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공생시스템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원재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연구단이 하고 있는 일을 ‘쉽고 재밌게’ 얘기해 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인간이 균을 발견했던 역사부터 차근차근 얘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자연발생설에서는 고기가 썩어서 구더기가 생기면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라도 ‘자연적’으로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어린아이들도 세균의 존재를 알고 밖에 나갔다 오면 손을 씻지만, 세균을 볼 수 없었던 당시의 기술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연발생설은 파스퇴르의 실험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공기에 들어 있는 포자 때문에 세균이 번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거든요. 미생물을 거른 공기를 끓인 고기즙에 통과시켰더니 고기즙에서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미생물을 확인한 첫 번째 실험이에요.”
파스퇴르의 실험 이후 결핵균, 콜레라균, 유산균 등 세균과 미생물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균의 발견은 자연스럽게 면역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면역은 몸속에 세균이 들어오면 이를 알아채고 방어를 하는 과정이다. 우리 몸이 세균을 질병을 일으키는 ‘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온 존재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희한하게도 우리 몸속엔 세균과 더불어 살고 있는 곳이 있으니까요. 끊임없이 음식물이 유입되고 영양분이 흡수되는 곳이자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 최적의 장소. 바로 장이에요.”
이 교수는 “우리 장 속에는 100조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균이 살고 있지만 병에 걸리지 않는다”며 “이 중에는 좋은 균도 있고 나쁜 균도 더불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 많은 균들이 면역반응을 피해 몸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살모넬라 같이 설사나 염증 질환을 일으키는 유해균이 몸속에 있는 데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이 교수는 “이 많은 부분들이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내에서 공생(共生)하고 있는 미생물과 숙주의 면역계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연구단의 연구 목표”라고 설명했다.
유익균, 유해균 적절하게 분포해야 속 편해
의문점을 가진 연구단은 초파리의 장에서 미생물의 번식을 막는 일종의 항생제인 항균펩티드를 많이 분비하는 ‘슈퍼면역 초파리’를 만들었다. ‘코달(Caudal)’이라는 유전자는 항균펩티드를 만드는 유전자의 활동을 방해한다. 연구단은 코달의 발현을 억제해 항균펩티드가 많이 생성되면서 면역계가 세균들을 공격하도록 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강력한 면역계의 공격으로 세균의 총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이는 유익균이 크게 줄어 비롯된 결과였고 유해균은 오히려 늘어났다. 즉 유익균과 유해균의 분포비율이 크게 달라졌다. 초파리는 장에 심한 염증이 생겨 수명의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럼 초파리의 장에서 모든 세균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연구단은 모든 세균을 없애고 코달 유전자를 억제시켰다. 그랬더니 초파리는 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평균보다 몸이 20% 정도 작게 자랐다. 성체로 자라는 데도 일반 초파리보다 5일 정도 늦었다. 이를 두고 연구단은 “장에 염증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장 속 세균 분포의 질서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단순히 유전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얘기다.
연구 논문이 2008년 ‘사이언스’에 발표되자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의학계의 반응이 뜨거웠다. 의대 교수들은 ‘사이언스’ 해설논문에서 “이 교수팀의 실험이 정상적인 미생물 생태계가 유지되기만 해도 병을 일으키는 세균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계에서는 항생제를 복용하면 설사가 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특정 균을 죽이려고 항생제를 복용하지만 항생제는 장내에 존재하는 공생세균까지 공격해 버려 장내 면역계가 취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연구단은 장내 공생균 분포의 변화가 해로운 세균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싸우느냐 지키느냐 활성산소의 이중성
그럼 우리 몸은 외부에서 균이 들어오면 어떻게 균을 제거할까.
초파리에는 항체가 없지만 병균이 들어온다고 해서 금방 병에 걸리지 않는다. 항체를 대신해 균을 인식하고 공격하는 선천성 면역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선천성 면역과정은 사람에게서도 발견된다. 연구단은 초파리에서 선천성 면역과정을 일으키는 물질을 찾았다.
초파리의 장을 뽑아내 다각도로 실험을 진행하던 연구단은 2005년에 장의 면역물질이 활성산소라는 사실을 발견해 발생학 분야 국제저널인 ‘디벨롭멘탈 셀’ 1월호에 발표했다. 활성산소는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활성산소는 독성이 강한 물질로 체내 세포를 공격해 손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로 활성산소가 선천성 면역을 일으켜 외부의 균을 제거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음이 알려지게 됐다.
만약 유해균을 제거한 뒤에도 활성산소가 몸에 남아 체내에 쌓이면 만성염증을 일으키고 심하면 대장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일. 연구단은 역할이 끝난 활성산소는 카탈라아제(catalase)라는 효소가 제거한다는 사실까지 함께 규명했다. 카탈라아제는 인간에게서도 발견되는 효소다.
활성산소가 선천성 면역을 조절하는 물질임을 확인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한 연구단은 곧이어 활성산소를 분비시키는 물질이 듀옥스(DUOX)라는 세균증식억제효소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2005년 ‘사이언스’에 실렸다. 지난해에는 유해균을 인지한 세포가 PLCβ라는 단백질을 활성화시켜 칼슘을 분비하고 듀옥스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밝혀 ‘디벨롭멘탈 셀’ 3월 18일자에 발표했다.
놀랍게도 장세포가 유해균을 인지하고 활성산소를 생성하는 데까지는 수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항체를 만들어 면역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매우 빠르고 효과적인 메커니즘인 셈이다.
듀옥스는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분비돼 면역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알려져 있는 단백질 MAPK가 활성화될 때 듀옥스가 많이 분비된다. 하지만 공생균이 더 많은 평상시에는 MAPK의 억제자인 MKP3의 기능이 강해 무분별하게 듀옥스가 발현되는 것을 막고 있었다.
2009년 연구단은 이와 같이 장내 공생균이 활성산소로부터 보호받는 과정을 밝혀 면역학 분야 국제저널 ‘네이처 이뮤놀로지’ 8월 10일자에 발표했다.
공생균이 면역계 피하는 법은 여전히 오리무중
결국 장은 장내의 면역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유익균뿐 아니라 유해균까지 이용한다. 이들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덴 유전자와 효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장 기능은 멈춰 버릴 것이다. 여러 효소들이 시스템과 결합하도록 해 몇 단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은 장은 어찌 보면 얄미울 정도로 똑똑하게 면역계 시스템을 통제한다.
“태초부터 균하고 접촉해온 만큼 그에 맞게 적응하고 진화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해균까지 감싸 안는 장의 전략이 어떻게 보면 더 복잡한 고차원의 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장내세균을 또 하나의 장기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연구단은 장내 면역계를 안정화시키는 여러 메커니즘을 밝혀냈지만 아직도 연구할 분야가 많이 남아 있다. 왜 장 속에 공생균이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공생균은 장의 면역체계를 피하고 장에서 함께 살아가는지, 세균을 어떻게 인지해 선택적으로 반응하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은미 박사는 “이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장 질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건강한 삶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교수도 “장을 연구함으로써 인체, 좋은 균, 나쁜 균 이 세 가지를 둘러싼 독특한 세계를 파악해보고 싶다”며 앞으로 장내세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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