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가전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그동안 산업현장에서나 각광받던 로봇이 인간의 가정생활에서 알맞은 임무를 찾으면서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가정에 가장 먼저 도입돼 기대를 모으는 로봇 가전은 바로 청소기다.
로봇 청소기는 인간의 도움 없이 자동으로 바닥을 청소하는 로봇을 말한다. 로봇 청소기가 국내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올해 1월 스웨덴의 가전사 일렉트로룩스가 ‘트릴로바이트’를 시판하면서부터다. 트릴로바이트는 2백28만원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웃도는 판매실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4월 말부터는 국내의 한 홈쇼핑업체가 미국 아이로봇의 보급형 로봇 청소기 ‘룸바’를 들여와 판매하기 시작했다. 룸바는 54만8천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불과 한달만에 무려 1천여대가 팔려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7월부터 LG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로봇 청소기 ‘로보킹’이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인 전자동 청소를 실현하는 로보킹은 우리나라 최초로 상용화에 도전하는 로봇 가전의 선두주자라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로보킹은 정보통신의 날이었던 지난 4월 22일 언론에 처음 공개됐는데, 7월 중순부터 일반 가정에 배달되기 시작한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사는 시대를 여는 로봇 청소기를 만나보자.
가장 힘든 가사일은 청소
사람의 손발처럼 동작하는 기계로 정의되는 로봇.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자신의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에서 노예나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로보타’(robota)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지금까지 로봇은 어원처럼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힘든 노동을 수행하는데 주로 사용됐다.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로봇은 자신의 임무에 맡는 기괴한 모양을 하고서 프로그램에 따라 똑같은 작업만 되풀이한다. 산업용 로봇은 어려운 일을 도맡는 훌륭한 일꾼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함께 살 로봇으로는 적합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봇공학이 발전하면서 로봇은 인간과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을 담당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로봇이 인간의 파트너로 생활하기 위해 처음 선택한 일은 바로 청소다. 청소는 주거공간을 청결하게 보존하고 능률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정돈하는 일을 가리킨다. 가사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청소는 매일 해도 끝이 없는 일이다. 더욱이 위생이나 가족의 건강과 관련되니 미루면 안될 일이기도 하다.
우라나라 가정에서 평균적으로 청소에 투자하는 시간은 한달에 15시간 정도다. 청소를 하는 시간 동안에는 쉴새 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든다. 물론 강력한 흡수력을 이용해 먼지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귀찮은 청소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진공청소기 역시 청소하는 사람이 계속 매달려 있어야 하고 소음 때문에 밤늦은 시간에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맞벌이 부부라도 되면 퇴근 후나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청소에 매달려야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물론 청소를 대신할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를 별개로 하더라도 지저분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하니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꺼려진다. 로봇 청소기는 이런 난감한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청소면적과 시간을 계산해
현재 나와있는 로봇 청소기는 원통이나 반구 형태의 모양을 지닌다. 할리우드의 SF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처럼 인간의 모습을 갖춘 로봇이 청소하는 장면을 상상한 사람이라면 겉모습에 약간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청소를 담당할 로봇이 굳이 인간을 닮거나 두발로 걸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바퀴를 달고 있어야 미끄러져 다니면서 효율적으로 바닥을 청소할 수 있다.
로봇도 청소 도구로 진공청소기를 사용한다. 진공청소기는 모터가 고속으로 회전날개를 돌리면서 만들어지는 내부의 진공을 이용한다. 진공상태가 만들어지면 흡입구를 통해 공기가 밀려들어오면서 먼지가 함께 빨아들여지는 것이다. 빨아들인 먼지는 필터에서 걸러지고 공기는 배기구로 배출된다. 로봇 청소기에 달려있는 진공청소기는 일반적인 진공청소기와 큰 차이가 없다. 사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진공청소기를 어떻게 움직여 청소를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기 위해 움직일 장소는 안방이나 거실처럼 직사각형 형태의 공간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생활공간은 의외로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옷장, 테이블, 의자와 같은 다양한 가구가 배치돼 있고 짐이나 쿠션이 방 한가운데 놓여있을 수도 있다. 로봇 청소기를 위해 물건을 치워주지 않는 이상 옆으로 조금씩 움직이면서 왔다갔다 하는 방법으로는 청소를 할 수 없다.
로보킹의 경우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계산해 청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단 동작을 시키면 로보킹은 벽면을 따라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벽을 따라 방을 한바퀴 돌면서 청소할 장소의 면적과 모양을 가늠하고 청소할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다. 방을 한바퀴 돈 후부터 청소할 영역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계산한 특정 각도로 움직인다. 개발과정에서 수많은 반복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가장 효율적인 청소 알고리듬에 따라 움직임을 취하는 것이다.
박쥐처럼 장애물 피한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기 위해 방을 돌아다니다가 만약 가구에 부닥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고가의 가구나 로봇 청소기가 모두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봇 청소기는 다양한 장애물 감지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로보킹의 경우 장애물을 감지하기 위해 14개의 초음파 센서를 사용한다.
