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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난산 끝에 태어난 소 · 돼지 1백마리

국산 복제동물 식용에서 의료용으로 전환중

1999년 2월 12일 경기도 대은행 목장.

새끼를 배고 있던 한 암소가 갑자기 유두가 빳빳해지고 자궁이 열리는 등 출산 조짐을 보였다. 이미 새끼소의 다리가 어미소의 뱃속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잘못하면 사산할 위험이 높았다.

회의를 하다 급하게 호출을 받고 온 서울대 황우석 교수(수의학과)는 손을 어미소의 자궁에 집어넣고 30분 동안 안간힘을 쓰며 새끼소를 끄집어냈다. 10여분 동안 마사지를 받은 새끼소는 마침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황 교수의 입에서는 “고맙다”라는 탄성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왔다. 한국의 첫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난 순간이다.

한국 세계 5번째로 동물복제 성공

한국의 복제동물 역사는 이날 태어난 ‘영롱이’에서 시작된다. 영롱이가 태어나면서 한국은 영국, 일본, 미국,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 5번째 동물복제 국가가 됐고, 지금도 많은 복제동물이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복제동물 연구는 황우석 교수팀, 축산기술연구소, 경상대 김진회 교수팀 등이 주도하고 있다. 마크로젠, 엠젠바이오 등 일부 바이오 벤처 기업에서도 동물 복제 연구가 한창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태어난 복제동물은 ‘소’다. 99년 이후 황 교수팀에서만 60여마리, 축산기술연구소에서 20여마리가 태어났다. 현재 복제송아지를 임신하고 있는 소들도 적지 않아 올해 안에 복제소는 100여 마리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황 교수는 “나중에 밝혀졌지만 ‘영롱이’는 나이가 들어 복제가 잘 안되는 소의 세포였는데 우연하게 성공한 것”이라며 “최근 복제하고 있는 한 젖소는 아주 복제가 잘 돼 현재 7마리의 송아지가 한꺼번에 임신됐다”고 밝혔다.

‘영롱이’는 얼마 전 네 살이 됐다. 사람이라면 성장이 다 끝난 ‘30대 아줌마’다. 벌써 새끼도 두번이나 낳았다. 영롱이를 보살피는 발안종합동물병원의 김성기 원장은 “돌리와 달리 영롱이는 4년 동안 병 한번 앓은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목장을 찾았을 때 영롱이는 처음 보는 기자에게 다가와 혀를 내밀어 뺨을 만지려 할 정도로 사람을 좋아했다. 성격도 아주 순한 순둥이다.

소는 정상, 돼지는 조로 현상

아직 복제의 역사가 짧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복제소가 갑자기 돌연사한 경우는 아직 없다. 축산기술연구소의 양병철 박사는 “복제소의 경우 뱃속에서 유산되거나 허약한 상태로 태어난 직후 바로 죽은 경우 외에는 자라다가 죽은 경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복제돼지도 벌써 10여마리에 이른다. 그러나 복제돼지는 화려한 탄생과 달리 그동안 수난을 많이 겪었다.

복제돼지는 지난해 7월 경상대 김진회 교수팀에서 처음 3마리가 태어났다. 첫 복제돼지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던 이 돼지는 불과 2주만에 죽었다. 다음달 황 교수팀에서도 유전자를 바꾼 복제돼지 한 마리가 처음 태어났다. 그러나 이 돼지도 이틀만에 죽고 말았다.

다행히 김 교수팀에서 또다시 복제돼지 6마리가 태어났다. 이중 1마리는 죽었지만 현재 5마리는 잘 자라고 있다. 황 교수팀에서도 복제돼지가 계속 태어나고 있다. 그러나 황 교수팀에서 태어난 4개월된 복제돼지가 턱 밑 피부에 주름이 생기고 울음소리도 늙은 돼지와 비슷해지는 등 조로 현상이 나타나 우려를 낳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황 교수팀에서는 현재 백두산 호랑이 복제도 시도하고 있다.

첫 복제고양이 한국인 손길

외국에서 태어난 복제동물 중에도 한국 과학자가 참여한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첫 복제고양이 ‘시시’(Cc)다.

서울대를 나온 신태영 박사는 2000년말 미국 텍사스 A&M대학 연구팀과 함께 암코양이의 체세포를 이용해 처음으로 고양이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애완동물을 복제한 것은 시시가 처음이다. 특히 고양이과 동물을 복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무척 어려운 과제로 꼽혔는데 신 박사가 이를 해낸 것이다.

복제고양이 시시는 올해초 체세포를 제공한 고양이인 ‘레인보’와 겉모양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보고가 나와 또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레인보의 경우 흰색 바탕에 갈색과 금색 얼룩을 갖고 있는 반면 시시는 흰색 바탕에 회색 줄무늬가 나 있다. 레인보는 내성적인 반면 시시는 호기심이 많고 장난기가 다분하다고 한다. 복제를 한다고 해서 겉모양이 꼭 같은 것은 아닌 셈이다.

