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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벨상으로 알아보는 이중나선 그 후

생리의학상과 화학상 40명의 빛나는 업적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지 올해로 50주년이 된다. 더욱이 올해는 인간이 가진 DNA의 30억쌍 염기 정보를 모두 밝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될 예정이어서 더 뜻깊은 해다. 1953년 4월 25일자 ‘네이처’에는 DNA에 관한 세개의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이뤄졌다는 왓슨과 크릭의 이론적 논문이 앞서고, 핵산의 결정 구조를 밝히는 윌킨스의 논문과 이중나선 구조의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X선 사진이 포함된 프랭클린의 논문이 뒤따랐다.

1962년 왓슨과 크릭, 윌킨스는 DNA 구조 발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그렇지 못했다. 노벨상은 3인을 초과할 수 없으며 사망한 사람에게는 추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DNA 구조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고도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상세한 구조를 밝힘으로써 인류는 마침내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중나선을 이루는 DNA사슬을 부모에게서 절반씩 물려받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이중나선에 담긴 DNA의 유전정보는 RNA라는 통신병을 통해 단백질을 만들도록 명령을 내린다. 또한 DNA 는 세포 내 특수한 메커니즘에 의해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으며, RNA는 DNA와는 달리 단일 가닥으로 세포 내 자기 역할을 담당한다. 더욱이 DNA의 이중나선을 재단하면 의약품을 비롯한 유용한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가위 역할을 하는 제한효소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DNA의 구조 규명은 생명공학 혁명의 출발점이 됐다. 그렇다면 처음 DNA 구조가 밝혀진 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생명과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돼 왔는지 그동안의 노벨상 수상내용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단백질이야 핵산이냐


1유전자 1효소설 발표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 해결에 몰두하던 1950년대 중반은 ‘유전자’에 대한 관심이 과학자 사이에서 대단했다. 그 무렵 멘델의 유전법칙이 다시 발견돼 널리 알려졌고, 유전인자가 염색체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지면서 초파리 염색체(모건, 1933년 노벨 생리의학상)와 옥수수 염색체(맥클린톡,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를 중심으로 세포유전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910년 미국의 유전학자 토머스 모건은 흰색 눈을 가진 초파리 돌연변이를 연구해 염색체가 유전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1924년 염색체가 단백질과 핵산(DNA와 RNA)이란 두 물질로 이뤄졌음이 밝혀지면서 유전연구는 다시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유전자가 단백질과 핵산 중 어디에 들어있는지를 가려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단백질 쪽에 손을 들었다. 복잡한 유전형질을 전달하려면 단순한 핵산보다 수천종에 이르는 단백질이 더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또다시 역전됐다. 유전자가 DNA 안에 들어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박테리오파지(박테리아에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그룹에 의해 발견됐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근교에 위치한 콜드 스프링 하버연구소에는 매년 여름 박테리오파지 연구자들이 모여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전통이 있었다. 왓슨은 1952년 이곳에 지도교수를 따라갔다가, 유전인자는 단백질이 아니라 핵산이라는 알프레드 허쉬(1969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결정적인 연구결과를 듣는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단계인 박테리오파지는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살아있는 다른 세포 안에 들어가 증식한다. 허쉬는 박테리오파지를 이루고 있는 단백질과 핵산(DNA) 중 어느 것이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지를 연구했다. 1952년 허쉬는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가 박테리아에 감염될 때 핵산인 DNA만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단백질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이 사실은 핵산인 DNA가 유전물질임을 입증한 것이다.

DNA가 과연 자기복제의 원판으로 사용되는지는 바로 3년 뒤인 1956년 미국의 아서 콘버그에 의해 증명됐다. 그는 오초아와 함께 장에서 흔히 자라는 세균인 대장균의 추출물에서 DNA를 합성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길다란 DNA 사슬을 원판으로, 마치 복사기가 원본을 복사해내듯 DNA를 그대로 복제해내는 복제효소를 발견한 것이다. 이 효소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의 네가지 염기를 실에 꿰듯 복제하기 때문에 ‘DNA 중합효소’(DNA polymeras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를 통해 모든 생체에서 DNA가 어떻게 복제되는지를 알게 됐다. 콘버그와 오초아는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에 앞서 비들과 타툼, 레더버그는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그 양상을 비교하는 기법으로 유전자 하나가 단백질 하나를 결정한다는 ‘1유전자 1효소설’을 발표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은 이들은 195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DNA와 RNA 그리고 단백질


