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이라는 개념은 BC 420년경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가 처음 도입했다. 그는 만물은 더이상 쪼개질 수 없고 창조나 파괴될 수 없는 미립자인 원자로 구성돼 있고 이것이 무한한 진공 속에서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운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더이상 쪼개지지 않는 알갱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전 우주는 연속적인 물질로 차있으며 자연에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그후 그리스의 사상을 지배했으며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가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같은 생각은 갈릴레이의 조수로 일했던 이탈리아의 과학자 토리첼리에 의해 1644년에 와서야 수정됐다. 그는 약 1m 길이의 한쪽이 막힌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채운 후 마개를 막았다. 이를 수은이 담긴 그릇에 거꾸로 세운 후 그 안에서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수은주의 높이가 수은 표면으로부터 76cm의 높이에서 멈췄다. 토리첼리는 이 실험에서 수은주 위의 빈 공간이 진공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인류 최초로 인공적인 진공을 장시간 유지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토르(torr)라는 단위의 이름은 토리첼리의 이 업적을 기념해 붙여진 것이다. 1torr는 1mm 높이의 수은주 압력과 같다.
그후 1648년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토리첼리의 수은주 높이를 높은 산과 평지에서 측정하고 비교했다. 그 결과 산꼭대기에서는 수은주가 낮아지고 평지에서는 높아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하므로 그릇에 담긴 수은을 누르는 대기압이 낮아진다. 따라서 산꼭대기에서는 유리관 안의 수은이 평지에서보다 덜 밀려 올라갔던 것이다.
1654년경 독일 마그데브르그시의 시장이었던 괴리케는 지름이 약 40cm인 반구 두개를 구 모양으로 합쳐 진공을 만들었다. 이를 양쪽에서 8마리의 말이 잡아당겨도 분리되지 않음을 보였다. 진공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대기압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1905년부터 1915년에 걸쳐 독일의 게데가 유리용기와 수은을 이용해 진공펌프를 발명하면서 초기 진공기술 발전의 서막이 올랐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레이더에 사용되는 진공관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또 외부에서 진공장비 안으로 기체 분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헬륨을 이용해 측정하는 장비도 개발됐다.
1960년대 미국과 옛소련은 우주개발 분야에서 경쟁하기 위해 기초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스테인리스 진공용기가 만들어졌고 표면을 특수처리한 진공장비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그후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원리가 접목된 진공펌프들이 등장했다.
1975년 우주모의실험실을 위해 제작된 크라이오 펌프가개발된 이래로 진공기술은 반도체 산업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반도체 산업이 오히려 진공기술의 발전을 선도해가고 있는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