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장나라, 야인시대, 로또.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을 한번 찾아보자. 사실 신문이나 방송을 자주 접한 사람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이들은 최근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고 언론에 소개된 화제의 주인공들이다.
신드롬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신드롬이란 원래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의학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신드롬이란 말을 특정인이나 사물에 사용하는 것은 그 대상을 떠받드는 현상이 병적인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미에서다. 그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셈이다.
사회적으로 유행어가 돼버린 신드롬이 본연의 뜻인 병적 징후로서도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다양한 신드롬이 등장해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신드롬들은 특정 증세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는 있지만 질병이라고 부르기에는 인과관계가 애매모호한 것들이다. 소리소문 없이 찾아와 21세기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협하고 있는 신종 신드롬들을 만나보자.
바쁜 생활이 건강 해친다
햄버거에 콜라 한잔.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현대인이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간편히 고를 수 있는 메뉴다. 꼭 바쁘지 않더라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햄버거와 피자, 콜라 등은 맛도 있어 자주 찾게 된다. 그러나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이용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조용한 살인자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엑스 신드롬’(syndrome X)에 걸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엑스 신드롬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지난해 4월 16일 영국 BBC방송에 심각한 실태가 보도되면서부터다.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한나연구소의 빅터 재밋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만 무려 5백만명의 사람들이 엑스 신드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엑스 신드롬이란 비만증이 있는 사람에게 당뇨병과 고혈압, 고지혈증이 합병돼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 신드롬에 걸리면 쉽게 피로를 느끼며 집중력 저하를 호소한다. 또 나이에 비해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알츠하이머에서 암, 심장병 등 심각한 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높인다.
재밋 박사팀은 엑스 신드롬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음식물과 관련이 크다고 밝혔다. 사실 패스트푸드점 음식은 흔히 ‘정크 푸드’(junk food, junk는 쓰레기란 뜻)라 불리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몸에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당시 재밋 박사의 발언이 충격이었던 것은 패스트푸드 음식이 단순히 질이 나쁘다는 선이 아니라 담배처럼 건강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한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재밋 박사는 “엑스 신드롬과 연관되는 것은 특히 당분이 많은 과자류와 청량음료다”라고 밝혔다. 과다한 당분은 비만을 일으키며 동시에 신체를 과다한 인슐린에 오랜 시간 노출되게 만든다. 인체에 남아있는 인슐린은 간의 대사 스위치를 건드려 간이 트리글리세라이드라는 위험물질을 과다하게 만들도록 한다. 원래 인슐린은 트리글리세라이드 분비를 늦추지만 과다한 당분이 역할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혈중 지방농도는 증가하고, 비만과 고혈압 등 각종 신체 교란현상이 나타나면서 결국 엑스 신드롬을 불러일으킨다는 설명이다.
한편 바쁜 현대인 중 특히 여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신드롬이 지난해 12월 10일 미국 ABC방송에 크게 보도됐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브렌트 보스트 박사는 현대 여성이 ‘바쁜여성 신드롬’(HWS, Hurried Woman Syndrome)이라는 신종 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스트 박사는 “여성이 직장일과 가사를 함께 돌봐야 하는 등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는다”면서 이 때문에 쉴새 없이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바쁜 여성에게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서 결국 쉽게 피로하고 우울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바쁜여성 신드롬에 걸린다는 분석이다.
바쁜여성 신드롬에 걸리면 신체에 산화독소가 늘어나고 성욕은 줄어들며 심장병의 위험은 늘어난다고 밝혔다. 또 비만이나 식사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생각하고 불필요한 일들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스트 박사는 미국의 25-55세 여성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6천만명을 바쁜여성 신드롬 환자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여성은 미국보다 더욱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에 이 신드롬으로 고생하는 수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인은 비좁은 좌석?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로 갈 때는 대부분 비행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좁지만 저렴한 이코노미클래스(일반석)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비행기의 이코노미클래스석에 앉아있다 보면 아무래도 불편하기 마련이다. ‘좁은 자리에 오랜 시간 앉아있으니 다리가 저리는 군’하며 사실 그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2000년 10월 호주 시드니에서 올림픽경기를 구경하고 돌아온 엠마 크리스토퍼슨이라는 여성이 영국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한 직후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8살이던 그녀는 평소 건강했으며, 20여시간 동안 이코노미클래스로 불편하게 여행했다는 점 외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부검한 결과 그녀의 사인은 다리에 만들어진 혈액 응고덩어리인 혈전이었다. 몸을 오랜 시간 잘 움직이지 못하면 하반신에 피가 굳어 혈전이 만들어질 수 있다. 혈전이 생긴 상태로 공항에 도착한 그녀는 걷기 시작했고, 그 결과 피의 흐름이 활발해지면서 혈전이 혈관을 타고 이동했던 것이다.
혈전이 폐동맥처럼 중요한 혈관을 막으면 호흡 곤란이나 심폐기능을 정지시켜 생명을 앗아간다. 장거리 여행객을 위협하는 이 현상이 바로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economy class syndrome)이다.
