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후기 1600년을 전후해 유럽에서는 전무후무한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종교적 이단이 라는 명목으로 수십만의 '마녀'가 공개적으로 처형당하는 잔혹한 살육의 시기였다. 어떤 역사가들 은 마녀사냥의 저변에 여성을 집단으로 살해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많은 여 성들이 방직산업을 비롯한 임노동직으로 진출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시작하자 남성이 지배하던 사회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됐다. 그래서 여성 통제를 위해 마녀사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증명하듯 마녀로 몰렸던 여성 중 적지 않은 수가 가부장제적 가족에 동화되지 않은 여성, 즉 결혼을 거부한 여성(방적공), 남편보다 오래 산 여성, 산파, 주술사 등 육체적이나 경제적, 지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면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을 그리며 돈다고 주장한 천문 학자 케플러. 그의 어머니 역시 이런 분위기에 휩쓸린 희생양이었다.
케플러의 어머니 카타리나는 아픈 사람을 보면 약초와 주문으로 병을 고쳐주곤 했다. 하지만 치료 에 곧잘 실패해 미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중 이 마을에 살던 광신적인 마녀사냥꾼이 여 러 소문을 모아 49개 항목으로 된 고발장을 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녀가 70세 되던 해인 1615년의 일이었다.
케플러는 법정에 탄원서를 써서 누명을 벗겨달라고 간청했으나 허사였다. 그녀가 법정에 처음 선 1619년 증인들은 그녀가 죄를 저질렀다고 증언했고, 이에 대해 케플러는 1백22항목에 달하는 반대 심문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법정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케플러의 어머니는 꿋꿋이 버텼다. 자신은 마녀가 결코 아니며 아들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 라 외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그녀는 1621년 석방됐다. 사망하기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케플러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비록 노령의 어머니를 구하고자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속으로는 어머니를 구하고자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속으로는 어머니를 상당히 싫어한 듯하다. 마녀재판이 열리던 1619년은 바로 케플러가 제3법칙(행성이 태양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공전주기의 제곱은 행성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을 발표한 해였다. 과학 연구에 몰두하던 시기에 마녀로 몰린 어머니를 구하는 일이 그렇게 달갑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케플러 사후에 출간된 '꿈'이란 책에는 어머니를 달에서 온 악마와 접촉한 사람으로 묘 사했다. 사실 '꿈'은 인간의 달 여행을 서술한 최초의 SF 소설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과학적 모양새를 갖췄다. 예를 들어 우주비행의 어려움에 대해 "최초의 운동이 가장 괴롭고 위험하다. 화약의 힘을 빌려 몸이 하늘로 던져 올려지기 때문"이라고 묘사했으며, 성층권에 들어서면 "혹독한 추위가 닥치고 호흡할 공기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편 케플러는 달을 뜨거워 바싹 말라버렸거나 얼어붙은 무서운 세계로 표현햇으며, 이곳에 뱀같이 생긴 거대 종족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거나 땅에 기어다니는 상황을 묘사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영향을 준 악마의 실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