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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기술 홍보대사로서…’ 2002년 10월 8일 과학기술회관에 모인 수백명의 과학기술인들의 선서에는 과학기술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과학기술인들의 굳건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 출범 5개월이 지난 지금 1백50명에 달하는 과학기술 홍보대사들이 전국의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청소년들의 이공계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느라 분주하다. 게다가 아직도 3백여명의 과학기술 홍보대사들이 대기중이다.

현재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은 한국과학문화재단과 동아사이언스,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후원하고 있다. 이들의 열기가 살아 숨쉬는 현장을 다녀왔다.

과학기술 앰배서더?

‘앰배서더’가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어서인지 사업 초반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 앰배서더를 초청하기 위한 문의 전화에서 “과학기술 앰배… 그거 있잖아요”라고 하는가 하면, 초청된 학교의 현수막에 ‘과학기술 앰배더스’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해 강연 1백회를 돌파한 지금은 과학기술 앰배서더라는 호칭이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앰배서더는 말 그대로 홍보대사를 의미한다. 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월드컵 축구 스타 김남일과 김태형이 우리 쌀을 홍보하듯이 과학기술 앰배서더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모저모를 홍보한다. 더이상 과학기술계의 침체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CF에 출연하는 대신 강연을 택했다. 청소년과 대중을 직접 만나겠다는 의도다. 2002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중 한명으로 선정된 21세기 프론티어사업 인간유전체사업단장 유향숙 박사는 자신이 중학교 재학 시절 과학기술인의 강연을 듣고 음악가의 길 대신 과학기술인의 길을 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강연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과학기술 앰배서더들이 이러한 심정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과학기술 홍보대사로서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주된 반응이다.

강연의 힘, 제2의 패러데이를 꿈꾸며


한양대의 이동과학교실. 청소년들 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8t 트럭을 개조해 각종 과학장비들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과학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기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강연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왕립연구소를 거쳐간 과학자들은 강연으로 인해 자신의 흥망성쇠가 판가름나기도 했다.

1799년에 설립된 왕립연구소는 그 기본 목적 자체가 강연과 실험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과학 지식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왕립연구소의 자연철학(과학이라는 용어는 1834년 영국의 윌리엄 휴얼이 만들었고, 그 전까지는 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교수라면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할 의무가 있었다.

1801년 왕립연구소의 자연철학 교수직을 맡은 토마스 영은 오늘날 그 유명한 영의 ‘빛의 간섭 실험’에 대해 강연했지만 청중들로부터 전혀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영이 주장하는 빛의 파동설이 빛의 입자설을 옹호하던 당시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영의 강연이 청중들을 사로잡을 만큼 감동적이지 못했다는 이유가 컸다. 때문에 영의 강연을 들은 한 청중은 강연이 너무나 지루하고 난해해 이해할 수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영의 빛의 간섭 실험과 파동설은 발표된 후 30년 가까이 지난 1830년 경이 돼서야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반면 영과 비슷한 시기인 1802년 왕립연구소에서 화학 교수로 강연을 시작한 험프리 데이비는 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데이비는 나트륨과 칼륨을 전기분해하는 등 재미있는 실험과 강연으로 왕립연구소 강연의 명성을 드높였다. 데이비의 강연 내용도 훌륭했지만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화술로 인해 오늘날 오빠 부대가 무색할 정도로 당시 귀부인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따라서 영은 1803년 왕립연구소를 떠난 반면 데이비는 1810년 교수직을 사임한 이후에도 왕립연구소의 연구실에서 실험을 계속했다.

데이비의 과학 강연이 영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이클 패러데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전자기유도 법칙 발견 등 전자기 분야의 대가로 성장한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과학 강연에 감동해 강연을 일일이 받아 적은 노트를 데이비에게 보냄으로써 그의 조수로 과학자의 인생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패러데이 자신이 과학 강연자로 나서 1826년에는 새로운 실험과 강연으로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을 시작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은 현재 1백75회가 넘어 역사와 명예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과학 강연이 됐다.

데이비의 과학 강연에 감동한 패러데이가 과학자가 되고 다시 자신의 과학 강연에 감동받을 후세를 양성하고자 노력하는 것. 우리의 과학기술 앰배서더도 제2의 패러데이를 기대하며 강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현란한 무대 조명, 화려한 의상, 귀를 때리는 음악 소리. 이 모든 배경 효과들은 없지만 과학기술 앰배서더의 강연 현장은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강연? No, 공연!


2002년 10월 31일 경기도 안양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가진 서울대 황우석 교수


공연 티켓이 매진되기 전 어떻게라도 표를 구해보려는 열혈 팬 대신 과학기술 앰배서더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선생님, 저요! 저요!”를 외치며 2백석 남짓한 시청각실의 자리싸움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이 멋진 관객이 된다.

