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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수컷의 뱃속은 아기 음식창고

남극의 미스터리 펭귄 최신 보고서

펭귄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냉장고. 펭귄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알래스카.

최근 유행했던 넌센스 퀴즈 펭귄 시리즈다. 역시 썰렁하다.

‘펭귄’하면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다가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꼬리 달린 연미복 차림에 항아리 몸매는 동물원을 찾는 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연민의 정도 느껴진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이유를 알 수 없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해서 더욱 그렇다.

최근 과학자들은 펭귄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생김새만큼이나 독특한 생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펭귄을 둘러싼 그 동안의 오해도 풀리고 있다. 남극의 미스터리 펭귄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눈물겨운 부성애


황제 펭귄 부부와 아직 부화되지 않은 알. 펭귄의 가정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 분업 체제다.


최근 프랑스에서 독특한 ‘펭귄식 육아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자연의 섭리대로, 펭귄도 암컷이 알을 낳는다. 그런데 알을 품고 아기를 키우는 등 육아 문제는 암수 모두의 몫이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처음엔 수컷이 알을 품는다. 암컷은 해산 후 체력을 회복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바다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수컷은 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알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임무에만 집중한다. 이렇게 알을 품는 기간 동안, 추위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기 위해 무리를 지어 서로 살을 맞대고 있기도 한다. 알이 부화할 무렵이 되면 바다로 나갔던 암컷이 먹이를 갖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다시 교대로 암컷이 알을 품고 수컷이 먹이를 구하러 떠난다. 아기가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약 54일 동안 펭귄 부부는 이 힘겨운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만약 알을 깨고 아기 펭귄이 태어난 후에도 암컷이 돌아오지 않으면 펭귄 부자(부녀)는 굶어야 할까? 프랑스 극지기술연구소의 미셸 고띠에 박사팀은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2000년 12월 21일자에 자식 사랑이 남다른 수컷 펭귄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암컷이 돌아오기 전에 알이 부화하면 수컷 펭귄은 자신의 위에 음식물을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해뒀다가 태어난 아기에게 먹인다고 한다. 연구팀은 2-3주 동안 위 속에 음식물을 저장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일정한 양의 식량을 구하지 못할 수 있는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했다.

그런데 어떻게 음식물을 3주 동안이나 위에 저장할 수 있을까. 펭귄의 먹이인 물고기나 새우, 오징어는 고단백 식품이기 때문에 펭귄 몸 속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과도하게 증식할 수 있다. 비결은 천연 항생제였다.

프랑스 국립연구소의 세실 두조 박사는 펭귄이 체내에 저장해둔 음식물 샘플을 조사한 결과, 많은 수의 박테리아가 죽거나 기능을 상실한 형태로 변형돼 있었다고 과학전문지 ‘극지생물학’ 2002년 11월호에서 밝혔다. 플랑크톤을 먹은 물고기를 다시 펭귄이 먹으면 플랑크톤에서 항박테리아 물질인 아크릴산이 분비돼 박테리아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따라서 펭귄은 위 안에 저장된 음식물을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다. 암컷이 돌아오면 수컷은 다시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소화했다. 이 점에서 펭귄은 천연 항생제의 분비를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먹은 것을 고이 간직해 아기에게 다시 내어주는 눈물겨운 부성애다.

느긋함으로 잠수병 극복


차례차례 줄을 서서 기다렸다 가 물 속으로‘날아’들어가 는 펭귄들.


화석을 통해 관찰한 결과, 펭귄의 조상들은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한다. 1801년 경까지 사람들은 펭귄을 어류와 조류의 중간쯤 되는 동물로 생각했다. 단백질 결핍에 시달리던 기독교인들이 ‘금요일에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교회의 법을 어기지 않고 펭귄 고기를 먹기 위해 펭귄은 물고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펭귄은 ‘물 속에서 나는’ 새다. 어떤 과학자들은 펭귄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물 속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공중에서 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날개를 이용한 수영과 잠수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펭귄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일본 국립극지연구소의 가쓰푸미 사토 박사 연구팀은, 펭귄이 잠수할 때는 날개를 펄럭이면서 빠르게 내려가지만, 물 위로 올라올 때는 날개를 이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부력에 의지해 비스듬한 각도로 천천히 올라온다고 2002년 4월 ‘실험생물학’지에 밝혔다. 서서히 상승하면서 몸 안의 질소가 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펭귄은 잠수병에 걸리지 않는다.