영국 여성의 사망 사건 이후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은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했던 영국 올림픽팀 코치가 똑같은 이유로 무릎에 커다란 혈전이 생기면서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히드로공항에 발생한 환자들이 이송되는 병원인 미들섹스주 애시포드병원의 사고 및 응급담당 전문의 존 벨스테드 박사는 히드로공항에서 이미 30명의 승객이 똑같은 이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히드로공항에 도착한 사람 중 매달 1명은 혈전 때문에 숨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 시드니의 세인트빈센트병원 레지날드 로드 박사는 호주 시드니공항 이용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 3년 간 무려 4백여명이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의대 역시 지난 8년 간 나리타공항에서 25명이 같은 이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실제 증상이 가벼운 환자를 포함하면 나리타공항에서 1년에 1백-1백50명 정도에게 혈전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의 심각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5월 14일 제네바에서 열린 연차 총회에서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을 규명하기 위한 4개년 연구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적으로 수술경험, 경구 피임약 복용, 기내 음주, 다리 운동, 압박 스타킹 착용, 기내의 공기압과 산소 수준 등 여러 요인들이 혈전 발생에 끼치는 영향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현재 영국, 미국, 호주의 피해자들은 브리티시항공 등 여러 항공사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항공사들이 최소한 5년 전부터 이코노미클래스의 위험을 눈치채고 있었으면서도 경고를 하지 않았다며 항공사를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20일 호주 빅토리아주 대법원은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에 대해 항공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결해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이 열었다.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이 유명해지면서 최근 장거리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새로운 풍속도가 연출되고 있다. 안전을 위한다며 또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겠다며 비행기에 탑승한 후 자기자리를 고수하던 사람들은 이제 찾을 수 없게 됐다. 대신 사람들은 좁은 공간을 비집고 나서 항공기 내를 이리저리 서성대거나 요란한 운동까지 한다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부르는 위험
거대한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숨쉬기가 곤란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온몸이 피곤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퇴근하면 이런 증상은 씻은 듯 사라지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면 다시 나타난다. 자칫 꾀병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이 증상은 바로 ‘빌딩 신드롬’(SBS, Sick Building Syndrome) 때문이다.
빌딩은 현대인이 생활하는 주된 공간 중 하나다. 그러나 WHO는 전 세계 빌딩의 40% 정도에서 실내공기가 오염돼 있으며, 이 때문에 건강상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빌딩 신드롬은 심각한 문제임이 밝혀졌다. 한양대 의대 산업의학교실 김윤신 교수가 지난해 빌딩에서 생활하는 4백64명을 조사한 결과, 만성피로(92%) 눈 충혈(69%) 어깨통증(68%) 현기증(64%) 기침(59%) 메스꺼움(52%) 등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빌딩 신드롬이 발생하는 이유는 빌딩의 경우 환기가 잘 되지 앉아서 오염물질이 쌓이기 때문이다.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은 건축자재와 사무용품에서 방출되는 라돈, 석면, 포름알데히드 등 화학물질과 세균,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이 있다. 특히 최근에 지어진 빌딩일수록 에너지 절약을 위해 화학물질을 방출하는 단열재를 많이 사용하고, 창문의 수가 적은 밀폐형이기 때문에 빌딩 신드롬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빌딩 신드롬을 피하기 위해서는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시키고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청소해야 한다. 또 빌딩 내의 채광, 온도, 습도, 공기정화 등을 자연환경에 가깝도록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업무나 게임을 하려고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보면 어깨와 뒷목, 등이 뻐근하고 쑤신다. 또 손이 저리고 마비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컴퓨터병을 통칭해 흔히 ‘VDT 신드롬’(Visual Display Terminal syndrome)이라 부른다.
아주 흔한 어깨와 목 근육의 통증은 ‘근막통 신드롬’ 때문이다. 키보드를 치는 동작은 자연스레 어깨 근육을 긴장하게 만든다. 근육이 지속적으로 긴장해 수축하면 근육이 손상되고 결국 통증을 유발한다. 처음에는 뻐근한 정도지만 나중에는 잠을 못잘 정도로 심해질 수도 있다. 이 신드롬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오래 사용할 때는 중간에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운동을 해야 한다.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래 사용하면 손이 저리고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손목터널 신드롬’이라 부른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동작은 많은 힘줄과 신경이 지나가는 손목의 터널에 압박을 가한다. 이 때문에 손목 터널내 힘줄과 신경이 자극을 받아 마비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근막통 신드롬보다는 드물지만 심한 경우 손가락이 영구적으로 마비될 수 있으므로 손목을 쉬게 하고 마사지를 자주 해주는 것이 좋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은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과 같은 심각한 혈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03년 1월 18일 영국 BBC방송은 뉴질랜드 의학연구소의 리처드 비슬리 박사가 ‘e혈전’의 첫번째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비슬리 박사는 하루 12시간씩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 외에 혈전과 관련이 전혀 없는 32세 남성의 사례를 ‘유럽호흡기’ 저널에 발표했다.
비슬리 박사가 진단한 이 환자는 처음에는 장딴지가 부어오르며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10일 정도 지속되던 이 증세가 사라지면서 숨쉬기가 점점 어려워졌으며,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왔다. 비슬리 박사는 이 증상이 혈전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아내 혈전 용해제를 투여했다. 그 결과 환자는 다행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비슬리 박사는 “장시간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이라면서 “컴퓨터가 널리 이용되는 현대사회에서 e혈전증에 노출돼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최근 등장한 e혈전증은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PC방에 살다시피하며 인터넷 게임을 즐기다가 갑자기 사망한 사고의 원인으로 유력하게 생각되고 있다. 업무나 게임 때문에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발과 다리를 움직여주고 휴식시간을 갖는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외에도 야간에 술과 음식을 자주 즐기면 낮에는 입맛이 없다가 밤이 되면 식욕이 증가하는 ‘야간식이 신드롬’(Night Eat Syndrome)이 생길 수 있다. 이 신드롬에 걸리면 배고파 잠을 이루기 어렵고 자다가도 음식을 찾게 된다. 한편 신드롬을 가진채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술을 지나치게 자주 즐기는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태아성알코올 신드롬’(FAS, Fetal Alcohol Syndrome)에 걸린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아기는 신장, 체중 등의 발육부진과 함께 뇌발달이 더뎌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면역능력도 약하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신드롬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이런 신드롬들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무리 바쁜 현대인이라도 신드롬에 대해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