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라마 ‘의사 요한’이 8월 10일 기준 시청률 10.1%(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의사 요한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통증의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통증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내며 웰메이드 드라마로 호평을 받고 있다.
세계통증연구학회(IASP·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는 통증을 ‘실제적인 또는 잠재적인 조직 손상 등으로 발생하는 불쾌한 감각 또는 정서적 경험’으로 정의한다.
통증은 우리 몸이 날리는 일종의 경고장이다.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뜨거운 프라이팬에 손이 닿는 순간 뜨거움과 아픔을 느끼게 만들어 바로 손을 떼게 만드는 회피반사도 통증에 해당한다.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통증은 손상 부위의 움직임을 줄여 손상 부위가 회복될 때까지 보호하는 안전장치 역할도 한다.
중추신경의 이상 작용 ‘환상통’
생리적 통증이 만성화되거나 손상 부위가 없는데도 지속적으로 통증이 유발되면 통증 자체가 질병이 되기도 한다. 이런 통증을 신경병증성 통증(neuropathic pain)이라고 한다. 당뇨에 의한 신경병증성 통증, 대상포진 이후 신경통, 얼굴 신경인 삼차신경에 나타나는 삼차신경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드라마의 의학자문을 맡은 심재항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신경병증성 통증은 통증의 전달 경로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며 “말초신경이나 중추신경이 손상돼 주변 신경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작(sensitization)이 발생하면서 자발적 통증이나 통각 과민 등 병적인 통증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는 환상통(phantom pain)을 겪는 환자가 등장하는데, 환상통도 신경병증성 통증 중 하나다. 환상통은 이미 절단된 신체 부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으로 환지통으로 불리기도 한다. 단순히 간지럽거나 가려운 수준부터 더위나 추위를 느낄 수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아프고 쓰라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심 교수는 “신체 일부가 절단되면 그 부위에 연결돼있던 중추신경이 예민해져 감작을 일으킨다”며 “심해지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체 부위가 고통스럽다거나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통증 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심 교수는 “통증은 환자의 정서적, 사회문화적 배경 등 여러 인자가 연관된 복잡한 현상”이라며 “물리적으로 비슷한 외상을 입은 경우에도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강도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통증 강도 측정에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1차원적인 평가 방법이다. 여기에는 시각통증등급(Visual Analogue Scale), 숫자통증등급(Numerical Rating Scale), 언어통증등급(Verbal Rating Scale) 등이 있다.
시각통증등급은 길이 10cm인 수직선이나 수평선을 이용해 한쪽 끝은 통증이 없음을, 나머지 한쪽 끝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통증을 표시해 환자에게 통증 강도를 표시하게 하는 것이다.
숫자통증등급은 길이를 숫자로 바꾼 것이다. 숫자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12세 이상 환자에게 사용한다. 대개 0부터 10까지 숫자가 표시된 자를 이용해 측정한다. 1~3점까지는 가벼운 통증으로, 4~7점은 중간 수준의 통증, 7~10점은 심각한 수준의 중증 통증으로 간주한다. 언어통증등급은 환자에게 자신의 통증 강도를 말로 표현하게 하는 평가법이다. 심 교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통증으로 인한 정서적 변화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등을 함께 평가하는 다차원적 평가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마취제로 신경 차단, 진통제로 통증 억제
드라마 주인공인 차요한(지성)은 천재 통증의학과 교수로 나온다. 10초면 환자의 통증 원인을 찾아낸다고 해서 ‘닥터 10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통증의학과는 이름 그대로 통증 치료가 핵심이다. 수술 후 통증이나 외상 후 통증 등 급성 통증이나 신경병증성 통증 등 만성 통증을 줄이기 위한 치료를 한다.
통증 치료는 의학적으로 마취와 관련이 깊다. 가령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통증의 전달 경로인 말초신경이나 척수 등 중추신경을 차단하는 신경차단술은 마취제를 사용해야 한다. 마취제를 이용해 대뇌로 통증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분만 시 통증을 줄이기 위한 경막외마취, 신체 일부를 마취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부위 마취도 있다.
약물 요법으로 통증을 잡을 때는 주로 진통제가 사용된다. 진통제는 크게 비마약성 진통제와 마약성 진통제로 분류할 수 있다. 비마약성 진통제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엔세이드)가 일반적이다.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체내에서 염증을 유발해 통증을 일으키는 생리 활성 물질에는 ‘프로스타글란딘’이 있는데, 프로스타글란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이클로옥시지네이스(COX·cyclooxygenase)라는 효소가 필요하다. 엔세이드는 COX를 억제해 진통 효과를 낸다. 심 교수는 “엔세이드의 경우 위장관 출혈이나 신장 독성, 간 독성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복용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마약성 진통제 중에는 엔세이드 계열이 아닌 아세트아미노펜도 있다. 타이레놀이 대표적이다. 이 성분도 COX를 억제하지만, 중추신경계를 통해 억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마약성 진통제는 비마약성 진통제로는 조절할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데 사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전체에 골고루 퍼져있는 마약성 진통제 수용체(opioid receptor)에 결합해 통증 전달을 차단한다.
심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는 효과가 강력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중추신경계를 비롯해 호흡계, 심혈관계 등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내성이나 의존성, 나아가 약물 중독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 인지 못해 더욱 위험한 ‘무통증’
드라마에서 차요한의 아버지는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IPA)’을 앓았고, 이로 인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 차요한 역시 아버지처럼 CIPA 환자이며, 스스로를 진단하기 위해 통증의학과 의사의 길을 선택했음이 밝혀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CIPA는 소위 ‘무통증’으로 불리는 질환으로, 희귀 유전성 질병 중 하나다. 통각뿐만 아니라 냉점과 온점 등 뜨겁고 차가운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이 때문에 칼에 찔리거나 불에 데어도 자신이 다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CIPA는 NTRK1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발병한다. 이로 인해 신경성장인자가 생성되지 않고 두뇌로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통각이나 온점, 냉점 등 감각이 대뇌로 전달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고통이나 온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박상준 연세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 교수는 “CIPA 환자는 통증이 없기 때문에 상처가 나거나 부상을 당해도 다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몸을 정상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며 “피부나 각막 손상, 근골격계 문제가 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NTRK1 유전자는 땀샘에 연결된 신경에도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CIPA 환자는 땀을 흘리지 않는 무한증을 동반한다. 박 교수는 “땀을 흘리지 못하기 때문에 체온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의학계에는 CIPA 환자의 약 20%가 3세 이전에 고열로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