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론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영화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2월 8일 찾은 시사회장은 여느 대보다 붐벼 영화에 대한 기대와 감독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2월 17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방담회에는 가상현실 분야의 전문가이자 육군사관학교 전산학과 교수인 권태욱 소령이 참석했으며, 이밖에 SF 영화 평론가인 박상준씨, 영화 마니아 김의준씨, 게임 기획자 노성래씨, 과학동아 기자들이 함께 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감독의 철학과 독특한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게임 속 가상현실로 들어가보자.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 젊은이들이 가상전투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게임의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흥분과 쾌감으로 열광하고 있으며, ‘파티’라는 비합법집단을 만들어 게임 중독자가 되고 있다. 때로는 뇌를 파괴하고 게임에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미귀환자를 만들어내는 위험한 게임. 사람들은 이 게임을 영웅의 혼이 잠들어 있는 곳, ‘아바론’이라 부른다.
주인공 애슈는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는 최강의 플레이어로, 파티를 만들지 않고 혼자 싸우는 고독한 여전사다. 그녀는 예전에 ‘위저드’라는 막강한 파티의 멤버였지만, 위저드는 뚜렷한 이유없이 돌연 해산한다.
어느날 애슈는 위저드의 전 멤버였던 스터너와 재회하고, 위저드의 리더였던 머피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머피는 아바론에 존재하는 최종단계, 클래스 SA(Special A)에 도전했다가 미귀환자가 돼 정신병원에 수용됐다는 것이다.
아바론 게임의 마지막 단계라고 알려진 클래스 SA는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리얼한 가상현실의 단계.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없는 위험한 곳이다. 머피는 리셋이 불가능한 환상의 필드인 클래스 SA의 숨겨진 비밀을 쫓다가 미귀환자가 된 것이다.
애슈는 위저드 해체의 비밀과 클래스 SA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클래스 SA에 도전한다. 마침내 애슈는 클래스 SA에 들어가게 되는데….
미경_ 아바론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작업을 거쳐 탄생했다는데, 컴퓨터 그래픽의 느낌이 그다지 크진 않았어요. 다른 분들은 영화를 보고 뭘 느끼셨나요?
충환_ 저는 아바론 노래 밖에 생각나지 않더라구요. ^^ 바르샤바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라는데…. 처음 아바론 음악 나왔을 때는 좀 썰렁했고, 반복적인 장면이 계속 나와서 좀 지루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의준_ 음악 얘기가 먼저 나온 걸 보니 영화가 한편으론 좀 어려웠나봐요. 저는 일반인을 위한 영화인지 마니아들을 위한 영화인지 혼동이 되더라구요. 마니아를 위한 영화였다면 사전 정보가 좀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래_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그다지 어렵지 않았거든요. 게임 속의 현실과 실제 현실에서 혼동이 일어난다는 내용의 영화는 최근 많이 나왔죠. 매트릭스나 엑시스텐즈 등도 같은 내용입니다. 다만 아바론에서 맨 마지막 장면은 좀 헷갈렸습니다. 주인공이 리얼 클래스로 가서 옛날 팀장을 만났는데, 리얼 클래스가 현실이라면 그 사람이 총에 맞고 죽어야 하는데 마치 게임에서처럼 분해됐잖아요. 그건 감독이 장난친 것 같아요.
충환_ 끝장면도 ‘welcome to avalon’이라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모든 것이 게임이라는 의견도 있더라구요. 실제로 다른 클래스가 존재하고, 아바론의 게임이 또다시 시작된다는 의미 말입니다.
성환_ 관람객들이 오히려 감독의 전력이나 전작 때문에 긴장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아닐까요. 스토리 전개는 간단했던 것 같은데 이 영화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더라구요.
응서_ 좀 다른 얘긴데…. 주인공 애슈를 보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여주인공이 생각나지 않아요?
성환_ 공각기동대도 홍콩 로케를 거쳐 제작했듯이, 감독은 아바론의 여주인공도 공각기동대의 여자 주인공같은 인물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아요. 또 폴란드 언어를 사용한 것도 특이할만한 점입니다. 언어는 폴란드어, 게임이나 모니터에는 영어가 뜨고, 책은 일어로 됐다는 점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요. 감독이 시간과 공간의 모호한 배경을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미경_ 다른 얘기긴 한데, 강아지가 없어진 이유는 뭡니까.
의준_ 개가 없어지면서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개가 나오는 장면이나 영화 속에서 총을 쐈을 때 팀장이 분해되는 장면 등은 액자소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영화를 끝내고 싶지 않은 감독의 의지가 아닐까요.