195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타툼


그렇다면 DNA에서 시작된 유전정보는 생명현상에 어떻게 번역돼 쓰일까. 이에 대해 크릭은 1958년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A, G, C, T 네개의 염기로 구성된 DNA의 유전정보는 RNA의 A, G, C, U(우라실)로 옮겨 쓰인 다음, RNA의 염기 순서에 따라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20가지 아미노산이 각각 결정돼 단백질이 합성된다는 것이다. 즉 유전정보는 DNA → RNA → 단백질로 흐른다는 것이다.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ama)라 불리는 이 가설은 그러나 그때까지 이론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던 것이었고 실험적으로는 검증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많은 과학자들은 경쟁적으로 이 연구에 몰두했다.

1966년 드디어 센트럴 도그마의 실험적 증명이 이뤄졌다. 미국의 로버트 홀리와 마셜 니런버그 , 고빈드 코라나는 DNA로부터 전달된 RNA의 유전정보는 염기 세개가 하나의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RNA의 기능과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다. 예를 들어 DNA의 유전정보가 TGT였다면 이는 RNA에서 UAU로 바뀌고 이는 곧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을 지정하는 식으로 DNA와 RNA, 단백질의 관계를 밝혀냈다.

이에 따라 인류는 수없이 나열된 DNA의 염기가 어떻게 특정 아미노산으로 번역돼 생명체의 벽돌인 단백질을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홀리, 코라나, 니런버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생명현상에 대한 또하나 중요한 의문은 수많은 유전자들이 한꺼번에 모두 활용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세포는 어떻게 원하는 유전자만 선택해 발현시키는가였다. 이 문제는 프랑스의 야콥과 루오프, 모노가 해결했다. 이들은 DNA의 유전자 앞부분에 조절인자 단백질이 붙어 있으면 RNA를 만드는 전사효소가 자리 잡을 수 없어 RNA가 만들어지지 않고 결국 단백질로 번역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사는 조절인자가 떨어져 나가면 시작된다. 유전자의 발현 조절은 이렇게 스위치 역할을 하는 조절단백질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규명한 것이다. 이런 조절을 절묘히 운용하면서 미생물이나 고등생명체는 시시각각 전개되는 환경의 변화와 세포 내부의 여건에 적응해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야콥과 루오프, 모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7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흐른다는 유전정보의 센트럴 도그마를 정면으로 반박한 연구에 돌아갔다. 미국의 볼티모어와 둘베코, 테민은 RNA에서 DNA를 만들어내는 ‘RNA복제효소’를 발견했다. 이 발견은 그동안 생명과학계를 지배하던 센트럴 도그마를 깨뜨렸고, 많은 과학자에게 생명현상이란 알면 알수록 더욱 복잡하다는 경외심을 심어줬다.

이런 발전이 꾸준히 있었지만 20여년 간 DNA 분자를 직접 다루는 연구는 사실상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 DNA는 길다란 실타래나 국수가락과 같은 거대한 물질인데, 어느 부분만 잘라서 집중적으로 다룰 수 없었고 네가지 염기서열의 단조로운 반복 밖에 없는 무미건조한 물질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DNA는 다양한 단백질에 비해 연구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인식됐다. 이런 답보 상태를 깨뜨리는 반가운 사건이 터졌다.

유전공학 이끈 가위 효소

197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스위스인 아버, 미국인 네이탄스와 햄 스미스는 제한효소라는 독특한 효소를 발견했다. 그후 제한효소는 수백가지가 발견돼 DNA 연구를 폭발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제한효소는 DNA의 수많은 염기서열 중 자기만 알아보는 네개 또는 여섯개의 염기서열을 찾아내 자르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커다란 나무를 토막 내 여러가지 길이의 장작더미를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토막들을 짜맞춰 상대적 위치를 결정하면 유전자 지도를 만들 수 있고, 주소가 분명한 작은 조각들을 반복적으로 분리해낼 수 있어 여러가지 연구가 가능해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잘라진 조각의 끝을 이어주는 연결효소도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는 곧 오늘날 유전공학 혁명을 일으킨 재조합 DNA 기술로 연결됐다.

