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2일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열연했던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이 사망했다. 그는 ‘은막의 신사’라고 불릴만큼 외모 못지않게 우아한 말솜씨와 점잖은 행동으로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은막’은 영화관의 스크린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배우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보면 종종 은막의 스타라는 말이 등장한다. 왜 스크린을 예전부터 은막이라고 표현했을까.
그 이유는 스크린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스크린에 실제로 은가루를 뿌려 만들었다고 한다. 스크린에 비춰지는 빛이 잘 반사돼 관객들이 밝고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반 종이보다 코팅된 종이에 빛을 비추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효과다. 요즘 영화관에 설치돼 있는 스크린에는 플라스틱 소재의 특수비닐과 같이 윤이 나는 재질이 사용된다. 은빛 스크린보다는 반사 효율이 떨어지지만 영화를 볼 때 눈이 훨씬 덜 피로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영화관 내부는 온통 깜깜하다. 상영이 끝나고 조명이 켜지면 그제서야 밝아진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영화관을 빠져나가기 바쁘다. 올여름에는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관 곳곳을 눈여겨보자. 그 안에도 아기자기한 과학이 숨어있다.
영사기 따라 삐딱하게 누운 스크린
초등학생 친구 두명이 함께 영화관에 왔다. 한 친구가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스크린 안에서 배우들이 진짜 말하는 것처럼 들려. 소리가 앞에서 나오나봐.”
“그런데 스피커는 영화관 옆쪽이랑 뒤쪽 벽에 걸려 있잖아.”
영화관에서 스크린 뒤를 본 적이 있는가. 벽과 스크린 사이가 1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공간의 위쪽에 스피커가 여러대 설치돼 있다. 스크린 속에서 배우들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유다.
그런데 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관객에게 어떻게 들리는 것일까. 스크린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난감한 노릇이다. 스크린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해보자. 희한하게도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많이 뚫려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 구멍을 통과해 객석까지 전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효과도 있다. 극장 뒤쪽에 설치된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은 스크린에 닿아 반사된다. 스크린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바로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이다. 빛이 잘 반사될수록 밝고 선명한 영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크린에 구멍이 뚫려있으면 빛이 반사되는 효율이 떨어진다.
따라서 소리가 잘 전달되면서 빛의 반사를 막지 않을 정도로 구멍을 뚫어야 한다. 관건은 구멍의 지름과 간격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멍의 지름은 1-1.5mm이고, 구멍 사이의 간격은 4-6mm라고 한다.
스크린의 전체 모양도 생각과 다르다. 스크린을 위쪽에서 내려다본다면 가운데가 오목하게 휘어있음을 알 수 있다. 교실에서 평평한 칠판 양옆에 쓰여있는 글씨는 교실 양끝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가 오목하고 양옆이 튀어나온 칠판이 설치돼 있는 교실에서는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학생이 적다. 극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이 평평하다면 양쪽 옆자리에 앉은 관객들은 화면의 좌우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가운데가 오목한 스크린을 설치하는 것이다.
또 스크린을 좀더 자세히 살펴본 관객이라면 스크린이 반듯하게 서있지 않고 뒤로 약간 비스듬하게 누워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객석에 앉아서 스크린 반대쪽을 돌아보면 작은 영사창이 보인다. 영사창 바로 뒤에는 영화 필름을 돌려 영상을 내보내는 영사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사기가 있는 영사실은 가장 뒤쪽 객석보다 높게 위치한다. 따라서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이 아래쪽으로 직진할 수 있도록 영사기 자체는 약간 기울어져 있다. 스크린이 똑바로 서있다면 위쪽에서 쏘는 빛을 받았을 때 아래쪽이 넓은 사다리꼴 화면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스크린도 영사기처럼 비스듬하게 설치한다.
그리고 영사창 자체도 가까이에서 보면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창의 가운데 부분을 제외한 둘레에 액자처럼 색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사기에서 빛이 나오면 가운데 부분으로 화면이 투사된다. 색칠된 부분으로 쏘아진 빛이 반사돼 영사기에서 빛이 나오는 곳으로 되돌아가면 화면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색칠된 부분에서 반사된 빛이 영사기의 아랫부분으로 향하도록 영사창을 비스듬히 설치한다. 영사기, 영사창, 스크린이 제각각 기울어져 있는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스크린도 사람처럼 수명이 있다. 처음 설치된 후부터 5-7년 정도 지나면 먼지가 많이 붙고 색상이 누렇게 바랜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스크린을 청소하고 밝기를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영사실 업무 중 하나다.
