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투, 원, 제로, 발사! 굉장한 폭발음과 함께 로켓이 연료를 내뿜으며 하늘 위로 솟구친다. 누구나 텔레비전에서 한번쯤 봤음직한 장면이다. 로켓을 발사하는데는 막대한 비용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로켓이 사소한 실수로 발사되자마자 추락해버린다면?
이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실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를 고려해 먼저 가상 환경에서 로켓을 발사해봐야 한다. 이때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컴퓨터로 재현해내는 분야가 바로 전산응용역학이다. KAIST 기계공학과 윤성기 교수가 이끄는 전산응용역학 연구실에서는 기계나 구조물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예측해 최적의 성능을 나타내려면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알아낸다.
프린터에서 로켓까지 다양한 연구
로켓에는 비행할 때 필요한 연료를 담는 연료탱크가 있다. 처음 로켓이 발사될 때 가속도가 매우 크므로 연료탱크는 힘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연료탱크 내부에 보강재를 넣어 찌그러지지 않도록 한다. 내부보강재는 힘에 효과적으로 견딜 수 있으면서 가벼워야한다. 내부보강재의 재료나 모양을 다양하게 적용해 컴퓨터에서 가상으로 로켓을 발사해보면 가장 적절한 경우를 찾아낼 수 있다.
또한 로켓의 연료는 액체다. 비행하는 동안 액체 연료가 출렁거리기 때문에 로켓은 원하지 않는 힘을 받는다. 출렁임이 심하면 로켓이 똑바로 비행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출렁임을 최대한 억제하고 힘을 가장 적게 받는 자세로 비행해야 한다. 연구실에서는 연료가 출렁거릴 때마다 로켓의 어느 부분이 얼마만큼 힘을 받는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연구를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함께 수행했다.
로켓 이외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계들도 이런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자동차 타이어는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 만든다. 타이어 내부의 재료 분자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나면 열이 발생해 온도가 증가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온도 분포를 알아내면 타이어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좀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컴퓨터의 내부를 설계할 때도 예외가 아니다. 하드디스크안에는데이터를읽거나쓰는장치인헤드가있다. 이 헤드가 디스크 중 원하는 부분으로 옮겨지면서 각종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저장 되는것이다. 정확한 위치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헤드의 형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위상최적설계기법을 이용해 찾아냈다.
컴퓨터 주변기기인 프린터의 내부도 살펴보자. 잉크를 담아둔 용기를 순간적으로 가열하면 잉크에서 방울이 생긴다. 이로 인해 안에 있던 잉크가 노즐을 통해 밖으로 분사돼 나오는 것이 잉크젯프린터의 작동원리다. 만약 용기를 가열하는 마이크로히터를 잘못 설계하면 잉크가 똑바로 분사되지 않으므로 프린터의 성능이 떨어진다. 연구실에서는 프린터가 최적의 성능을 나타낼 수 있는 마이크로히터의 형상을 찾는 연구를 국내 대기업에서 위탁받아 진행한 바 있다.
드러나진 않지만 필수적인 연구
최근 반도체 칩 제작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를 응용해 아주 작은 크기로 전기적∙기계적 역할을 수행하는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을 만드는 연구가 활발하다. 연구실에서는 여러가지 물리적 현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어떤 현상을 보고 이론적인 모델을 구성하기 위해 물리학적 지식이 요구된다. 또 이 모델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수학적으로 나타내야 한다. 이를 컴퓨터로 재현하려면 프로그래밍 기술도 필수다. 결과를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디스플레이 기법 또한 중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들이 서로 융합하는 공학 분야의 전체적인 동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 교수는 최근 구조물을 스케일별로 시뮬레이션하는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어떤 구조물의 실제 크기와 그 구조물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 크기에서는 물리적 현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미세한 스케일에서 설계한 결과를 실제 크기에 적용하면 많은 차이가 생기는 이유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나노소재기술의 응용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다.
윤 교수는“전산응용역학은 그 성과가 크게 드러나는 독자적인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한 제품을 설계하는데도 여러 분야의 기술이 접목되면서 점점 꼭 필요한 연구가 되고 있다”며 강한 자부심을 표현한다.
윤 교수는 중국인 박사후 연구원과 11명의 박사과정, 3명의 석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오늘도 밤늦도록 연구실의 불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