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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미래 디스토피아의 자화상

원시사회 매드 맥스에서 기계 지배 매트릭스까지

먼 훗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하늘을 나는 자동차, 달에 건설된 호텔, 집안 일을 도맡는 로봇…. 미래라는 질문에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그려지는 미래는 ‘밝고 희망찬’ 모습보다는 ‘어둡고 절망적인’ 모습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핵전쟁 이후의 무정부 상태, 소행성과의 충돌, 로봇들의 반란, 거대 자본의 지배…. 영화가 이처럼 어두운 미래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영웅을 필요로 하고 영웅은 난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족은 ‘희망’을 꿈꾸는 동시에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시름’에 잠겨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문명의 몰락이다. 그 중에서 핵전쟁으로 인한 문명의 몰락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재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발의 핵폭탄은 완강하게 저항하던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며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지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대량 파괴와 살상의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3차 대전이 시작되면 그때가 바로 인류의 종말이라고 믿게 됐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옛 소련은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핵폭탄 보다 수백배 큰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 건물은 멀쩡하게 남겨둔 채 살아있는 생명체만 모두 죽인다는 중성자탄, 그리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 등이 냉전 시대에 개발됐다. 1962년 옛소련이 공산 혁명이 일어난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하면서 시작된 쿠바 사태 당시에는 핵전쟁의 문턱까지 갔다가 케네디와 후르시초프의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해결된 적도 있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의 미래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핵전쟁과 원시사회로 되돌아간 문명

영화 ‘그날 이후’는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해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고 핵무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줬다. 도시의 모든 건물을 파괴하는 핵폭풍과 쇠를 녹이는 화염, 방사능에 오염된 생존자들, 식량부족, 핵겨울 등 영화 속 인상 깊은 장면들은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거친 후 묘사됐다. 필자처럼 중학교 시절 주말의 명화를 통해 ‘그날 이후’를 관람한 독자라면 핵전쟁에 대한 걱정으로 며칠간 잠을 설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요즘 영화에 비하면 이야기의 진행이 느리고 지루해 재미없지만 핵전쟁을 가장 뛰어나게 묘사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핵전쟁 이후의 생존자들이 소규모 부족을 이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매드 맥스2’는 문명의 몰락 이후 무정부 사회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인간성과 도덕이 증발한 사회에서 힘은 곧 법이 된다. 힘있는 자들은 식량과 석유를 얻기 위해 약탈과 살인을 일삼고 복수와 공포가 유일한 통치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핵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관 마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또한 주인공과 악당이 입고 있던 금속판을 덧댄 누더기 가죽 자켓은 영화 이후 세기말과 문명의 몰락을 나타내는 대표적 패션 코드가 됐다.

한편 매드 맥스2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생산됐다. 이 중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인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워터 월드’와 ‘포스트 맨’이다. 워터 월드의 경우 핵전쟁 대신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의 빙하가 녹았다는 설정을 도입했지만, 마을에 잠시 머물고 있던 떠돌이 영웅이 마을 사람과 힘을 모아 악당을 격퇴한 후 다시 먼 길을 떠난다는 비슷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포스트 맨은 냉전이 끝난 시점에 매드 맥스와 똑같은 핵전쟁이라는 진부한 소재,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그러나 무언가 거품이 빠져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명의 몰락 이후를 그린 영화를 통해 우리는 문명의 시작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국가 형성되기 이전의 시대는 약육강식 강자생존의 사회였다. 거친 땅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족은 추수 철마다 비옥한 땅에 정착한 농경민족의 식량을 약탈했다. 이를 약탈경제라 부르는데 매드 맥스2에서는 유목민족의 기마전사가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으로 대치됐을 뿐이다. 이런 갈등을 통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정권이 탄생하고 국가가 형성되는 것이다. 강력한 파괴에 의해 몰락한 미래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국가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핵 이후의 위협, 거대자본

