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새만금 간척사업이 다시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 사업을 잠정 중단하라는 집행정지 명령을 내렸다. 법원의 결정은 사업을 추진하던 정부의 반발로 이어져, 다음날 김영진 농림부 장관이 사퇴의사를 밝히고 결국 물러났다. 7월 18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새만금 사업을 전면 보완해 사업을 재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편 국회에서는 지난 5월 29일 1백47명(54%) 의원의 동의로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는 정책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국가를 이끄는 권력기관인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새만금 사업에 대해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 것처럼 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딜레마에 빠진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공방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최근 쟁점이 된 새만금 사업은 우리나라 남서부를 흐르는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류에서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 사업이 첨예한 문제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존재하는 엄청난 면적의 갯벌이 간척사업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바닷가면 으레 존재하는 질퍽한 땅으로 생각하기 쉬운 갯벌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이처럼 논란이 되는 것일까.
차곡차곡 쌓인 진흙층
갯벌이란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나 강가에 위치한 넓고 평평하게 생긴 땅을 말한다. 갯벌은 밀물 때는 물 속에 잠기지만 썰물 때는 드러난다는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벌뿐만 아니라 모래로 된 단단한 모래벌과 자갈로 된 자갈벌도 갯벌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갯벌의 총면적은 약 2천3백90km2로 전체 국토면적의 2.4% 정도를 차지한다. 갯벌은 남해안 지역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전체의 83%가 서해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서해안 바닷가를 둘러보면 갯벌이 흔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흔치 않은 경우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캐나다 동부 연안, 미국 동부 조지아 해안, 영국 독일 네덜란드의 북해 연안, 아마존 하구와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불린다고 한다.
서해안 지역에 갯벌이 많이 존재하는 이유는 갯벌의 생성 과정과 밀접히 연관된다. 갯벌을 구성하는 진흙이나 모래, 자갈은 강물을 타고 육지에서 떠내려온 것이다. 즉 갯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강물이 바다로 흐르면서 육지로부터 끊임없이 진흙, 모래 등을 날라와야 한다.
한강, 금강, 섬진강을 비롯해 우리 국토를 흐르는 강의 대부분은 서해안으로 흘러간다. 강이 바다와 만나면서 유속이 느려지기 때문에 퇴적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결국 이런 상황이 오랜 시간 계속되면 강 하구 주변에 넓은 갯벌이 형성되는 것이다.
서해안 갯벌 형성에는 우리나라 강뿐 아니라 중국의 황하나 양쯔강 등도 한몫 거들고 있다. 황하와 양쯔강은 1년에 15억t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흙을 서해에 공급하고 있다. 서해를 황해라 부르는 이유도 그만큼 바닷물이 미세한 진흙 물질을 많이 함유해 누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세한 진흙 입자는 진흙벌을 구성하는 성분이다.
갯벌은 강 하구 옆으로 제법 떨어진 곳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비교적 가벼운 진흙들이 바닷물에 실려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곳에 퇴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바닷물이 낮은 수위에서 높은 수위로 올라가는 시간이 내려가는 시간보다 짧다. 즉 바닷물이 빠른 속도로 몰려 들어왔다가 천천히 빠진다. 결국 바닷가로 운반돼 퇴적하는 물질의 양이 침식되는 양보다 많기 때문에 갯벌이 형성된다.
한편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 높이의 차이(조차)가 4-9m 정도로 크고, 경사도 완만하다. 또한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갖고 있으며, 육지로 움푹 들어간 만도 여럿 존재한다. 이 같은 자연환경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면서 바닷물이 해안가에 물질을 퇴적하기 최상인 조건이다. 파도도 강하게 일지 않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인 퇴적물층은 결국 넓은 갯벌로 성장한다.