야광 팔찌 대신 초롱초롱한 눈빛과 진지한 표정으로 무장한 학생들에게 침을 튀겨 가며 열강을 펼치는 앰배서더는 가수의 인기를 능가한다. 관객의 호응을 유발하는 손짓과 몸짓, 공간을 꽉 채우는 가수의 열창은 없지만 앰배서더의 진솔한 경험담에 공감하고, 재치 넘치는 유머 한마디에 한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기도 한다. 강연 전날 무대에 서는 가수처럼 거울 앞에서 리허설을 했던 앰배서더에게는 이 웃음이 큰 힘이 돼 긴장을 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강연이 끝나면 쏟아지는 질문 공세와 사인 공세에 당황하는 앰배서더도 있지만, 성공적인 강연이었음을 보여주는 이같은 반응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N세대라는 별칭에 걸맞게 앰배서더의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경상남도 과학영재교육원을 다녀온 한국전기연구소의 석희용 박사는 이러한 분위기에 남다른 감회를 표현했다. 그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백명의 미래 과학도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매우 진지하게 자신의 강연을 경청했고, 모두에게 성공적이고 유익한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강연에 참가한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실로 초청해 실험실을 견학시켜주기로 약속까지 했다.

울릉도, 꼭 갈겁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이번에도 높은 파고로 배가 뜨지 않는다는군요.”

울릉도 강연의 꿈에 또한번 좌절의 아픔(?)을 맛본 장본인은 과학기술 홍보대사로 활동중인 포항공대 전기화학과 박수문 교수. 날씨 때문에 벌써 두번이나 강연이 연기됐다. 울릉도면 교통편이 어려워 선뜻 강연을 나설 마음이 들지 않을 법도 한데, 박수문 교수는 자신의 대학 수업 시간까지 옮겨가며 강연을 자청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 앰배서더들은 우리나라의 남단 제주도에서부터 북단 강원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그것도 학교만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영재교육원, 과학관, 과학캠프, 도서관, 자연생태공원 등 학생들이 있고 강연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장소가 다양한 만큼 강연을 듣는 대상 또한 초등학생에서부터 40대 어른까지 그 폭이 넓었다. 그러다보니 강연 주제도 진로에 대한 조언에서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자문까지 갖가지 종류들로 채워졌다. 앰배서더의 전공 분야에 따라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걱정과 우려로 강연을 시작한 앰배서더들은 한편으로는 안도했고, 또 한편으로는 강연이 계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도 수원의 태장고등학교를 다녀온 포항공대 환경연구소 윤성용 교수는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얘기하면서 적잖은 불안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청소년들 중에는 과학기술에 대해 강한 호기심과 의욕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점에 안도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또한 부산대 물리학과의 정세영 교수는 자신이 “주로 대학생만을 상대로 강연을 해왔지만 이번 초등학교 강연을 통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올 5월 말까지 계속되는 과학기술 앰배서더 강연은 그 내용이 더욱 알차고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로봇 전문가들과 그들의 분신인 아미(AMI), 미모트(MIMOT) 같은 로봇들이 대거 출연하는 짧은 영상물도 준비돼 있다. 게다가 이미 지난달 국립 서울과학관에서는 과학과 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실내악단의 연주를 감상하면서 과학의 원리도 설명듣는 과학음악회가 시도됐었는데, 과학음악회는 앞으로도 몇회 더 진행된다고 한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의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 담당자인 조향숙 박사는 “과학기술 앰배서더 강연이 내용이나 구성에서 이전의 전형적인 설명 중심의 강연 방식에서 벗어나 앰배서더의 능력과 성향을 살린 특색 있는 강연이 될 것”이라며, “과학 영상물 상영과 과학음악회 감상 같은 다양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펼쳐 강연을 듣는 학생과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밝혔다.

멘토와 멘티의 온라인 미팅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강연에 몰입하고 있는 청중의 모습.


과학기술 앰배서더들이 모두 강연 활동을 택한 것은 아니다. 16명의 과학기술 앰배서더는 강연 대신 자문 활동을 택해 지난 12월부터 3개월 동안 과학기술 앰배서더 공식 홈페이지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강연을 택한 앰배서더들이 학생과의 짧고 굵은 만남을 가진 반면 자문 활동을 택한 앰배서더들은 길고 가는 만남을 가졌다.

멘토링(mentoring)이라고도 불리는 자문 활동을 통해 한명의 앰배서더와 한명의 학생이 온라인상에서 만나 학생은 앰배서더에게 질문을, 앰배서더는 학생에게 조언과 격려를 주고받았다.

멘토링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오딧세이의 친구 멘토(Mento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딧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자신의 아들 텔레마쿠스의 교육을 멘토에게 맡기게 되고, 멘토는 근 10년 동안 친구이자 상담자, 아버지로서 텔레마쿠스를 잘 돌봐주었다. 이후 멘토라는 명칭은 지혜와 신뢰로 한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스승, 본보기 등의 의미로 사용됐다.

멘토링에서 멘토와 멘티는 동의보감의 허준(멘티)과 그의 스승 유의태(멘토)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유의태가 없었다면 허준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앰배서더는 유의태의 마음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비추어 멘티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고 멘티가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멘토로 활동한 한국통신연구소의 임태수 연구원은 3개월 동안의 자문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나름대로 보람과 아쉬움을 함께 표현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멘티였던 임태수 연구원은 “활동 기간이 짧아 공학적 마인드를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과 실제 공부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 앰배서더의 강연은 1백회 가량 더 진행된다. 과학기술의 진가를 제대로 알리고자 고군분투하는 과학기술 앰배서더들의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이들의 노력과 의지가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과학도들에게 전해져 메아리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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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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