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시험이 두세달 남았을 무렵, ‘통신중독’ 이라는 것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달렸다기보다 ‘즐거워서’ 미친 척하고 몰입했던 것이다. 공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수업시간에도 통신만 생각하며 살았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대학 시험이라는 거창한 명제 앞에서 ‘통신은 나를 구원해 줄 유일한 것’ 이라고 믿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신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의 통신은 인터넷이라기보다 그냥 일반 통신망에서의 채팅이었다. 비관적이고 어둡고 모든 일에 짜증을 내던 내 성격이 통신을 시작한 이후에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기도 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변해갔다. 또 친구를 얻고 잃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도 통신을 통해 배웠고, 그래서 난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친구들이 영어회화를 배우네, 운전면허를 따네 하면서 지낼 때, 나는 KETEL(지금의 하이텔)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모뎀을 사용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연락도 못하겠고 통신은 더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에 통신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잔머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당시 통신은 나에게 있어서는 절박한 삶의 대명제였다. 그래서 나온 답이 바로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하면 전화비도 안들고 통신할 수 있대!”, “인터넷에는 정보도 무지 많대!” 등의 일종의 루머 아닌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고, 나도 그 소문에 휘말려 통신을 위해 인터넷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일반 통신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가지 ‘꼼수’가 필요했다. 천리안은 경희대 호스트를 통해, 하이텔은 한국통신 호스트를 통해서 접속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통신을 위한 해킹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손뗀지 오래 됐지만, 그때는 통신을 하기 위해 다른 호스트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해 보는, 그런 일을 많이 했다.
내가 해커일 때의 해커들은 정말 멋있는 해커였다. 지금은 해커의 의미가 변질돼 알려지긴 했지만, 그때는 멋있는 해커와 악성 크래커(Cracker)가 엄연히 분리됐고, 나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해커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연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꿈도 머드로 꾸던 시절
그러던 어느날, 인생의 진로를 바꾼 사건이 생긴다. 머드(MUD)를 하던 친구녀석이 “이거 정말 재미있어. 너무 재미있어. 아이 재미있어라. 무지 재미있네” 이런 식으로 살살 유혹했다.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이기에 그리도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일까. 드디어 탐구심이 강한 나는 금방 머드라는 세계에 빠져들게 됐다.
게임은 테트리스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내게 “아니! 이렇게 훌륭한 게임이 있을 수 있다니!”라는 탄성을 지르게 만든 머드는 내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이었고, 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만의 문화가 형성되던 시절이었다.
머드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나름대로의 우정도 생겼다. 학교에서 금지하는 게임이었고, “머드를 하면 인생 망친대” 라고 하는 말도 공공연히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머드를 하던 사람들 중 태반이 4년안에 졸업을 못하고 5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거나, 아니면 군대로 도망을 갔기 때문에 그런 말이 돌았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머드를 즐기는 사람들의 단합은 더욱더 굳셀 수밖에 없었다.
머드를 정말 열심히 했다. 스스로도 “난 중독이야! 헤어날 수 없어!” 라고 생각하던 대학 1학년 시절. 시험 기간인데도 밤새 머드를 하다가 아침에 잠이 들어서 시험을 못본 적도 있었고, 시험을 보면서도 머드 지도를 그리고 게임을 진행하는 나를 상상하는 바람에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기도 했고, 거기다 시험장에서 나온 다음 다시 게임에 몰두하기까지 했다. 또 3일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머드를 하고 난 후 기숙사에서 자다가도 비몽사몽간에 “아 강의시간이지. 날아가자 이얍!” 이런 식으로 마치 강의실로 날아가서 강의를 받고 오는 환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내가 왜 그때 그렇게 미친짓을 했지? 허허 거참” 이렇게 혀를 차기도 한다. 그래도 그때 나는 웬지 심각했고, 소금인형처럼 내 자신이 녹아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바다의 깊이를 재보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듯한 그런 마음으로 중독 그 자체를 즐겼다.
그러다가 머드에서 손을 조금씩 떼면서 인터넷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BBS에서 터줏대감, 또는 ‘죽돌이’(죽치고 앉아있는 사람을 칭하는 말)로 활동하던 시절이 지금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지금은 직장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잠깐씩 들어가서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뿐이지만, 그때는 24시간 내내 붙어있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통신을 시작하고 난 뒤 지금까지 7년여동안 1천여명 이상의 사람들을 실생활에서(Off-Line으로) 만났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동안 채팅방에서 ‘죽치고’ 채팅을 해도 그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채팅을 하고 통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겨울학기를 신청해 겨울내내 채팅을 즐기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감회가 새롭다.
중독에서 빠져나오기까지
하루라도 인터넷에 들어가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던 시절, 나는 중독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면 인터넷을 잊고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서였다.
동해안의 한 어촌에서 묵었던 기억이 난다. 저녁때 산으로 시나브로 지는 해를 보면서, 하루를 마감하며 땀흘리던 어부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다음날 혼자 바닷가에 나와서 일출의 장관을 보고 있을 때의 벅찬 환희 속에서 전자우편물(e-mail)을 체크해야 한다는, 인터넷에 접속해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인터넷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현실생활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 뒤로 지금까지는 ‘적절한 휴식’ 과 ‘적당한 몰두’ 를 통해 인터넷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됐고, 중독이라기보다 새로운 주제나 신기술에 대한 탐구정신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웹마스터(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새로운 내용을 갱신하는 등 전체적인 관리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루종일 인터넷에서 일을 할텐데 지금까지 중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느냐? 물론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인터넷이라는 도구, 문화 또는 환경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중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폭력과 음란물로 가득차 있는 쓰레기장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또하나의 문화사회라고 믿는다.
더 이상 절망할 수 없는 끝까지 가보아야지만 희망의 빛이 보이고, 절망이라는 절벽에서 다시 기어올라올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몸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통신이나 인터넷에 빠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MUD란 무엇인가
MUD는 Multi User Dungeon(요새는 Drug이라고도 함)의 약자로서, 가상의 시나리오와 가상의 지도(상당히 넓은 지도) 안에서 서로 각자 다른 방식의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또는 서로 무리를 지어서 같이 협동하며 풀어나갈수도 있는 방식의 게임.
머드의 종류는 매우 많지만 게임상에서의 괴물(Mob이라 함)과 전투하느냐, 어려운 문제(Quest라 함)를 풀어나가느냐, 아니면 사회성(실생활과 비슷한)을 중시하느냐에 따라서 Diku MUD, LP MUD, MOO 등으로 나눌 수 있다.
Diku MUD는 전투를 통해서 경험치를 늘려가고, 경험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레벨이 높아져서 여러 가지 마법과 전투 기술을 배울 수 있다. LP MUD는 문제 해결을 통해 레벨업이 이루어지는데, 나중에는 자신만의 성(castle)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일반 상용 통신망에서 제공되는 머드게임 중, Diku MUD계열은 (주)마리텔레콤에서 제공하는 '단군의 땅'이 있고, LP MUD계열은 삼정데이타시스템의 '쥬라기공원'이 있다. 사회성을 강조한 MOO계열의 MUD는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국에서는 상당히 인기있는 머드다.
왜 사람들이 MUD를 좋아할까? 채팅중독과 MUD중독은 그리 별다를 것이 없지만, MUD는 채팅과 게임, 그리고 여러가지 행동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채팅보다 심한 중독 증세를 일으킨다. 처음에는 게임적인 요소를 가지고 즐기지만, 나중에는 게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연락수단, 같이 즐기는 게임 등으로 발전을 하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또 MUD는 인간의 잔인성과 파괴욕을 충분히 만족시켜준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을 중독증에 몰아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