렌즈는 필름과 스크린 중재자
최근에는 한층에 영화관이 여러개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이나 여러층에 걸쳐 영화관이 있는 복합상영관이 많이 생겼다. 상영관이 많으면 영사실 수도 많을 것 같지만 보통 영사실은 하나다. 영사실 안에는 상영관 수만큼의 영사기가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다. 마치 대형 영화공장 같다.
영사기 안에서는 고용량의 램프가 빛을 낸다. 스크린의 크기에 따라 1천-7천W급의 램프가 사용된다. 백열전구 하나가 1백W이므로 최소한 백열전구 10개 이상이 모여야 영사기의 램프만큼 밝아질 수 있다. 램프에서 발생하는 열 또한 대단하다. 영사기 위쪽에는 모두 커다란 배기구가 달려있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발생하는 열을 방출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사용됐던 영사기는 탄소봉을 태워 빛을 냈기 때문에 필름이 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영사기의 램프는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다. 이 기간을 넘게 사용하면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이 어두워진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영화관에 따라 화면의 밝기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영사기 램프의 규정 시간을 지키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램프에서 나온 빛은 집광거울에 모아져 필름을 통과한다. 필름에 담겨 있는 화면은 가로와 세로 비율이 1.33:1이다. 이 필름을 지난 빛을 영사기 렌즈에 통과시키고 스크린에 비춰 영화를 상영한다. 그런데 텔레비전 화면도 1.33:1의 비율로 처음 만들어졌다. 따라서 스크린을 이 화면비율 그대로 만들면 텔레비전을 보는 느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광활한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스크린을 1.85:1 비율로 넓혔다. 또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나 초원이 무대인 영화는 가로가 더 넓은 2.35:1 스크린용으로 제작된다. 영화를 촬영할 때 각 스크린의 가로세로 비율에 맞는 카메라 렌즈가 별도로 사용돼 영상이 필름에 기록된다.
만일 1.85:1 스크린용 카메라 장비를 가진 영화감독이 2.35:1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담아내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면 양쪽 옆이 비거나, 위아래가 넘치는 화면이 보일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묘책이 애너모픽(anamorphic) 렌즈다. 1.85:1 카메라에 이 특수 렌즈를 달고 사람을 촬영하면 필름에는 실제보다 홀쭉해진 모습이 찍힌다. 이를 또다른 애너모픽 렌즈가 달린 영사기로 비추면 같은 키에 적절하게 ‘퍼진’ 원래의 사람 모습이 나타난다. 즉 촬영할 때는 화면을 좌우로 압축했지만 상영할 때는 화면을 좌우로 늘리는 것이다. 따라서 필름에 담긴 영상이 가로로 늘어나 관객은 정상적인 화면을 보게 된다.
필름은 릴(reel)에 장착한다. 릴 한대는 최대 약 2시간 짜리 영화까지 상영할 수 있다. 따라서 상영시간이 이보다 길 경우 두대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커다란 CD를 포개놓은 것처럼 생긴 플래터(flatter)가 만들어졌다. 플래터 한판에는 최대 4시간 30분짜리 영화 필름이 장착될 수 있다. 플래터는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영화를 여러 관에서 상영하는 멀티플렉스에서 유용하다. 맨위 판에서 필름이 나오고 상영된 필름은 중간 판에서 감기며 맨아래 판에서 다시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이를 이용하면 보통 필름 2개로 6개 영화관에서 상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영화 필름에는 영상뿐만 아니라 사운드트랙, 즉 소리도 들어있다. 영사기에서 필름이 돌아갈 수 있도록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일반 사진 필름의 모양과 비슷하다. 그런데 필름 양쪽 가장자리에 영화의 음향이 저장돼 있다. 아날로그 음향을 디지털 신호로 변화시킨 다음 레이저를 이용해 필름 사이에 기록한다. 아날로그 CD롬에 디지털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은 필름이 돌아갈 때 영상뿐만 아니라 음향신호도 읽어낸다.
이것이 1992년 돌비 연구소가 발표한 돌비디지털(Dolby Digital) 음향형식이다. 돌비디지털은 영화 ‘배트맨2’에 최초로 영화관에 적용된 후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영화관에서 돌비디지털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화라도 영화관마다 음향효과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1993년 탄생한 DTS(Digital Theater Systems)는 돌비디지털과 달리 필름이 아닌 CD롬에 음향을 저장한다. 필름에는 CD롬의 음향이 영화 상영 중 어느 시간에 나와야 하는지만 기록한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처음 적용된 이 형식은 돌비디지털보다 음질이 좋아 영화 마니아층에게 특히 인기를 끌었다.
