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데 엔딩이 답답해요ㅋㅋ. 한달을 어떻게 기다리지….”
전지적 독자위원회(전독위) 1기 이건희 독자위원이 보내온 2월호 ‘네, 그래서 이과가 일해봤습니다’ 코너 후기입니다. 기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를 태우는 데 성공했단 뜻이니까요(후후).
이야기는 위기를 맞을 때 끊어야 다음 화가 기다려지는 법이죠. 지난 2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우리는 큰 벽을 마주했습니다. 코끼리는 지능이 높은 동물입니다. 냉장고처럼 좁은 공간은 코끼리가 스트레스를 받기 딱 좋은 환경이죠.
게다가 동물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시아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위급(CR)단계로 분류한 멸종위기 종입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보려는 호기심이 멸종위기 동물의 동물권을 담보로 할 정도로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뭔가 단단히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뜻밖의 장소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한 이과의 여정, 그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실험방법 부활을 꿈꾸는 멸종위기동물의 마지막 쉼터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하루 방문객만 만여 명 안팎인 인기 관광지입니다. 그런데 이 동물원의 연구동 1층에 아주 특별한 동물원이 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냉동 동물원(Frozen Zoo)’. 치타, 흰코뿔소, 고릴라 등 동물 1000여 분류군이 잠들어 있는 일종의 ‘냉장고’입니다.
냉동 동물원의 역할은 동물에서 채취한 유전물질을 영구적으로 냉동보관하는 겁니다. 체세포나, 난모세포, 정자, 그리고 배아 등이 여기 속하죠. 유전물질을 보관하는 이유는 각각의 동물을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20년 있었던 프르제발스키 야생마 복원입니다. 프르제발스키 말은 중앙아시아가 고향인 멸종위기 야생마죠. 샌디에이고 냉동 동물원은 1980년부터 이 말의 체세포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뒤, 이 체세포를 이용해 프르제발스키 말을 복제하는 데 성공한 겁니다.
연구팀은 가축용 말에서 난모세포를 채취한 다음, 세포핵을 제거했습니다. 그 자리에 프르제발스키 말 체세포의 핵을 넣어 대리모 말의 자궁에 이식하자, 프르제발스키 말의 클론(복제 개체)이 태어났습니다. 클론에는 ‘커트’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1972년 세계 최초로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냉동 동물원을 만들었던 미국의 유전학자 커트 베니쉬케의 이름을 땄죠. 프르제발스키 말은 현재 전 세계에 약 2000마리가 남아있습니다. 개체 수가 적어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위험요인을 안고있죠. 복제 말 커트는 현존하는 프르제발스키 말이 갖지 못한 형질(유전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프르제발스키 말 보전을 위한 열쇠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실험결과 저 냉장고에 코끼리 좀 넣으러 다녀오겠습니다
냉동 동물원이라니, 그것 참… 코끼리를 넣기에 알맞겠습니다. 지난 1월 10일 오후, 기자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러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서울대공원 종보전연구실의 유전자 은행입니다.
“동물원 한편에 실험실이 있고, 동물 보전 연구를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아요.” 유미현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유 연구원이 두꺼운 철문을 열자 영하 196℃ 액체질소 탱크와 영하 80℃ 초저온냉장고 등 다양한 냉장고가 늘어서 있는 작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확실히 동물원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장소입니다. 유 연구원은 “동물 약 300 종의 유전물질을 보관하고 있다”며 “동물원에 없지만, 이곳 유전자 은행에는 있는 동물도 수 종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 그럼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어볼 차례입니다(고백하자면, 사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코끼리를 뺐다가 다시 넣는 것에 가깝습니다). 우선 장갑을 껴야 합니다. 피부에 액체질소가 닿으면 동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액체질소 탱크를 열자 흰 연기가 바닥에 깔렸습니다. 유 연구원이 튜브 하나를 건넸습니다. 안에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코끼리사의 터줏대감, 아시아 코끼리 ‘사쿠라’의 혈액이 들어있었죠. 요걸 상자 안에 담은 다음 액체질소 탱크에 넣고 문을 닫으면 됩니다. 냉장고에 코끼리 넣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아하게 해냈습니다.
미션에 성공해 기쁘긴 하지만, 사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냉장고 속 동물들은 대부분 냉장고 밖 세상에서 살아갈 자리를 잃고 있는 멸종위기 종이니까요. 역시 코끼리는 냉장고가 아닌 자연에서 만나는 게 제일 좋겠죠?