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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박쥐 같은 학문 바이오피직스로 면역항암제 개발 길 열 것"

4월 27일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만난 하택집미국존스홉킨스대교수. 바이로피직스 수업 첫 시간에 배우는 내용을 편서한 뒤 미소를 짓고 있다.

 

 

 

한국인 최초 미국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석좌교수’ ‘하워드 휴즈 의학 재단 올해의 생명의학 과학
자’ ‘네이처, 셀 등 권위 학술지에 논문 200편을 발표한 생물물리학계의 석학’. 하택집 미국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석좌교수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세계적인 유명세 덕에 전세계를 돌며 바쁜 일과를 소화하는 그가 8월 7~10일 시간을 쪼개 한국고등교육재단(KFAS)이 주최하는 대중강연(TEDx) 차 방한한다. 그를 지난 4월 미리 만나 연구자로서의 삶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형광공명에너지전이(FRET) 기술은 ‘강남스타일’의 말춤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춤을 출 때
양손 사이 거리에 주목해주세요.”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자 관중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화면에는 싸이보다 더 격렬하게 두 팔을 흔들며 말춤을 추는 10대 소년이 등장했다. 소년은 빨간색과 초록색 형광 팔찌를 하나씩 손목에 차고 있었다. 하택집 미국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석좌교수(50)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아들입니다. 귀엽죠?”


형광 물질로 분자들의 상호작용 추적강연은 ‘빛으로 자연의 나노기계를 탐구하다(Probing Nature’s Nano-machines with Light)’라는 주제로 4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고등과학원(KIAS) 대강당에서 열렸다.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바로 그 날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강연 3시간 전 하 교수를 고등과학원 내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하 교수는 “대중 강연인 만큼 재미있는 강연을 준비했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춤’일 줄이야.

 

핵심은 손목에 찬 형광 팔찌였다. 하 교수는 형광 물질을 이용해 생물 분자들의 움직임이나 동작을 추적하는 FRET 기술로 지난 20년 간 ‘네이처’ ‘셀’ 등 유수의 학술지에 논문 200여 편을 발표했다. FRET은 ‘Fluorescence Resonance Energy Transfer’의 약자로 두 종류의 형광 물질이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공명에 의해 에너지가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생물 분자들 사이의 거리는 수 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다.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분자 각각에 색이 다른 형광 물질을 부착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거리에 따라 두 형광 물질의 밝기가 달라지고 그 결과 색깔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예상할 수 있다. 하 교수는 단백질 등 다양한 실험 분자에 형광 물질을 부착한 뒤, 이것들을 DNA 이중나선에 하나씩 붙여 가까운 거리에서 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했다. 광학을 기반으로 한 생물학 연구, 바이오피직스(Biophysics)다.


“원래는 이론물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수학 과목을 수학과 학생들만큼 들었을 정도로요.”


그런데 대학원 시절 운명이 바뀌었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어느 날, 양자역학을 멋지게 가르치던 교수가 이론이 아니라 실험물리 연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박사논문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사람들이 하나의 분자에 형광 물질을 부착하는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똑같이 논문을 내면 박사학위를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개의 분자에 형광 물질을 붙여 동시에 보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로 2005년 ‘네이처’에 실린 모터 단백질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꼽았다. UC버클리에서 만난 아내 명수아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합심해 쓴 첫 논문이기 때문이다. 당시 하 교수는 일리노이대에 막 부임해 랩을 이끌고 있었고, 아내는 UC버클리에서 생물학 박사 후 그의 랩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하 교수는 “이 연구로 연구실이 유명해졌다”며 “아내 덕을 많이 봤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존스홉킨스대 의대와 공동연구 꿈꿔


현재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명망 있는 한국인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특히 2015년 ‘꿈의 교수직’이라는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석좌교수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블룸버그 석좌 교수제(Bloomberg Distinguished Professorship·BDP)는 통신사 블룸버그의 설립자이며 모교에 13억 달러(약 1조4462억 원)를 기부한 전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전세계에서 최고의 석학을 지원하는 제도다.


BDP의 정원은 단 50명으로, 한 번 선정되면 퇴임할 때까지 매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연구비를 지원받는다(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는 그가 존스홉킨스대로 이직한 후 처음으로 하는 언론 인터뷰였다. 그에게 학자로서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소감을 물었다.


