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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기니와 아즈텍의 엽기적 식인 풍습

인육은 부족한 단백질 공급원?

식인 풍습은 인류학에서 다루기에 난감한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현대인의 관점에서 그것이 상당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그래서 혐오감을 기피하려는 독자는 여기서 책갈피를 다른 데로 넘기길 바란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식인 풍습은 엽기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식인 풍습에 대한 자료는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지만, 아쉽게도 자료의 상당 부분이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탐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필자는 ‘머리사냥과 문화인류학’(2002년 열린책들 발간)이란 저술에서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과 더불어 공통점은 인간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인간성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서, 인류학은 다각적인 접근을 채택한다는 것을 언급했다. 즉 인류학은 다양한 문화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특히 영장류), 심지어 과거 인류의 조상들과의 비교적 관점에서 인간성을 파악해 나간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식인 풍습은 인류학적 접근을 예증하는 좋은 소재가 되면서, 인간성을 이해하는데 좋은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자료상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인 풍습의 인류학적 탐구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식인에 관한 영양학적 해석


식인 풍습은 집단적, 관습적으로 인육을 먹는 행위를 말한다. 식인 행위는 영양학적 차원에서, 그리고 종교 나 의례의 제물로서 행해졌다고 한다(사진은 본문의 내 용과 관련 없음).


우선 식인 풍습(cannibalism)이란 무엇인가? 풍습이란 일종의 문화적 행위를 일컫는다. 문화적 행위란 특정 집단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올 뿐만 아니라, 행해져온다는 사실이 집단 성원들 사이에 널리 인식된 경우에 해당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규칙들이 그 행위에 첨가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어쩔 수 없는 극한적 상황에 처해서 생존을 위해 제한된 시공간에서 행해진 식인 행위는 식인 풍습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1972년 우루과이의 럭비 팀이 탄 비행기가 안데스 고산 지대에 추락한 후, 생존을 위해 죽은 시신을 먹은 것이 그러한 경우다.

이와 달리 식인 풍습은 인간의 육신을 집단 차원에서 관습적으로 먹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렇듯 관습적인 식인 행위는 인류 역사적으로 그리고 비교 사회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중 가장 극단적인 풍습은 영양학적 차원에서(종종 식도락 차원과 뒤섞여) 행해진 식인 행위일 것이다. 최근까지 뉴기니 내륙의 고산 지대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던 식인 풍습 중 많은 경우가 이 유형에 속할 듯하다. 여기서 영양학적 차원이란 인간의 육신이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지역은 특히 다른 종류, 즉 포유류, 어류, 파충류, 조류, 심지어 곤충류 등의 단백질 공급원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 영양학적으로 20여 종류의 아미노산을 필요로 하는데, 특히 생체적으로 합성되지 않는 아홉 종류의 필수 아미노산을 동물의 고기 등에서 직접 충당해야 한다.

그런데 뉴기니 고산 지대에 사는 부족들은 돼지를 키우기도 했지만, 돼지는 주로 특별한 의례나 축제 때 도살됐고 지역 주민들의 단백질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수렵이나 어로, 그리고 채집 등을 통해서 단백질 수요를 채워나가려고 했지만, 여전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상당한 양은 인간의 육신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영양학적 차원에서 행해진 식인 풍습은 어쩌면 극한적 상황에 처해서 생존을 추구하려는 식인 행위와 동기는 동일하면서 단지 집단 차원에서 관습으로 변모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노골적인 동기와는 달리 식인 행위는 종종 종교나 의례와 결부되기도 했다. 이 경우 식인 행위의 의미는 매우 복잡해진다.

토템 동물을 제물로 삼은 이유


뉴기니 고산 지대, 멕시코 아즈텍 사회, 중앙 아프리카 등에서 식인 행위가 자행됐다는 자료가 있으나 그 신 빙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세기 문화진화론자들은 식인 풍습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진화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오래 전에는 원래 영양학적 차원에서 식인 행위를 했지만 점차 신에게 바치는 인간 제물을 소비하는 식인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인간 제물이 다른 동물로 대체됐고, 종국에는 제물과 소비 자체도 상징적으로 변형됐다고 한다.