성환_ 감독이 실사를 처음 찍은 것은 아니지만 자아도취적이고 말끔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너무 집착한 것 같아요.
성래_ 여담이지만 옛날에 오우삼 감독이 미션 임파서블2를 찍었을 때 비둘기가 날아간 장면이 있었잖아요. 감독은 멋있으라고 한 건데, 유치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의준_ 게임 세계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화면을 뿌옇게 만든 것 같은데…. 정제되지 않은 컬러를 쓸 필요는 없잖아요.
성환_ 감독은 아비드라는 소프트웨어를 독특하게 활용해서 색다른 효과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를 적용하지 않은 후반부의 컬러 부분은 처리가 미흡한 듯 합니다. 아직은 감독이 필름을 다루는 솜씨가 미숙한 것 같아요.
응서_ 색깔 얘기가 나왔는데…. 제 생각엔 색상을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상 현실을 좀더 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아요. 현실이 추해보이지 않느냐,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뭐 그런 얘기 아닐까요?
충환_ 음식도 컬러로 표현되죠. 이 영화에서 음식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성래_ 개 음식과 남자가 먹는 음식이 있었는데요. 두 음식과 그걸 먹는 장면을 상반되게 표현했죠. 관객들로 하여금 사람이 음식 먹는 행위를 역겹게 느끼게 한 것 같아요. 반면 개 음식은 깨끗한 재료를 정성을 들여서 썰고 정말 맛있어 보이게 표현했죠. 음식은 하나의 상징 아닐까요. 등장인물들이 원하는 것은 일치하잖아요. 게임의 최종 단계로 가면 완전히 현실이 되는데, 그 때 가장 걸리는 것은 육체이고, 걸리는 육체를 표현해주는 것이 바로 남자의 먹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성환_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도 가족도 싫고 자신에게는 개가 특별한 존재라고 얘기를 했어요. 개가 그려진 아바론 공연포스터에 엉뚱하게도 영화의 미술담당 Nowak의 이름이 출연자의 이름처럼 써있는데, 마치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속에 프로그래머들이 숨겨놓는 이스턴에그를 연상시키더군요. 감독과 스탭들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감독이 총기 마니아인데 구닥다리 총을 일부러 등장시킨 걸 봐도 자기 만족의 느낌이 들잖아요.
의준_ 사실 감독의 배경을 기반으로 그 생각을 추적해봐야 되고, 그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로 느껴집니다. 국내에서 치장을 하고 관객층을 현혹시키는 장치를 갖는 행위 자체가 상업적인 것과 비상업적인 것이 만나서 관객들을 실망시키는 요소죠. 이 영화가 마니아층을 위한 작품이라고 인정했다면 영화에 대한 반감이 없었을 것 같아요. 기대했던 것과 다르니까 충돌하는 것이죠.
성환_ 감독이 워낙 문제 감독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이겠죠. 한국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고, 감독에 대한 사전 정보가 많아서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도 같이 보는 사람들과 은연중에 지적 겨루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권교수_ 저는 사실 영화보다는 가상현실 기술에 중심을 두고 감상했어요. 가상현실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몇번 나오더라구요. 그럴듯하게 뭔가를 뒤집어 쓴 모습과 구토하는 장면. 특히 구토하는 장면은 가상현실로 들어가는 초기 증상이거든요.
영화에서 가상 현실을 접목시킨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이 애니메이션만 하다 보니까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접목시키기 위한 어떤 요소가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장 유용한 기술이 가상현실이고….
충환_ 교수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생각나는데 영화 속 현실이 단조롭고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감독의 의도 아닐까요? 실제 생활은 가상현실 같고, 가상현실은 실제 생활 같은, 그런 혼동 말이죠.
권교수_ 가상현실 게임은 매우 환상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주죠. 가상현실의 목표는 현실감과 현실처럼 구토를 하는 몰입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영화에 나타난 롤플레잉 게임이나 가상현실 기법 등을 현실적으로 판단할 때는 현실의 사람들과 괴리가 있는 쪽으로 구현한 것 같아요.
성환_ 가상현실로 가는데 가장 큰 기술적인 장애는 무엇인가요?
권교수_ 초기 단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모델링이었죠. 주변 환경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것 말입니다. 지금은 모델링 문제가 거의 해결됐고, 인터페이스가 가장 큰 장애입니다. 인터페이스를 현실과 완전히 똑같게 구현하기는 힘들죠. 또하나 큰 문제점이 데이터 트래픽이죠. 가상현실의 기분이 리얼타임으로 와야 하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데이터가 무척 크다고 생각하지만 데이터는 무척 작아요.