음향은 주파수별로 개별행동
필름이나 CD롬에 디지털 신호로 저장된 음향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아날로그 신호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주는 기기가 디지털시네마프로세서다. 각 음향형식마다 다른 시네마프로세서를 사용한다. 디지털시스템컨트롤러가 아날로그 신호로 바뀐 음향을 주파수별로 분리한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메가박스 영화관의 장영욱 영사실장은 “주파수별로 소리를 분리하는 것이 영화관의 음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1.5kHz 이상의 고음, 1.5kHz-3백Hz의 중음, 3백Hz 미만의 저음으로 음향을 분리하면 더 생생한 음향효과를 낼 수 있다. 즉 심벌즈가 내는 높은 소리, 피아노의 중간 음, 베이스 기타가 내는 낮은 소리가 각각 다른 스피커에서 나와 섞여 들리는 것이다.
한편 중앙스피커 아래쪽에는 20-1백25Hz 정도로 매우 낮은 저음을 내는 서브우퍼가 있다. 거대한 행성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탱크가 지나가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이때 낮지만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바로 이것이 서브우퍼의 효과다. 저음은 고음에 비해 파장이 길어 비교적 멀리까지 나간다. 따라서 앞쪽에만 서브우퍼가 있어도 저음은 객석 뒤쪽에 앉은 관객에게까지 들리고 가끔 영화관 밖에서도 낮게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분리된 소리는 각각 고·중·저음을 증폭하는 앰프를 통과해 스피커에서 출력된다. 스크린 뒤에 설치돼 있는 세대의 스피커는 각각이 세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가장 위쪽 스피커가 고음을 출력하고 가장 아래쪽 스피커가 저음을 출력한다. 왜 이런 순서로 배치됐을까. 파장이 짧은 고음은 중간에 장애물을 만나면 파장이 길어지거나 방향이 바뀌어 객석 뒤쪽에 앉은 관객에게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고음 스피커를 맨위에 위치시켜야 소리가 좀더 멀리까지 전달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영화관은 이렇게 3가지로 음향을 분리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대부분 고음과 저음의 2가지로 음향을 분리한다고 한다.스크린 뒤에 설치된 세대의 스피커 말고도 양쪽 벽면에 스피커가 걸려있다. 이렇게 5가지 방향에서 음향이 나오면 5채널 방식이다. 5개 채널에 서브우퍼를 더해 5.1채널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영화관 뒤쪽 벽에도 스피커를 설치하면 6채널이 된다. 또는 스크린 뒤에 스피커를 더 설치해 7개 채널을 만들기도 한다.
엄청난 폭발음이나 고성이 난무한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의 여러 관에서 동시에 상영된다.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닐지라도 각 관에서 나오는 소리가 서로 뒤섞인다면 곤란하다. 멀티플렉스의 경우 관과 관 사이가 멀수록 방음효과가 크다. 하지만 영화관 사이의 간격이 넓으면 그 자리만큼 객석을 놓을 수 없으므로 영화관 입장에서는 손해다. 영화관의 벽은 6-7중으로 구성해 소리를 차단한다. 극장 시설 컨설팅 회사 (주)준키노의 권준기 대표이사는 “통과할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가 다른 다양한 자재를 여러겹 붙이면 방음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래 영화관 디지털시네마
예전에는 한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난 필름을 들고 다른 영화관으로 뛰어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필름이 필요없는 미래형 영화관이 바로 디지털시네마 즉 DLP(Digital Light Processing)시네마다. 집에서 DVD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가 이를 구현하는 기술의 독점권을 갖고 있다.
촬영할 때부터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된 영화를 디지털시네마 영화관마다 설치된 서버에 저장한다. 이 서버를 DLP 영사기와 연결하면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 또는 서버 대신 별도의 위성안테나로 전송해 각 극장으로 영화를 보내는 방식도 있다. 1999년 개봉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은 이와 같은 서버저장식과 위성중계식 디지털시네마에서 각각 시험상영에 성공한 바 있다. 그후 슈렉, 버티칼 리미트, 퍼펙트 스톰, 아이스 에이지를 비롯해 20여편이 디지털시네마 방식으로 상영됐다.
그런데 디지털시네마에서 사용될 영사기의 가격은 필름 영사기의 최소 5배 이상이다. 또 디지털로 제작되는 영화도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것보다 저렴해 점차 디지털방식이 필름을 밀어내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미 미국에 80개관, 유럽에 15개관이 있으며 중국과 일본에도 각각 13, 16개관이있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없다. 디지털방식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필름보다 깨끗하고 선명하다. 머지않아 영화 필름을 영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