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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는 원자력특공대 vs 산소

외계인 침공 인공번개로 물리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한 이기자. 연신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보도자료를 뒤적이다가 과학연극이라는 문구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자세히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매드프로덕션의 '지구를 지키는 원자력특공대'와 극단 모아의 '산소'를 기사로 다뤄보리라 마음먹는다.

#1. 어린이 위한, 어른 위한 과학연극

이기자 : (수화기를 들고) 안녕하세요. 이기잡니다. 김수아 연출가죠? 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공연되는 ‘지구를 지키는 원자력특공대’에 관한 질문 몇가지만 드리겠습니다. 연출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까? 각색요? 아무래도 캐나다 매드사이언스 본사의 내용을 그대로 수입해오다 보니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에 맞게 각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교육연극요?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내용을 연극으로 재미있게 풀었다, 그 말씀이시죠? 대상이 어린이군요. 그렇다면 다른 어린이극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겁니까? 연극을 관람하는 어린이들이 직접 연극에 참여해서 실험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셨군요. 과학을 주제로 한 교육연극이 흔한가요? 그렇진 않군요. 영국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연극이 정착된 상태라고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매드프로덕션이 아직까지는 유일한 과학연극 전문단체이고, 학교에서는 차츰 연극을 수업에 활용하는 추세군요. 질문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기자 : (다시 김광보 연출가에게 전화를 걸어) 안녕하세요. 이기잡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산소’에 관한 질문 몇 가지만 하겠습니다. 산소 연극의 주대상은 누구인가요? 일반인요. 원작자인 칼 제라시는 경구용 피임약을 개발한 인물이고, 로알드 호프만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인데요, 과학자가 쓴 희곡이라 다른 희곡과 차이점은 없었나요? (웃으며) 처음에 희곡을 받았을 땐 마치 과학논문 같았단 말이죠. 수많은 과학자 이름과 과학용어들이 낯설었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렇다면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일반인들이 과학으로 야기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만들자, 그런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교육연극인 셈이군요. 과학지식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과학의 윤리, 도덕적 문제를 전달하는 교육연극이군요. 나머지 질문들은 직접 뵙고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 가상 실험실에 간 이기자

전화를 끊은 이기자는 책을 뒤적이다가 두 연출가가 언급한 교육연극이 영국에서는 16세기부터 발전해왔으며 연극을 교육적 효과와 윤리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특히 1967년에 설립된 영국의 ‘분자’극단은 과학연극 전문극단으로 7-12세 학생들에게 과학연극을 통해 과학지식을 전달하고 즐거움도 선사하면서 과학교육에 힘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시 후 이기자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깐 책상에 엎드린다.

이기자 : (눈을 번쩍 뜬 후 어리둥절해하며) 아니, 여기가 어디지? 난 분명히 과학동아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놀란 목소리로) 당신은 누구시죠?

프루빗 : (역시 놀란 듯) 전 날씨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천재 날씨 교수 프루빗이라고 해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죠?

이기자: (머뭇거리며) 네… 저는 한국의 동아사이언스 이기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긴 어딘가요?

프루빗 : 여기는 제 실험실이예요. 지금 외계인이 지구의 날씨를 마음대로 조작해서 지구를 공격하고 있어요. (실험 기계 쪽으로 다가가며) 한가하게 당신과 얘기할 때가 아니에요. 지구를 구해야 한다구요. (이 때 누군가 부산스럽게 들어온다.)

크래시 : 증발~, 응결~, 구름~, 비! 증발~, 응결~. (프루빗을 보더니 큰 목소리로) 아,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이기자를 발견하고는 놀라며) 아니 당신은 누구세요? 설마…. (프루빗 쪽을 바라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지금 지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그 외계인을 교수님이 벌써 잡은 거로군요. 하핫, 정말 대단해요.

프루빗 :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분은 한국의 동아사이언스에서 오신 이기자라고 해요. (다급하게) 크래시, 지금 이렇게 늑장부릴 틈이 없어요. (이기자를 보며) 마침 잘 됐군요. 당신도 과학을 아는 것 같으니 우리들과 함께 지구를 지키는 일을 도와주세요.

이기자 : (흥미를 느낀 듯) 네, 그러죠.

#3. 적란운 작전

(온도계 바늘이 빠르게 움직이며 실험실 전체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프루빗 : (당황하며) 어쩌지? 지금 당장 기계들을 작동시켜야겠군. (크래시를 보며) 어서 구름 머신의 스위치를 눌러요. (구름 머신 옆에 놓인 공기 펌프를 가리키며) 이기자님은 여기 공기 펌프를 잡아당겨 주세요.

이기자 : (공기 펌프를 조금씩 잡아당기자 투명 유리관 속에 구름이 생성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프루빗 교수님, 이 정도면 됐나요?

프루빗 : 좀더 하세요. 유리관 안에 있는 공기의 부피가 팽창해서 온도가 충분히 떨어져야 해요.

