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라크전 보도를 시청하다 보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반전시위의 물결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 중 ‘이라크전은 환경재앙’과 같은 환경 관련 표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실제 반전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중 상당수가 환경단체다. 왜 그럴까.
이라크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온통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황이나 첨단무기의 성능에만 쏠려 있다. 비록 대중적 관심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환경파괴’라는 중요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결과로 벌어질 수 있는 환경파괴 문제를 짚어보자.
중국까지 오염물질 날리는 유정화재
1991년에 벌어졌던 1차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를 점령했던 이라크는 자국으로 철수하기 전 7백여개의 쿠웨이트 유정에 지뢰를 매설하고 방화를 했다. 이로 인한 불길은 6개월이 넘어서야 잡히기 시작했으며, 매연은 1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사실 유정에 화재가 발생하면 가스층이 모두 연소하기 전에는 현장 접근조차 불가능하며, 그 후에도 뾰족한 소화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도 개전한지 이틀만에 수십곳의 유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외신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어 심각히 우려되고 있다.
유정에서 발생한 매연들은 뜨거운 열로 인해 주변 공간에 상승기류를 발생시켜 거대한 구름기둥을 형성한다. 1차 걸프전에서는 매일 수백만배럴의 석유가 타올라 수십만t의 가스와 검댕이 발생해 햇빛을 완전히 차단할 정도로 하늘을 뒤덮었다.
중동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에는 약간의 질소와 2%가 넘는 다량의 유황이 함유돼 있기 때문에 연소시에 다량의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 그을음이 발생한다. 이를 직접 들이마실 경우 호흡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으며, 구름과 함께 응결되면 강한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걸프전 때 쿠웨이트에서 발생한 매연구름은 바람을 타고 무려 1천9백km나 날아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까지 산성비가 내리는 원인이 됐다. 또한 이 매연구름에는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불완전연소가 이뤄질 때 발생하는 이황화탄소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이 물질은 소량만으로도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다량 흡입할 경우에는 시력을 잃거나 신경 손상으로 사망하게 되는 매우 유독한 독극물이다.
매연구름은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국지적으로 기온을 크게 떨어뜨리고, 식물이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게 해 생장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런 양상은 종종 핵폭발 구름으로 인한 ‘핵겨울’에 비견되곤 한다. 러시아의 주간지 ‘논쟁과 사실’ 최근호는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유전화재가 다시 발생할 경우 이번에는 인도와 중국, 러시아까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기압골이 형성되기 쉬운 봄이기 때문에, 중동에서 편서풍을 타고 건너온 매연이 이들 지역에서 저기압을 만나 구름이 돼 산성비와 함께 그대로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
직접적인 유독물질뿐 아니라 온실가스의 배출 문제 또한 심각하다. 걸프전 당시에는 5억t에 이르는 이산화탄소가 매연과 함께 배출됐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면 지구온난화의 추세를 더욱 악화시킴은 물론, 엘니뇨 등과 결합돼 홍수나 가뭄 등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습지와 식생 면적 급격히 줄어들어
유전이 전쟁의 피해를 입을 경우에는 화재뿐 아니라 기름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차 걸프전 때에도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 전, 쿠웨이트 유전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원유가 유출됐다.
지난 3월16일 영국 BBC방송이 인용한 국제조류보호단체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LI)의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전 당시 6-8백만배럴에 이르는 석유가 바다로 유출됐다. 그 결과 해안에서 5백60km 떨어진 곳까지 기름으로 오염돼 페르시아만의 갯벌 생태계는 모두 파괴되고, 3만마리에 이르는 바다새와 수많은 거북, 돌고래 등이 죽었다. 바다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야생동물들이 수난을 당했는데, 수많은 철새들이 사막지대 곳곳에 형성된 석유호수와 기름의 강을 보통 호수로 착각해 내려앉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석유호수에서 허우적거리는 철새들을 사냥하러 덤벼든 독수리 같은 맹금류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해상전이 벌어질 경우 군함이나 유조선의 침몰로 인해 대규모 해양오염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 1995년에는 걸프전 와중에 침몰한 이라크 유조선에서 10만t의 원유가 새어나올 가능성이 발견돼 세계가 공포에 떨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내 용수의 90% 이상을 페르시아만의 담수화 시설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형 해양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물 부족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아울러 이라크는 겨울 철새인 두루미와 백로, 그리고 각종 물새들의 이동중 중간휴식지로서의 가치가 높다. 특히 이라크 남동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습지대는 수천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5천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를 이어온 마단(ma'dan) 원주민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한때 2만㎢ 가까이에 이르던 습지대는 이미 1차 걸프전의 불길 속에서 대부분이 파괴됐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온전하게 남아있는 습지는 고작 5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환경파괴는 시베리아에서 남아프리카에 이르는 생태축의 생물다양성에도 연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미 페르시아만 주변에 살던 도깨비쥐와 수달류 등 여러 동물들이 멸종된 것으로 판단된다. 마단 원주민도 삶의 근거를 대부분 잃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사막지역과 같이 취약한 생태계의 환경은 여러 원인에 의해 쉽게 훼손될 수 있다. 여기에는 원유유출과 화재로 인한 오염뿐 아니라, 직접적인 전쟁 행위로 인한 경관 훼손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량의 난민이나 군병력이 이동할 경우에는 이동로 주변의 식생이 크게 훼손되고, 습지가 강제로 매립되는 등의 환경피해가 발생한다. 폭탄이나 화생방무기가 투하되면 해당 지역이 독성물질과 방사능으로 오염돼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걸프 증후군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무서움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른 첨단무기들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정보는 군사정보의 속성상 대중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 이번 이라크전도 이런 정보 은폐의 과정 속에서 또다른 피해의 양산이 우려된다.