하지만 갯벌이 만들어지는 기본적인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갯벌이 금방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퇴적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천혜의 조건을 가진 서해안의 넓은 갯벌은 8천년 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철새가 찾아오는 이유
한동안 갯벌은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새로운 육지를 만드는 일이 대다수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활발히 진행된 까닭이다. 그러나 갯벌이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하나씩 알려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우선 갯벌은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다.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항상 드나들면서 물질을 퇴적하기 때문에 유기물이 많이 존재한다. 유기물은 갯벌이 엄청난 수의 생물을 먹여 살릴 수 있도록 한다.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은 먹이사슬을 통해 다양한 생물들과 연관된다. 작은 플랑크톤에서 물고기, 조개, 게, 갯지렁이 등이 갯벌에서 사는 대표적인 생물들이다.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철새도 꼭 갯벌에 머문다. 그 까닭도 갯벌이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먹이를 섭취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편 갯벌은 흔히 자연의 콩팥이라고 불린다. 우리 몸 속에서 발생한 노폐물을 거르는 콩팥처럼 육지에서 발생한 각종 오염물질을 깨끗이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갯벌에서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일은 진흙이나 모래 속에서 사는 미생물이 담당한다. 미생물이 오염물질들을 해롭지 않은 물질로 분해하는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갯벌 1천m²는 하수처리장 1개의 처리능력과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자연정화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갯벌이 직접 인간에게 주는 혜택도 다양하다. 많은 어민들은 갯벌에 사는 어패류를 채취해 생계를 유지한다. 어패류나 김을 양식하는 경우도 갯벌이 적당하다. 갯벌은 낚시나 해수욕, 관광을 즐기는 장소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피부에 좋은 갯벌의 천연진흙 덕분에 머드축제가 성대히 펼쳐지기도 한다.
찬반 팽팽한 주장, 결론은?
지난 1991년 착공된 새만금 사업은 굴곡진 1백km의 해안선을 33km 길이의 직선 방조제로 바꾸는 간척사업이다. 그 결과 4만1백ha(헥타르, 1ha=1만m2)의 토지가 새로 생기는데, 여의도의 1백40배나 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현재 방조제 공사는 90% 가량이 진척됐으며, 지금까지 이 사업에 들어간 돈은 1조5천억원에 이른다.
새만금 사업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사업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중단은 오히려 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만금을 막아 만들어지는 담수호가 오염된다는 우려는 저감시설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새만금 사업을 통해 마련된 토지자원이 농지나 무역기지로 활용돼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킬 것이라 얘기한다.
새만금 사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농지를 확보하는 일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또한 부영양화로 인한 담수호의 수질오염은 시화호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서 오염저감시설을 갖춘다고 하지만, 그 비용도 상당해 경제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만금 사업이 가져올 결과뿐 아니라 갯벌 자체에 대한 논란 역시 일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갯벌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다. 사업 반대측에서는 갯벌을 간척하는 일은 돈을 들여 소중한 자원을 가치가 낮은 땅으로 만드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1997년 미국 메릴랜드대 코스탄자 교수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구 생태계 면적의 0.3%에 불과한 갯벌은 전체 생태계의 5%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구의 모든 호수와 강이 지닌 가치와 맞먹는다. 논문에서는 일반 갯벌의 가치를 1ha당 9천9백90달러로, 영양물질의 유입이 풍부한 강 하구에 위치한 갯벌을 2만2천8백32달러로 평가했다. 92달러로 평가된 농경지에 비해 1백-2백50배 정도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사업 찬성측에서는 갯벌의 가치가 과대평가된 반면 농경지는 과소평가됐다고 말한다. 서양에서 농경지는 밭인데 비해 동양에서는 주로 논으로, 논의 가치는 밭보다 훨씬 크다는 주장이다. 또 네이처의 논문 자체에도 농경지의 가치 관련 자료가 부족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는 점이 명기돼 있다고 말한다.
한편 갯벌이 방조제가 만들어진 후에 다시 생성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사업 찬성측에서는 방조제를 공사한 후 현재까지 34ha의 갯벌이 새로 생성됐다면서, 방조제가 완성된 후에도 갯벌이 점차 확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업 반대측에서는 이것이 방조제 바깥으로 흘러나간 토사 때문에 만들어진 일시적인 갯벌일 뿐이며 방조제가 완성되면 갯벌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갯벌이 계속 생성된다고 인정하더라도 사라지는 갯벌의 3%도 채 안된다고 말한다.
해양생태계의 보고로서 갯벌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한다. 그러나 그 갯벌이 얼만큼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을 보이고 있다. 서해안에 위치한 한 오래된 갯벌의 생사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의 결과는 이제 곧 우린 앞에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