이기자 : (고개를 끄덕이며) 네. 유리관 안의 수증기가 응결되도록 해야 하죠?

크래시 : (놀란 듯) 아니, 이기자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기분 상한 듯 혼자 말로) 흥, 프루빗 교수의 조수인 나보다 더 똑똑할 리가 없을 텐데.

이기자 : (크래시의 말은 듣지 못하고 계속 펌프질을 하면서 프루빗을 향해) 교수님, 어떤 구름을 만들어야 하죠? 적운형 구름인가요, 아니면 층운형 구름인가요?

프루빗 우린 적운형 구름인 적란운을 만들어야 해요. 적란운은 천둥, 번개나 강한 소나기를 동반하기 때문에 외계인을 물리치는데 효과적일 거예요.

크래시 :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교수님, 만들어졌어요! 적란운이 만들어졌다구요. (얘기를 하던 프루빗과 이기자도 기쁜 표정으로 바라본다.) (큰 소리로) 증발~, 응결~, 구름~, 비! 제 말이 맞죠? (신나서) 지금쯤 외계인은 비 맞느라 정신이 없을 거예요.

#4. 토네이도 맛 좀 봐라

(적란운 작전이 성공적이었는지 확인하던 프루빗 교수는 외계인이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 작전을 지시한다.)

프루빗 : (고심하며) 외계인이 적란운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면 더 강력한 것이 필요해. 크래시! 토네이도 머신을 작동시켜요.

이기자 : (토네이도 머신 앞으로 가서) 적란운을 만들었으니 적란운의 하층에서 토네이도를 만들면 되겠군요.

프루빗 :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토네이도는 적란운의 하층에서 깔대기 구름이 만들어져 매우 강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이동하죠. 우리는 지름 2백m, 시속 2백50km 가량 되는 토네이도를 만들어 외계인을 공격합시다. 자, 이기자님, 버튼을 눌러주세요.

크래시 : (분해하며) 외계인, 이번엔 어림도 없다. 토네이도로 날려버릴 테니. (갑자기 큰 소리로) 잠깐만요, 이기자님, 잠깐요! 교수님, 우린 한번도 이 토네이도 기계를 시험해본 적이 없잖아요. 제대로 작동할까요?

이기자 :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하며) 적란운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졌으니 토네이도도 문제없을 거예요. 한번 해보죠. (프루빗과 크래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크래시 : (잠시 후) 우왓! 토네이도예요. 교수님, 성공이예요, 성공! 하핫, 역시 교수님과 전 날씨를 다루는 천재 커플이라구요. 외계인, 이녀석, 이젠 꼼짝 못하겠지?

#5. 인공 번개를 만들어라

프루빗 : (토네이도가 외계인을 물리쳤는지 확인하던 프루빗이 절망한 목소리로) 이번에도 틀렸어, 틀렸다구. 외계인 녀석의 화만 더 돋궜을 뿐이야. 지금 지구에 최후의 공격을 가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어.

크래시 : (눈이 동그래져서 실험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떡하죠? 어떡해요. 교수님, 지구가 폭발하는 건가요? 우리도 죽는 거냐구요?

이기자 : (크래시를 보며) 크래시, 진정해요. (프루빗을 향해) 교수님, 혹시 최후의 보루로 쓸만한 다른 기계는 없습니까?

프루빗 : (결심한 듯) 좋아요. 우리 테슬라 코일을 사용합시다.

크래시 : 테슬라 코일? 그게 뭐죠?

이기자 : 제가 설명해 드릴께요. 테슬라 코일은 과학자 테슬라의 이름을 따서 지은 명칭이랍니다. 그는 1891년 고압 전원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자 코일을 발명했는데, 이것이 일명 테슬라 코일이라고 불리죠. 당시에는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최초로 인공 번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아…, 테슬라 코일로 인공 번개를 만들면 외계인을 물리칠 수 있겠는데요.

크래시 : (혼자말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쳇, 아는 것도 많으셔. (이기자가 틀리기를 바란다는 말투로) 교수님, 이기자님 얘기가 사실인가요?

프루빗 : 그래요. 자, 지금은 1분 1초가 급하니 어서 테슬라 코일로 번개를 만들어 외계인을 혼내줍시다. 이기자님, 버튼을 눌러 주세요.

이기자 : 네.
(몇초 후 큰 소리와 함께 보라색의 번개가 만들어진다)

크래시 : (의자 밑에 숨으며 소리를 지른다) 으악, 교수님, 무서워요. 실험실이 무너질 것 같아요.

프루빗 : 크래쉬, 진정해요. (기쁜 목소리로) 외계인이 물러갔어요. 우리가 이겼어요.

이기자 : (흥분해서) 교수님, 정말 대단한 기계를 발명하셨군요.