성환_ 실사에 가까운 가상현실을 만든다고 하면 지금의 메모리로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데이터 양이 작군요. 인터페이스 문제를 생각해보면 ‘엑시스텐즈’에 나왔던 장면들이 가장 진보된 방법 같아요. 5-6년 전 애플사가 미래 컴퓨터의 상상 버전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목 뒤로 꼽는 것이더라구요. 사람의 시각을 모니터로 대용할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진보잖아요. 그런 상상들이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현실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교수_ 가상현실의 3요소는 현장감, 현실감, 몰입감인데요. 현재 단계에서는 피드백 장비들이 그렇게 발전돼 있지 않고, 후각 정도만 발전됐을 뿐 미흡합니다. 또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를 20분 이상 쓰면 쓰러지게 되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증강현실과 입는 컴퓨터입니다. 가상현실은 모든 걸 컴퓨터가 작동하지만, 증강현실은 현실에서 컴퓨터를 보조 장비로만 사용하는 것이죠. 그게 차이점입니다. 보잉사나 제록스의 경우 증강현실을 사용합니다. 정비할 때 데이터센서를 이용해 별다른 불편없이 전 라인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제록스사에서 프린터기를 정비하는데, 초보자가 정비할 경우 프린터 앞에 서면 착용하고 있는 디스플레이에 다음에 뭘 하라는 정보가 보이기 때문에 한쪽 눈으로는 현재 정비할 부분을 보면서 다른 한쪽 눈으로는 고쳐야 할 사항에 대한 정보를 보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실질적으로 보는 씬에 컴퓨터가 추가적인 정보를 덧붙이는 것이 증강현실이죠. 수술시 정보를 주면서 작업하는 기술도 MIT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얘기가 길어집니다만 가상현실의 또다른 대안이 입는 컴퓨터입니다. 컴퓨팅 장비를 최대한 편하게 몸에 부착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문제점이 있어 현실화되기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사람이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가 시각의 변화라고 하듯 인터페이스의 연구가 더욱 필요하겠죠.
성환_ 맞아요. 사람들은 정보 수용의 70%를 시야에 의존한다고 하잖아요. 비디오를 찍을 때도 초보자들의 가장 큰 실수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까 가상현실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의 형태를 바꿔버릴 수 있는 기술 같네요. 인생의 목표가 즐거움, 행복감, 만족감을 추구하는 것이잖아요. 예를 들어 현실에서는 판사가 되기 굉장히 어려운데 만약 CD 한장을 사서 판사 게임을 하고 이를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다면 게임 속 세계에서 훨씬 큰 기쁨을 누릴 것 같아요. 하지만 물론 폐해도 많이 생기겠죠. 애써서 현실에서 뭔가를 추구하고 싶지도 않을 거구요.
의준_ 가상현실을 다루는 SF 영화에는 다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매트릭스에서도 현실은 암울하고 힘든 상황이었고, 이 영화에도 일정 부분은 암울하고 침울하고 어두운 배경을 갖고 있죠.
성환_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사이버 펫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통 아이들이 사이버 펫을 갖고 놀면 정서에 좋지 않다고 말하잖아요.
권교수_ 실제로 애완동물이 없는 아이라면 사이어 펫이라도 좋을 것 같은데요.
성환_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제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쁘다고 말합니다. 사이버 펫을 쉽게 죽일 아이라면 살아있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동하겠죠. 사이버 펫이든 복제동물이든 뭐든 애정을 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으면 좋잖아요. 사이버 펫은 우리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총칼보다 훨씬 좋은 것 아닌가요?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환경이 파괴되고 세상이 어두워져 가면 멸종된 동물이나 아름다운 자연을 가상현실에서 즐길 수도 있을테구요. 가상현실 속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현실의 암울과 불안을 벗어날 수 있다면 가상현실이 얼마나 매력적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권교수_ 인터넷에 대한 매스컴 보도도 거의 해악이죠. 인터넷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게임과 채팅이 인터넷의 전부라고 생각하죠. 우울병을 앓는 환자도 가상현실을 활용해 치료할 수 있습니다. 가상 게임에서 사회성을 배울 수 있듯, 게임을 하더라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아요.