광석을 가득 싣고 지구로 귀환중이던 노스트러모호는 가까운 행성으로부터 긴급구난신호(SOS)를 포착한다. 조난자의 구조가 우선이라는 승무원 규정에 따라 노스트러모호는 문제의 행성으로 구조선을 파견한다. 이때부터 리플리와 에어리언의 지독하게 꼬인 악연이 시작된다. 이후 리플리는 해병대원들과 함께 에어리언 떼거리와 여왕을 격퇴한 후 식민행성의 유일한 생존자인 뉴트를 구해냈고, 3편에서는 전문 사냥꾼의 기질을 발휘해 변변한 연장 하나 없이 펄펄 끓는 납과 차가운 물의 온도차를 이용해 에어리언을 때려 잡았다. 인간과 우주 괴물의 한판 승부!

그런데 여기서 리플리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여전사는 에어리언이 지구에서 번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웠다. 그렇다면 리플리의 적은? 에어리언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지구에서 번식시키려던 ‘회사’다. 에어리언의 전편을 되짚어보면 리플리가 자신의 덩치를 부풀리려는 거대자본과 맞서 싸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자 영화들은 ‘거대자본’을 미래의 적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 개봉된 ‘로보캅3’는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대기업인 옴니사는 미래형 신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미국 정부로부터 디트로이트시를 매입한다. 강제 철거가 진행되고 졸지에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옴니사에 맞선다. 이렇듯 미래의 자본은 기본적인 인권과 법을 초월한 절대 권력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거대자본은 거주 공간이나 식량 등 인간의 생필품을 독점하고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정보를 소유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 후기로 접어들고 있고 선진국의 경제시스템은 거대자본을 견제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거대자본이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는 가설은 자본주의가 몰락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견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냉전 직후 제작됐던 영화을 살펴보면 일본의 자본에 대한 미국인의 두려움을 찾아볼 수 있다. ‘떠오르는 태양’과 ‘데몰리션 맨’등이 이런 경우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미국의 경제가 호황으로 돌아서고 일본의 경제가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일본의 자본을 미래의 위협으로 설정한 영화는 제작되지 않고 있다.

기계는 인간을 지배하는가


기계에대한인간의막연한불안감도디스토피아의주제중하나다. 터미네이터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과 기계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올 여름 ‘터미네이터3’가 개봉된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벌써부터 논쟁이 치열하다. ‘2편에서 사이버다인사를 폭파시켰고 터미네이터마저 용광로 속으로 사라졌는데 어떻게 3편이 제작될 수 있다는 말인가?’ ‘개발 시점이 늦춰졌을 뿐이지 사이버다인사는 화재 보험금을 타 연구실을 다시 세우고 스카이넷을 자체 개발할 수 있었다’ ‘2편에서는 3편이 나온다는 암시가 전혀 없지 않았는가’ 등등. 이런 모든 논쟁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것은 바로 존 코너의 존재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미래에서 온 군인에 의해 잉태된 존 코너의 생존 자체가 스카이넷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영화의 시리즈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에어리언4’는 바닥에 흘린 핏자국에서 DNA를 추출해 리플리와 에어리언을 살려내지 않았는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다시 한번 ‘T-800역’을 맡는다고 하는데,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다시 한번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어쨌든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과 로봇의 한판 승부를 그리고 있다. 터미네이터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기술은 스카이넷이라는 인공지능 컴퓨터다. 1편의 내용에 의하면 스카이넷은 핵전쟁 발발시 스스로 판단을 내려 적국을 공격할 수 있는 전략 컴퓨터다. 이런 시스템은 적국이 자기를 공격하면 차라리 함께 죽는 쪽을 선택하는 가장 강력한 전쟁 억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핵전쟁의 게임 이론에서 가장 오래 생존하는 국가는 선제 공격을 하지 않는 대신 강력한 보복을 하는 국가다.

9.11 테러 이후 미 국방부는 대테러 작전의 일환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목표물에 대해 먼저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중에 보고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중이라고 한다. 물론 현재의 시스템은 인공지능이 아닌 기계적 판단에 의존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국가의 안보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라는 괴물이 담당하게 될지 모른다.