#6. 마담 라부와지에와 만나다

(갑자기 번개 소리가 한번 더 들리더니 이기자와 함께 있던 프루빗 교수와 크래시, 그리고 기상 실험실은 온데간데없고, 재판석을 지켜보고 있는 한 여인이 옆에 앉아 있다.)

마리 폴리 : (놀란 기색을 감추며) 아니, 당신은 누구시죠?

이기자 :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저, 프루빗 교수와 크래시는 어디 있습니까?

마리 폴리 : 프루… 빗? 크래시요? (기가 막힌 듯) 그런 사람들은 여기 없답니다.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세요. 이곳에서는 지금 제 남편인 라부아지에와 프리스틀리씨, 그리고 셸레씨 중 누가 최초로 산소를 발견했는가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어요.

이기자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 셸레? 그럼, 지금이 1777년 ? 2차 세계대전 중에 미 해군이 테슬라 코일로 순간 이동 실험을 했다고 하더니 내가 설마 ? 당신의 말이 맞다면, 당신은 그 유명한 마담 라부아지에? (갑자기 무릎을 치며 소리내어) 맞아요. 뉴욕 센트랄 파크의 한쪽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라부아지에와 그의 부인’이란 제목으로 걸린 당신과 라부아지에의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마리 폴리 : 그런 이상한 말 대신 재판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얘기해보세요. 당신은 물론 제 남편 라부아지에가 최초의 산소 발견자라고 생각하시겠죠?

이기자 : (머뭇거리며) 라부아지에는 화학혁명의 장본인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산소가 물질과 결합해야 연소된다는 사실도 그가 알아냈죠. 당시 통용되던 플로지스톤설을 반박한 것이었어요. 플로지스톤설은 물질에서 어떤 기체가 빠져나가는 것이 연소라고 했으니 라부아지에는 정반대의 이론을 주장한 셈이었죠.

마리 폴리 : (만족스러운 듯)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이기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런데 당신은 제 남편에 대해서 어쩜 그렇게 잘 아시죠?

이기자 : 네, 저는 21세기 한국에서 온 사람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백년 쯤 후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죠. 라부아지에는 화학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답니다.

마리 폴리 : (갸우뚱하며)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두죠. 어쨌든 당신이 제 남편을 칭찬해주니 기분은 좋군요.

#7. 누가 최초인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기자는 마담 라부아지에에게서 더 자세한 내막을 듣기로 결심한다.)

이기자 : 저… 괜찮다면 어떻게 해서 이 재판이 열리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마리 폴리 :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요. 제가 얘기해드리죠. (이기자 옆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당신도 여성이니 내 심정을 이해할거예요. 사실 제 남편 라부아지에의 실험은 제가 모두 도와줬답니다. 제가 비서이자 조수였다고나 할까요. 남편이 실험한 결과는 제가 모두 기록했고,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죠.

이기자 : 역시 듣던 대로군요. 당신은 라부아지에의 공동연구자였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당신이 실험 도구를 준비해주고, 실험 뒷정리도 하고, 실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잖아요. 당신이 남편의 실험을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감 넘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 그림들을 토대로 한 화학교과서 ‘화학원론’이 출판된 것 아닌가요?

마리 폴리 : (자랑스러운 듯) 제가 후세에 그렇게 유명해진다니 기분 나쁘진 않군요. (화제를 돌리며) 어쨌든 제 남편은 물질이 탈 때 공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했답니다. 여러 실험을 거친 끝에 황과 인이 탈 때는 공기를 흡수해 무게가 증가하고, 산화납을 가열하면 공기를 내보내 원래보다 가벼워진다는 결과를 얻었죠. 남편은 이 사실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보고했어요. 이 때문에 산소의 존재가 세상에 공개 됐죠. 그리고 물이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 생긴 것이라는 발표도 했어요. 이만하면 제 남편이 산소의 최초 발견자가 아니고 뭐겠어요?

이기자 : (머뭇거리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저도 책에서 봤습니다만, 영국의 프리스틀리가 사실은 당신 남편보다 산소를 먼저 발견했지만 산소의 성질을 제대로 설명하진 못했죠. 물론 스웨덴의 셸레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죠. 최초로 산소를 분리해낸 주인공은 그니까 말이예요. 그렇다면 산소라는 기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셸레가 아닐까요? 어쨌든 제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프리스틀리와 셸레 모두 산소 발견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마리 폴리 : (기분이 상한 듯) 그렇군요. 하지만 제 남편은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구요. (일어서서 자리를 떠난다)

이기자 : (다급한 목소리로) 마담, 기분이 상했다면 죄송해요. 마담!

#8. 에필로그

(‘마담’을 외치던 이기자는 자기 목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책과 종이 위에서 잠든 자신을 발견한다.)

이기자 : (기지개를 키며) 모두 꿈이었나?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어. 어쨌든 두 연극 모두 과학과 교육연극의 만남이군. 한국에도 드디어 과학연극이라는 분야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 거야. 빨리 보고싶어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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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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