성환_ 자기가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거부감이 많죠. 교과서도 다른 시각으로 보면 놓치는 부분이 많은 것처럼…. 제 세대는 만화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 조차도 너무나 떨면서 만화방에 갔으니까요. ^^ 만화도 일종의 가상현실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도 그렇구요. 단지 인터페이스가 바뀌는 것인데, 기성 세대들이 인터페이스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미경_ 영화 이야기에서 자꾸 벗어나는데요. 영화 속으로 좀더 들어가 보죠. 박상준씨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상준_ 영화 속에서 가상현실로 들어가기 위한 인터페이스와 현실에서의 인터페이스와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인터페이스는 사람의 오감을 이용해서 들어가는 것인데요.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인터페이스는 두뇌의 신경세포와 전기적 신호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결 돼서 접촉하잖아요. 그런 것은 현실적으로 개발돼 있지 않은데요. 전자공학과 신경생리학이 그 수준에서 결합돼야 가능한 인터페이스라는 생각이 됩니다. 그런 연구가 실제로 시도되고 있습니까.
권교수_ 맞습니다. 현재 뇌세포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죠. 초기 단계로 뇌세포의 이동 방향 감지, 즉 뇌세포와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사람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지만 영화처럼 되려면 몇 세대를 건너야겠죠.
상준_ 컴퓨터와 인간의 인터페이스를 잘 맞추는 것이 궁극적인 방향일 것 같습니다. 1995년이던가 일본의 어느 게임파크에 갔더니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를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더라구요. 거친 그래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선했습니다. 앞으로도 해상도나 프로그램 구현 수준이 점점 높아지겠지만 어느 정도 한계가 있겠죠.
응서_ 아바론이나 매트릭스 수준의 가상현실을 느끼려면 연산처리 속도가 엄청나게 높은 초슈퍼 컴퓨터의 존재도 전제돼야 할 것 같은데요.
미경_ 영화 속 같은 가상현실이 나타나기까지는 세월이 꽤 흘러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영화에서는 과학기술적 전망보다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가 정서적, 사회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구요.
상준_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과학기술적인 면에서 다른 작품에서보다 진보된 과학기술을 묘사한 것 같지 않아요. 아바론은 네티즌들 반응을 봐도 극과 극으로 갈리는 편이던데요. 영화미학적인 스타일과 방식에서 색다른 시도를 했다는 것 외에는 비슷한 류의 다른 영화에 비해 과학기술이나 메시지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의준_ 공각기동대가 감독의 대표작이라면 아바론은 감독이 추구하는 어떤 카테고리를 넘지 못하고 그 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환_ 가상현실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꼭 장자의 꿈같은 장면을 갖고 있더라구요. 어느 것이 현실이고 허구인지 혼돈스럽게 만드는 장면 말입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불안감 같은데, 너무 많은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좋지 않잖아요.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쾌하게 맞이해야죠.
의준_ 영화가 얘기하는 가상현실이 단어상 가상현실인지, 미래라는 단어와 같은 개념인지 궁금합니다. 초능력이나 텔레파시 등이 장비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하나 현실화되고 있잖아요. 굳이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를 써서 구별하는 것보다는 가까운 미래나 그와 비슷한 표현이 더 그럴 듯하지 않을까요?
상준_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는 SF 용어가 아닙니다. virtual reality를 우리말로 그냥 번역한 것이죠. 우리가 쓰고 있는 가상현실의 개념은 컴퓨터로 구현된 어떤 사이버 세상을 제한적으로 얘기하는 것이구요. 그게 이리저리 파생돼서 하나의 다른 언어가 된 것 같기도 해요.
권교수_ 사이버에서는 리얼이 없기 때문에 버추얼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아요. 현실이 아닌 공상적인 세계를 SF라고 하고, 가상현실은 현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모델링해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는 세계지만, 불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놓고 시험하는 것이죠. 비행사나 전투 분야에서 많이 쓰면서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기술적인 접근도 가능하죠.
성환_ 막대한 정보량 때문에 미래 산업구조가 굉장히 달라질 것 같군요. 그런 의미에서 없어질지도 모를 많은 추억들을 빨리 백업하는 것이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 아버지의 체취 같은 걸 빨리 백업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
응서_ 가상현실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이 정해졌는데, 괜히 그런 걸 만들어서 더 복잡한 것까지 느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잖아요. 과거에 지났던 경험을 다 모아서 또다시 느껴야 하고….
성환_ 그런 건 어쩔 수 없죠. 과거에 비해 굉장히 발전돼 있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 컴퓨터 등 모든 사무환경이 자동화돼 있지만 근무시간이 결코 줄지 않았잖아요. 그만큼 더 큰 강도의 일을 다 처리하는 것입니다.
