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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수의사는 동물치료 뿐 아니라 공중보건 우주개발계획에까지 참여한다.


건국대학교 수의학과 3학년 이원용학생


며칠 전 실험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데,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평소 글을 쓰는데 자신을 갖고 있던 터라 쾌히 청탁을 받아 들였다. 더구나 입학후부터 내가 지원해 공부하는 수의학을 업신여기거나, 뭘 아느냐, 그게 필요하냐는 등의 비아냥거림엔 치를 떨어온 터라 이 기회에 수의학과는 소의 직장(直腸)이나 더듬고, 광견병 예방주사 놓는 것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수의학과 건물에 들어서면 소독약으로 상징되는 '병원냄새'가 우선 코를 찌른다. 강의실에서는 말 개 염소의 골격과 포르말린(formalin)에 담긴 그것들의 장기를 볼 수 있다. 건물 주위엔 몇 마리의 개들과 말이 보이고 양도 보인다. 연구원들의 연구주제에 따라서 건물 안팎의 동물의 수와 종류는 시시각각 바뀌게 마련이다.

어떤 곳에서든 내가 약리학적인 또는 약간의 의학적인 내용의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수의학과 학생도 그런 것을 아느냐며 반문하기 일쑤다. 소련에서 최초로 대기권밖으로 우주선을 쏘았을 때, 선장은 '동물'이었다. 당연히 선장의 건강상태와 모든 변화를 생리학적인 데이터를 입수해서 분석한 것은 수의사였다. 현재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많은 수의사가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직책을 맡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은중독증으로 익히 알려진 일본의 미나마타병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그 지방의 수의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의학과 학생의 생리학 공중보건학 해부학 등의 책들이 인체의학을 배우는 의대생들의 것보다 더 두텁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공중보건학은 날로 강조돼

수의학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각각의 동물체는 저마다의 독특한 진화를 거쳤다. 이로 인한 그 종(species)간의 특수성과 변이(variation) 및 그들에게 발생하는 병적 상태를 원래의 건강한 상태로 바로 잡아주는 것이 수의학의 가장 기초적인 학습내용이다. 오늘날 수의학은 다른 기초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과목으로 분리돼 연구되고 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선진 후진을 가릴 것 없이 세계각국의 수의과 대학이 모두 6년이상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4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대학과정을 마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의 건강을 위해 봉사하려는 수의학도들에게 학문적인 아쉬움을 갖게하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수의사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곧 우리도 정상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수의학과에 들어와 배우게 되는 전공과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화학과 물리학은 모든 자연과학의 기초가 되므로 반드시 배우게 된다. 수의해부학에서는 동물체를 이루고 있는 각 부의 구조를 배운다. '상당히' 많은 수의 용어와 생김생김, 위치를 모조리 외워야하므로 가장 골치아픈 과목이지만 몰라서는 안되는 과목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로봇공학(robotics)에도 응용되는 분야다.

얼마전 소와 개에게 동맥으로 물을 주입해 도살한 일이 보도됐다. 이때 동물은 조직간 삼투압의 차이로 부종이 발생해 실제보다 살찐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해석을 이끌어 내는 것은 수의학과의 생리학이나 병리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생화학은 모든 생명체를 다루는 과학에서 하나의 실험적인 분야로 자리잡고 있는데 생리학에서 파생된 듯하다. 미생물학 면역학에서는 AIDS균등 전자현미경으로나 관찰이 가능한 작은 생물체의 생명유지 방식과 이들이 일으키는 질병을 배우게 된다. 첨단과학인 유전학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전공과목 중 공중보건학은 환경오염문제와 관련해 그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는 학문이다. 동물에서 옮을 수 있는 유행성출혈열류의 인수공통전염병이나 집단식중독, 콜레라등 고전적인 문제 뿐 아니라 식수오염, 대기환경보호에까지 눈을 돌리는 것이 오늘날의 공중보건학이다. 이렇게 방대한 연구영역을 보면 오늘날 식품의 위생검사를 수의사가 맡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약리학 독성학 기생충학 전염병학 어류병리 내과 외과 산과학 등이 중요과목으로 포함돼 있다.

빡빡하게 짜여진 시간표로 4년의 초단기간에 많은 과목들을 배우자면 때로 목이 조여오는 느낌이지만 날로 쌓여가는 지식에 즐겁기도 하다.
졸업 후 진로는 병원개업을 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수의사, 동물원의 수의사, 공중보건(위생) 수의사 등이지만 자신의 대학 4년을 어떤 식으로 지내느냐에 따라 거의 전 분야의 의·약학, 자연과학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다.

●- 의사보다 더 대접받는 수의사

핵가족화 돼가는 사회구조의 변화때문에 인간은 고독해지고 친구를 필요로 하게 된다. 동물은 사랑에 대해 보답하므로 인간과 가장 쉽게 친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동물은 나름대로의 질병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두 개체간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꼭 수의사가 필요하게 된다. 수의사는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동물애호가 보편화된 선진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수의사는 의사보다 더 돈을 많이 번다. 이 사실을 안 한국의 수의학도들이 이민을 가서 잘 산다는 말을 들으면 나자신도 솔깃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인생은 돈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인들의 말씀을 따라 내 나라에서 인류에 봉사하고자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대학문화는 유사(類似) 사회증을 나타내고 있다. 즉 진리탐구보다는 편한 것만 쫓으려는 기성 사회의 풍토에 편승하는 작태가 바로 그것이다.

모쪼록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학교 입학이 학업의 중단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정신의 시작임을 알았으면 싶다.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소주나 맥주에 취하는 것 보다는 더욱 맑은 마음을 만들지 않을까.

사랑을 잃는 것은 젊음을 잃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주인이 없거나 아파 끙끙거리는 동물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는 사람, 날로 병들어가는 지구를 위해, 인간의 생존을 위해 모든 정력을 쏟아 책장을 넘기며, 실험실에서 며칠이라도 밤을 샐 또랑또랑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꺼이 나의 후배로 맞고 싶다. 하지만 거기에 한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을 수 있는 여유와 헤르만 헤세의 '방랑'의 시심(詩心)을 가질 것!

도서관과 실험실을 피서지로 택하고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를 비비며 전철문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 것이 젊음과 상아탑의 진정한 꿈이 아닐까.

199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원용 3학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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