박테리아에는 자신의 염색체 이외에 플라스미드라고 불리는 5천 염기쌍 정도의 작은 고리모양의 DNA가 있는데, 이는 자체적으로 복제가 가능하다. 이 플라스미드의 한군데를 제한효소로 자른 후 외부의 유전자를 연결효소로 이어주면 재조합 DNA가 된다. 이 재조합 DNA를 다시 대장균 세포 안으로 집어 넣어 정상적으로 배양하면 플라스미드에 끼어 있는 외부 유전자도 복제된다. 당뇨병 치료에 필수적인 인슐린 유전자를 플라스미드에 끼워 넣으면 인슐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대장균은 평균 30분에 한번씩 분열하므로 하룻밤만 키우면 몇백만배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1980년 노벨 화학상은 이같은 기술을 개발한 미국의 폴 버그에게 돌아갔다.

게놈프로젝트 뒷받침한 DNA 연구


수많은 DNA 관련 노벨상 수상자 를 배출한 미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전경.


같은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의 웰터 길버트와 영국의 프레드릭 생거는 DNA 염기서열을 손쉽게 읽어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생명체의 전체 게놈을 밝혀내는 게놈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생거는 1958년에도 아미노산 서열 분석법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아 두개의 노벨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차지했다.

1982년에는 클루그가 바이러스의 핵산과 단백질 구조를 밝혀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고, 1989년에는 알트만과 체크가 RNA도 단백질과 마찬가지로 효소의 기능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993년에는 네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로버츠와 샤프는 박테리아와 달리 진핵세포를 가진 동·식물에는 하나의 유전자 안에 여러개의 의미없는 조각들이 끼워져 있음을 밝혀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캐리 멀리스와 마이클 스미스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을 개발해 DNA 한가닥을 수십억개의 가닥으로 증폭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PCR은 극미량의 DNA를 짧은 시간 안에 대량으로 증폭해 분리하거나 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DNA 연구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생명공학의 폭발적인 발전에 기폭제가 됐다. 인간게놈프로젝트 역시 PCR이 없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할 계획이었다.

지난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선충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 세포의 늙음과 죽음을 통제하는 유전자의 비밀을 밝혀낸 브레너와 호비츠, 설스톤에게 돌아갔다. 특히 브레너는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 DNA 모형을 만들어 처음 공개할 때 참여한 4인의 증인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고, 이들과 함께 일생 동안 분자생물학의 발달에 많은 공을 쌓은 인물이다.

지난 2월말 왓슨이 명예소장으로 있는 콜드 스프링 하버연구소에서는 DNA 구조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학술대회가 열렸다. 필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이중나선 DNA는 ‘폴드백 인터코일’(FBI, FoldBack Intercoil)이라는 새로운 구조로도 존재할 수 있으며, 이 구조는 DNA 재조합 등 중요한 기능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총 8인의 노벨상 수상자들(왓슨, 브레너, 콘버그, 니런버그, 길버트, 샤프, 햄 스미스, 체크)과 크릭(화상회의로 참석)이 참석한 이 대회는 6일 간에 걸쳐 지난 50년의 발자취와 그들이 결정적인 발견을 했던 상황 등을 되돌아봤다. 참석자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50년 전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됨으로써 신의 영역에 속했던 생명의 신비를 인간이 시험관 안에서 연구하는 시대가 열렸고, 관련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인간 유전체의 전체 염기서열을 읽어냈다는 일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 75세인 왓슨은 60주년 기념 행사에도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이 특별회의의 폐회를 선언했다.

DNA 구조 발견 이후 현재까지 핵산과 유전자에 직접 관련된 노벨상은 생리의학상 32명과 화학상 8명으로 총 40명에 달한다. 국적으로 보면 일본 1명, 스위스1명, 프랑스 3명, 영국 7명, 미국 28명이다. 영국인 7명은 모두 왓슨, 크릭과 케인브리지대를 통해 직간접으로 인연이 있었고, 미국인들도 많은 경우 하버드, 칼텍,매사추세츠공대(MIT)와 콜드 스프링 하버연구소 학술회의에 참여하는 소수의 그룹에 연결돼 있음을 주목할필요가 있다. 바른 시기 바른 장소에서 바른 인연을 맺어 바른 문제를 찾아 열심히 정진할 때 과학은 커다란발전을 이룬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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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병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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