실제로 식인 행위와 종교 또는 의례의 관계는 매우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우선 구약성서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이삭의 에피소드는 신에게 바치는 인간 제물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며, 이것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회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인간 제물을 소비했거나, 소비하려 했다는 단서는 없다. 즉 인간 제물 자체가 식인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또한 인간 제물이 다른 동물로 대체된 경우 그 동물은 종종 인간과 상징적으로 동일시되기도 했다. 목자가 끄는 어린양은 은유적으로 우리 인간을 지칭하며 유대인의 희생 제물 목록에 올라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희생양을 의례의 참여자가 나눠 먹었다고 해도 그것은 상징적 차원의 식인 행위일 뿐이며 실제 식인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인류학에서 보고된 수많은 토템 중 어떤 것들은 식인 행위의 또다른 예를 제공한다. 토템이란 특정 집단의 혈연적 조상이 되는 동물이나 식물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민족의 토템은 곰이 된다. 그런데 어떤 토템 사회에서는 조상 숭배 의례를 지내면서, 평소에는 음식 금기의 대상이 되는 토템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소비하기도 했다. 이는 동족 혹은 조상신을 먹는 일종의 식인 또는 식신(食神) 행위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살해된 신은 부활함으로써 인간의 안녕과 대지의 번영을 재확인시켜줬다. 이런 취지의 의례는 지중해 지역에 넓게 분포해 있었고, 제임스 프레이저의 고전적 저술 ‘황금의 가지’의 테마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고대 국가 사회가 출현하면서 이렇듯 상징적인 식인 혹은 식신 행위마저 희생 제물이 축소돼버렸다. 이를테면 카톨릭교에서 행해지는 성체 의례는 예수가 이승에서 제자들과 가진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인간의 속죄를 위해 바친 자신의 살로, 그리고 포도주를 그렇게 흘린 자신의 피로 알라는 말을 남기고 십자가에 못박힌데서 비롯한 것이다.

3.2km 인간 제물 행렬

그러나 문화진화론적 모델이란 식인 행위와 관련된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시간 계열에 따라 나열한 것이지만 그 발전 과정은 추측에 불과하다. 더욱이 고대 국가 사회가 출현하면서, 종교적 의례를 위한 인간 제물이 언제나 소비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또는 상징적 형태로 대체된 것은 아닌 듯하다. 스페인 정복자인 코르테즈가 최초로 점령한 중앙 아메리카 멕시코 분지의 아즈텍 제국에서는 실제로 인간 제물이 영양학적 동기에서 신에게 헌증됐고 또 소비됐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코르테즈를 비롯해서 후세의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즈텍인들이 정복 전에 많은 인간 제물을 그들의 신에게 바쳤었다고 보고했다. 인간 제물은 주로 전쟁 포로와 노예들로 조달됐는데, 아즈텍 제사장은 계단식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제단에서 신에게 그들의 심장과 피를 바침으로써 우주 만물 특히 태양의 주기가 반복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그 규모에 있었다. 이를테면 그 규모는 아즈텍 제국의 최대 도시인 티노크티틀란에서 피라미드가 신에게 헌증될 때 행해진 제사에서 정점에 달했는데, 이때 인간 제물의 행렬은 네줄로 약 3.2km 가량 늘어져 있었고, 이들을 처형하는데도 무려 나흘 밤낮이 걸렸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그 숫자를 1만4천1백명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게다가 소규모 피라미드 제단이 지역마다 산재해 있었으니, 연간 희생된 인간 제물의 숫자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 당시 스페인 정복자의 일원인 디아즈는 수십만 점의 두개골을 도시의 광장에서 헤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 제물의 이 같은 규모조차도 의식을 마친 후 그 제물이 처리된 방식, 즉 식인 행위에 비해서는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 제물은 심장을 헌증한 후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굴려 내려왔다. 그리고 시신들은 제물의 소유자에 의해 각 집으로 분산된 후 정육을 거쳐 소비됐다고 한다.

이런 기록을 사실로 받아들인 인류학자 마이클 하너는 아즈텍인의 대규모 식인 행위의 이유를 단백질 공급원의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아즈텍 제국이 건설된 멕시코 지역은 다른 고대 국가의 발상지와 달리 가축이 없었고, 이미 육류를 제공할만한 동물도 고갈된 상태였다. 그리고 토착 재배종인 옥수수와 콩은 함께 다량 섭취할 경우 필수 아미노산을 공급할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신뢰할 만한 식단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즈텍 제국의 지배자는 충성스런 귀족과 군사들에게 인간 제물을 소비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통치 질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통치 방식은 지속적인 인간 제물의 공급을 전제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르기를, 아즈텍 군대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인간 제물을 얻기 위해 전쟁을 끊임없이 치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즈텍 사회의 식인 풍습이 이례적인 것은 다른 고대 국가 사회에서 종교가 식인 풍습은 고사하고 심지어 인간 제물을 금지한 반면, 여기서는 오히려 두 요소가 복합적으로 확대됐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인간 제물과 식인 행위가 종교적으로 결합된 경우는 다른 소규모 사회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이를테면 캐나다의 휴런 족은 태양과 전쟁의 신에게 인간 제물을 바쳤고, 나중에 족장은 그 제물로 향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식인종은 선정적 보도 탓