권교수_ 스트레스는 영원할 것 같아요. 10년쯤 지나면 지금이 그리울 때가 있을 겁니다. 환경이 확확 바뀌다 보니까 어쩔 수 없죠. 경험한 삶이라면 옛날이 좋다는 걸 느끼겠지만 지금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 세대의 환경이 당연하잖아요. 저희들 나이에서 컴퓨터를 배우는 시간에 비해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시간이 굉장히 짧아졌듯이.
응서_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한다면 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것일까요. 향수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가상현실을 어떤 돌파구로 사용하지 말고 현실에서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성환_ 그건 좁은 의미에서의 가상현실인 것 같아요. 만화를 하나의 가상현실로 가정하면, 만화책을 본다고 해서 현실을 만화처럼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는 매번 형태가 틀릴 뿐이지 가상현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인터페이스로 다가오든 걱정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겪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권교수_ 가상현실이 초기 단계니까 악영향도 걱정하게 되죠. 하지만 오히려 동심으로 돌아가는 가상현실을 더욱 많이 만들지도 모르잖아요. 요즘 아이들에게 흙냄새를 느낄 수 있는 가상현실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의준_ 영화감독이 없어지고 가상현실 감독이 생겨나겠군요.^^
충환_ 가상현실이 가능할지는 의문이고, 물론 가상현실을 실제 현실처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의 좋은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좋은 정보를 놓쳐서 가상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다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현실과 가상현실 둘 다 살아나려면 둘 다 충실해야겠죠.
권교수_ 컴퓨터는 현실을 100% 재현할 수 없습니다.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제대로 접근한 경우만 살아남지, 지금 개발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기술은 다 죽죠.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악영향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은 가상현실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고, 그 연구가 진행중입니다.
성환_ 만드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얘기하셨지만 사용자의 몫도 상당히 클 것입니다. 만들어놓은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현실이라는 것이 전제된 후 가상현실이 존재해야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디스크로 저장할 수는 없듯 사용하는 내가 주체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해야겠죠. 긍정과 부정이 혼재돼 있지만 긍정쪽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준_ 지금까지 가상현실은 부정적인 측면을 배경에 두고 많이 언급된 것 같아요. 가상현실이라고 하면 왜 다들 전쟁을 언급하는지….
성래_ 저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성환_ 사람이 불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에게 폭력적인 뭔가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맥락 아닐까요.
성래_ 게임 안에는 빵만 만드는 캐릭터가 있고, 8시간씩 마우스만 클릭해서 칼을 ㅁ란드는 캐릭터도 있어요. 온라인 게임이 점점 현실과 비슷해진다는 것이죠. 게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마스터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전투가 아니라 생활이죠. 아바론에서도 게임이 생활이 됐음을 바로 알 수 있잖아요.
성환_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어떤 아이가 온라인게임에서 무기를 샀는데 누가 훔쳐가서 울고 있었어요. 그걸 본 그 아이 아버지는 현실과 허구를 분간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고 해요. 아버지 스스로도 그 얘와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데 느끼지 못하고 있죠. 어른들이 인터넷 뱅킹으로 온라인 이체를 하는 것도 똑같은 행위인데, 아버지는 인터페이스의 조그만 차이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권교수_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사이언스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이 되고, 어떻게 보면 악이 되는 것.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를 보면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좋지 않지만 편리하잖아요. 게임도 장사입니다. 싸우고 폭격하는 게임이 많이 팔려서 게임 회사들이 그런 것만 제작하고 판다면 다른 문제가 생겨나겠죠. 우리들 스스로가 건전한 뭔가를 유도해야 할 것 같아요.
미경_ 오늘 방담회에서는 가상현실의 긍정과 부정에 대해 얘기했다는 점에서 무척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오시이 마모루
1951년 8월 8일 도쿄태생으로 어렸을 적부터 지독한 영화광이었으며, 1960년대 초반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감독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고전영화 전문 상영관을 드나들며 예술 영화에심취해 있었고, 대학 재학시절부터 영화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16mm 독립영화를 찍었다. 그의 이런 경험들이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넘나드는 연출력을 탄생시킨 밑거름이 된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는 그를 일본 재패니메이션의 대표주자로 전세계에 알린 사이버 펑크물의 대표작‘공각기동대’를 만든다. 그의 창작활동은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사영화, 소설, 만화원작, 게임 등 다양하다. 현재 그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2’를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