초음파는 주파수가 높고 파장이 짧기 때문에 아주 작은 물체에 부닥치더라도 상당히 강한 진동이 생긴다. 초음파를 비춘 후 그 반사파를 감지하면 물체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캄캄하고 복잡한 동굴에서 박쥐가 아무런 물체에 부딪치지 않고 날아다닐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초음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잠수함이나 물고기 무리의 움직임을 추적하는데 사용되는 소나(SONAR) 역시 초음파를 이용하는 장비다.
로봇 청소기가 장애물을 만나면 초음파 센서를 통해 입사각을 측정해 장애물의 구조를 파악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로봇 청소기가 움직일 이동 각도를 조정한다. 장애물의 구조에 따라 일정각도가 일정시간 동안 유지되도록 해 청소 영역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할 공간에 낭떠러지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거실이 현관이나 베란다로 바로 연결돼 있을 경우 로봇 청소기에게는 큰 위험요소가 된다. 별 높이가 아니더라도 로봇 청소기가 떨어져 파손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로보킹의 경우는 이런 낭떠러지를 인식하기 위해 4개의 적외선 센서를 갖고 있다.
흔히 적외선 센서는 열을 감지하는 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적외선을 쏜 후 반사되는 양을 측정하면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물론 바닥을 감지하는데도 적외선 대신 초음파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애물 감지와 바닥 감지에 모두 초음파를 사용하면 정보가 뒤섞여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로보킹은 반구형 꼭대기에도 4개의 적외선 센서를 장착하고 있다. 이 센서는 충전대에서 내보내는 적외선을 수신해 청소기의 위치를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청소를 끝마쳤거나 청소 도중이어도 전원이 부족할 때 로봇 청소기는 자동으로 충전대로 복귀해 충전을 한다.
10년내 컴퓨터처럼 보급될 전망
LG전자는 로보킹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3년 간 60여억원의 비용과 30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했다. 현재 65건의 특허를 출원중이고 35건을 추가로 출원할 계획이다. 놀라운 기능을 갖춘 만큼 가격도 가장 고가인 2백49만원이다. 하지만 로보킹은 트릴로바이트나 룸바와 비교했을 때 청소 성능이 뛰어나고 외출한 동안 청소하는 예약기능도 갖고 있다. 또한 리모컨으로 제어가 가능하고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청소할 수도 있어 고급 가전으로서 승산이 있다는 전망이다.
LG전자는 로보킹 개발에 만족하지 않고 벌써 차세대 청소기 개발을 진행중이다. 내년에 출시될 예정인 차세대 청소기는 청소기능이 향상되고 공기정화기능도 갖게 된다. 또한 휴대전화, PDA 등 모바일 기기나 개인용 컴퓨터와 연결시켜 집안의 동정을 살피는 보안기능을 갖춘 홈네트워크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LG전자와 라이벌인 삼성전자도 로봇 청소기의 상용화를 준비하는 중이다. 삼성전자의 로봇 청소기 ‘아이로보’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시판할 예정이다. 아이로보는 크루즈미사일이 지형을 판별하면서 장애물을 피해 날아가는 항법장치와 비슷한 기술이 적용돼 집안의 전체 모습을 감지하면서 청소를 한다.
벤처업체 한울로보틱스와 우리기술도 자체기술로 로봇 청소기 개발에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한울로보틱스의 ‘하누리’는 청소 기능 외에 집에 도둑이 침입하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등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휴대전화로 알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올해 하반기쯤 시장에 선보일 예정으로 가격은 3백만원 선이다.
우리기술의 보급형 로봇 청소기 ‘아이작’ 역시 청소 기능과 비상상황을 알려주는 방범 기능을 갖고 있다. 또한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며 e메일과 증권·날씨 등의 정보를 로봇의 가슴부위에 달린 화면창과 음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내년쯤 50만원대에 시판될 계획이다.
로봇 가전은 황금알을 낳는 거대한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 개인용 로봇 시장은 약 1백억달러 규모였다. 미국 액티버티 미디어 리서치사는 앞으로 5년 간 2천5백%나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년 후에는 자동차산업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 로봇 가전의 보급에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가격이 고가라는 점이다. 자칫 부유층의 과시성 상품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첨단제품과 마찬가지로 가격은 점점 저렴해질 것이다. 결국 현재 각 가정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있는 것처럼 불과 10-20년 후에는 모든 가정에 로봇이 보급돼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가 펼쳐질 전망이다.
로봇 가전에서 최초의 격전장이 된 로봇 청소기 분야에서 불뿜는 경쟁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전세계 백색가전 1위업체 일렉트로룩스가 로봇 청소기 판매를 시작하면서 미국, 유럽, 일본의 거대 가전사들은 제품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우리나라 가전사와 기술력을 갖춘 로봇전문 벤처들의 활약은 앞으로 더욱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