목자가 끄는 어린양은 은유적으로 인간을 상징한다. 이를 나눠먹은 것은 상징적 차원의 식인 행위라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이처럼 실제로 식인 행위가 자행된 두 사례, 즉 뉴기니 고산 지대의 다양한 부족과 멕시코의 아즈텍 사회에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그런데 식인 풍습에 대해 보고된 자료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 세계 도처에서 그러한 풍습이 보고됐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학자 아렌즈는 위의 두 지역을 포함해서 여타 지역에서 보고된 식인 풍습의 자료에 대해 오히려 의구심을 제기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저술 ‘식인 신화’에서 전반적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그는 거의 모든 자료에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아렌즈는 번트가 뉴기니의 포레족에서 벌어진 식인 행위를 묘사한 것에 주목했다. 이에 따르면 남편이 한 여인의 시체와 성행위를 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는 그 시체를 불에 구워 먹기 위해서 정육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칼이 배를 가로질러 아래로 내려가면서 남편의 성기가 그만 잘려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은 물었다. “내 성기를 잘랐어, 난 어떻게 해야 해?” 이에 그의 아내는 그것을 입에 던져 넣고는 먹어치웠다. 이처럼 종종 시체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성행위의 대상으로 간주됐다는 기록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렌즈는 이것이 실제 벌어진 사건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것이라고 봤다. 오히려 그는 그것이 민간 설화에 불과하며 번트 자신이 실제로는 식인 행위를 한 차례도 목격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식인 풍습과 관련된 기록에는 이런 단순한 착오 외에 다른 동기가 개입되기도 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탐험의 영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스탠리는 신문기자로서 그 영웅의 행방을 찾다가 그의 뒤를 이어 탐험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이들은 중앙 아프리카를 주로 탐험했다. 그런데 리빙스턴은 자신이 만난 부족들에서 식인 풍습을 전혀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에 반해 스탠리의 여행 수기에는 그가 여러 식인종 부족들과 맞닥뜨렸고, 위험에서 극적으로 벗어나기도 했다는 모험담이 실려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자극적인 테마를 원했고, 또 백인의 진출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 아랍의 노예 상인들이 원주민 부족들을 소개하면서 그런 정보를 제공했던 것이다.

아즈텍 사회의 경우에도 코르테즈가 정복한 후 곧 인간 제물 의식을 엄금했기 때문에 그런 의식을 직접 스페인 정복자들이 목격할 기회는 없었다. 더군다나 정복 후에도 인간 제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후, 종교적 사명감이 뚜렷할 수밖에 없는 도미니크 수도사 듀란은 자신의 저술에서 인간 제물이 식용으로 소비됐다고 서술했다. 그리고 그의 동료 수도사인 사하군은 이런 야만적인 이교도들을 정복한 것은 하나님이 내린 소명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림1). 이런 편견은 노예 무역이 성행하면서 더욱 고착됐다(그림2).

사실상 카리브 해의 외딴 섬에 기착한 콜럼버스를 비롯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 지역 원주민들로부터 이웃 부족, 즉 카리브족이 식인 풍습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기는 낯선 오지에서 쉽게 믿음으로 변했고, 이런 가운데 카리브족을 잘못 발음함으로써 카니발(cannibal), 즉 식인종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카리브 해에서 중앙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미 카리브 인디안 부족들의 식인 풍습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식인 풍습에 관한 자료는 공통적으로 목격되지 않은 기록에 불과하지만, 그 기술자들은 단지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양한 동기에서 사실로 취급한 듯하다. 아렌즈는 심지어 인류학자들이 보고한 뉴기니 고산 지역의 식인 풍습 자료에도 의문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단적으로 그는, 식인 풍습에 관한 한 실제로 목격하였다고 보고된 자료는 거의 없고, ‘그렇다고 하더라’ 또는 ‘그랬었다’ 또는 ‘그랬었다고 하더라’ 식의 자료만이 널려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식인 풍습으로 질병 감염돼