잠수를 하면 물 밖에서 움직일 때보다 훨씬 힘들다. 물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그 속에서 움직이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잠수할 경우, 깊이 들어갈수록 수압이 높아져 들이마신 공기가 받는 압력이 커진다. 압력이 증가하면 기체의 용해도가 증가한다. 공기에는 이산화탄소, 산소, 질소 등이 포함돼 있는데,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우 낮고 산소는 조직세포가 빠른 속도로 이용한다. 따라서 잠수 상태에서 체내 공기의 주된 성분은 질소가 된다. 질소가 체액에 비정상적으로 많이 녹아 있게 되면 마취 현상이 나타난다. 즉 술에 취한 듯 황홀해지고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혼수상태에 빠지며, 심한 경우 의식을 잃는다. 이런 현상이 ‘질소 중독’으로, 잠수병의 한가지 증상이다.

고농도의 질소가 몸 안에 녹아 있는 상태에서 물 위로 급하게 떠오르려 한다고 상상해 보자. 수압이 감소하면서 체액 속에 녹아있던 질소의 용해도가 낮아진다. 따라서 세포와 혈관들이 체액에서 빠져나온 질소로 포화 상태가 돼 기포가 형성된다. 콜라나 사이다의 뚜껑을 열때 기포가 많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갑작스럽게 혈관 내에 기포가 많아지면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펭귄은 부력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물 위로 나오면서 질소 중독을 막는 것이다. 천천히 올라오면 물 속에 오래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잠수병에 걸릴 위험에 비하면 미미하지 않은가. ‘편의’보다 ‘안전’을 택한 펭귄의 지혜가 돋보인다.

뒤뚱거려도 효율적

펭귄의 날개는 수영뿐만 아니라 체온 유지에도 한몫한다. 보통 때는 날개를 몸에 붙여 따뜻하게 하고, 더워지면 날개를 들어올리고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을 넓혀 몸을 시원하게 만든다. 추운 겨울날 몸을 움츠리는 사람의 동작과 비슷하다. 그러나 날개의 역할만으로 추위를 이겨내기엔 부족해보인다.

펭귄의 몸은 두껍고 끝이 휜 깃털로 덮여 있다. 보통 때는 깃털들이 누워 피부 바로 위쪽에 공기층을 형성한다. 보온 효과를 냄과 동시에 찬 공기에 피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더워지면 깃털들이 곤두서서 몸으로부터 열을 내보낸다.

펭귄이 먹이로부터 기름 성분을 섭취하면 피부 밑에 지방층이 쌓인다. 이 지방층이 두껍기 때문에 펭귄의 몸매가 항아리처럼 돼버린 것이다. 비만인 사람에게는 지방층이 제거 대상이지만, 추운 지방에 사는 펭귄에게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지방층은 열을 전달하는 능력이 작기 때문에 두꺼울수록 체온을 유지하는 효과가 크다.

두꺼운 깃털로 덮인 뚱뚱한 몸 이외에, 펭귄을 상징하는 또다른 요소가 바로 특이한 걸음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펭귄 복장을 하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인기를 모은 적이 있다. 사람처럼 서서 걷는 동물이긴 하지만 펭귄의 걸음걸이는 사뭇 힘들어보인다. 실제로 펭귄은 다른 육상 동물에 비해 같은 거리를 걷는 동안 약 두배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2000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티모시 그리핀 박사와 콜로라도대의 로저 크램 박사는 펭귄이 걷는 동안 왼쪽-오른쪽, 앞-뒤, 그리고 수직 방향에서의 에너지 변화를 측정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추의 움직임을 상상해 보자. 좌우로 움직이다가 한쪽 정점에 도달했을 때 중력에 의한 추의 위치에너지는 최대다. 이 위치에너지는 다음 움직임을 위한 운동에너지로 변환된다. 연구팀은 펭귄이 좌우로 뒤뚱거리며 걷는 방식도 추의 움직임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걷는 동안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일시적으로 정지했을 때 발생하는 최대 위치에너지의 약 80%를 다음 걸음을 위한 운동에너지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약 65%의 위치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펭귄의 걸음걸이는 매우 효율적이다.

