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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나노소재기술

전자 하나로 작동하는 트랜지스터 구현

최근 전세계적으로 나노기술 태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여러나라가 앞다퉈 나노기술을 21세기 신기원을 가져다줄 유망한 분야로 정하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사실 나노기술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반도체 분야에서 마이크로미터(μm, 1μm=${10}^{-6}$m)보다 더 작은 나노미터(nm,1nm=${10}^{-9}$m) 규모의 소자가 요구됐던 것이 계기였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이미 나노기술이 중요하게 사용돼 왔던 셈이다. 그래서 반도체 분야가 앞으로 나노기술이 실질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유망한 분야다. 반도체 나노소재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개발했다고 발표한 90nm 선폭을 갖는 반도체 D램의 모습.


국내서 나노 반도체 시대 처음 열어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머리카락 굵기의 1천2백50분의 1에 불과한 90nm 선폭을 갖는 반도체 D램을 개발했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나노 반도체 개발 뉴스가 나왔지만 나노급 상용 반도체를 만든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나노 반도체의 양산 기술을 개발해‘나노 반도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나노 반도체를 개발한 기술은‘깎아내기’(top-down) 방식이었다.

깎아내기 방식은 이미 존재하는 큰 물질을 깎아서 원하는 작은 크기로 만드는 것이다. 원래 마이크로 기술에 쓰이던 방식이다. 대표적인 깎아내기 방식은 광식각 공정기술이다. 칩에 회로를 그리는 방법은 사진을 현상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반도체 기판 위에 산화막과 감광제를 차례로 입히고 원하는 모양의 마스크를 씌운 후 빛을 비추면 빛이 통과한 부분이 화학적으로 변한다. 이를 통해 기판 위에 원하는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때 사용하는 빛은 보통 자외선이다.

본래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반도체칩의 선폭은 1백nm가 한계로 알려져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광식각 공정기술을 업그레이드시키려고 노력중이다. 기존의 자외선 대신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이나 X선, 또는 전자빔이나 이온빔을 이용해 1백nm 이하의 집적도를 얻으려는 것이다. 파장이 짧을수록 회로에 더욱 가는 선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의 창시자 고든 무어가 발견한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반도체칩의 집적도가 12-18개월마다 두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40년 간 반도체가 착실하게 따라온‘무어의 법칙’이 계속 적용될까.

하지만 깎아내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35nm 이하로는 발전하기 어렵다. 반도체 소자의 크기가 20-30nm 정도가 되면 양자현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 기존의 회로 설계법칙이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제작비용도 엄청나게 증가해 상업화에 무리가 따른다.

분자를 쌓아 만든 나노블록 신소재

앞으로는 원자나 분자를 벽돌처럼 쌓듯이 조합해서 새로운 나노구조물을 만드는‘쌓아가기’(bottom-up)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쌓아가기 방식으로는 각종 전자소자를 분자 크기로 만들 수 있어 집적도를 테라비트(${10}^{12}$bits/cm²)급으로 높일 수 있다. 또한 원자나 분자가 스스로 물질을 형성하는 자기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자나 분자를 조작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최근 쌓아가기 방식은 나노튜브, 나노결정, 나노와이어, 나노막대 등 다양한 형태의 나노소재를 제조하는데 적용됐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일차원 구조를 갖는 나노소재인 나노튜브, 나노선, 나노막대는 나노소자를 제조하는데 유리한 점이 많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일차원 나노소재를 제조하는데는 주로 금속촉매가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속촉매를 사용하지 않고 순도가 매우 우수한 반도체 나노와이어(나노막대)를 제조하는 방법이 개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의 이규철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규철 교수팀은 반도체 박막을 만들고 그 물성을 연구하는 와중에 우연히 박막 위에 나노막대가 형성된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반도체 박막은 보통 매끈해야 좋은특성을 갖는데, 특정한 조건에서는 비교적 균일한 크기와 길이를 갖는 나노막대들이 박막 위에 수직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2001년 여름 전자현미경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나노막대는 지름이 수nm에서 수십nm 이내로, 길이는 수μm 이상까지 조절이 가능하고 종횡비(길이 대지름의 비율)가 크기 때문에 초미세 나노소자를 제작하는데 매우 적합하다. 나노막대보다 좀더 긴 경우는 나노 와이어라 불린다. 나노막대나 나노와이어는 기존에 구현할 수 없었던 다양한 기능을 가진 나노소자를 제조하는 데 필수적인 나노블록 신소재다. 예를 들어 이 교수팀이 개발한 나노막대는 레이저다이오드나 발광다이오드(LED), 또는 센서로 응용가능하다.