이처럼 식인 풍습에 관한 많은 기록들은 왜곡되거나 과장된 것인 듯하다. 그러나 과연 인류는 식인 행위를 극단적 상황에서 행했을지 몰라도, 일상적인 상황에서 관습적으로는 결코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우선 극단적 상황에서 인간이 식인 행위를 자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미 입증됐다. 고인류학적 자료는 식인 행위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 전에 비롯됐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베이징 원인(일종의 직립 원인)의 두개골 하단부가 크게 손상을 입은 것이나, 이탈리아 몬테 칠체오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하단부가 인위적으로 잘려나간 것은 식인 풍습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아프리카 남단 클라지즈강 유역의 동굴에서 발견된 현생 인류의 골격 파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식인 향연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됐다.

나아가 아렌즈의 주장은 식인 풍습에 관해 보고된 자료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거스르기에는 다소 취약한 듯하다. 무엇보다도 식인 풍습에 관한 기록은 이웃 부족을 통해서 알려진 자료일지라도 세계 도처에서 보고됐고 그 사례도 무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자료들은 식인 풍습을 객관적으로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뉴기니 고산 지대 동부 지역에 사는 후와족은(역시 식인 행위가 목격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다양한 음식 금기를 갖고 있었는데 그 중 어떤 것은 식인과 관련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후와족은 자신과 동성인 부모의 시신을 먹는데 동참해야 했고, 자기보다 아래 세대의 친족의 시신이나 피를 먹어서는 안됐다. 또한 포어족에서는 1960년대 ‘쿠루’라는 근육과 신경 마비로 죽는 질병이 창궐한 적이 있는데, 그 원인은 프리온에 의한 감염으로 규명됐다. 더욱이 병인론적 조사 결과 여성과 어린이들이 주로 감염됐고, 이는 그들이 주로 죽은 여자 친족의 골을 과거에 먹은데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식인 의례를 직접 목격하고, 필름에 담은 유일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페루와 브라질 접경에 사는 아마후아카족에서 죽은 어린이가 가매장됐는데, 일주일이 지나서 다시 화장된 후 그 아이의 모친이 그 뼈 가루를 옥수수 죽과 섞어서 먹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보고된 식인 풍습의 자료가 다분히 왜곡되거나 과장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류가 식인 행위를 자행했고 또 관습적 차원에서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전제 아래서 과연 인류의 식인 풍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식인 대상

우선 정신분석학자들은 식인 풍습이 인간의 어떤 선천적 충동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르면 식인 풍습이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일종의 아버지에 대한 애증적(愛憎的) 본능의 특이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즉 먹어버리고 싶을 만큼 사랑하면서,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이중적 감정의 타협점이 인간 제물의 식인 행위로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 종종 인간 제물을 의식 전에는 매우 극진하게 취급하지만 의식을 시작하면서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하고, 또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식인 풍습의 다양한 변이를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며, 그런 본능의 실재 또한 매우 모호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인간의 공격적 성향을 다른 동물, 특히 영장류와 비교할 때 식인 풍습은 호모 사피엔스 종 특유의 행태인 것으로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동종(同種)의 다른 성인 개체를 공격해 죽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주로 암놈의 발정기 때 수놈끼리 싸움이 벌어져도 그것은 자웅을 겨루는 것일 뿐, 한놈이 물러나면 승패가 갈리고 그것으로써 싸움은 끝난다. 그러나 점박이 하이에나, 사자, 늑대는 인간이나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동종의 성인 개체를 살해할 정도로 강한 폭력적 성향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간과 침팬지와 달리 의도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다른 무리를 결코 공격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과 침팬지 수놈들은 함께 다른 무리를 습격해서 동종 개체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런 인간과 침팬지의 공격적 행태는 다른 영장류의 경우 암놈이 무리에서 남고 수놈이 이동하는 성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수놈이 집단에 잔류하고 암놈이 무리 사이를 이동하는 성향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한편 침팬지는 집단 사냥을 해서 다른 영장류의 성인 개체를 나눠먹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그리고 동종의 새끼를 잡아먹는 일도 종종 있다. 사실상 동종의 새끼를 잡아먹는 행태는 동물계에서 널리 나타난다.