세계 최초의 장기이식용 복제돼지도 한국 과학자가 참여한 합작품이다. 강원대 수의학과 정희태 교수, 축산기술연구소 임기순 박사, 미주리대 연구원 박광욱 박사 등 한국 과학자 3명과 미국 미주리대 연구팀, 바이오벤처기업 이머지 바이오 세러퓨틱스사 연구팀은 2001년 처음으로 장기이식용 돼지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할 때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다. 박광욱 박사는 지난해 국내에 복제돼지 전문 바이오 벤처기업인 엠젠바이오의 사장이 되기도 했다.

마크로젠도 지난해 일본에서 복제 쥐를 탄생시켰다. 이 복제 쥐는 영롱이처럼 체세포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배아 세포를 복제한 것이지만, 앞으로 생쥐를 이용한 질병 치료 연구와 인간 유전자 기능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이기영 박사도 지난해 열대어의 유전자를 조작한 뒤 이 열대어를 복제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2001년 해외에서 태어난 첫 장기이식용 복제돼지. 돼지 장 기는 사람과 크기가 비슷해 거부반응만 없애면 인체에 이 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제소 고기·우유 아직 사용 못해


올해 4살이 된 복제소 영롱이.


한국에서 처음 복제동물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학문적인 호기심과 함께 이른바 ‘우량 동물’에 대한 복제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영롱이가 태어났을 당시 정부는 보통 소보다 훨씬 뚱뚱하고 빨리 자라는 한우(고기소)나 우유 생산량이 월등한 젖소를 1000마리 복제해 농가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때 우량 소를 복제해 북한에 보낸다는 계획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영롱이를 살펴보면 ‘우수한 능력’도 함께 복제되는 것으로 보인다. 영롱이는 보통 젖소보다 젖을 더 많이 짜내는 우량 젖소를 복제했다. 영롱이를 키우는 류기영 목장주는 “영롱이가 첫 새끼를 낳은 후 짜낸 젖은 하루에 47㎏으로 보통 젖소의 2배나 된다”며 “영롱이는 다른 소보다 조금 더 많이 먹는 정도”라고 말했다. 만일 전국의 모든 소가 영롱이를 키운다면 농가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장 규모와 키우는 소를 절반으로 줄여도 같은 양의 우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제소의 젖은 아직 우유로 사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도 복제소의 젖을 식용으로 허락한 나라가 없다. 국내 복제소의 젖은 현재 그냥 버리거나 다른 송아지를 키우는데 쓴다.

일부 단체에서 복제 동물의 우유나 고기가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실제로 복제 고기나 우유가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유전자변형작물(GMO)처럼 소비자들의 반대 심리도 장벽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정석찬 박사는 “복제 동물의 식용 여부는 한국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1~2년 안에 승인 결정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제소 인공수정율 정상소의 절반

복제소가 우량하다고 하지만 탄생 과정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일반 소에서 인공수정을 한 뒤 새끼가 태어날 확률이 35% 정도인데 복제소는 10% 정도다. 복제 동물은 인공수정을 해도 착상이 잘 안되고 유산이 되거나 기형으로 태어날 확률이 일반 동물보다 높다. 돌리처럼 조로 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량한 복제소가 평범한 일반 소보다 경제성이 높지 않다. 일본도 최근 우량 젖소를 복제해 농가에 보급한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김진회 교수는 “처음에 복제동물에 너무 기대감을 갖고 성급히 가능성과 파급 효과만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이제 복제 동물은 ‘우량 동물’을 복제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값비싼 단백질 의약품을 젖이나 오줌에서 생산하는 유전자변형동물의 복제다. 김진회 교수는 “3월초에 오줌에서 빈혈치료제를 생산하는 돼지 등 다수의 복제돼지가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유에서 금보다 귀한 의약품을 생산하는 유전자변형 젖소를 복제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다만 경제성이 아직은 높지 않아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례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또다른 기대는 인간에 이식할 장기를 생산하는 복제돼지 연구다. 황우석 교수팀은 “의학자들과 꾸준하게 장기이식용 돼지 복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수년 안에 돼지 장기를 난치병 환자에 이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복제 연구의 틈새 시장으로 애완동물과 멸정 위기에 놓인 동물을 복제하는 연구도 있다.

최근 동물 복제 연구는 여러 분야 생명과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발전하고 있다. 학문적으로는 놀라울지 몰라도 경제적인 효과를 따진다면 더 이상 복제만 해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진회 교수는“최근 동물복제 전문가들이 의학자나단백질 분야의 생명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 곧‘고부가가치 복제동물’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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