무지개빛 발광다이오드 가능

어렸을 때 장난감 블록으로 집이나 자동차를 만들었던 것처럼 나노블록 신소재를 적당히 배열하면 다양한 나노소자를 만들 수 있다. 나노블록 신소재로 구현한 응용 제품으로 나노 전자소자, 나노 광소자, 나노 센서 등이 있다.

쌓아가기 방식으로 개발중인 전자소자로는 차세대 초소형 컴퓨터를 구현하기 위한 나노 트랜지스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단전자 트랜지스터를 들 수 있다. 단 한개의 전자로 연산작용을 할 수 있는 단전자 트랜지스터는 핵심 동작 부분이 수-수십nm 정도다. 현재 60개의 탄소로 이뤄진 축구공 모양의 풀러렌(탄소공)을 이용해 1nm급의 단전자 트랜지스터가 개발된 정도다. 물론 아직까지 단전자 트랜지스터는 극저온에서만 구동된다는 단점이 있다. 상업화에 성공하려면 실온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풀러렌 대신 탄소나노튜브를 스위치로 이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1-10nm 두께의 대롱 모양인 탄소나노튜브를 전자의 이동통로로 사용하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경우 전압에 따라 두개 튜브의 접합을 조절해 온∙오프를 통제한다. 최근에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탄소나노 튜브 위에 산소-질소-산소로 얇은 막을 입혀 메모리 반도체의 단위 소자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상온에서 정보를 저장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물론 이 단위 소자를 밀집시키는 과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탄소 나노소재뿐만 아니라 반도체 나노막대도 다양한 나노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다. 반도체 나노막대에 적당한 양의 불순물을 넣어 n형(전자의 이동으로 전류가 흐르는 반도체)과 p형(정공(hole)의 이동으로 전류가 흐르는 반도체)으로 만들면 반도체 나노막대의 전기적∙광학적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를 다양한 반도체 나노 소자를 제조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반도체 나노막대는 나노 광소자를 제조하는데도 유용하다. p형과 n형을 접합시켜 만든 하나의 나노막대에 전류를 흘리면 접합부분에서 빛이 나오는 나노 발광 다이오드(나노 LED)가 된다. 이때 나오는 빛깔은 반도체의 성질에 따라 무지개빛으로 다양하다.

기초 연구와 상용화 노력 병행해야

최근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나노기술이 금방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리적인 비약이 심한 경우가 많다.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만 나노기술이 실용화 된다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만큼 나노 세계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연구자를 매료시키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그마한 핀 머리에 24권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쓸 수 있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슈퍼컴퓨터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전에 나노세계에 대해 좀더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아직도 나노세계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산재해 있다. 나노세계에 대한 기초적 연구가 심도있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나노기술은 D램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돼 있는데, 좀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굳이 반도체의 집적도에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반도체 나노기술 분야처럼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며 개척하는 일은 당장의 상업적 응용을 보고 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이후 트랜지스터와 같은 반도체를 연구했지만, 이것이 라디오나 텔레비전, 컴퓨터나 휴대폰에 쓰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나노기술을 상용화하려는 산업적 노력도 기초 연구와 함께 병행돼야 하겠지만, 기초가 탄탄해지면 응용가능성이 그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빌 게이츠처럼 새로운 생각 필요

나노기술 분야는 공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면을 지닌다. 물리나 화학 같은 기초지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나노소자나 소재를 다루는 공학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나노기술은 물리, 화학, 재료공학, 전자공학 등이 함께 참여하는 학제적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분야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나노세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물리적 배경이 필수적이고, 재료공학 쪽에서는 실험을 통해 나노소재의 특성을 연구해야 하며, 전자공학 분야에서는 나노소재를 어떻게 나노소자로 구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포항공대 이규철 교수의 경우 국내대학에서 물리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친 후 박사과정은 미국 노스웨스턴대 물리학과에서 밟았는데, 재료과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아 반도체 박막의 물성을 연구하는 학위논문을 썼다고 한다. 이 교수는“나노기술 분야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학문간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노기술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필수적이다. 단편적인 지식을 알기보다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판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단순히 물리나 화학 분야의 책을 읽는 것 이외에 철학이나 역사 분야의 책을 읽으며 깊이 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미국 IBM과 HP에서 반도체 메모리를 연구했던 포항공대 이헌 교수(신소재공학과)는“빌 게이츠처럼 개인의 발명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가의 흥망성쇠가 나노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을 다루는 과학에 달려있다는 자부심이 과학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도체 나노소재 분야에서 새로운 물질을 발견한다면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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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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