지하수는 겨우 20m 정도 이동했다는 뜻이다. 더구나 지하수는 지상의 물과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플룸’이라고 하는 일종의 지하수 흐름을 형성한다. 이 때 플룸은 지상의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나이테처럼 긴 동심원을 그리며 확산되는데, 좌우 폭보다 앞뒤 방향으로 10배 더 길게 확산되는 특성이 있어 어디로 퍼질지 예측이 가능하다. 만약 오염물질이 지하수에 들어갔더라도 지형 등 환경 조건과 물의 흐름을 잘 조사해 대응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지하수가 흐르는 속도, 오염원의 밀도 등 몇 가지 정보만 알면 오염물질의 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어느 지역에 차단막을 세울 지 대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하수를 ‘지하에 고여 있는 물’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된다. 땅 위를 흐르는 물보다 지하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빙하를 제외하면 육지에 있는 물 가운데 98.4%가 지하수다. 지하수 오염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반응벽 세워 지하수 오염 막아야”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하더라도 지하수가 오염된 사례가 일부 보고되고 있다. 또 비록 지하수는 안전하다 하더라도 매몰된 가축의 피나 내분비물에 들어 있던 중금속과 바이러스, 병원성 미생물은 고스란히 토양에 흡착돼 머무르므로 추가 오염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특히 바이러스와 병원성 미생물은 흙속에 머물러 있다 환경이 바뀌면 다시 병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우려는 침출수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3년 뒤에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는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매몰지의 안전성을 확보해 사체가 안정적으로 부패하게 도와줘야 한다. 현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세운 매몰지 조성 지침에 따르면, 매몰지는 경사지를 피해 상수원으로부터 30m 이상 떨어진 곳에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장소 선택이 어려운 경우 일부 매몰지를 경사진 곳에 만들기도 했다. 이런 곳은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면서 무게 때문에 흘러내릴 위험이 있다. 이를 막으려면 경사지 아래 부분에 옹벽을 설치해야 한다.
다음으로 지하수가 오염됐을 때를 대비해 해결책을 준비해 둬야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는 차수벽이 있다. 차수벽은 콘크리트나 철제 빔을 이용해 일종의 벽을 만들어 지하수의 이동을 막는 방법이다. 지하수는 한 곳이 오염될 경우 앞서 설명한 ‘플룸’을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퍼진다. 따라서 진행 방향을 미리 조사해 그 방향의 대수층을 막아 주면 오염물의 이동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하수의 이동 자체가 멈추지 않는 한, 이동하는 물은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꿔 흐르거나, 최악의 경우 반대로 흐른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오염된 지하수가 넘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지하수의 속도와 방향, 유량을 충분히 계산해 차수벽을 설치하고, 벽 안쪽에 차오르는 물을 퍼낼 필요도 있다.
이 연구원은 “오염된 지하수를 모두 뽑아서 정수처리를 하는 방법과 대수층에 특수한 필터를 설치해 정화하는 방법이 좋다”고 권한다. 지하수를 뽑아 처리하는 방법은 ‘양수처리법’이라고 한다. 지하수를 수질 확인이 가능한 지상으로 끌어 내 자외선이나 과산화수소 등을 이용해 정화한 뒤 다시 대수층에 넣는 방법으로, 오염원이 확실하게 제거된 상황에서 오로지 지하에 퍼진 오염물을 제거할 때 유용하다. 하지만 오염원이 확실히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큰 효과가 없고,오염 범위가 넓으면 양수기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특수 필터를 이용하는 기술은 지하수가 흐르는 대수층에 ‘반응벽’이라는 필터를 꽂아 이곳을 통과하는 물이 저절로 정수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지하수가 하루에 30cm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필터를 1m 두께로만 만들어도 3일 이상 정수가 이뤄진다. 필터는 미생물과 톱밥을 섞어 넣기도 하고 ‘영가 철(Fe0)’이라고 하는 광물 촉매를 넣어 만든다. 미생물이 오염물을 분해하거나 철가루의 산화, 환원력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것이 원리다. 비소나 크롬등 중금속은 물론, 유기오염물인 TCE, 질산성 질소를 분해 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이 연구원은 “현재 검토하고 있는 방법들 가운데에는 반응벽 방식이 이번 구제역 매몰지에서 발생할지 모를 지하수 오염을 막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