그렇지만 침팬지의 경우 다른 무리에 속하는 동종의 성인 개체를 죽이더라도 먹어치우는 일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인간은 동종의 유아뿐 아니라 성인까지도 먹어치우는 식인 행위를 자행해 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공격 성향은 침팬지의 그것과 엄연히 구분되는 셈이다. 또한 침팬지가 새끼를 먹는 경우 보통 수놈이 자행하는 것이지만 암놈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이는 종종 같은 무리에 속하는 새끼의 어미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강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 남녀는 다른 집단 성원뿐 아니라 자기 집단의 성원 중 유아나 성인을 구분하지 않고 식인 행위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는 점에서 또한 괄목할 만하다.

강한 금기도 위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인류 사회에서 식인에 대한 금기는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동종 개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인 혐오나 공포감으로 나타나며, 이는 근친상간의 경우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런 금기의 보편성은 어떤 본능적인 것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식인 행위가 본능적으로 혐오나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본능에 뿌리를 둔 아무리 강한 금기라도 인간은 그것을 위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성향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근친상간이 부분적으로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매년 발생하는 근친상간의 많은 사례들은 이러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식인에 대한 부정적인 본능이 존재할지라도 수많은 식인 행위나 풍습의 사례들은 인류의 역사에 점철돼 왔던 셈이다.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식인 금기가 인류 사회에서 100%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이 본능에서 비롯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할지도 모른다. 사실상 근친상간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경우(즉 근친상간을 사회적으로 허용한 경우)는 거의 없는 반면, 식인 행위는 도처에서 사회적 관습으로 발전했다는 점 또한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런 가능성을 옹호한 해리스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식인 행위는 영양학적으로 수요가 있는 지역에서 환경 적응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사회적 풍습으로 충분히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봤다. 이런 지역에서 식인 행위는 전혀 혐오감이나 공포를 유발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유물론적 관점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실제로 유물론적 관점은 식인 풍습의 지역적 변이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이론적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아즈텍 사회나 뉴기니 고산 지대에서 나타난 식인 풍습은 적절한 단백질을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야기됐다고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유물론은 뉴기니 고산 지대에서 국지적으로 충분한 단백질 공급원이 확보된 곳에서도 식인 풍습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욱이 인류 역사상 나타난 식인 행위나 풍습은 단순히 유물론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다양하다. 이런 점에서 식인 풍습의 다양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식인 풍습의 동기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일 듯하다.

다양한 믿음과 연계돼 나타나


오래 전에 신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쳤던 행위가 점차 다른 동물을 희생시키는 쪽으로 변형됐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추측에 불과할지 모른다.


아스케나시에 따르면 식인 풍습에는 매우 다양한 동기들이 연루되는 듯하다. 이미 식인 풍습의 영양학적 동기를 예시한 바 있다. 이 경우 심지어 인육이 식도락 차원에서 부위별로 매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식인 행위는 증오의 표현과 해소라는 단순한 심리적 동기에서 적을 대상으로 자행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많은 식인 풍습에는 특별한 믿음과 연계된 상징적 동기가 결부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식인은 용기와 힘, 성적 능력, 다양한 치료 효과, 주술력(呪術力)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때문에 자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병 환자가 어린애를 먹으면 치료될 수 있다거나, 어떤 효자가 어버이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살점을 베어낸 이야기가 전래되기도 했다.

식인 행위는 또한 종교적 의례를 포함해서 다양한 의식과 결부돼 행해지기도 했다. 아즈텍 사회와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이 뜨고 지는 주기를 반복하기 위해 인간 제물을 태양신에게 바쳐야 했는데, 여기서는 특히 태양이 떠오르면서 별들을 먹듯이 인간도 같은 인간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장례 의식에서는 가까운 친족 관계에 있는 고인의 영혼과 함께 한다는 믿음이나 그에 대한 애도 또는 존경심의 발로에서 그의 시신을 나눠먹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믿음은 종종 개인적으로 신봉될 경우, 식인 풍습이 아닌 정신 이상자에 의한 식인 행위로 규정될 것이다.

요컨대, 식인 풍습은 환경 여건과 다양한 종류의 믿음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인간의 어떤 본능적 거부감을 넘어서 인류 역사상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허구성에 대한 인간의 자성과 영양학적 환경 여건의 개선은 식인 행위가 더 이상 사회적 풍습으로 존속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식인 풍습은 과거지사로 남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믿음의 사회 집단적 부활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는 것을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순할지 모르는 식도락 차원의 동기 또한 언제라도 다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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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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