“글쎄요. 존스홉킨스대 교수 중 한 명일 뿐인데…. 인건비와 기자재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위험한(risky)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좋습니다.”


하 교수는 담담했다. 그는 존스홉킨스대로 옮긴 가장 큰 이유가 사실 지원이나 복지보다는 존스홉킨스대 의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스홉킨스대 의대는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연구 기관으로 의대 내에 실험실을 운영하는 교수가 2000명에 이른다.


그는 “평소 바이오피직스 연구를 질병을 측정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등 실생활에 적용하는 걸 꿈꿔왔다”며 “(존스홉킨스대가) 학제간 공동 연구를 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하 교수는 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공대), 바이오피직스 앤 바이오피지컬케미스트리(의대), 바이오피직스(자연대) 등 3개 학과에 동시에 소속돼 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면역항암제를 주제로 한 논문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고 했다.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몸속 면역체계를 활용하기 때문에 항암제 부작용이 없고 생존기간도 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암세포와 항암물질 분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잘 모른다. 두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그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각광받는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를 세포 안에 넣은 뒤 여기에 빛을 쪼여 가위가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시간에만 작동하도록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하택집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대중강연. 연구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부터 면역항암제 개발 전망까지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젊은 연구자들, 믿고 지원해야


“생물학과 물리학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제 연구가 생물학이나 물리학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으려고 애씁니다. 박쥐처럼 행동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물리학적 도구를 이용해 생물학을 연구하는 ‘박쥐’라고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박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기꺼이 박쥐가 돼 자신만의 독창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연구자들과의 협업도 그가 가진 강점 중 하나다. 실제로 그의 실험실을 거쳐 간 한국인 과학자만 20명 가까이 되고, 서울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국내 대학 소속 학부생들이 2~3개월씩 그의 실험실에 파견되기도 한다.


그는 “한국 연구자들이 뭉쳤을 때 좋은 결과가 많이 나왔다”며 “한국 연구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항상 새로운 것은 학문의 경계에서 생겨난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믿고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문일답] 기사에 못다 푼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모범생이었다. 수학하고 영어를 좋아했는데, 학력고사 성적이 이과에서 제일 좋았다. 성격은 굉장히 수줍음이 많았다. 앞에 사람이 2명 이상 있으면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뻔뻔해졌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구를 ‘세일즈’하고 있는 걸 보면.


대학 시절 생각나는 일화는?
물리학과 숙제는 특히 어려운 게 많았다. 그럴 때 어려운 문제를 푸는 방법은 3가지였다. 첫 번째는 풀 때까지 끙끙 씨름하는 것. 두 번째는 바쁜 교수님들이 분명 어디선가 베낀 문제일 테니 그 출처를 찾아내는 것. 세 번째는 다 푼 친구한테 가서 물어보는 것. (기자 : 왠지 첫 번째였을 것 같다) 틀렸다. 늘 세 번째였다. 연구를 해보니 누구한테 물어봐야할지 아는 게 정말 중요한 능력이더라. 지식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니까.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본다.


다른 사람의 연구까지 관심 두기가 쉽지 않은데?
트위터를 많이 본다. 젊고 잘 나가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과학자들을 주로 팔로우 하고 있다. 그 친구들이 논문을 자랑하기도 하고, 그 분야의 최신 소식들도 전해준다. 또 학회에 가면 모든 세션을 다 재밌게 듣는다. 그렇게 누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아두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곧바로 적임자에게 연락할 수 있다.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간 한국 과학자라는 수식어도 붙던데?
그럴 때마다 기계처럼 하는 답변이 있다. 하워드 휴즈 의학 재단이 지원하는 사람이 300명 있다. 매년 이 중에서 한 명 정도는 노벨상을 받는다. 내가 앞으로 300년을 산다면 확률적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과학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조언 한 마디.
연구는 결국 학생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과학과 산업이 발전한 것도 해외에서 들어온 인적 자원 때문이다. 한국도 외국의 연구자들이 와서 연구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면 좋을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과학자들과도 협업할 수 있다. 그들은 물리와 수학을 잘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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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사진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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