가장 큰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대상은 열화우라늄탄이다. 열화우라늄탄이란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핵연료나 핵무기 탄두 등을 가공할 때 발생되는 우라늄 부산물을 이용해 만든 포탄이다. 이 우라늄 부산물에는 방사능 성분이 적게 함유돼 있기 때문에 감손우라늄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우라늄의 특성상 밀도가 매우 높고 단단해 주로 탱크나 장갑차를 높은 운동에너지를 갖고 관통하기 위한 철갑탄의 탄심으로 쓰여진다. 현재 미군 탱크에서 사용하는 전차포탄과 장갑차, 헬리콥터, 대지공격기에 쓰이는 기관포탄은 거의 모두 열화우라늄이다.
열화우라늄탄은 장갑을 관통하면서 높은 열을 발생해 목표물을 파괴하는데, 이 과정에서 열화우라늄 탄심이 기화돼 미립자로 확산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소량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방사능물질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호흡, 식수 등을 통해 사람이 접하면 우라늄 입자가 허파, 뼈, 신장 등에 흡착돼 지속적으로 방사능에 피폭된다. 이런 열화우라늄탄의 폐해는 단순히 사람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생태계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때문에 막심한 환경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열화우라늄탄은 1차 걸프전 때 처음 선보였으며, 이후 1994-1995년의 보스니아 내전, 1999년 코소보 전쟁과 같은 발칸반도 분쟁에서 계속 사용됐다. 이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이들 전쟁에 참가한 병사나 주민들이 잇따라 암으로 사망하고 전장 주변 지역에서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보고되면서부터였다.
1차 걸프전 때 미국은 이라크 탱크와 장갑차를 파괴하기 위해 70여만발의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약 8백t에 이르는 열화우라늄이 그대로 방출돼 전후처리에 임한 병사들과 주변주민들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의 발표에 따르면 바스라 등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는 암 발생률이 6배나 증가했고, 특히 15세 미만의 어린이 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00년 미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전 참전 군인 70만명 중 1만4천5백명에게서 암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걸프 증후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걸프 증후군은 당시에는 세계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다가, 보스니아와 코소보전쟁 결과로 생긴 ‘발칸 증후군’이 퍼지면서 함께 주목을 받게 됐다. 이때는 유럽국가들이 열화우라늄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미국과 유럽국가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공식적으로는 열화우라늄탄의 유해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일단 사안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열화우라늄탄을 둘러싼 문제는 월남전 때의 고엽제 사용 후유증 논란처럼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 국방부에서는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지상전이 발발하면 열화우라늄탄을 ‘아낌없이’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라크와 같은 고온건조한 사막지역에서는 기화된 열화우라늄 입자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확산될 수 있어 그 피해가 더 커질 것이 우려된다.
이밖에 이번 전쟁에서 새로 선보인 첨단무기들 역시 환경재앙을 초래할 우려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전쟁 초기에 이라크의 통신체계를 마비시킨 전자폭탄의 경우를 보면, 폭발시 20억W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극초단파를 순간적으로 방출해 반경 3백30m 안의 모든 전자기기를 마비시킨다고 한다. 이 출력은 전 세계의 휴대전화를 한꺼번에 작동시킨 것보다도 월등하게 높은 에너지다. 현재 휴대전화의 전자파를 둘러싸고 유해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전자폭탄 역시 우리 건강에나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박쥐나 일부 조류와 같이 전자기파에 민감한 생물들은 여기에 노출되면 감각기관과 신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재래식 무기 또한 살상력에 따라서 환경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번에 바스라 상공에서 사용됐다고 의심되는 공중폭발 대형폭탄(일명 MOAB)은 폭발시 반경 5백m를 파괴한다. 이 정도의 위력이면 주변 생태계는 소형 핵무기를 맞은 것처럼 초토화될 수 있다. 월남전에서 쓰인 네이팜탄은 단순히 화재를 유발했지만 이런 폭탄들은 순간적으로 주변 산소를 모두 끌어들여 단숨에 연소해 폭발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순간적으로 주변의 모든 생물체를 전멸시킬 수 있다.
이라크전의 결과 우려되는 환경피해의 최종 결과는 어떤 양상으로 전쟁이 벌어질 것인지, 전쟁이 얼마나 장기화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전쟁, 특히 현대전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엄청나다. 일각에서는 전쟁중의 환경파괴 행위를 국제법에 의해 규제하고자 ‘녹색 제네바 협정’을 제안하고 있지만 아직 목소리가 작은 실정이다. 전쟁은 수천년 간 조화롭게 존재하던 모든 것을 한번에 파괴할 수 있다. 소중한 지구의 환경은 평화와 함께 할 때만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