그런데 펭귄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다리가 짧다는 것. 펭귄이 걸을 때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것은 특이한 걸음걸이 때문이 아니라, 짧은 다리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핀 박사와 크램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같은 속력을 낼 때 펭귄이 발을 땅에 딛는 횟수가 타조에 비해 두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리 길이가 세배인 타조와 같은 거리를 같은 속력으로 걷기 위해서 펭귄은 타조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숏다리의 생명은 스피드’란 것도 자연의 섭리인가.

펭귄의 일상에는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처럼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하늘 봐도 넘어지지 않아

낮잠에서 깬 펭귄들의 머리 위로 비행기가 몇대 지나간다. 걸음걸이 외에 펭귄을 코미디에 자주 등장하게 하는 오해 중의 하나가 자주 넘어진다는 점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몇몇 조종사들이 펭귄이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걸 멍하니 보다가 뒤로 넘어졌다고 주장했다. 그 후에도 비행기가 많이 뜨는 지역에서 펭귄들이 하늘을 쳐다보다 넘어져 둥지를 벗어나게 돼 번식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도 있었다.

영국의 남극 조사팀은 남조지아섬 왕펭귄 1천마리의 머리 위로 헬리콥터를 띄워 지나가게 했다. 팀의 리더인 리처드 스톤 박사는,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동안 단 한마리의 펭귄도 넘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헬리콥터가 접근함에 따라 펭귄들은 조용해지면서 서로를 부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둥지 밖에 나와 있는 펭귄은 헬리콥터 소리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처음 보는 이상한 물체가 접근하거나 낯선 소리가 들리면 경계하는 것처럼.

남극의 아침은 펭귄 무리들이 먹이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느라 떠들썩하다. 아기 펭귄들이 먹이를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수십만마리 펭귄 중에서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정확히 찾아낼까. 정답은 목소리. 아기 펭귄들은 시각이나 후각보다는 주로 청각에 의해 부모를 알아본다고 알려져 있다. 1998년 10월 ‘네이처’에 게재된 오빈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기 펭귄이 자신의 부모가 부르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최대 거리는 약 8-9m라고 한다. 하늘을 쳐다보다가 설혹 넘어져서 둥지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이 거리를 넘지 않는다면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둥지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환경 변화로 먹이 부족에 시달려


펭귄은 남극뿐만 아니라 남아 메리카,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와 적도상의 갈라파고스 제도 등 따뜻한 지역에서도 산다.


펭귄은 몸집의 크기나 색깔, 부리의 길이 등에 따라 약 17-18종이 있다. 단지 추운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썰렁한 농담의 대표자가 되었지만, 펭귄은 남극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뉴질랜드와 적도상의 갈라파고스제도에도 서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서양 남단에 위치한 포클랜드 섬은 펭귄의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섬에서 펭귄 무리들의 떠들썩한 울음소리가 줄었다. 2002년 12월 포클랜드의 한 해안에 수천마리의 펭귄이 죽거나 병들어 있는 것이 발견됐다. 당시 영국 BBC 방송은 환경학자 마이크 빙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펭귄들은 굶주려서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최근 펭귄의 수가 감소하는 경향은 먹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란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해양 미생물이 대량 증식해 바다에 적조현상이 나타나면 펭귄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들이 서식하기 어렵다. 또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거나 바닷물의 흐름이 변하면 어류들도 이동한다. 그러면 식량을 바다에 의존하는 펭귄은 먹이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영국 환경연구위원회의 남극조사팀이 2002년 8월 ‘사이언스’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남극 펭귄의 수가 반복적으로 증가하고 감소한 것이 기후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럿이 모이면 시끄럽고, 빙산 위에 올라타는 놀이를 즐기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펭귄의 모습은 사람과 참 비슷하다. 포클랜드 섬의 펭귄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길 바란다.

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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