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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류 보편적 진화 과정 통해 역사 살펴야”

“사는 곳과 피부색이 달라도 인류는 모두 같은 조상에서 나온 같은 존재입니다. 인류의 보편적 진화 과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런 부분에 관심이 적은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준비 중인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 특별전(5월 개막 예정)을 통해 시민들이 이런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인류에 대해 확장된 시야를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2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연구실에서 만난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은 고고학과 역사를 주로 다루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류 진화라는 과학적인 주제로 특별전을 기획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인류의 보편성’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배 전 관장은 국내 대표적인 구석기 고고학자이자 박물관 전문가로, 2017년 7월 제13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해 지난해 10월까지 재직한 뒤 퇴임했다.


그가 임기 막바지에 추진한 호모 사피엔스 특별전은 인류가 진화하고 문화와 예술을 탄생시킨 과정을 통해 현생인류의 미래를 조망하고 자연과 공존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내용을 담았다. 역사와 유물을 주제로 전시를 개최해 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류 진화를 중심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전시를 개최하는 건 처음이다. 배 전 관장은 “국립박물관이 해 본 전시 가운데 가장 생소한 전시일 것”이라며 “인간에 대해 더 확장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전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 전 관장은 한반도의 주요 구석기 발굴지 중 하나로 꼽히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의 발굴과 연구를 30여 년 수행하며 국내 구석기 연구를 주도한 고고학자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처음 발견돼 이듬해부터 발굴이 시작된 유적으로, 140만~10만 년 전 유럽과 아프리카의 전기구석기 석기 양식으로 알려져 있던 ‘아슐리안’ 양식을 따른 주먹도끼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굴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양쪽 면을 깎아 만든 복잡한 석기인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전곡리 발굴 이전에는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발굴돼 왔다. 이에 따라 서양 고고학자들은 석기라는 유물이 유럽에서 먼저, 더 정교하게 발전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이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실제로 이후 중국 등에서 아슐리안 양식의 주먹도끼가 여럿 발견되면서 현재는 당시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 등을 가릴 것 없이 보편적인 적응 양상을 보였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배 전 관장은 서울대 대학원생 시절 전곡리 발굴 초창기 때 발굴 현장 책임자 및 행정 실무자로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고고학 명가 중 한 곳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인류학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고인류학과 만났다. 배 전 관장은 “인류의 지적 능력을 보는 구석기학은 고인류학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연천 전곡리 유적 발굴과 연구를 계속했다. 1992년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를 세웠고, 이듬해 전곡리구석기유적관을 개관하고 제1회 전곡리구석기문화제를 개최했다. 구석기인의 생활을 유물 및 유적과 함께 체험하며 이해하는 이 축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에는 발굴 성과와 인류 진화에 대한 지식을 담아 전곡선사박물관을 개관하고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국내에서 제자를 키우고 전곡리 유물을 연구하는 틈틈이 해외 연구에도 참여했다. 아프리카와 이란,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 현생인류가 발상하고 확산한 경로의 구석기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지난해 말 국립중앙박물관장 퇴임 뒤, 배 전 관장은 아시아의 고인류학과 구석기학을 망라하는 집필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시대가 길고 넓어서 자료를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라며 “큰 흐름이라도 묶어 놓으면 젊은 후속 세대가 하나 하나 깊이 연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곡리 유적의 정식 보고서를 내는 일도 숙제다. 국내 구석기 유적 가운데 가장 과학적으로 연구된 곳이지만 여전히 자료가 불완전하다는 판단에서다. 논란이 되는 연대 문제도 정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학문 이력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아시아만 해도 공부해야 할 논문이 너무나 많이 나왔다고, 그걸 몇 년 놓친 게 아쉽다고 했다. 박물관장 재직 직전까지도 젊은 연구진과 과학 논문을 썼던 노학자는 학문 앞에서 그렇게 겸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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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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