한편 ‘매트릭스’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이후의 세계, 기계가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인간의 정신마저 지배하는 세계를 표현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3백60도 회전 돌려차기와 팔 뒤로 휘저으며 총알 피하기 등 화려한 액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매트릭스의 ‘의지’다. 약물에 취해 반쯤 정신을 잃은 모피스와 매트릭스의 대화를 기억하는가? 이 대화에서 전쟁의 승리를 위해 태양을 파괴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인간에게 심판을 내리고 새로운 태양을 찾아 떠나겠다는 매트릭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영화에서 인간과 기계의 갈등을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우주선을 움직이는 컴퓨터 HAL은 탐사 임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승무원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는 로봇을 혐오하고 깔보는 사람들의 이면을 통해 인간이 로봇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로봇은 불완전한 인간의 결점을 보완한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 박탈당한 통제사회


테러 단체가 퍼트린 바이러스 를 피해 지하에서 살아가는 미 래를 그린‘12 몽키즈’


살인 사건 제로! 미래의 경찰은 미리 일어날 범죄를 예측해 사전에 봉쇄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미래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현재보다 살기 좋은 세계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 톰 크루즈가 앞으로 일어날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살인 사건 제로를 이룩한 꿈 같은 시스템’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통제하는 불행한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린다.

개인의 통제라는 부분에 있어 우리의 미래는 대단히 어둡다. 영화 ‘가타카’의 세계에서는 개개인의 유전자로 한 인간을 평가한다. 태어나는 순간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법으로 금지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개인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시험 점수와 학력이며, 경제력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개인의 의지와 잠재력이라는 요소는 객관적 평가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타카의 주인공 빈센트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우주 비행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의 유전자를 이용해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데몰리션 맨’의 미래 역시 이상적인 사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과 절도는 사라졌으며 에이즈를 포함한 치명적인 전염병도 자취를 감췄다. 노숙자는 물론 알코올과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도 없다. 경찰이 휴대하는 구토봉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기들은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우리가 꿈꾸던 ‘희망찬 미래’일까? 위생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스킨쉽이 금지되고, 비만을 일으키는 음식, 가솔린 자동차들이 모두 사라졌다. 영화 속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게임과 만화 역시 인간에게 나쁘다는 이유로 금지됐을 것이다. 이렇게 재미없는 세상이 우리의 미래라면 조금은 폭력적이고 불안해도 현재가 더욱 살기 좋은게 아닐까.

통제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개인에 대한 ‘감시’다. 영화 ‘에너미 어브 더 스테이트’에서 국가는 인공위성과 도청을 이용해 개인을 감시한다.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지만,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감시에 노출돼 있다. 많은 프로그램에 ‘스파이 웨어’라는 것이 내장돼 있으며 전자 우편이 정보 기관에 의해 감시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권력 기관이 아닌 개인 사이의 감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몰래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개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동영상들이 인터넷을 통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각종 파파라치가 당당한 직업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해마다 연예인의 몰래 카메라가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킨다. 현대인은 감시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로?

이외의 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다. ‘12 몽키즈’의 인류는 테러 단체가 퍼트린 바이러스를 피해 지하에서 살아간다. ‘6번째 날’에서는 기억마저 복사된 복제 인간이 대리 인생을 살아간다.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외계인의 침략이라는 황당한 소재를 갖는 영화들도 많다. 물론 영화 속의 미래는 흥행을 위해 조작된 세계다. 일어날 지도 모르는 불행한 일을 극단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보다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냉전이후 관리가 허술해진 핵무기들은 사전 경고 없이 테러에 사용될 수 있다. 사이비 종교 단체가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생활의 일부가 돼버린 인터넷은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 무책이라는 것이 증명됐다.지구온난화는 어느 순간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다. 우리는 미래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다가올 미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보다 더욱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노성래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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