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단백질이 접히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요? 최근 작곡가와 화학자가 손잡고 단백질 접히는 과정을 소리로 바꿔 새로운 발견을 해냈어요. 단백질 접히는 소리에서 눈으로는 보기 힘들었던 패턴이 들리기 시작했죠. 과학 연구는 눈으로 보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 기사에 주목해 주세요! 여러분의 눈과 귀를 활짝 열어드릴게요.
우리는 복잡한 데이터를 쉽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그림이나 영상으로 시각화합니다. 하지만 어떤 데이터는 시각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마틴 그루벨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화학과 교수도 단백질의 접힘에 관해 연구하다가 이런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단백질에서 일어나는 수십만 번의 무작위적인 수소결합을 한눈에 보기 어려웠거든요.
단백질은 효소, 호르몬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물질이에요. 우리 몸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죠.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구조로 잘 접혀야 합니다. 잘못 접힌 단백질은 체내에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과 같은 질병을 일으키기도 해요.
단백질은 이를 구성하는 여러 아미노산의 상호작용이나 둘러싼 분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접힙니다. 대표적인 상호작용으로 단백질과 물 분자(H2O)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소결합이 있어요.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백질과 물 분자 사이에 전기적인 끌어당김이 어떻게 발생해 단백질 구조가 변화하는지를 파악해야 하죠.
그루벨 교수는 단백질의 수소결합이 일어나는 위치와 시간대를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단백질을 둘러싼 물 분자가 너무 많고, 수소결합의 힘이 약해짐에 따라 결합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단백질은 70ns(나노초・1ns는 10억분의 1초)에서 2탎(마이크로초・1탎는 100만분의 1초)마다 모습을 바꿨어요. 따라서 영상만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단백질 접힘의 패턴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단백질 접힘에 관련된 상호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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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하는 단백질 접힘, 귀로 들어보니
그래서 그루벨 교수는 작곡가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칼라 스칼레티 심볼릭 사운드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을 소리로 바꿔보기로 한 겁니다. 이처럼 데이터를 소리로 표현하는 것을 ‘데이터 음성화(Data sonification)’라고 합니다. 데이터 시각화처럼 데이터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데 쓰이지만, 시각이 아닌 청각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르죠.
그루벨 교수는 스칼레티 대표의 도움을 받아 단백질 수소 결합 데이터를 음성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프로그램은 단백질 내 아미노산의 위치에 따라 음의 높낮이나 음색 등을 할당하고, 그곳에서 수소결합이 일어나면 소리가 나게 해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을 소리로 나타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칼레티 대표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소리가 패턴 없이 무작위적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수소결합 형성과 관련된 뚜렷한 패턴을 음성화 작업을 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며 “첫날에 들었던 패턴을 확인하기 위해 분석 방법을 고안하는 데 이후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어요.
결국 연구팀은 소리를 분석해 수소결합에 따른 단백질 접힘 패턴을 알아냈어요. 어떤 수소결합이 일어날 때는 단백질이 곧장 빠르게 접히고, 어떤 때에는 단백질이 느리게 접히거나 접히는 듯하다가 다시 펼쳐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그루벨 교수는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단백질 근처에 물 분자가 너무 많아서 눈으로 볼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음성화해서 귀로 들으니 무작위성을 넘어서는 패턴이 생겨 중요한 사건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어요. 해당 연구 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20일자에 게재됐습니다. doi: 10.1073/pnas.231909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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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음성화, 새로운 연구 도구 될 것”
“우리의 귀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살핍니다. 시야가 가려진 곳이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감지할 수 있죠. 그래서 데이터 음성화는 특히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물체의 역학을 밝히는 데 적합해요. 우리는 수백 년 동안 그래프와 같은 2차원의 정적인 그림을 사용해 과학적 개념을 전달해 왔어요. 데이터 음성화는 이런 과학의 세계에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선사할 겁니다.” 스칼레티 대표는 앞으로 데이터 음성화가 과학 연구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그는 이전에도 과학 데이터를 음성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2010년 당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소속의 물리학자였던 릴리 아스퀴스와 함께 힉스 입자와 관련된 현상을 소리로 바꾸는 작업을 하기도 했고, 2019년에는 이기영 단국대 뉴뮤직과 교수와 함께 ‘부산의 소리’라는 워크숍을 열어 날씨, 밀물과 썰물, 지진 등 부산의 데이터를 음성화하는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이 교수는 “데이터 음성화는 음악적인 가치와 데이터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며 “데이터를 잘 선택해 음악으로 표현하면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음악도 글이나 미술 작품처럼 생각을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음악가가 데이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이터 음성화를 시각화와 함께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요. 그루벨 교수는 “데이터 음성화는 복잡한 데이터의 흐름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일부 변수를 놓칠 수 있는 단점도 존재한다”며 “음성화와 시각화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하면 과학자가 가진 여러 감각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